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20년이 넘도록
친구나 가족에게도 말하지 못한 수치스러운 기억이 있습니다.
예민했던 사춘기 시절, 체격이 큰 친구에게
일명 '샌드백'이라 불리며 두들겨 맞았고,
그 친구의 숙제를 대신 해줘야 했습니다.
한 번은 제가 수술을 받고 학교에 갔는데,
엄살을 부린다며 수술 부위를 걷어 차여 재수술을 해야 했습니다.
장난이라며 제 머리를 태우기도 했고,
기절시키는 장난으로 실제로 기절하기도 했으며
돈도 빼앗기는 등 많은 괴롭힘을 당했습니다.
학창 시절 내내 괴롭힘에서 벗어나고 싶어
자는 척을 해보기도 했지만,
자고 있는 저의 머리채를 잡아 흔들어 깨워 다시 괴롭혔어요.
졸업하면 모든 고통이 끝날 줄 알았지만
사회에 나가서도 부당한 처사와 괴롭힘을 겪었습니다.
그때부터 스스로를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며
‘내가 무엇을 잘못했을까?’ 하는 생각을 반복하게 되었고,
피해 의식, 자괴감, 열등감, 분노, 억울함이 깊어졌습니다.
성인이 된 후 공황장애로 정신과 치료를 받아보기도 했지만
시간당 10만 원이 훌쩍 넘어가는 상담 비용 때문에
결국 치료를 중단하게 되었습니다.
최근 들어, 가까운 친구나 가족, 회사 동료가
조금이라도 저를 무시하는 발언을 하면
쉽게 분노하고, 싸움으로 이어지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미운 대상은 끊임없이 생겨나고 사라지곤 합니다.
왜 저는 어딜 가든 약자가 되고, 당하기만 하며 살아갈까요?
어떻게 하면 과거에 저를 괴롭혔던 상대를 이해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저를 함부로 대하거나
무리한 요구를 하는 사람들에게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을까요?//
첫째, 어떤 한 사람이 계속 나를 괴롭힌다고 느껴진다면
그 문제가 그 사람에게 있는지
아니면 나에게 있는지는 확률이 반반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럴 때는 그 사람이 정말 객관적으로 나를 괴롭히는 건지
아니면 내가 그 사람의 행동을 과도하게 해석하여
피해 의식을 느끼고 있는 것인지를 따져보아야 합니다.
둘째, 두 사람이 나를 괴롭힌다고 느껴진다면
즉 여기서는 이 사람이 나를 괴롭히고
저기서는 저 사람이 나를 괴롭힌다고 느껴진다면
그들보다는 나에게 원인이 있을 확률이 더 높습니다.
셋째, 내 주위에 세 명이 있는데
세 명 모두가 나를 괴롭힌다고 느껴진다면,
이 경우에는 문제의 원인이 그 사람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있을 가능성이 훨씬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한 사람만 미운 경우에는 문제의 원인이 반반일 수 있지만
두 사람이 밉다면 나에게 문제가 있을 확률이 3분의 2로 높아지고
세 사람이 밉다면 나에게 문제가 있을 확률이 4분의 3에 달한다는 의미입니다.
내가 느끼기에는
상대가 나를 괴롭힌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그게 꼭 괴롭힘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물론 누군가가 지나가다 머리를 툭 치거나 욕을 할 수는 있지만
그런 일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흔한 일이에요.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으면 좋겠지만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종종 발생할 수가 있는 일입니다.
살다 보면 싸우기도 하고, 때리기도 하고, 맞기도 하고
욕하기도 하고, 욕을 얻어먹기도 하는 것이 우리의 인생입니다.
물론 그 순간에는 기분이 나쁠 수 있지만
잠을 자고 나면
다시 괜찮아지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게다가 수행을 많이 한 사람이라면
한 대 맞거나 욕을 먹어도 크게 흔들리지 않고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가 있죠.
하지만 수행을 하지 않았더라도 정신적으로 강한 사람이라면
한 대 맞거나 욕을 들었을 때
순간적으로 기분이 나쁘지만
며칠이 지나면 다시 괜찮아집니다.
그러나 정신적으로 약간 문제가 있으면,
상대가 나를 때리거나, 나에게 욕을 하거나, 내 물건을 뺏거나 훔쳐 갔을 때
그 일이 나에게 깊은 상처를 남겨서 엄청나게 괴로워지게 됩니다.
하루 이틀이 지나면 없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상처가 커지게 돼요.
마음속에 분노가 생겨서 복수를 해야겠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는 거죠.
질문자의 경우 처음에는
한 사람이 학교 다닐 때 자신을 괴롭혔다고 하니까,
만약 그랬다면 그때는
부모님이나 선생님에게 얘기해서 개선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 기억이 점점 약화되어야 하는데
지금까지도 그 기억이 질문자의 생활을 괴롭힌다면
이미 트라우마가 된 거예요.
과거의 상처가 여전히 질문자에게 남아 있는 겁니다.
또 다른 사람을 만나도 같은 문제가 반복된다면
두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습니다.
첫째, 질문자가 정신력이 약해서
상대방의 괴롭힘을 과도하게 받아들였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상대가 괴롭힌 정도보다
질문자는 그것을 더 강하게 느낀다는 겁니다.
그 트라우마 때문에
다른 사람과의 관계도 어려워지는 문제가 발생한 겁니다.
그 친구가 아직도 연락을 하거나
만나자고 해서 괴로움을 계속 겪고 있다면,
그 친구와의 관계는 우선 끊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질문자가 그것을 감당할 능력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 친구와의 만남이
이미 지나간 일이고
과거의 기억 속에만 존재할 뿐이라면,
트라우마에 대한 치료가 필요해요.
트라우마 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미 지나간 일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것입니다.
이미 지나간 일은
과거에 녹화된 기억일 뿐이고, 지금은 현실이 아닙니다.
그 일이 떠오를 때마다
'이건 환상이다' 하고 생각하며 관점을 바꿔야 해요.
그러나 아무리 '이건 환상이다' 하고 생각해도
계속 머릿속에서 그 기억이 떠나지 않는다면,
그때는 다른 생각을 해야 합니다.
그 친구에 대한 생각이 떠오르면
마당에서 뛰거나 텔레비전을 보는 등의 방법으로
채널을 바꾸는 거예요.
이것은 그 순간에서 벗어나는 임시적인 해결책입니다.
더 근본적인 해결책은
이미 지나간 일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과거는 그저 기억 속에 있을 뿐
실제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불교적으로 말하면 공(空)입니다.
이미 지나간 과거는 더 이상 없는 것입니다.
이 점을 자꾸 명심해야 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문제가 생긴다면,
문제의 원인을 그 사람에게만 돌리지 말아야 해요.
세상은 원래 욕도 하고, 남의 돈을 떼먹기도 하고, 배신도 하는 등
다양한 일이 일어나는 곳입니다.
세상에 병균이 없으면 좋겠지만,
병균은 항상 존재합니다.
그렇다고 병균을 다 없앤 무균 상태에서만 살 수는 없습니다.
병균이 있어도 나에게는 면역력이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는 거예요.
안 그러면 무균실에 들어가 있어야 하잖아요.
운전할 때
다른 차가 급정거를 하거나 차선을 바꾼다고 해서
화를 내기만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 상황을 감안하고 운전해야죠.
급정거에 대비해 앞차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갑자기 끼어드는 차량이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운전해야 합니다.
사고가 생길 때마다
'왜 이런 일이 생기지?'하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너무 피해 의식을 갖고 있는 데에서 발생하는 문제입니다.
'문제의 원인은 나에게 있다' 하고 관점을 바꾸는 것이 필요합니다.
질문자는 병원에 다니면서 치료를 받고 있다고 했으니,
효과가 있느냐 없느냐를 따지기보다는
조금 더 의사와 상담하며 치료를 지속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지나간 과거는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자꾸 과거의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이건 환상이다’ 하고 돌이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만약 그것조차 안 된다면, 생각을 다른 방향으로 돌려야 합니다.
물론 이런 일이 없으면 좋겠지만
이런 사람들도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가 나쁜 사람을 다 잡아 죽일 수도 없고
감옥에 보내거나 처벌할 수도 없습니다.
세균을 다 없앨 수 없는 것처럼
그런 사람도 존재하는 것이 이 세상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 속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만약 그런 상황이 객관적으로 너무 심각해지면
항생제를 먹고 주사를 맞는 것처럼
우리는 적절한 대응을 해야 합니다.
이런 관점을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
나를 때리기도 하고, 물건을 뺏어가기도 했던 그 친구가
지금도 여전히 나를 때리고 물건을 뺏어가고 있나요?
그때 당시에는 그 친구가 나를 때리고
내 물건을 뺏어가서 괴로웠을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내가 괴로운 이유는 누구 때문인가요?
(그 누구도 아니고 저의 기억 때문에 괴로운 것 같습니다.)
그 기억은 누구의 기억이에요?
그럼 지금은 누구 때문에 괴로운 거예요?
괴로워지고 싶으면 계속 괴로워하면 돼요.
하지만 내가 지금 괴롭지 않으려면
그런 생각이 들더라도
'이건 지나간 일이다'라고 생각하면서
그 기억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합니다.
만약 지금도 그 친구가 계속 나를 때리고
내 물건을 빼앗고 있다면
경찰에 신고해서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그게 아니라면
현재 상황에서는 그 친구의 문제가 아닌 겁니다.
지금은 그 친구의 문제가 아니고 바로 내 문제입니다.
그 친구가 죽든 살든 그건 내 문제와 관계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깡패에게 납치를 당했어요.
깡패가 그 사람에게 나쁜 일을 하라고 시켰는데
거부하니까 마약 주사를 강제로 놓았어요.
내가 마약을 안 맞겠다고 저항했지만
결국 강제로 주사를 맞고 마약 중독이 되었습니다.
그러다 결국 경찰에 의해 구출되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사람이 집에 돌아왔을 때
마약 중독 증상이 여전히 있을까요, 없을까요?
그 사람이 집에 돌아와서도 여전히 마약을 한다면
그 사람 본인이 처벌을 받을까요?
예전에 나에게 마약을 강제로 투약한 사람이 처벌을 받을까요?
그것처럼 누가 어떻게 시작했든
이제는 내 문제가 된 거예요.
그래서 ‘이건 내 문제다’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자꾸 그 사람의 문제라고만 생각하면 해결책이 없습니다.
하지만 내 문제로 받아들이면 내가 해결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은 내가 나를 괴롭히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기억에 집착해서
지금 내가 나를 괴롭히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은 그 사람이 나를 괴롭히는 게 아니에요.
내가 나를 괴롭히는 어리석은 짓을 하고 있는 거죠.
과거는 이미 지나간 일입니다.
단지 기억일 뿐이라고 자꾸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 기억에 사로잡히지 말아야 합니다.
(과거의 기억이
습관처럼 올라오는데 어떻게 하면 될까요?)
습관처럼 올라오니까 그걸 막을 방법이 없지요.
나도 모르게 올라오는데 내가 어떡하겠어요?
그러니 과거의 기억이 올라올 때마다
‘이건 환상이야. 바보 같은 생각이야’ 이렇게 자꾸 자각해야 합니다.
그 정도가 심하면 약을 먹어야 합니다.
약을 먹으면 과거의 기억이 안 올라오는 게 아니라 조금 덜 올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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