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대학생입니다.
현재 전공이 제게 맞는지 고민이 됩니다.
이 길이 올바른 선택인지 계속 헷갈립니다.
인생에 정답이 없다는 것은 알지만,
이 고민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학생이니까 그런 고민을 하는 것이 이해는 됩니다.
하지만 여기 계신 어른들에게 물어보세요.
지금 하는 일이 본인 적성에 맞아서 하는 분이 얼마나 될까요?
아마 거의 없을 거예요.
저도 승려 생활이 제 적성에 맞아서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저는 종교를 싫어했어요.
초등학교 때는 교회를 열심히 다녔습니다.
중학교 때는 불교 학생회 활동도 해봤지만
종교라는 것이 너무 허황되게 느껴져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경상도 사투리로 말하자면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를 하는 것 같았지요.
저는 과학자가 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그런데 고등학교 때 학교 근처 절에 계신 스님께 붙잡혀서
억지로 출가하게 되었어요.
처음엔 과학과 종교가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승려 생활도 오래 하다 보니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처님, 예수님, 공자님과 같은 성인의 가르침은
후대로 내려오면서
돈벌이를 위해 신비주의로 변질되었습니다.
그러나 허황한 이야기들을 덜어내고
사회와 역사의 현실 속에서
그분들이 실제로 어떤 가르침을 전했을지를 생각하며
성경과 불경을 다시 바라보면
그 시대의 많은 사람에게 희망을 주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가르침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여전히 큰 희망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도 승려로서
2,600년 전 고타마 싯다르타가
인생을 고민하고 출가해
수행 정진한 끝에 깨달음을 얻고
사람들을 교화했던 그 길을 따르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분의 가르침을 공부하며
그의 삶을 흉내 내듯 살아가고 있는데
그렇게 지내다 보니 나름 괜찮다는 생각이 들어요.
늙으면 좋은 것이 두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바로 ‘중’하고 ‘호박’이에요.
젊은 중이 유명해지면
혹시 사고라도 치지 않을까 걱정되지만
늙은 중이 되면 그런 걱정이 없어지잖아요.
마치 늙은 호박이 더 맛있는 것처럼요.
저도 젊을 때는 승려가 나에게 딱 맞는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살아보니 내가 선택한 길이 아니었지만, 꽤 괜찮아요.
물론 시행착오는 많았지만요.
그래서 저는 젊은이들을 만나면 이렇게 묻습니다.
‘너희는 스스로 선택한 길을 가고 있지 않느냐?
그런데 나는 내가 원하는 길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스승이 주는 길을 따라왔는데
지나고 보니 원치 않던 길을 꾸준히 걸어온 것도 괜찮은 것 같다.
그런데 정작 너희는
스스로 선택해 놓고 왜 후회하고 있느냐?’
질문자가 전공을 공부해 보니
나와 전혀 맞지 않는다고 느꼈다면 그것도 좋은 일이에요.
나에게 무엇이 맞지 않는지 알게 되었으니까요.
이 경우 전공을 바꾸는 것도 하나의 선택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정말 내 길이다!’라는 확신이 들지 않는다고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어요.
‘이 길이 나에게 딱 맞다!’라고 느끼는 경우는
사실 극히 드물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하는 공부나 직업 혹은 배우자가
본인과 딱 맞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니 너무 완벽한 선택을 찾으려 하지 마세요.
도저히 못 하겠다 싶으면 바꿔도 되지만
그렇지 않다면 일단 계속해 보는 것도 괜찮은 방법입니다.”
...
의과대학 공부가 많이 힘들어요?
...
그렇다면 그냥 하세요.
부모님은 아마 빚을 내서라도
질문자가 의사가 되는 데에 투자하실 용의가 있을 거예요.
다른 사람들은 훨씬 더 위험한 투자도 하는데
의과대학 공부는 비교적 안전한 투자예요.
미국에서 의과대학을 다니던 한 학생이
본과 2학년이 되어 도저히 못 다니겠다고 저한테 고민을 말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그냥 졸업이나 해라’ 하고 대답해 주었어요.
그 젊은이가 지금은 LA에서 아주 잘 나가는 정신과 의사가 됐습니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어요.
정토회 회원의 자녀였는데, 본과 2학년쯤에
도저히 의과대학을 못 다니겠다고 해서
제가 ‘그냥 졸업만 해라.
졸업하고 나면 같이 세계 구호 활동이나 하러 가자’ 하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 젊은이도 지금은 한국의 유명한 병원에서 의사를 잘하고 있어요.
또 어떤 분은 서울대 의예과를 다니다가
노동운동을 하면서 제적이 되었습니다.
그분은 다른 대학교 한의학과에 입학해 한의사가 되었고
민주화 이후에 서울대가 학생운동으로 제적된 학생들의 복학을 허용하면서
다시 서울대 의예과에 입학해서 졸업을 했어요.
그렇게 해서 한의사, 양의사 자격을 모두 취득해서
현재는 대학병원에서 두 분야를 다 아우르고 있습니다.
의사가 되었다가
정말 적성에 맞지 않아 그만두신 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일단 졸업은 하는 것이 유리합니다.
졸업 후에 의사로 일하다가 그때 그만두어도 되기 때문입니다.
의과대학 공부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다면
그만두라고 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학업을 계속하는 것이 좋습니다.
질문자가 의예과 학생이니 잘 알겠지만
걱정이 너무 많으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경우일 수 있어요.
질문자는 걱정이 많은 편이니
정신과 상담을 받으면서
심리적인 안정을 찾은 후 공부를 계속해 나가면 좋겠습니다.
질문자처럼 의사가 되기를 포기할 뻔했지만
제 조언을 듣고 결국 의사가 된 사람들은
저에게 소환권이 있습니다.
제가 어디에 병원을 만들거나 해외에서 구호 활동을 하게 되면
‘직장을 그만두고 이쪽으로 와주세요’라고 요청할 권리가 있는 거예요.
왜냐하면 제가 없었으면 의사가 되지 않았을 것 아닙니까?
그러니 적당하게 일하다가 적절한 시기가 되면
그만두고 봉사하러 나오세요.
예전에 20년을 감옥에서 살다가 나온 사람이 있었습니다.
조급한 마음에 이것저것 하려고 해서 제가
‘천천히 하라’ 하고 조언했어요.
결국 그 사람이 돈을 벌어서 집을 샀고,
고마운 마음에 저를 찾아와
‘스님, 이 집은 스님 집입니다’ 하는 거예요.
‘그래? 그러면 내가 너한테 맡길 테니까 잘 관리를 해라’라고 말했습니다.
그 뒤 그 사람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둘 낳았어요.
그런데 마침 북한에서 굶어 죽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서
인도적 지원이 필요해졌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사람을 불러서
‘옛날에 네가 내 집이라 했던 것을 이제 쓸 데가 있으니 돌려달라’ 하고 말했죠.
그랬더니 그 사람이
‘벌써 10년이나 지난 일이고,
이제 아이도 둘인데 어떻게 돌려드립니까?’ 하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그건 네 사정이고, 네가 분명히 그 집은 스님 집이라고 하지 않았느냐.
지금 사람들이 굶어 죽고 있어서 내가 인도적 지원에 써야겠다’ 하고 말했어요.
그랬더니 그 사람이 차마 그 집을 돌려주지는 못하고
담보 대출을 받아서 천만 원을 가지고 왔습니다.
제가 이렇게 돈을 버는 사람입니다.
오늘 질문자도 의사를 그만두면 모르겠지만
나중에 졸업하고 의사가 됐다는 소문이 나면
제가 찾으러 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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