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자1.
제가 최근에 새로운 도전을 여러 가지 시도했는데 자꾸 그게 안 좋은 결과로 나왔단 말이에요. 그러니깐 수시를 넣었는데 다 예비만 받고... 그래서 그렇게 자꾸 떨어지니까 자존감도 많이 떨어지고 약간 새로운 도전이라는 게 이젠 두려워요.//
그러면 내가 나이가 올해 65이에요. 그런데 내가 장가를 가고 싶어. 그래서 내가 프러포즈를 했어. 20살짜리한테 프러포즈 하고, 안 되어서 21살짜리한테 하고, 22살짜리한테 하고, 25살짜리한테 하고, 30살짜리한테 프러포즈했는데 계속 안 됐어. 그럼 내가 자존감이 떨어지고 낙담을 해야 됩니까? “나는 결혼 못하나보다.” 이럴까? 내가 프러포즈를 손자까지 본 70된 할머니에게 해보고, 75된 할머니한테 해보면 가능성이 높을까? 안 높을까?
그래. 내가 20살짜리, 22살짜리, 25살짜리 낸 거 이건 그래서 거절당했다면 스님이 수준이 너무 안 되어서 남자가 영 볼품이 없어서 안 되었을까? 내 는 것을 잘못 내어서 그럴까? 그럼 75 이런 할머니한테 냈으면 내가 만약에 그것을 할머니가 받아들였다면 내가 굉장히 뛰어나서 됐을까? 적당한 위치, 알맞게 내서 됐을까?
그러면 자기는 어떤 거 같아? 자기는 알맞게 냈는데 계속 안 되는 거 같아? 조금 수준을 높은 데를 내서 그럴까?
학교 성적이 나보다 뛰어난 것은 아니야.
그러니까 경쟁하는 학생들의 학교 성적이
나보다 조금 더 높은 아이들이 많이 왔구나.
이것을 확인하는 작업이잖아.
내가 성적이 나쁘다든지
내가 능력이 안 되는 거하고 관계가 없는 일이에요.
그래서 자존감이 떨어진다는 말은 할 필요가 없다 이 말이오. 내가 한번 도전은 해볼 수 있잖아. 나도 25살짜리한테 한번 도전은 해 볼 수 있어요? 없어요? 그러나 성공할 확률이 높아요? 실패할 확률이 높아요? 실패할 확률이 높지. 그래도 뭐 못 먹는 감 찔러나 본다고 한번 해 볼 수는 있다 이 말이오. 해볼 수는 있지만, 그것은 처음부터 실패할 확률이 높은 거고, 만약에 한 70대 할머니한테 제안을 한다면 그것은 반드시 된다는 보장도 없지마는 그러나 20대 보다는 뭐다? 성공할 확률이 높다. 이렇게 말할 수 있잖아. 그죠?
그럼 성공했다고 내가 굉장히 잘난 사람이고, 실패했다고 못난 사람이고 이런 것은 아니라는 거요. 그것은 떨어졌다고 자기가 실력이 나쁘고 걸렸다고 실력이 좋은 것은 아니다. 이 말이오. 전국에서 공부 제일 잘하는 애만 30명 모아서 반편성하면 꽁지 나올까? 안 나올까? 그 중에 꼴찌 나올까? 안 나올까?
그럼 전국에서 공부 제일 못하는 애 모아서 반편성 하면 1등 나올까? 안 나올까? 그래. 그럼 꽁지 한 애는 공부 못하고 그럼 1등 한 애는 공부 잘할까? 그래. 그런 것처럼, 자기가 가서 떨어졌다고 해서 자기가 실력이 없는 거 하고는 관계가 없는 일이다. 그러니까 여러 군데 내 봐요.
그럼 “떨어지니까 또 떨어질까 봐 겁난다.” 이렇게 생각하지 말고, “아, 여기까지 학교 성적이 나보다 나은 애들이 이런 데를 지원하는구나.”하고 확인 작업 된 것 밖에 아니란 말이오. 내가 걸리게 해줄 수는 없지마는, 자존감이 없다 하는 것은 치유가 됐어요? 자존감하고는 아무 관계없어요. 이것은.
그럼 자기가 아이큐라든지, 재능이 공부 재능이 자기 보다 더 높은 아이들이 많이 다니는 학과에 자기가 요행히 당첨이 되었다. 그러면 그것은 굉장히 기분이 좋겠지. 그런데 그것은 자기한테 해가 돼. 왜 그럴까? 학교에 입학한 뒤에 자기는 계속 그 반에서 꽁지해요. 제 말 이해 되요? 아무리 열심히 해도 하위권을 벗어날 수가 없어.
그러면 자기는 굉장히 자존감이 상하는 거요. 그런데 내가 입학을 했는데, 거기 있는 아이들이 나보다 대부분 성적이 약간 좀 못한 아이들이 다수야. 그러면 들어갈 때는 나한테 굉장히 내가 성적이 낮은 과에 들어갔다. 기분 나쁠지 몰라도, 학교 다니면 자기는 굉장히 살기가 수월해. 놀아도 맨날 상위권이야. 제 말 이해하세요?
그러면 어느 게 자기가 나을까? 놀아도 상위권에 노는 게 낫나? 죽어라고 해도 꽁지 하위권에 노는 게 낫나? 어느 게 나아?
그러니까 욕심을 내서 하면
안 될 확률도 높고
설령 됐다 해도
그게 반드시 좋다는 보장이 없어.
학교 다니면서 내내 자존감 없이 다녀야 되는 거요.
그래서 여기 우리가 열심히 해서 성적을 올려서 자존감을 회복할 수도 있지마는, 그것은 학생이 할 수 있는 일이고, 학부형이 우리아이에게 좀 자존감을 심어주려면 어떻게 해야 된다? 아이 성적을 올려주려면 어떻게 해야 된다? 아이보고 공부하라고 독촉하는 게 아니고, 학교가 좀 나쁜 쪽으로 이사를 가주는 거요. 제 말 이해하셨어요?
이사를 가주면 아이가 특별히 노력 안 해도 성적이 올라가요? 안 올라가요? 저절로 올라가요. 그럼 아이의 자존감을 굉장히 높여주는 결과가 됩니다. 그런데 우리 어머니들이 어리석어서 자기 아이를 계속 자존감이 떨어지는 쪽으로 욕심을 내고 옮겨가서, 어릴 때 공부 잘하는 아이를 오히려 굉장히 열등의식을 심어주는 거요. 이것은 뭣 때문에? 부모의 욕심 때문에 부모의 어리석음 때문에 벌어지는 거요. 그런데 그런 것을 딱 아는 사람이 몇 명 안 돼.
그러니까 자기도 그 떨어진 것은 지금 보면 좀 기분이 나쁘지만 좋은 일이오? 나쁜 일이오? 좋은 일이오. 거기 들어갔다간 자기 큰 코 다쳐요. 아시겠어요? 요행이 설령 거렸다하더라도 자기 대학 4년간 고생해야 돼. 그러니까 “아, 여기는 내가 가서 고생할 데구나.” 떨어졌으면 “아이고, 감사합니다. 걸렸으면 큰일 날 뻔 했다.”이러고 옮겨가서, 여러 군데, 많이 내 봐서 괜찮아요. 그거 10번 떨어진다 해서 그게 자존감이 상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 알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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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자2.
안녕하세요.
대학을 안 가면 인생을 살아가기 어려울까요?//
아니야. 대학을 안가면 살기가 더 쉬워요. 지금 미래사회에 중요한 것은 학벌이 아니에요. 지금까지는 학벌이었어요. 왜 이게 학벌이 중요하게 되었냐하면, 우리가 지금 학교교육이라는 것은 산업사회에 필요로 한 노동력을 키우는 학교에요. 산업사회에 필요한 노동력. 그럼 산업사회는 어떤 게 필요하냐? 지식과 기술이 필요해요. 그 지식과 기술을 익히는 거요.
그것을 훈련시키고 나오면 이 교육을 받는 기간이 12년이나 16년이 되면, 그것을 안 받는 사람에 비해서 받은 사람이 이 사회에 나가서 30년 40년 일을 할 때 임금이 10배는 더 많이 받아요. 아니면 5배를 많이 받든. 그럼 교육투자의 효율이 있어요? 없어요? 효율이 있다.
그런데 지금은
산업사회에서 정보지식사회로
지금 바뀌어간단 말이오.
그럼 지금까지 우리가 학교 가서 지식이라는 이것은 인공지능이 앞으로 다 해결해요. 기술이라는 것은 로봇이 다 해결을 해요. 그리고 현재 학교에서 배우는 것은 대학 나왔다는 학벌, 이거 빼고, 지금도 이게 필요한곳은 딱 한 군데 밖에 없어요. 공무원. 공무원이 이게 필요하다는 것은 공무원이 제일 지금 사회변화에 더디다는 것을 말해요. 제일 더딘 집단이다. 과거를 먹고 사는 집단이다. 이렇게 말할 수가 있어. 옛날에 조선시대에 과거 급제해서 관리된 사람같이. 그러나 나머지 부분은 이미 그런 것은 별로 필요가 없어지는 사회가 되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대학을 나와도
직장을 갈 데가 없는 거요.
간단한 기본적인 것은
다 이미 자동화로 대치해버렸기 때문에.
그럼 지금 필요로 하는 인력은 어떤 거냐?
창의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이오.
그런데 우리 학교 교육에서는
창의적인 훈련이 안 돼요.
그러니까 고급인력은 외국에서 데려와야 되고,
값싼 인력을 또 외국에서 데려와야 되고.
우리는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공무원 빼고는 지금 별로 갈 데가 없으니까
공무원이 10:1, 50:1 이렇게 되는 거요.
그래서 앞으로 10년 20년 지나면
현재 우리가 갖고 있던 직업의 절반정도가 없어진단 말이오.
어느 게 없어지고 남을지 몰라요.
그러니까 지금은 학교 교육이
굉장히 비효율적인 교육이 되는 거요.
이렇게 교육받은 게 나가서 쓸모 있지가 못하다는 거요.
그러니까 교육투자는 더 하는 거요.
스펙까지 쌓아야 되니까 그냥 20년 투자를 하고,
돈을 몇 억을 투자를 하는데,
그것을 사회에 가서 써먹어서 효율은 별로 없어요.
숫제 그 돈을 그냥 애한테 주는 게 나아요. 그래서 대학교육이 꼭 가야되는 것은 아니다. 더더욱 꼭 가야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그럼 갈 필요가 없느냐? 그 얘기를 하는 것은 아니에요. 자기가 “꼭 가야 되느냐?”라고 물으니 스님이 “꼭 가야 되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얘기하는 거지, “갈 필요가 없다.” 지금 이런 얘기를 하는 거 아니에요. “갈 필요가 없다.” 그러면 “뭐해요?” 이러면 나는 할 말이 없어.
그러나 50년 전에 제가 어릴 때는 학교 교육에 교육투자 효율이 굉장히 높았는데, 지금은 그거에 절반도 안 되고, 1/3도 안 돼요.
그러면 지금은 어릴 때부터 어떤 훈련을 시켜야 되느냐?
지식이나 기술을 쌓는 훈련을 시키는 게 아니라
문제의 해결능력을 키워야 되요.
그러니까 어떤 문제를 하나주고 “야, 이거 어떻게 하면 좋겠니?”하면 “저는 이렇게 하면 되겠습니다.” 이러면 OX는 없어져야 되요. 앞으로 교육에서 OX가 없어져야 돼. 단답형 OX는 없어야 되요. 창의력을 키우려면. “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네.” “저는 이렇게 하겠어요.” “오, 그럼 선생님도 생각을 못해봤는데, 야, 그렇게도 생각할 수 있네.” 이렇게 모든 생각을 할 수 있는 그런 훈련을 시켜야 되요.
그리고 어떤 것을 궁금해 하고. 그것을 탐구하는 이런 자세가 필요한 거요. 그러니까 이게 지금 미국에서부터 붕괴되는 거요. 기술을 가진 사람이 블루칼라고, 지식을 가진 사람이 화이트칼라인데, 이게 미국의 중산층, 대학졸업하면 바로 이게 사회에 가서 직업이 보장되고 월급을 받고 중산층인데, 이게 지금 급속도로 붕괴되고 있잖아요. 그리고 빈부격차가 극심하게 벌어지고, 앞으로 갈수록 더 심해집니다.
앞으로 노동력이 부족한 게 아니라 노동과잉현상이 일어나요. 이런 미래 사회를 지금 누구도 몰라. 그러나 대충 우리가 추세를 보면 어떤 사회가 도래할 거다. 이렇게 예측이 되기 때문에 자기가 대학을 굳이 갈 필요가 없겠다면 안 가도 되요. 학교 공부 잘하는 게 그렇게 중요한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옛날 시스템이 유지되는 데는 그게 중요해요. 아시겠어요?
그러나 그 시스템이 붕괴 될 때는 필요 없어요. 예를 들면 과거제도가 유지될 때는 서당에 다녀서 글을 잘 쓰고, 시를 잘 짓는 게 필요한데, 그 과거제도가 없어져버리면 서당에 다녀서 과거시험 칠 수 있는 그 사람의 능력은 필요가 없어진다. 이 말이오. 그것처럼 지금 변화가 도래하고 있다.
그러니까 학교 갈 때 내가 서울대 가느냐? 어디 가느냐? 앞으로는 별로 중요 안하고, 가고 안가고도 별로 중요 안하고 뭐가 중요하다?
문제를 실제로 해결하는 능력.
실제의 능력이 중요한 거요.
그리고 기계로 대치할 수 없는 일을 할수록
미래에 유리해요.
그러니까 뭐든지 규칙적으로 되어있는 것은
기계로 다 대치할 수 있어요.
바둑도 어떻게 두는가? 규칙이 되어있으면 기계가 더 빨리, AI가 더 빨리 습득을 해요. 축구경기하면 규칙이 있어요? 없어요? 규칙 있죠. 그럼 이것을 입력 시키면 인공지능이 앞으로 어떤 사람보다 해설을 더 잘 할 수가 있어요. 그럼 아직 기계는 못하는 게 규칙을 벗어나는 것은 아직 할 줄 몰라요. AI하고 나하고 바둑을 두면 내가 이길 수가 있습니다. 왜? 전혀 나는 바둑을 모르니까 엉뚱하게 둬버리면 이게 혼란이 생겨서 대응을 못할 수도 있다.
그래서 지금은
창의적인 인력이 필요하다. 창의적인 것.
탐구력, 탐구하고 연구하고,
해결하고 이런 게 중요한 거요.
그러니까 지금 스님같이 고등학교 다니다 절에 들어와 스님이 되어서 살았는데, 지금 스님이 늘 종교인이 해왔던 일반적인 일을 안 하잖아. 그죠. 이것도 약간 창의적인 일이에요.
내가 이 일 하는데 학벌이 무슨 관계가 있어요. 내가 이 일을 하는데 승복을 벗고라도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없을까? 내가 양복입고 해도 똑같이 할 거 아니오. 그럼 여러분이 승복 입었냐? 양복 입었냐가 관계해요? 안 해요? 안 해. 그런데 내가 목탁을 치고, 죽은 사람 제사지내줄 때는 승복을 입으면 효과가 나지만, 벗으면 효과가 나나? 안 나나? 안 나요. 이게 권위주의에요.
권위를 갖고 먹고살던 시대인데,
앞으로는 권위가 작동하지 않는 시대에요.
박사학위를 갖고 먹고 살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이제는 실제로 실력이 어떠냐?
그 실력이라는 것도
단순한 답습의 실력이 대체가 되요.
그러니까 가장 중요한 게
해결능력, 창의력, 그런 훈련이 필요한데,
그럼 학교가면 안 되느냐? 아니에요.
학교 가도 그렇게 해야 되요.
유학 가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유학가도 미국에 가서 배운 게 옛날에는 지식차이나 기술차이가 50년 나니까, 거기 가서 박사학위 따오면 여기서 30년 노트 갖고 써먹어도 대학 교유하는데 지장이 없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3년도 못 써먹어요. 바로 기술격차가 줄어드니까. 계속 연구를 해야 되요.
그러니까 뭘 하나 따 놓으면
평생 먹고 사는 것은
이제는 없어요.
그러니까 학교 가면 친구도 사귀고, 인간관계도 넓어지고, 이런 효과는 있어요. 그런데 자기가 대학을 안 가면 이런 문제는 생겨. 지금 전체 사회가 대학을 가는 문화잖아. 우리 젊은이 중에 70%가 대학을 가잖아. 그죠? 그러면 자기는 안가는 쪽이면 자기는 소수자에 속하잖아. 그죠? 소수자는 항상 세상이 돌아갈 때 약간의 소외감을 느끼나? 안 느끼나? 느껴요. 친구들 만나도 “몇 학번이니?” 나이 몇이니? 이렇게 안 묻고 묻기를 “몇 학번이니?” 이렇게 물어요.
그럴 때마다 자기는 쫄아요. 난 몇 학번인지 몰라. 학교를 안다녀봐서. 나처럼. “몇 년도 생이니?” 이러면 말하겠는데, “몇 학번이니?” 이러면 모른다. 이 말이오. 그러면 이런 것에 자기가 쫄면 학교를 다니는 게 나아. 그런데 전혀 구애를 안 받아요. 그러려면 소수의 길을 가도 돼요.
그런데 소수의 길을 가려면
그만큼 자기 나름대로 소신이 뚜렷해야 돼.
대학 시험 쳐서 떨어져서 대학 안가면 대학에 대해서 열등의식이 있는데, 지금 서울 대학교를 넣어준다 해도 난 싫다. 그런 교육은 나한테 안 맞다. 이렇게 자기 소신대로 가면 안 가도 돼.
그래서 저는 대학을 안 다녀도 콤플렉스가 없잖아요. 내가 못가서 안 간 게 아니기 때문에. 나는 그거보다는 이 길이 더 중요하다고 해서 갔기 때문에 그렇다.
자기도 성적이 안 되어서 지금 못가는 건가? 그러면 나중에 열등의식을 가져요. 그러면 재수해서 다시 가야 돼. 그런데 성적이 안 되든 말든 그런 공부는 고등학교 공부는 기본 공부고, 나는 지금부터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거나 내가 가고 싶은 길을 가겠다. 그럼 안가도 돼.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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