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18)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제 1435회] 신앙의 위기가 왔습니다.

Buddhastudy 2018. 10. 22. 21:02


제가 불교를 믿고 있는데요. 불교가 너무 미신 같고

초기 부처님 가르침에서 멀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리고 부처님하고 예수님하고 비교가 되는데요,

예수님은 성령적인 존재인데 석가모니 부처님은 인간적인

존재래서 부처님한테 기도하면 아무것도 안될 거 같고

기도를 왜 하는지 잘 이해가 안 됩니다.//

 

 

첫 번째 것은 자기 얘기가 맞는 거요. 나도 동의를 해요. 그러니까 인도에는 전통적으로 종교가 있어요. 부처님 당시에는 브라만교라 그러고, 지금은 힌두교라고 그래요. 힌두교는 다신교에요. 여러 신이 있는 종교에요.

 

우리나라 전통신앙도 일종의 다신교요. 부엌에 가면 조왕신이 있고, 산에 가면 산신이 있고, 물에 가면 수신이 있고, 바다에 가면 용왕신이 있고, 하늘에는 천신이 있고, 나무에는 목신이 있고 이러지 않습니까. 그죠?

 

이것은 특정한 나라만 그런 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그래요. 아프리카 가도 있고, 인디언들도 있고. 그것은 인류 문화사에 이런 종교가 발생을 하는 거요. 그런데 그것은 문화에요. 그럼 그건 불교에만 있는 게 아니고,

 

불교라고 하는 원래 부처님의 가르침은

이런 종교를 믿어서 기도를 해서 복을 빌고 이런 게 아니에요.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우쳐서 해탈하는 거예요.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거예요.

 

죽어서 천당가고 극락가고 이런 게 아니고,

원래 부처님의 가르침은 담마, 법을 가르치는 거요.

진리를 가르치는 거다.

 

그런데 불교가 종교화 하면서

인도에 원래 있던 종교가 힌두교 아니오.

힌두교하고 믹서가 되어서

여러 가지 인도의 신들이 불교 안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그게 절에 가면 신중단이라고 있죠. 거기가면 하느님도 있고, 용왕님도 있고, ...있고, 화엄신도 있고 여러 신이 있는데 그건 다 인도에서 온 신들이오. 그걸 절에서 신중단이다. 그러죠. 인도에서 불교가 왔기 때문에.

 

그러니까 인도의 신들은 불교가 아니고, 인도의 전통신앙이다. 불교는 그런 신을 믿는 종교가 아닌데, 불교가 인도에서 종교하면서 인도 신들을 받아들였고, 중국에 와서 중국신을 또 받아들인 거요. 가장 대표적인 게 중국 절에 가면 관운장 같은 게 있습니다. 포대와상 알죠? 배불뚝이, 이런 것도 있고, 옥황상제니 뭐니 여러 신들이 많은데, 대부분 중국에 있는 신들이 많아요.

 

또 한국에 오니 한국의 전통종교가 있었을 거 아니오. 그게 산신하고, 한국의 대표적인 신앙이 불교가 들어오기 전에 산이 많다보니 산신하고, 하늘 천신은 칠성신이었어요. 이게 불교 안으로 수용되어서 있는 게 절에 가면 뒤에 산신각하고 뭐가 있다? 칠성각이 있단 말이오. 용왕도 바닷가에 가면 많이 하죠. 용신도 신라시대에 아주 많았어요. 이런 건 문화라고 그래요.

 

그러면 불교만 이런 게 아니에요. 기독교도 그것이 필리핀 같은 데 가면 필리핀의 전통신앙하고 결합해서 하나님만 있는 게 아니라 여러 토속 신앙적 행위가 있다.

아프리카에 기독교가 가면 기독교가 아프리카 토착화 되는 과정에 여러 신들을 받아들이는 거요. 조선시대에 천주교가 들어오니까, 제사 안 지낸다고 많이 죽였잖아. 그러다보니까 천주교는 제사문화를 받아들인 거요.

 

그런데 개신교는 늦게 들어왔잖아요. 개신교는 탄압받는 역사가 없잖아요. 서양 거 그대로 하고 있는 거요.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토착화를 안 해도 됐어요. ? 개신교가 들어온 이유는 우리나라 전체가 서양화 해버렸기 때문에.

 

기독교가 개신교가 훌륭해서 그런 게 아니고,

지난 100년이 우리나라 전체가 교육이고 사회 전체가

서양을 본받아서 사회가 바뀌어 버렸기 때문에, 우리가 서양화 되어버렸기 때문에

개신교가 토착화할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천주교는 그 전에 들어왔으니까, 일부 토착화를 안 하고는 살아남을 수가 없었다. 불교는 한국에 들어온 지가 1600년이 되었고, 도는 2000년이 되었기 때문에 한국의 전통신앙을 받아들인 거다. 그래서 현재 한국불교가 된 거요. 그러니까 그게 미신이다. 이건 잘못된 생각이오.

 

미신이라는 것은 어리석은 믿음을 뭐라 한다?

미신이다. 이렇게 말하는 거요.

 

하나님 믿으면 복 받는다. 부처님 믿으면 돈 번다.

이러면 다 미신에 들어갑니다.

그게 (어리석을 미)자란 말이오.

어리석은 믿음을 가지면 미신이다. 이렇게 말하는 거요.

그러니까 그거는 모든 종교가 다 똑같습니다.

 

그러면 불교는 우리가 말하는 원래 오리지널 불교는

우리가 말하는 이런 종교가 아니었다.

우리가 뭘 필요할 때 어디 빌어서, 도움을 얻어서 해결하려고 하는 그런 게 종교인데, 그게 아니고

우리의 괴로움이 우리의 무지, 어리석음 때문에 생겼다.

원인 진단을 이렇게 한 거요.

 

그래서 어리석음을 깨우치면 어떻게 되느냐?

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가 있다.

이게 원래 불교의 가르침이다.

 

그럼 지금 여러분과 제가 대화하는 거는

원래 그 가르침대로 하는 거요.

 

그러니까 지금 저렇게 힘들다. 어떻게 기도하면 되느냐. 하니까, 아니다. 그거는 병이, 정신질환인 우울증이기 때문에 그건 병원에 가서 검사하고, 진찰 받고 약 먹으면 해결이 된다.

그런데 안 되는데요

그거는 아직 정신과에 대해서는 완전히 해명, 병 규명이 안 되었기 때문에 응급 치료는 되고, 일부 치료는 되는데, 완치는 아직 안 되니까, 그러면 그건 병원 치료를 받으면서 수행을 좀 겸해야 된다.

 

심리적 불안이 원인이기 때문에,

약물치료는 신경 흥분을 가라앉혀서 마음을 가라앉히는 거고,

수행은 심리, 마음을 가라앉혀서 안정시키는 거란 말이오.

 

그럼 마음을 어떻게 안정시키느냐.

조금 연습이 긴 거는 명상이 있습니다.

가만히 오래 놔두면 마음이 가라앉아요.

그런데 명상은 혼자서 하기가 좀 힘들어요. 처음에 지도를 받고 좀 배워야 된다.

 

그러니까 두 번째 방법은 가지가 자기한테 암시를 주는 거요. 우리가 지금 법문을 듣는 이건 의식이라 그러고, 우리의 마음은 무의식작용이니까, 의식을 무의식화시켜야 되는 거요.

 

그럼 무의식을 의식화 시키는 건 뭐냐?

지속적으로 같은 거를 반복하면 습관화가 되는 거요.

그러면 무의식화가 된다. 그러니까 이걸 자기 암시라 그러잖아.

 

북한 같은데서 세뇌시킨다. 이런 말도 있잖아. 그죠? 자꾸 교회 다니면 하나님이 모든 걸 준다고 자꾸 하다보면 자기도 그렇게 믿어버린다. 이 말이오. 그러면 효과가 나는 거요.

 

그래서 나는 편안하다. 나는 편안하다. 나는 편안하다. 나는 편안하다고 자기 암시를 자꾸 주게 되면 자기가 심리가 가라앉게 되는 거요. 흥분된 게.

그러니까 막 웃었다가 울었다 웃었다가 울었다 하는 게 잔잔해 진다. 치유죠.

 

그러니까 불교는 미신이다. 이런 말을 하면 안 되고,

미신이라는 것은 얼토당토 않는 얘기 하는 거를 미신이라고 그래.

예를 든다면 죄를 지었는데 인도 같으면 강가강에 가서 목욕하면 죄가 다 없어진다.

그런 건 미신에 속해요.

 

죄를 지었는데 그냥 교회만 다니면 다 없어지고 천당하고, 교회 안다니면 아무리 착한 일을 해도 지옥간다. 이런 건 미신에 속하는 거요. 그건 논리적으로 안 맞는 거기 때문에. 그런 걸 미신이라고 하는 거요.

 

그러니까 부엌에 뭘 그려놓고 밥할 때 기도한다고 미신이라고 안 해요.

그건 심리적 안정이에요. 심리적 안정.

 

그러니까 하나님한테 하나님께서 오늘 하루 생활을 감사하면 내 마음이 안정이 된다. 그런 거는 진짜 하나님이 있어서 그러느냐?“ 이렇게 따지는 게 아니에요. 이건 믿음이기 때문에. 그러면 그건 효과가 있어요. 심리적 효과가.

 

그걸 우리가 믿음이라고 그러거든요.

그래서 믿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이런 말이 있잖아요.

믿으면 그만큼 심리가 안정이 되요.

 

남편을 믿으면 심리가 안정이 되는데

못 믿으면 늘 의심이 되고 불안해 지잖아요. 그런 거하고 같으니까.

이건 불교니 기독교니 문제가 아니다. 이런 얘기에요.

 

그러니까 그런 거를 안 믿고 싶으면 안 믿으면 되요. 믿음은 자유이기 때문에.

스님은 그런 거 안 믿어요. 스님은 그런 안 믿고도 불교 잘하잖아요.

 

스님은 죽어서 천당 간다. 지옥간다. 극락 간다. 죽어서 다시 태어난다.’ 그런 얘기 저한테 물으면 나도 몰라.” 이러지.

그럼 스님은 안 간다.” 이런 말도 안 해요. “다시 안 태어난다. 태어난다. 천당 간다. 안 간다.” 이런 말을 안 해요. ?

 

그거 그렇게 믿으면

그 사람한테 심리적 안정에 좋은 효과가 있기 때문에

그걸 믿지 마라, 믿어라말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그 믿음의 문제를

객관적으로 그게 존재하느냐 존재 안 하느냐 그렇게 따지는 건 어리석다. 이 말이오.

그건 믿음의 문제이기 때문에. 헌법에 믿음은 자유라고 되어 있잖아. 그죠.

 

천당이 진짜 있다. 이렇게 그걸 사실 문제로 접근을 하면 부작용이 생기는 거요. 면죄부를 판다든지, 이런 부작용이 생기고,

그 다음에 재를 지내면 극락에 간다. 안 간다. 믿음의 문제를 객관화 시키면 천도재 지낸다고 몇 천만 원을 내라하는 이런 부작용이 생기는 거요.

 

그러나 우리가 사람이 죽었을 때, 위로하는 방법으로 49재를 지내는 거는

위로에 좋은 방법이기 때문에 그건 문화적으로 괜찮은 거요.

그걸 하라 마라고 할 필요가 없다. 이런 얘기에요. 이런 관점에서 받아들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