마음공부 1

[지혜별숲] 요가 니드라는 절대적인 이완의 경험이다. [낭독84회]

Buddhastudy 2024. 3. 20. 19:40

 

 

스와미 싸띠아난다 사라스와띠의 [요가 니드라] 함께 하겠습니다.

 

우리는 대개 잠을 잘 때 자신이 숙면을 취했다고 생각하는데요.

우리의 생각과는 달리 아침에 일어나면

산뜻한 느낌이 들지 않고

뭔가 여전히 지치고 피곤한 듯 느껴지는 경우가 많죠.

 

몸과 마음의 긴장을 완전히 해결하지 않은 채

잠에 들었기 때문인데요.

요가 니드라는

모든 짐을 던져버린 뒤의 잠, 절대적인 이완의 상태를 말하구요.

일반적인 잠인 니드라와는

완전히 다른 의식 상태를 말합니다.

내용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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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 있음에서 깊은 수면으로의 순서적인 하강 패턴 중에

정상적인 사람의 뇌파 주파수는

베타에서 세타를 통한 다음

마지막으로 델타로 하강한다.

 

이것이 일어나면서 의식은

깨어 있음에서 꿈꾸는 것으로, 그다음에는 잠들어 있음으로 간다.

 

그러나 요가 니드라에서는 하강 과정이 다르다.

여기서는 베타파가 알파파로 대체되며

알파 우위 기간이 크게 연장된다.

증가된 알파 활동은 이완의 특징을 띠므로,

이 발견은 요가 니드라가 달리 얻어지는 것보다

훨씬 더 이완된 수면상태를 증진시킨다는 것을 뜻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근육·정신·감정적인 3중의 긴장을 해결하지 않고 잔다.

왜냐하면 그들은 알파 우위와 베타와 델타 사이의 전체적 이완이라는 플랫폼이 없이

베타 상태에서 델타 상태로 직접 들어가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많은 사람들이 아침에 일어나 피곤해하는 까닭이다.

 

깊은 이완은

심지어 수면 중에도 알파파가 강렬해질 때만 일어난다.

훈련되지 않은 보통 수면과 요가 니드라의 차이는

요가 니드라에서는

알파파 우위와 전체적인 이완이라는 중간 플랫폼이

베타 우위의 깨어있는 상태와 느린 델타 리듬 패턴의 깊은 수면 사이에서

개발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요가 니드라를 통해 창조되는 휴식의 질이

몸과 마음에 모두 이롭고 원기를 회복시켜주는 까닭이다.

요가 니드라는

니드라와 전혀 다른 의식 상태인 것으로 여겨진다.

 

니드라는 방법과 이유를 막론하고 잠을 뜻한다.

그러나 요가 니드라는 짐을 던져버린 뒤의 잠을 뜻한다.

그것은 절대적인 이완의 경험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수면상태로 들어가면서

처음 몇 분 안에 자각을 상실한다.

그러나 수면의 입구에서

이 중요한 과도 국면을 연장함으로써

자각의 끈을 보존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는 의식적인 자각을 그대로 유지한 채

수면 상태를 경험할 수 있게 해준다.

 

요가 니드라의 궁극적인 결과는

모든 의식수준들 간의 전체적인 조화와 통합이다.

요가 니드라를 완성시키는 사람은

처음 세 가지 자각 상태들을 초월하여

개인적인 의식 너머에 있는 네 번째 결합 상태인

보편적인 의식과의 융합으로 들어간다.

 

종교적인 용어로 이 경험은

해탈 또는 신에 대한 깨달음으로 칭해져왔지만

요가와 딴뜨라에서는 그것을

작용하고 있는 전체적인 마음의 경험으로 알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꿈 상태와 깊은 수면상태의 내용물이

꿈이나 몽환의 경지

또는 내면의 광경을 이따금씩 회상함으로써

의식적인 마음에 의해 우연하게만 얼핏 보인다.

 

심지어 이것들은 종종

너무 고도로 상징적이고 원형적이어서

의식적인 마음으로 이해되지 않으며

그러므로 통합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그 결과 보통 사람은

자신의 보다 깊은 욕구, 역량, 속성들을 자각하지 못한 채,

크게 구속된 의식적인 마음의 범위 안에서만 산다.

 

의식이 단편적이기 때문에

그는 자신 안에 있는 광활한 지식의 원천을 두드리지 못한다.

꿈 상태와 수면상태의 심령적인 경험들을

의식적인 자각 속으로 재통합시키는 방식을 박탈당한 채

현대인은 자기의식의 모든 수준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는 자신이 누구이며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르며

이것이 진정으로 모든 고통의 원인이다.

 

이것 때문에 그는 자신을 받아들여

함께 조화롭게 살지 못한다.

그런데 어떻게 남들을 이해하고

그들과 평화롭게 지내기를 바랄 수 있겠는가?

 

요가 니드라는

각 사람 안에 있는 자아의식과

영감의 원천을 만날 수 있는 수단이다.

그것은 우리 자신의 의식이라는 보물창고를

체계적으로 조명하고 탐사한 다음

일상생활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

활용하도록 해주는 자가유도 꿈꾸기행법이다.

 

꿈은

심령적인 몸에서의 각성이나 방출 또는 폭발에 기인한

에너지 패턴들로 생긴다.

그것은 자발적으로 오며

요가 니드라에서는 이 방출을 촉진시키기까지 한다.

 

일단 영적인 삶에서 어떤 단계에 도달하기만 하면

꿈이 일어나고 있는 동안

그것을 변화시켜

실제로 자신의 꿈을 창조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그러나 이것을 하기 위해서는

꿈꾸는 자와 꿈의 이원적인 의식을 유지해서

꿈꾸고 있는 동안

자신이 꿈꾸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야 한다.

 

이 꿈의식을 목격할 수 있는 능력은

동적인 형태의 쁘라띠아하라(감각 회수)이다.

 

요가 니드라는

꿈에 대한 자각수준을 증가시킬 수 있는 최선의 방식이다.

많은 사람들이 꿈을 갖지만

꿈에 대한 그들의 자각은 거칠고 비효율적으로 남아 있다.

 

이것이 바로 그들이 보통은

꿈을 기억하지 못하는 까닭이다.

꿈을 선명하게 시각화하는 것은

목격하는 의식이 각성되어 있을 때만 가능하다.

이 자각은 요가 니드라로 달성된다.

 

모호한 목격자 의식이

잠과 꿈의 경험 중에 유지될 수 있다면

중추신경계와 그 작용에서의 근본적인 진화적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을

연구자들은 지금 제시하고 있다.

 

이 변화는 아스트랄 차원, 심령적 차원, 원인적 차원을 포함한

인식의 미묘한 꿈 상태들을

감각인식의 평범한 깨어 있는 상태와

동시에 경험할 수 있는 매우 두드러진 네 번째 의식상태의 경험을 수반한다.

 

깨어 있는 상태, 꿈 상태, 수면 상태의 동시적 자각을 포함하지만

그중 어느 것에도 영향을 받지 않는 이 네 번째 초의식 상태는

수천 년 동안 요가 문헌들에

분명하게 서술되어 왔으며

뚜리야로 알려져 있다.

 

그것은 최근까지 연구자들에게

미지·미측량 상태로 남아 있다가

최근에야 실험실에서 명쾌하게 증명되었다.

 

신경생리학적인 관점에서 볼 때

이 네 번째 고조된 의식 상태는

감정적인 뇌의 대뇌변연계 중추들의 고조된 통제력과

감소된 각성 가능성과 함께

보다 높은 피질의 강화된 작용으로

뇌의 전기생리학적인 작용에 반영된다.

 

이는 동시적으로 줄어든 감정적 반응성과 함께

고조된 내·외부 자각 수준들을 소유하고 있는

인간 인격의 진화에서 나타난다.

 

델타파를 일으키면서 깊은 수면을 경험하는 동안

의식적으로 자각하고 있을 수 있는 역량은

초의식적인 상태인 뚜리야에 대한 암시들 중 하나이다.

 

이것이 깨어 있음과 꿈꾸고 있음

그리고 깊은 수면 사이의 장벽들이 걷혀지면서

의식적·잠재의식적·무의식적인 마음의 동시적인 작용을 드러내주는

요가 니드라의 궁극적인 상태이다.

 

그 결과는 깨달은 단일한 의식 상태이며

완벽히 통합되고 이완된 인격체이다.

이 상태를 실현한 사람들은 전혀 꿈을 꾸지 않는다.

그들은 변하지 않는 하나의 존재 상태를 가지고 있다.

 

깨어 있음과 꿈꾸는 것이

그들에게는 똑같은데

왜냐하면 그들은 네 번째 영적인 초의식 상태를

계속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맙습니다.

진리를 탐구하는 채널 [지혜별숲] 이었습니다.

오늘도 고요하시고 평온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