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천일결사 수행 맛보기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습니다.
하지만 천일결사 입재식을 앞두고 쉽게 참여 여부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정해진 루틴 속에서 나와의 싸움에 얽매여 살다가,
행복학교와 정토불교대학을 통해서 집착을 벗고 마음에 편안함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매일 새벽에 한 시간씩 해야 하는 천일결사 수행이
한편으로 저에게 부담을 줄 수 있는 상황이라 고민이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생각을 하는 것이 저에게 도움이 될까요?//
우리는 때로 자신의 생각과 규칙에 너무 얽매여서
남이 나를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괴롭힐 때가 많습니다.
마치 누에가 자기 입에서 나온 실로 고치를 만들어
그 속에 갇혀 사는 것처럼
자신의 생각과 규칙에 갇혀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누에가 나방이 되어 고치에 구멍을 뚫고 밖으로 날아가듯이,
우리도 자신의 생각과 관념의 울타리를 뚫고 자유롭게 날아가자는 것이
수행을 하는 목표입니다.
하지만 이 과정이 잘못되면
자칫 자유방임으로 흐를 수가 있어요.
처음에는 개인의 욕구나 욕망, 성질 등을 자제하며 살지만
점차 자제할 필요성을 못 느끼고 마음대로 행동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1960년대에 미국에서 유행한 히피 문화의 시대에는
불교가 한때 미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많이 받아들여졌습니다.
불교의 가르침이
'아무런 남의 눈치도 보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도 된다'라는 것으로 오인되어
젊은이들 사이에 퍼졌습니다.
이것은 기존 사회가 가지는 제약에서부터 벗어나는 일차적 해방이었어요.
하지만 이 해방이 자유방임으로 흐르면
그것은 붓다의 가르침에 맞지 않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나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타인을 배려하는 정신을 중요시합니다.
그러나 타인을 배려하는 것에서 벗어나
지나치게 타인의 눈치를 보고 나를 옥죄며 살아간다면
그것으로부터도 해방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좀 더 자발적이고 주체적으로 타인을 배려해야 합니다.
누군가가 나를 때리거나 죽인다면 굉장히 고통스러울 거예요.
그래서 타인을 때리거나 죽여서는 안 됩니다.
또한, 내 생존에 필요한 물건을 누군가 빼앗으면
매우 고통스러울 겁니다.
그래서 타인의 물건을 빼앗거나 훔쳐서는 안 됩니다.
만약 누군가가 나를 강제로 껴안거나 키스한다면
매우 괴로울 것입니다.
그래서 남을 성추행하거나 성폭행해서는 안 됩니다.
누군가가 나에게 욕설이나 거짓말을 한다면
매우 괴로울 겁니다.
그래서 말로도 남을 괴롭혀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나를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에 대한 배려입니다.
또한 미래에 과보를 받지 않도록 하여
나의 고통을 덜어주는 길입니다.
그런데 만약 이것을 속박이라고 여긴다면,
그것은 자기 욕구대로 살겠다는 쪽으로
치우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행자는
아무리 돈이 많아도 검소하게 살아야 하고
남는 것이 있으면 베풀어야 하며
아무리 지위가 높아도
목에 힘을 주거나 교만해서는 안 되고 항상 겸손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자제(自制)입니다.
자제란
이를 악물고 참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이나 성질을 스스로 조절해서
마음에 평화를 유지하고
타인에게 손해나 고통을 주지 않는 것입니다.
강제적으로 나를 옥죄어 억누르고 사는 것으로부터 해방되더라도
자기 스스로 자제를 해야
그 속에서 진정한 자유를 찾을 수가 있습니다.
참 자유는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카르마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고
자신의 욕망과 성질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며
자신의 어리석음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질문자는
타인의 시선에 나를 옥죄며 살아가는 것에서는 자유로워졌어요.
그러나 그것이 남의 눈치를 안 보고
내 마음대로 하겠다는 자유방임으로 흘러가서
타인과 부딪히며 산다면
그것은 올바른 자유가 아닙니다.
수행은 긴장하고 이를 악물며 참는 것이 아니라
긴장을 내려놓고 편안한 가운데
자신의 말과 행동, 마음의 작용을 알아차려서
자신을 절제해 나가는 것입니다.
물론 너무 억압된 상태에서 자랐던 경험이
트라우마로 남아 있는 사람은
그에 대한 반발심 때문에
수행이 나를 억압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제가 북한에서 온 청소년들을 데리고
절에서 함께 산 적이 있습니다.
그들은 북한에서 강제로 새벽 일찍 일어나 샛별 보기 운동을 하고,
저녁이 되면 서로를 비판하는 총화 시간에 참여해야 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새벽 기도 시간과 저녁 마음 나누기 시간에 대한 반발심이 컸습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면
‘북한보다 더하다.’ 하면서 불평하거나,
저녁에 일과를 마친 후 마음 나누기를 하면
‘북한과 똑같다’라고 말하면서 반발심을 자주 드러냈습니다.
질문자도 비슷한 느낌을 받을 수 있겠지만
거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야 진정한 자유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남의 눈치를 보지 않음으로써 마음이 편해졌다고 해서
‘이것이 수행이다.’ 하고 생각한다면
또 다른 함정에 빠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남의 눈치를 보고 사느라 고생했으니까,
질문자는 자유방임을 조금 더 경험해 보세요.
조금 더 자유방임을 누리면
'이것도 부작용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 거예요.
그러면 억압된 상태에 있는 것과 제멋대로 하는 것
두 가지 치우침에서 벗어나
중도의 수행을 해나갈 수 있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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