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올해 59세로 결혼한 지는 25년쯤 되었습니다.
최근에 집사람이 급성 우울증과 불면증으로 두 달 정도 힘들어하다가
아파트 5층에서 투신하는 사고가 났습니다.
다행히 생명은 건졌고 수술 뒤에 지금은 재활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척수신경을 다쳐서 하반신 마비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재활치료로 나아지길 기대하고 있지만
앞으로 제가 계속 아내의 대소변을 받아야 할 수도 있습니다.
이번 일로 집사람도 크게 후회하고 있고
저도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집사람에 대해서는 미안한 마음, 황당한 마음 등 다양한 감정이 듭니다.
앞으로 장애인으로 살아가야 할 수도 있는데 너무 안타깝고 불쌍합니다.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으려면
제가 아내에게 어떤 위로와 격려를 해야 할까요?
그리고 저는 이 어려움을 어떻게 헤쳐 나가면 좋을까요?//
우울증은 정신질환의 일종입니다.
정신질환의 원인은
어떤 정신작용을 일으키는 물질의 과다분비 또는 과소분비라는 견해도 있고
물질적인 문제가 아닌 정신적인 문제라고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어릴 때 상처를 많이 받았거나
또는 자기 뜻대로 안 되어서 생긴 어떤 죄책감이나 좌절감, 절망감 등이 서로 겹치면서
정신질환이 되었다고 보기도 합니다.
또는 이 두 가지 원인이 복합될 수도 있습니다.
생각에 사로잡힌다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생각을 골똘히 하면
그 속에 푹 빠져버리는 것을 말합니다.
밤에 꿈을 꾸면 마치 현실처럼 느껴지죠.
그런데 옆에서 보면 그냥 잠을 잘 뿐입니다.
그러나 꿈을 꾸는 사람은 굉장한 위험에 처해 있거나 쫓겨 다니고 있는 겁니다.
이처럼 어떤 한 생각에 깊이 빠지면
순간적으로 ‘나는 아무 쓸모없는 사람이야’, ‘나 같은 사람은 죽는 게 나아’
이런 생각에 사로잡혀서
건물에서 확 뛰어내릴 수가 있어요.
옆에서 보면 멀쩡한 사람이 뛰어내린다고 볼 수 있지만
당사자는 거기서 뛰어내릴 수밖에 없는
그런 정신적 환상에 사로잡힌 것입니다.
그래서 우울증이 있는 사람은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예방하기 위해 약을 먹어야 합니다.
약을 먹으면 병이 낫는다는 게 아니라
신경을 안정시켜서
그런 극단적 선택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는 의미입니다.
약을 먹으면 좀 졸린다는 부작용도 있지만
그런 극단적 사로잡힘을 막아주는 효과도 있어요.
그래서 질문자의 부인 같이 극단적 행동을 하는 경우는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이
병원에 간 적이 없거나 치료받고 있더라도
그때 임의로 약을 끊은 경우에 많이 일어납니다.
사람이 화가 너무 많이 나도
어떤 생각에 확 사로잡혀서
남을 죽이거나 자신을 스스로 헤치는 경우가 있잖아요.
그것처럼 이번 일도
정신적으로 딱 사로잡힌 상태에서 일어난 겁니다.
사로잡힌 상태에서는
그 사람의 내면에서 그 행위가 정당화되어 버립니다.
질문자가 이런 사실을 미리 알고 부인을 잘 살폈으면 좋았겠지만
어쩔 수 없이 일어난 일이에요.
반성은 좀 필요하겠지만
질문자가 부처님도 아니고 예수님도 아니고 전문의사도 아니잖아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사실을 잘 모르기 때문에
옆에서 누가 죽겠다고 해도
그러려니 하고 그냥 넘어가는 것입니다.
이런 걸 다 살펴서 세심하게 배려할 수준이 안 되는 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질문자가 반성하는 것은 좋지만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죄책감을 느낀다는 건
내가 부처님 수준이 된다고 생각하는 과대망상증이에요.
그런 부인을 잘 보살피지 못한 것에 대해
질문자에게 약간의 책임이 있긴 하지만
질문자의 수준을 보통 사람 정도라고 본다면
죄책감까지 가질 정도의 일은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금 반성하고 넘어가면 되는 일로 보시면 좋겠습니다.
이런 일로 부인이 죽으면
죽어서 문제가 되고, 살면 살아도 문제가 될 수 있어요.
죽는 것보다 산 게 낫지만,
부인은 그전에 우울증만으로도 힘들었는데
이제 신체 장애까지 감당해야 하니
본인도 그렇고 주위 사람에게도 일이 많아졌습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에요.
건강한 사람이 교통사고를 당해서
신체 장애와 정신 장애가 생겼더라도
사람은 살아있는 한 삶을 유지해 나가야 합니다.
부인의 경우는 원래 정신 장애가 있다가 예방을 못 해서
신체 장애까지 생기게 된 경우예요.
보통 이럴 때 어떤 사람은 정신적 장애가 해결됩니다.
신체적으로는 건강한데 정신적 장애가 심하던 사람이
이런 죽을 고비를 넘기면
삶에 의욕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생명의 원리가 그렇습니다.
반드시 그렇게 된다고 할 수는 없지만,
다시 죽으려고 할 확률이
사고가 나기 이전보다 훨씬 낮아지게 됩니다.
오히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삶에 대한 욕구가 더 일어나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질문자의 부인도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날 확률이 오히려 낮아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제 남은 일은
부인이 재활 치료를 받는 것이고,
질문자가 부인을 간호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번 일로 질문자가 해야 할 일이 많아졌으니
‘집사람이 쓸데없는 짓을 해서 내가 일이 많아졌어!’
이렇게 불평할 수는 있겠죠.
그러나 부인을 잘 살피지 못한 질문자의 책임도 있으니
관점을 다르게 가져 보세요.
‘일은 좀 많아졌지만
그래도 아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다행이다.
아내도 반성하고 있고,
나도 잘 살피지 못한 점을 반성해야겠다.
서로 협력해서 이 난관을 극복해 보자!’
이렇게 관점을 가지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
자꾸 원망하는 마음을 갖고
‘당신이 그러지 않았으면 내가 이럴 필요가 없잖아’
이렇게 생각하면
질문자도 괴롭고 부인과의 관계도 틀어집니다.
몸이 불편한 사람은 불평을 많이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아내도 예전보다 불평을 더 많이 할 겁니다.
그런데 잘못 생각해서
‘일은 당신이 저질렀는데 왜 당신이 불평을 하나?
내가 불평을 해야지’ 이렇게 생각할 수가 있거든요.
그런데 한번 생각해 보세요.
대소변을 받아내는 사람이 더 힘들까요?
아니면 대소변을 뭉개고 있는 사람이 더 힘들까요?
...
그래서 부인이 불평할 때
‘이게 왜 내 잘못이냐? 네 잘못이지’
이렇게 생각하면 관계가 점점 틀어집니다.
‘얼마나 불편했으면 이렇게 짜증을 낼까.
그래 얼른 내가 갈아 줄게. 늦어서 미안해!’
이런 관점을 가지시면
이번 일을 전화위복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
질문자는 지금 부인을 걱정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본인을 걱정하는 것 같아요.
‘내 인생이 아직도 몇십 년이나 남았는데
집사람의 똥오줌 가리면서 어떻게 살지?’
이런 걱정을 하시는 것 같습니다.
지금 부인은 질문자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그런 걱정하지 마시고
‘그동안 아내가 힘들었는데 몸까지 다쳤네.
그래도 같이 살았으니 큰 도움은 안 되더라도
작은 도움이라도 주며 살아야겠다’
이런 마음을 가지면 좀 홀가분해지실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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