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출산을 40일 앞둔 워킹맘,
남편이 퇴사 후 집에서 사업을 구상하고 있어
육아휴직동안 집에서 함께 지내야 되는데
갈등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이 많은 질문자가
지혜로운 해법을 찾아가는 스님과의 대화//
제일 좋은 방법은 같이 안 사는 거요.
같이 안 살아버리면 이런 고민 안 해도 되는데
두 번째 같이 안 살 수가 없다, 즉 같이 살아야만 한다.
저는 같이 살아야만 한다고 정한 법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내가 같이 사는 걸 선택했다 하면
이렇게 갈등하면서 괴롭게 살거냐?
아니면 갈등 안 하면서 외롭지 않게 살 거냐? 하는 건
내가 선택하면 된다.
그럴 때 아무리 부부라 하더라도
성격이라든지 생각이라든지 습관이 서로 다릅니다.
그 다른 걸 그냥 인정하고
두 번째는 “그 사람 입장에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그렇게 행동할 수도 있겠구나”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구나”
이렇게 이해하면
내가 화가 안 난다는 거예요.
그 사람을 위해서 내가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
그렇게 하면 내가 화가 안 난다.
그러니까 그렇게 내가 사실대로
다른 건 사실이고, 사실을 인정하는 거고
두 번째 그 사람 입장에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 문제잖아요.
그게 옳고 그런 게 아니고.
어떤 기독교인이 나한테
“스님, 하나님 믿고 구원받으세요” 이러면
내 중심으로 생각하면 기분이 나쁘죠.
남의 종교에 간섭한다든지, 뭐 그러지만은
그 기독교라는 신앙의 입장, 관점에서 보면
그 사람들은 어쨌든
이 복음을 사람들에게 전해야 한다는 걸 사명으로 갖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그 상대가 누구든 가리지 않고
복음을 전하려고 하는 그 입장에서 보면
그런 말 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러면 나보고 지옥 가라는 얘기도 아니고
그냥 예수 믿으라는 얘기니까
안 믿으면 되지
그거 갖고 기분 나빠할 필요는 없지 않느냐.
“감사합니다.” 이러면 되는데.
저도 젊을 때는
“예수 믿으세요” 이것까지는 괜찮은데
“불신지옥 간다” 이렇게 하는 사람 있잖아요.
십자가 같은 거 하나 메고 다니면서
“예수천당 불신지옥” 이러면서
어떤 분은 턱 밑에다가 십자가를 갖다 대놓고
“지옥 간다”고.
이렇게 할 때 젊을 때는
저도 막 화를 내고 그랬는데
요즘은 이제 조금 생각이 달라졌어요.
내가 하는 짓을 보면
제가 지금 주로 다니는 게 선진국에 많이 다녔냐? 후진국에 많이 다녔냐? 보면
주로 후진국에 많이 다니거든요.
왜냐하면 후진국에는
아무래도 어려운 사람이 많으니까 일거리가 많잖아. 그죠?
그러니까 이 습관, 이런 성향을 볼 때는
내가 천당에 가는 게 나을까요? 지옥에 가는 게 나을까요?
천당에 가면 별로 할 일이 없을 거 아니에요, 그죠?
다 잘 갖춰졌으니까.
지옥에 가면 필요해요? 안 해요?
필요하죠.
여기저기 “스님 도와주세요. 살려주세요.”
아우성일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내가 생각할 때는
지옥에 가는 게 내 성향에 맞다 이 말이에요.
할 일이 있으니까
근데 이제 그 신앙적인 측면에서 보면
내가 지금까지 한 짓을 보면
천당 갈 확률이 높다 이 말이야.
근데 그 사람이 어디 보내준다고?
지옥 보내준다니까 얼마나 좋은 일이오.
이렇게 이제 어차피 일어난 일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 이런 의미거든요.
그러니까 어차피 일어날 일을
어차피 한 집에 사는데
서로 다른 건 사실이고
그리고 그 사람 입장에서는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고 이해한다면
내가 첫째 마음의 평화가 오고
그다음에 두 사람 사이에서도 우리가 평화로운 대화를 할 수가 있다.
그런 측면에서 그거는 자기가 선택을 해야지 뭐.
지금처럼 싸우고 살 수도 있고
남편이 원래 그런 사람이니까 그에 맞춰서 사는 방법도 있다.
그런데 여기서 성인남녀 사이라면
“에이 그냥 거기에 맞춘 내 혼자 살겠다” 이렇게 결정을 내려도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근데 자녀를 뒀거나 지금 태중에 있다면
내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아이한테 큰 영향을 줘요, 정신적으로.
그건 부모로서는 할 짓이 아니라는 거예요.
둘이 안 맞다고 싸우고, 짜증 내고 이러려면
애는 안 가져야 돼.
관계를 결혼 안 하는 게 제일 좋아.
나는 애로 살아보니까.
했으면 애를 안 갖는 게 좋고.
근데 애를 갖게 되면
결혼은 성인과 성인의 관계잖아요.
그러니까 계약도 하고, 해약도 할 수 있는데
아이라는 것은
내가 아이하고 나와의 관계는 계약 관계가 아니에요.
애하고 계약하고 내가 낳은 게 아니라는 거야.
내가 일방적으로 낳았지.
그러니까 아이한테는 뭐를 져야 된다?
성인이 될 때까지는 무한 책임을 져야 되는 거예요.
근데 내가 짜증 내고, 신경질 내고, 화내고 하면
태어난 아이도 나쁘지만, 뱃속에 있는 아이에게도 나쁘다.
그건 자기가 지금 놓인 처지에 안 맞는 일을 하고 있다.
이거는 좀 책임의식을 가져야 된다는 거예요.
그런데 요즘은 ‘여성의 권리’ 이것만 생각하지
여성의 권리로 인해서
아이의 그런 어떤 피해를 보는 경우가 돼서는 안 된다는 거죠.
또 지나치게 이제 태중에 있는 아이를
생명이라는 이름으로 너무 강조해서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어떤 권리를 훼손하는
또 이런 것도 또 문제죠.
그래서 지금 산모의 자기결정권이 중요하냐?
태아의 생명권이 중요하냐?가
사회적으로 논쟁이 되지 않습니까?
그래서 태아의 생명권을 절대적으로 우선시해야 한다 해서
낙태 금지
산모의 자기 결정권을 절대적으로 우선시한다 해서
낙태 허용
이 둘 사이에서 타협을 해서 나라마다 조금씩 다르죠.
10주까지는 산모의 자기 결정권을 우선시한다.
아니다. 14주까지, 15주까지, 16주까지, 20주까지.
지금 전 세계로 보면
타협을 한 안은 10주에서 20주 사이로
나라마다 조금씩 차이 있게 돼 있거든요.
그러니까 이렇게 그 아이가 내 소유물이 아니라는 거죠.
특히 아이가 태어나면
그 아이에게 가까이 있는 부모가 끼치는 영향은 매우 크기 때문에
내가 화를 벌컥 내면 성인은 기분이 나쁠 정도예요.
그런데 아이는 심리적으로 엄청난 상처를 입게 되고
그것이 평생을 좌우하는
자기 자아 형성에 나쁜 영향을 준다, 이 말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어미가 된 사람은
이게 여성이라서 문제가 아니라
어머니라고 하는 그 특성 때문에, 이 생태적인 특성 때문에
이 아이를 보호할 의무가 있다
이렇게 볼 수 있거든요.
그러니까 한 아이의 엄마로서
또 한 아이를 가진 엄마로서는
남편이 나를 안 도와준다는 관점만 서는 거는 무책임하다.
책임을 전가하는 거다.
“남편이 어떻게 하든
나는 내 아이를 보호할 의무가 있다”
이런 관점에서 바라보고
“화를 안 내는데 안 됩니다.”
이런 소리 하면 안 되지.
그러면 아이에게 나쁜 영향을 준다.
이걸 생각하면 돼요.
연약한, 싹이 갓 올라온 연약한 식물은
오줌을 거기다 넣어버리면 어떻게 됩니까?
말라 죽어버리잖아요. 그렇죠.
근데 식물이 어느 정도 크면
오줌을 주면 그게 뭐가 됩니까?
거름이 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아주 어린 아이는 보호해 줘야 돼요.
어떤 외부 환경의 도전이 상처를 입게 만든다 이거야.
그런데 어느 정도 아이가 크면, 사춘기가 넘어가면,
너무 과잉보호해버리면 자생력이 없어져요.
거기 약간의 도전이 있고, 거기에 자기 응전이 있어야
적응력이 키워지는 거거든요.
그래서 특히 어린아이들에게는
어떤 상처도 입지 않도록
우리가 보호할 의무가 있다.
그래서 엄마라도 애를 야단쳐서는 안 되고
선생님이라도 아이를 야단쳐서는 안 된다.
어릴 때는.
좀 크면 괜찮아요.
이렇게 3살까지는 무조건적인 보호를 해야 되고
유치원, 초등학교 때는 야단치기보다는
가르치기보다는 모범을 보여준다.
따라 배워 가도록 해준다
이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서 자기가
“내 성질이 이렇습니다.”
그럼 성질대로 살려면 나처럼 살아야 돼요.
애기 엄마가 된다 하면
“자기 성질대로 산다” 이런 말을 하면 안 돼요.
자기 혼자가 아니기 때문에.
...
그러니까 기도를 해서 어떻게 한다
이런 약간의 종교적 신비주의로 접근하지 말고
나와 다른 남편인 걸 인정을 해야 돼.
내가 남편을 시비할 때는 너 틀렸다 이렇게 자꾸 하기 때문에
시비를 하는 거야.
시비란 말이
옳고 그름을 따진다는 뜻 아니에요? 그죠.
그러니까 옳고 그름이라는 거 없는 거예요.
다를 뿐이지.
그러니까 기분이 나쁘면
“아, 내가 또 옳고 그름에 집착하구나”
즉 내 관점을 고집하구나, 이런 얘기예요.
두 사람이 길을 가다 보면
한 사람 앞에 가고 한 사람 뒤에 갈 수가 있잖아. 그죠 ?
그런데 앞에 가는 사람은
자기 기준으로 뭐라 그런다?
“뭐 하러 그리 꾸물거리나 빨리빨리 안 오고” 이렇게 얘기하는데
뒤에 가는 사람은 또 자기 기준으로 뭐라 한다?
“뭘 그렇게 서두르노”
또 이렇게 생각한다는 거예요.
이것처럼 우리는 그게 부부라 하더라도
관점이 자기 중심으로 얘기하니까
항상 상대가 문제 있는 것처럼 보이는 거예요.
그러니까 예를 들어서
수건을 한 번 쓰고 세탁통에 집어넣는 습관이 있는 사람이 있고
그거 뭐 세수하고 물만 닦았잖아요. 그죠?
그럼 널어놨다 말리면 또 써도 되잖아 그렇죠.
그런데 어떤 사람은 지나쳐서
약간 쉰내가 날 때까지 쓰는 사람도 있단 말이야.
그러면 이 두 사람 사이에
왜 쓰고 세탁기에 안 집어넣고 거기다가 그 자리에 놔 놓느냐?
또 한 사람은 어때요?
왜 멀쩡한 수건을 닦고 자꾸 거기 빠느냐?
환경위기 시대에
이렇게, 그것도 갈등이란 말이에요.
이렇게 따지면
음식 간부터 모든 문제에
습관이나 취향이나 생각이 다르다 이거예요.
이 다른 거를 인정을 해야 돼.
그 사람 게 옳다가 아니예요.
다른 걸 인정하면
화가 안 나
화가 난다, 짜증이 난다는 건
인정을 안 한다는 거 아니에요
“너 왜 그러니?”
이렇게 되니까 화가 나는 거거든.
그러니까 그거 인정하기
“그는 나와 다릅니다.”라든지
아예 그냥 그의 기준으로 받아들이면
“그가 옳습니다”라고 하든지
이런 기도문으로 기도를 하면 좋다.
이걸 자기 세뇌죠.
무의식에다가 영향을 주는 거든요.
명심을 하는 거거든요.
항상 나와 그는 다르다는 거를
항상 내가 그걸 자각하고 있으면
화가 안 나지
그걸 놓치면 화가 난단 말이예요..
그러니까 그걸 항상 자각을 하고 있어야 된다.
화가 딱 나면 벌써
“내가 또 나를 고집하구나”
이렇게 자기가 탁 자각을 하고 놓는 연습을
지속적으로 해 나가면 좋겠다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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