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실천적불교사상

법륜스님 실천적불교사상 제9강 존재의 실상

Buddhastudy 2017. 7. 14. 21:26


  

천수경에 /죄무자성종심기/라는 말이 있죠. //라는 것은 즉, 우리들의 업이라는 거요. 업장. 이것을 죄라고 그럽니다. “너 죄지었다. 그래서 지옥 갈 거야.” 이렇게 말하지만, 죄라는 것은 이게 죄다.” 라고 할 만한 스스로의 성품이 없다. /무자성/이요. 이게 죄다. 할 만한 스스로의 성품이 없다. 죄무자성. /종심기/ 마음을 따라서 일어난 거다. 다 죄라는 것은 마음 따라 일어난다. 이러니까 여러분들이 지금 이렇게 살지. 죄가 정말 있는 거라면 우리는 못 삽니다. 혼란스러워서. 왜 그럴까?

 

언제 죄 있다고 보안법에 해서 감옥에 집어넣어 사형언도를 시키고 무기직영을 지킨 사람이 그것을 간판으로 내걸고 나는 별이 3개다. 나를 찍어 달라.” 이래서 국회의원 되잖아요. 봤어요? 안 봤어요? 봤죠. 일제 강점기때 다 죄지은 사람 흉악범들이 해방되고 나니까 다 애국지사였단 말이오. 그때 다 판검사하던 정의로운 사람들이 나중에 다 매국노가 되었단 말이오. 그러니까 죄라는 게 정말 있다면 그런 일이 일어날 수가 있어요? 없어요? 없지. 그게 없으니까 그런 일이 일어나는 거요.

 

좀 헷갈릴 거요. 조금 더 갑시다. 질문할 것도 많을 거고. .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세상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머리가 지금 혼란스럽지 세상은 혼란스럽지가 않습니다. 세상은 늘 그렇게 움직이는 거요. 바다에 파도가 물결치듯이. 그런데 이게 딱 세상을 있는 그대로 딱 보면, 마치 바닷가에 앉아서 파도 구경하는 것 같은데, 여기 딱 보면 재미있죠.

 

그런데 여러분들이 자기 생각에 딱 빠진 것은 뭐냐? 물속에서 파도와 파도 사이에 폭 빠져버렸어요. 그러면 파도에서 허우적대죠. 살려달라고. 그러니까 혼란스러운 거요. 바다가 무서운 거요. 혼란스러워지면. 세상이 겁나고, “세상이 이래서 어이될까봐이렇게 생각이 들 정도요.

 

그러니 여러분들의 가정사도 마찬가지오. 여러분들은 세상문제보다는 어쨌든 이렇게 법문을 듣는 이유도 다 몇 가지 과제가 있을 거요. 애 문제나, 남편 문제나, 자식 문제나 몇 가지 과제들을 갖고 있겠죠. “그거 뭐 해답 찾을 거 있나해서 왔을 거요. 이런 얘기 들으러 온 것은 아닐 거고. 그러나 그거 해답이 선명하게 찾아지려면 이 이치를 알아야 스스로 딱 볼 수가 있어진다.

 

죄무자성종심기. 죄라고 할 만한 종자 씨앗, 근본, 이런 게 없어. 어리석은 마음을 따라 일어난 거요. 다만 어리석은 마음을 따라 일어났어. 그러면 이 어리석은 마음을 따라서 일어났으니까, 이 어리석은 마음이 사라져버리면 어떨까? 죄라는 것 또한 없어지겠죠. 그러니까 /심약멸시죄역망/ 만약에 마음이 사라져버린다면 죄 또한 사라져버린다. 이때 마음이라는 것은 중생심을 말하는 거요.

 

그러니 여러분들이 이 자리에 오는 것은 자기의 죄를 즉, 죄의식으로부터 해방되려고 왔어요? 죄의식을 심으려고 왔어요? 해방되려고 왔죠. 그러니까 죄라는 게 본래 없다하는 거 아니까 기분 좋지. 죄가 엄청나게 있는데 그거 다 없애려면 30년 걸릴지 50년 걸릴지 다생겁래로 걸릴지 모르는데 부처님이 죄라는 게 없다그러니까, 없앨 것도 없잖아. 없으니까.

 

그런데 죄라는 게 본래는 그 실체가 없지만,

어떻게 해서 생겨났다?

어리석은 마음 따라 생겨났어.

지금 여러분들이 어리석은 생각을 갖고 있는 한은

죄가 있어요? 없어요? 있어.

그런데 그 생각을 탁 버리게 되면 사라져버린다.

 

그러니까 사람을 99명이나 죽인 앙굴리 말라도 세상에서 볼 때는 저거는 천벌을 받는다. 절대 해탈할 수 없다 했지만, 부처님의 한 말씀에 다 벗어버렸다. 그것은 뭐하고 같으냐? 꿈에 악몽을 꾸어서 사람을 99명 죽였는데, 그래서 엄청나게 잘못했다고 뉘우쳤는데 눈을 딱 뜨니 꿈이오. 눈을 뜨니 꿈이었어. 깬 뒤에도 계속 죄의식을 갖습니까? 안 갖습니까? 안 갖죠.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그가 새로운 사람이 된 줄을 모르고 돌로 쳐 죽여 버렸어요.

 

그럼 여러분들은 이렇게 생각하죠. “그럼 깨달아봐야 소용없네요. 돌로 맞아죽었으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아주 편안하게 눈곱만큼의 원망이나 두려움도 없이 그저 환하게 기쁜 마음으로 열반에든 거요. ? 중생의 어리석음에 의해서, 자신으로 인연으로 해서 중생의 어리석음에 반연에 의해서 돌아온 과보를 그대로 알기 때문에.

 

, 그러니까 여기서 제가 이렇게 한두 마디를 이렇게 해설하는 이유는, 여러분들 자세하게 나중에 경전 공부하겠지마는, 이런 것들이 굉장히 어려운 얘기 같지만 조금만 정신을 차리고 잘 살펴보면 쉬운 얘기일 뿐만 아니라, 매우 분명한 얘기고, 우리 생활하고 직결되는 얘기요? 생활하고 떠난 얘기요? 생활하고 직결된 얘기요. 그래서 불법은 우리들의 삶을 떠나서 존재하는 게 아니다.

 

깨끗하다 더럽다. 이렇게 보통 말합니다. 깨끗하다 더럽다는 말은 위생적으로 깨끗하다 더럽다도 포함되지만, 여기에 반야심경에 쓰여진 뜻은 그런 뜻은 아니에요. 여기서 깨끗하다라는 말은 /성스럽다/는 뜻이고, 여기서 더럽다는 말은 부정하다. /부정탄다/는 말, 아시죠? 그런 뜻이에요.

 

그러니까 어떤 게 성스러움이냐? 우선 상놈은 천하고 양반은 귀하죠. 남자는 귀하고 여자는 천하다. 옛날에 이렇게 생각했죠? 젊은 분들은 잘 모를 텐데, 정월 초하룻날 설날 아침에 첫손님으로 여자가 오면 재수가 없다. 이런 게 있어요. 우리나라 전통속설에 말이요. 왜 그럴까? 여자는 부정한 존재라기 때문에 그래요. /여자는 부정한 존재다/ 하는 관념이 있단 말이오.

 

그러니까 배가 출항할 때 배타면 큰일 납니다. 인삼밭에도 못 들어오게 하죠. 이게 왜 그러냐하면 배가 출항을 한다는 것은 고기 잡으러 가면 위험이 많습니까? 안 많습니까? 위험이 많으니까 뭔가 금기사항이 많게죠. 인삼이 농사가 평균적으로 심으면 평균적으로 그냥 됩니까? 변화가 많습니까? 변화가 많단 말이오. 그러니까 여자가 부정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게 부정을 타서 잘못될까 해서 못 들어오게 되는 거란 말이오.

 

그런데 왜 보리밭 맬 때는 여자가 보리밭 매어서 재수 없어서 농사 안 된다. 이런 것은 없을까요. 그럼 일 안 해도 되고 얼마나 좋습니까? 그런데 그런 것은 없잖아요. 그것은 누가 하나 별 변화가 없는 것일 때는 그런 것을 안 따진단 말이오. 그런데 장사라는 것은 사실은 농사짓는 거 하고 비교해보면, 어떤 분위기를 많이 탑니까? 안 탑니까? 타니까 장사하는 사람들은 금기가 많단 말이오. 그러니까 여자가 첫 손님으로 오면 재수가 없다. 뭐 이런 말 만든단 말이오.

 

그런데 옛날 사람들은 진짜라고 믿었기 때문에 제가 어릴 때만해도 일단 어머님이 큰 집에 가기 전에 다 자는 나를 깨워서 앞 세워 일단 대문에 들어가서 나는 돌아와서 다시 잔단 말이오. 이런 불편한 일을 하죠. 그런데 그게 진짜라면 요즘 여자 옷 가게는 다 망했겠죠. 그러겠어요? 안 그러겠어요? 여자 옷가게 첫 손님은 여자이지 남자요? 그러니까 그것은 실제가 아니란 말이오. 그런데 사람이 그게 머릿속에 들어있으면 마치 그게 실제 인양 그렇단 말이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볼 때 불상은 성스럽죠. 그럼 불상에 있습니까? 여러분 마음에 있습니까? 불상에 있습니까? 그러면 기독교인들이 와서 보면 성스럽습니까? 재수 없는 존재입니까? 여러분들은 꿈에 불상을 보면 재수 있다하지만 교인들은 꿈에 불상을 보면 재수 없다이렇게 된 단 말이오. 똑같은 불상인데. 그러니까

 

성스럽고 성스럽지 않음은

존재자체에 있는 게 아니라

우리들의 마음속에 생각에 있는 거요.

 

그런데 우리네 옛사람은 다 존재 자체에 있다고 생각을 했어요. 이게 안경을 낀 사람이 벽의 색깔을 빨갛다, 파랗다는 것과 똑같다 이 말이오. 그런데 요즘 와서야 이제 겨우 아이고 사람들의 생각에 따라서 틀리는 거구나.” 이거 알죠. ? 다른 색깔의 안경을 낀 사람을 하도 많이 만나다보니까 뭔가 좀 이상하다.” 이래서 이제 안경을 벗으려는 시도를 한단 말이오. 이게 다른 문화, 다른 가치관을 만나기 때문에 그렇단 말이오.

 

그런데 같은 색깔의 안경을 끼고 이 방안에서 계속 살면 저 벽색깔이 파랗다 하는 것을 한 번도 의심 안 해보고 계속 살겠죠. 그러니까 우리가 한국에 살면서 우리 모두가 동일한 가치관을 갖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그것이 마치 객관적인 진리인양 의심의 여지가 없어진단 말이오. 그러면 그게 그 사회에서는 진리가 되는 거요.

 

인도에 사는 사람은 소고기 먹으면 큰일 나는 줄 알아. 회교도들은 돼지고기 먹으면 큰일 나는 줄 알아. 회교도들은 돼지고기를 베어서 입에 강제를 먹이면 정말 숨넘어가버립니다. 그거 먹으면 자기는 영원히 하늘나라에 갈 수가 없기 때문에.

 

그러니까 그렇게 믿고 있는 거지,

그것이 객관적인 진실은 아니다.

그 객관적인 진실은 뭐냐?

텅 비어 있어요.

 

그것은 성스러움도 아니고

그것은 부정 타는 존재도 아니다.

 

그러니까 성스럽다느니

, 재수 좋다느니 재수 없다느니 할 만한 존재가 없다,

그것이 다 내 마음 가운데 있다

이것을 탁 깨쳐버린 자는

영원한 부적을 한 장 가진 거와 같죠.

그렇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그렇죠.

 

그런데 여러분들은 그런 게 있다고 생각하니까 매년 부적을 갈아야 되고, 벼락 맞은 대추나무를 비싼 돈 주고 사야 된단 말이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그러한 부정 타는 현상이 나타납니까? 안 나타납니까?

나타나요. ? 일체가 다 마음이 짓는 바니까.

 

그러나 그것을 놓아버린 사람에게는

자유롭단 말이오.

뭘 먹든, 뭘 하든, 어디를 가든

그는 아무런 걸림이 없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뭔가를 고집하고 있으면

어디를 가면 안 되고, 어디 가서 절하면 안 되고,

뭐는 만지면 안 되고, 뭐는 하면 안 되고 이리되잖아.

 

똑같이 떡집에서 만들어서 배달해 줬는데 장례집 떡은 부정 타고, 불전에 올린 것은 기독교인이 볼 때는 부정 타고 이렇게 되잖아요. 그냥 떡일 뿐이에요.

 

그러니까 잔치 집에 가서 떡도 먹고, 잔치 집에 가서도 또는 절에 와서도 배부르면 안 먹어야 되고, 장례집에 가서도 배고프면 먹어야 되고, 아침에 절에 가서 기도하고 점심때는 손자 낳은데 가서 도와주고, 저녁에는 장례집에 가서 도와주고 그래도 관계가 있어요? 없어요? 아무 관계가 없어. 그럼 이렇게 되면 자유로워집니까? 자꾸 인생에 속박을 받습니까? 자유로워지죠. 얼마나 자유로워져요.

 

오늘 우리애가 입시시험을 쳐도 오늘 친구 집에 누구 죽었다하면 애는 시험 치러 가는 동안에 나는 장례집에 가도 되요? 안 돼요? 되지. 얼마나 편합니까? 물론 가기 싫으면 안가도 되죠. 그러니까 자신에게 자유가 있단 말이오. 그 존재에게 있어서 그것이 나를 거부하고 나를 끌어 다니고 이런 게 아니란 말이오. 그러니까 이치를 깨달으면 저절로 이렇게 훤한 길을 마음 놓고 가듯이, 자신이 선택해서 간단 말이오. 그런데 이제까지 잘못생각을 해버리면 얼마나 많은 속박을 받았는지. 얼마나 많은 눈치를 보고 살았는지.

 

이 세상에 참 모습은 연관되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제법무아, 제행무상, 이런 말이 나옵니다.

 

이 세상은 서로 연관되어 있고 변해간다.

이것을 연기다.

부처님이 깨달았다는 것은 이것을 깨달았어요.

 

그런데 중생은 이 세상의 모든 존재가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모릅니다. 왜 모르느냐? 어떤 사물을 관찰할 때 그 어린아이처럼 순간적으로 보고 부분적으로만 보는 거요. 마치 장님이 코끼리 만지듯이. 그래서 다리만 만져보고 기둥 같다.” 꼬리만 만져보고 빗자루 같다.” 배만 만져보고 벽 같다.” 귀만 만져보고 부처 같다.” 일리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죠. 그러나 코끼리 모양하고는 전혀 안 맞다.

 

이 세상에 있는 많은 가르침도 사실은 부분 부분 따져보면 일리는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전체라고, 그 자신이 겪은 경험을 전부라고 단정해버리기 때문에, 거기에 집착해버리기 때문에 어리석어진다. 전혀 사실하고 맞지가 않아진다. 그러니 이제 나는 좋은 일 하면 죽어서 천당에 갈 거야. 그래서 나는 영원히 천당에서 살 거야.” 이럴 때는 맞지가 않는 거요. 이게 범부중생의 생각에 가장 대표적인 증상이오.

 

누가 천당에 간다고?” “내가. 내가.” 따져 물으면 되요. 나라는 게 누군지를 따져 물으면 되요. 그럼 몰라” “천당에 가서 영원히 있을 거다.”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게 환상이란 말이오. 존재 하나하나가 다 개별적인 존재다. 이렇게 생각할 때는 그 존재가 왜 생겼나 하고 물어보면 모르겠다. 아마 누가 만들었나봐.” 누가 만들었을까? “만든 사람을 창조주라 하자.” 이렇게 되지만, 얼음과 물이 따로따로라면 얼음을 만들고 물을 만들어야 되지만, 얼음이 변해서 물이 되고, 물이 변해서 얼음이 되면 얼음과 물은 만들 필요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어.

 

그러면 여러분들이 과학적으로 그 얼음과 물의 그 근본인 HO, 그것은 있어야 되지 않습니까? . 물 분자는 있어야 되지 않느냐? 물 분자라고 하는 HO는 실체가 아닙니다. 산소 +수소가 만나면 물 분자가 되고, 물이 분해되면 산소하고 수소가 됩니다. 그러면 산소 수소 그것은 있어야 되지 않느냐? 아닙니다. 그것은 또 더 적은 소립자라는 것이 서로 만나서 양성자 하나, 전자 하나가 만나면 수소가 되고, 양성자 8, 중성자 8, 전자8개가 만나면 산소가 되고. 이렇게 됩니다.

 

이 만물은 서로 연관되어있습니다. 단독자는 없어요. 그러니까 만들 필요가 없습니다. 이것은 나중에 반야심경 공부할 때 우리가 다시 공부를 합니다. 그러니까 창조를, 존재의 본질을 꿰뚫어보면 누가 만들었느냐?’ 이런 생각이 일어나지가 않아요. 그런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단 말이오. 그런데 모르니까 이게 왜 생겼을까? 누가 만들었나보다. 그럼 누가?” 이렇게 해서 누가가 중요한 과제가 된다. 지금 제 얘기를 혹시 다른 종교를 비판하려고 이런 얘기를 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실제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렇게 되는 거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옳다고 믿는 것들을

그냥 옳으려니.” 라고 생각하지 마시고,

조금만 더 이렇게 깊이 관찰해보면,

마치 꿈속에 빠져있는 것처럼 우리는 허상 속에서 살고 있다.

 

어두운 밤에 길을 헤매고 살고 있기 때문에

늘 아까 얘기한대로

잘되려고 열심히 살았는데 결과가 늘 이런 결과가 나온다.

 

, 그럼 그런 꿈은, 꿈인데 꿈은 현실과 떨어져있습니까? 꿈은 현실과 또 관계가 있습니까? 관계가 있죠. 우리가 이렇게 착각하는 이 세계는 실제의 세계와 떨어진 별개냐? 아니오. 이게 관계가 있습니다. 마치 꿈은 환상이기는 하지만, 꿈은 우리들의 일상생활과 관계가 있습니까? 그것은 별개입니까? 관계가 있습니다.

 

이게 진실의 세계와 환상의 세계, 가상의 세계, 현실의 세계라고 불리는 세계와 또 연관이 있다. 이것도 별개가 아니다. 어떤 것도 별개로 존재할 수가 없다. 이게 불법이에요. 다 연관이 되어있어요.

 

그런데 중생은 꿈을 꿈인 줄 알아야 되는데,

꿈을 현실로 착각한다.

여기 꿈이 있고, 여기 현실이 있다면

현실과 꿈은 연관이 있습니다.

현실의 어떤 반영이 꿈으로 나타나죠.

 

진리의 세계로부터 드러난 어떤 반영물이 바로 현상이다.

바다로부터 파도가 일어난다.

바다를 떠나서 파도가 일어나는 것은 아니에요.

 

그런데 바다를 보지 못하고

파도 하나하나만 보면 어떻게 되느냐?

파도가 생기고 사라지고 생기고 사라지고 이러죠.

이 지구상에 있는 파도가 생기고 사라지는

그거 다 헤어보면 엄청나게 많겠죠.

그러나 바다 전체를 딱 보면

파도는 생기고 사라집니까? 다만 물이 출렁거릴 뿐입니까?

출렁거릴 뿐입니다.

 

부분만 보면 생멸관에 빠지지만

전체를 보면 생도 아니고 별도 아니고 다 물이 출렁거려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지금

생에 두려움이 있는 것은

이 육신으로 나로 삼기 때문에

파도 하나를 나로 삼기 때문에 파도가 생기고 사라지지만,

바다 전체를 보면 그것은 생기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고 그냥 출렁거리는 것인데,

 

이 육신 하나로 나를 삼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생사의 고뇌에 빠지게 된다.

또 자기가 일으킨 한 생각에 빠지기 때문에

화의 고뇌에 빠지게 된다.

 

그러니까 조금 한발 물러서서 자세히 들여다보면

꿈을 꿈인 줄 알게 되면

꿈 깨는 길이 열리게 된다.

꿈은 필요 없다. 꿈은 나쁘다. 꿈은 안 꿔야 좋다. 이런 말이 아니라,

꿈을 다만 꿈인 줄 알면 꿈에 팔리지 않는다.

 

꿈속에서도 꿈인 줄 알면

두려움이 사라지고,

깨고 싶으면 금방 깰 수도 있고,

더 꾸고 싶으면 꿈인 줄 알고 꾸면 재미가 있죠.

꿈인 줄 알고 그냥 꾸는 거요.

 

그러니까 이게 연극인 줄 알면

여러분들은 울고불고를 마음껏 할 수 있죠.

무대에 올라간 배우는. 연극이니까. 실제가 아니잖아요.

 

이게 꿈인 줄 알면 여러분들은 마음껏 꿈을 즐길 수가 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꿈인 줄을 모르기 때문에

쫓기고 괴로워할 수밖에 없는 거요.

 

, 여기까지 해서 이제 부처님의 가르침을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그 때에 부처님께서는 기수월 보름 전 12일에 해가 사람의 그림자 반을 지날 무렵 북쪽으로 향하여 앉으셨다. 부처님은 초야분이 되자 더 말씀을 않고 묵좌 가운데 계셨다. 중야분에는 대중을 편안하게 위로하여 기쁨을 내게 하셨다. 이윽고 후야분이 되자 부처님은 다섯 수행자를 향하여 말씀하셨다.

 

수행자들이여, 잘 알아야 한다. 출가 수행자에게는 반드시 버려야 할 두 가지의 장애가 있다. 무엇이 두 가지 장애인가?

 

1.

첫째는 마음이 욕망의 경계에 집착하여 쾌락에 빠진 것이니 이는 어리석은 범부들이 찬탄하는 바이며, 출가인의 숭고한 목적을 위해서는 무익한 것이다.

 

2.

또 하나는 자신의 육체를 스스로 괴롭히는 것에 열중하여 고뇌에 빠지는 것이니 이는 출가의 목적과 수단을 전도한 것으로써 심신이 모두 고통의 과보에 떨어질 뿐 출가인의 숭고한 목적을 위해서는 버려야 할 것이다.

 

이 두 가지는 해탈의 원인이 아니며, 욕망을 소멸하는 원인이 아니며, 부처를 성취하는 원인이 아니므로 반드시 버려야 한다.

 

수행자들이여, 여래는 이 두 가지 치우침을 버리고 중도의 길을 깨달았다. 수행자들이여, /중도란 무엇인가?/ 이는 여덟 가지 성스러운 길을 말함이니 곧 /바른 눈, 바른 관찰,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활, 바른 노력, 바른 집중, 바른 마음의 통일이니라./ 이 중도는 모든 것을 바르게 보고 바르게 알 수 있는 통찰력과 직관이므로 지혜를 낳아 범부의 눈을 뜨게 하고, 이를 마음의 평화와 진리의 크나큰 체험으로 열반을 성취케 하리라."

 

부처님께서는 이어서 /고집멸도/의 네 가지 거룩한 진리를 말씀하셨다.

수행자들이여, /괴로움이라고 하는 진리가 있다./ 태어나는 것도 괴로움이며, 늙는 것도 괴로움이며, 병을 앓는 것도 괴로움이며, 죽는 것도 괴로움이다. 근심과 걱정과 슬픔과 안타까움도 괴로움이며, 미워하는 사람끼리 만나는 것도 괴로움이며,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것도 괴로움이다. 바라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것도 괴로움이며, 우리들의 인생 전부가 괴로움이다.

 

수행자들이여, 이와 같은 /괴로움이 생기는 원인을 말하는 진리가 있다./ 미혹한 생존을 있게 하고, 기쁨과 탐욕을 동반하고 모든 것에 집착하는 애욕과 갈망이 곧 괴로움의 원인이다. 그것은 정욕적인 애욕과 생존에 대한 갈애와 생존이 없어질까 봐 집착하는 갈망의 3가지다.

 

수행자들이여, 이 같은 /괴로움이 소멸된 진리가 있다./ 이 갈애를 남김없이 멸하고 버리고 떠나고 벗어나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수행자들이여, /괴로움을 소멸시키는 길인 진리가 있다./ 그것은 여덟 가지 거룩한 실천이다.

 

수행자들이여, 괴로움에 대한 거룩한 진리를 발견하고 그것을 바로 알아 철저히 인식해야 하며, 괴로움의 원인을 발견하고 그것을 끊어버려야 한다. 괴로움이 소멸되는 경지를 증득하고자 괴로움을 없애는 길을 발견하고 그것을 실제로 실천하여야 한다.

 

나는 이 네 가지 거룩한 진리를 각각 세 가지 단계로 나누어 바르게 알고 소멸시키고 닦고 증득함으로 해서 부처가 되었다.

이 네 가지 법은 다른 이로부터 듣거나 스스로 만들어 낸 것이 아니요, 세상의 법을 수순하여 이치대로 관찰함으로서 지혜가 생기고 눈이 트여서 두루 밝게 살핌으로써 지혜가 열려서 광명을 얻었느니라.

 

수행자들이여, 세상 사람들은 고통의 바다에 빠져 있나니 이 고통은 잘못된 탐욕과 집착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눈을 떠서 이 탐욕과 집착의 뿌리를 뽑아버리면 고통을 벗어나 무한 생명의 기쁨을 성취하리니, 그대들이 여덟 가지 성스러운 길을 힘써 행하여 닦으면 누구든지 눈을 뜨고 큰 깨침을 얻을 것이다."

 

, 합장하시고 사홍서원 같이 하시겠습니다.

이 땅에 고통받는 중생이 한 사람도 없는 정토세계를 이루겠습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괴로움과 번뇌가 일어나지 않도록 수행 정진하겠습니다.

부처님 법 만난 것을 기뻐하면 모두 배우겠습니다.

일체 중생과 더불어 꼭 성불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