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24)

법륜스님의 즉문즉설_ 2003. 교사로서의 책임과 학생 행복 가운데 어떤 것을 우선시해야 할까요?

Buddhastudy 2024. 4. 4. 20:08

 

 

4학년이 더하기 빼기를 못하고 있는 것을 보고 이것을 내버려둔다면

교사로서의 책임을 져버리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되어서

몇 시간이고 나머지 공부를 시켰었습니다.

학생이 말하기를 나머지 공부했던 시간들이 자기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간

제 직무로서의 책임과 학생 행복 중에 어떤 것을 우선해야 했을까요?//

 

 

성적이 1등이 아니고 꽁지라고 붙들어 공부를 시킨다든지

또는 더하기 빼기를 못한다고 야단을 친다든지 하는 거는

선생으로서는 바람직하지 않다.

아이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준다 이 말이에요.

 

그러나 기본적으로 초등학교 다닐 때 가장 중요한 게

문자를 터득하는 거예요.

한글로 글을 쓰고 읽고 할 수 있는 거,

성적하고 관계없이.

 

두 번째는 셈본을 할 수 있는 거,

더하기 빼기, 나누기 곱하기

이 두 가지는 기본적으로 알아야 사회생활을 할 수 있어요.

 

그래야 나중에 자기가 초등학교만 다니고 그만뒀더라도

나중에 독학도 할 수 있고

또 장사를 할 수 있고,

셈본을 못 하면 장사도 못하지 않습니까?

 

문맹 퇴치라는 말이 있잖아요.

문명 퇴치의 핵심은

-글을 읽고 쓰는 것하고

-그다음에 셈본을 할 줄 아는 것 두 가지입니다.

 

근데 사람은 글을 읽고 쓰는 것만 자꾸 문명 퇴치라 그러는데

셈본까지 들어가야 됩니다.

셈본 하는 거

 

그래서 이 아이가

한글을 제대로 못 읽고 못 쓴다 하면

그 아이가 좀 힘들어해도 가르쳐야 합니다.

방과 후라도

부형한테 얘기해서 늦게까지라도 가르쳐야 하고

그다음에 셈본을 못 한다.

지금 말한 대로 더하기 빼기 나누기 곱하기 셈본을 못한다 하면

방과 후에라도 아이가 힘들어하고 그러더라도

달래가면서 가르쳐야 된다.

그것이 초등학교 선생의 최고의 직분이다.

 

그걸 해야 월급도 받고, 선생님 소리도 듣지

그걸 방기해 버린다면 교사의 자격이 없다

이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아이가 그것마저도 하기 싫다고 하더라도, 괴로워하더라도

그건 반드시

그래, 힘들더라도 이거는 하자.

인생에서 이건 꼭 필요하다

이렇게 설득하면서 가르쳐야 된다.

 

혹시 그런데 그 아이가 어떤 지적이나 어떤 장애다.

그래서 사실은 글자를 쓰거나 터득하거나 셈본을 하는 게 불가능하다.

이런 어떤 정신감정의 어떤 결과가 나왔다면

포기해도 됩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면

반드시 그것은 해야 된다.

 

특히 이게 좀 어려운 아이들이 어떤 아이들이 있나 하면

요즘은 다문화 가정이 많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엄마가 한글을 잘 모르고

엄마가 또 외국에서 와서 직장 다니거나

한국 사람하고 결혼해도 가정이 편안하지 못하거나 할 때

아이를 어릴 때 거의 팽개치다시피 해서

아이들이 말도 어눌하고 셈본도 못 하는 그런 경우가

초등학교에 많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

다문화 아이들이 지금 뭐 초등학교에 수만 명이 되는 수준이거든요.

 

아마 그럴 때

그런 거는 우리가 마음을 모아서 어쨌든 가르쳐야지

그걸 아이가 힘들어하니까 내버려 둬도 되느냐?

그건 옳지 않습니다.

자기도 힘들고 아이도 힘들어도

그거는 우리가 함께 극복해야 할 일이다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

 

...

 

, 친구가 싫어하는 것은

가능하면 안 하도록 하는 게

사람이 싫어하는 거를 안 하도록 하는 게

기본인데

상대가 싫어한다고 모든 걸 안 할 수는 없어요.

안 그러겠어요?

 

우리 일본이 우리나라 잘 사는 거 싫어한다고

우리가 경제 성장 안 할 수도 없고

북한이 우리 국방력 튼튼히 하는 거 싫어한다고

우리가 안 할 수도 없고

중국이 우리 발전하는 거 싫어한다고 안 할 수가 없잖아요.

 

개인적으로는 가능하면 싫어하는 건 안 하면 좋은데

그 상대가 싫어하는 것이 어떤 시기심 때문에 일어나는 거라면

그걸 내가 다 맞출 수는 없다.

 

그래서 싫어하면 무조건 하지 마라가 아니라

상대가 싫어하는 것이

내가 상대에게 어떤 해를 가해서 싫어한다

욕을 한다든지, 찝쩍댄다든지

이렇게 해서 상대가 싫어할 때

상대를 괴롭히지 마라하는 거죠.

 

그럼, 예를 들어서 제가 출가를 했는데

우리 어머니가 싫어할 거 아니에요?

괴로워할 거 아니에요?

그럼 내가 출가를 그만둬야 된다.

이렇게까지 가면

아무 일도 세상에는 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자유를 향한 일이 아니라

노예로 가는 길이 되거든요.

 

그래서 그 싫어한다는 것은

상대에게 어떤 위해가 돼서 상대가 싫어할 때 하지 마라

이쁘다고 건드렸는데 상대가 싫어한다

그런데도 계속하면 그건 성추행이잖아요.

 

그게 아니라 내가 기분이 좋아 꽃 보고

야 꽃 좋다이런데

꽃 좋아하는 놈, 나는 싫다

이런 것까지 영향을 받을 필요는 없다.

 

...

 

, 선생님이 너무 위대한 선생이 되려고 그러면

또 자기가 부족한 걸 느끼거든요.

애들은 모르잖아요.

모르니까 가르치는 사람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내가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느냐는 중요한 게 아니에요.

선생의 임무는

모르는 아이를 가르치는 거예요.

 

그러니까 애들이 모르는 건 너무 당연한 거예요.

모른다고 야단치면 안 돼요.

모르니까 그러면 배우러 왔지, 알면 뭐 때문에 배우러 왔냐?’

이런 얘기를 듣게 된다.

 

그러니까 항상 아이 중심으로

학교가 제대로 되면

공부 잘하는 아이는 한 반에 50명 편성해도 괜찮고

공부 못하는 아이는 한 반에 3명 정도 편성해서

선생님 한 분이 가리키고

이게 평등한 거예요.

 

그러니까 선생은 자꾸 잘하는 아이 쪽으로만 쏠려가고

못하는 아이는 팽개치기가 쉽거든요.

근데 학교라는 거는

[모르는 아이들이 배우는 곳이 학교]

선생을 위한 학교가 아니다.

 

그러니까 잘하는 아이들,

잘하는 아이들에게 잘해줘야

학부형들이 보시도 하고, 칭찬도 듣고, 평점도 좋아질 수는 있겠지만

그러나 진정한 스승까지는 아니더라도

선생이라는 직업의 핵심은

모르는 아이들을 알도록 가르치는 거다.

 

등수가 1등 되냐, 2등 되냐

이건 선생이 신경 쓸 일은 아니에요.

그냥 그 학년에 맞는, 그 학습을 하도록 지도해 주면 된다.

 

월급 값은 해야 안 되겠어요?

이런 거 하라고 월급 주는데

월급 값만 한다.

 

그렇다고 모든 아이를 공부를 잘하도록 하고

자비심을 갖고 가르치고

이렇게 하면 선생이 너무 힘들어서 안 돼요.

선생도 사람인데 어떻게 그렇게 하겠어요?

 

[아이들은 모르는 게 정상이고

모르는 아이를 가르치는 게 나의 직업의 본분이다.]

이거 정도만 생각하고

너무 잘하려고도 하지 말고

그렇게 하면

결과적으로 훌륭한 선생이 된다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