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살인 아들은 고1 때 자퇴 후
오토바이 절도로 소년원을 두 번 갔다 오고
현재는 3개월 전 가출 후 보호 관찰 불이행으로 소년원에
한 달 동안 있어야 된다고 합니다.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20살이 되면 성인이잖아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이제 할 수 있는 거는 20살이 됐으니까
내 의무는 다 했다. 내 할 일은 다 했고
이제 니 인생 니 살고, 나도 내 인생 살겠다.
이렇게 이제 절교를, 헤어짐을 선언하는 게 좋죠.
그래서 자기가 알아서 살도록.
그리고 두 번째는 우리가 내 아들이라는 걸 떠나서 생각하면
남의 물건을 훔치는 건 좋은 일 아니잖아요.
남의 물건을 훔쳤는데 처벌 안 받으면 세상이 어떻게 되겠어요?
처벌 받아야 되잖아요. 그죠?
남을 때렸으면 처벌 받아야 안 돼요?
그러니까 그런 거를 돈을 주고 빼내고 이런 행위를 하면 안 돼요.
그거는 과보를 자기가 받아야지
그래야 개선이 될 거 아니에요.
그걸 부모가 대신 해주면 걔는 그 행위를 또 할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잠시는 그게 부모가 자식을 돕는 것 같지만은
그런 부모들 때문에 결국은 더 나빠진다, 이런 얘기.
그래서 그거를 가슴 아파할 이유가 없다, 이 말이야.
우리 사회가 그런 것을 처벌 안 하는 게 좋겠다.
내 아들을 겪어보니까 처벌 안 하는 게 좋겠다.
우리가 사회운동을 해야 돼요.
이런 경우는 처벌을 안 해야 된다, 이렇게.
근데 남이 만약에 그랬을 때는 죽은 처벌 받아야 된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내 아들은 처벌 안 받아야 된다.’
이러면 이게 모순이잖아요. 안 그래요?
그러니까 사회정의 관점이 있어야 됩니다.
‘비록 내 아들이라도, 내 남편이라도, 이 문제는 대가를 지불해야 된다’ 이런 관점에서.
그러나 내 아들이니까 며느리는 가져야 되겠죠.
시간 난 며느리를 가지고
아무리 나쁜 짓을 해도 내 아들이고, 내 남편이고, 그러잖아요.
그러니까 면회는 가주고.
그러나 사회적 법 절차를 자꾸 법에 벗어나는 일
그러니까 적당하게 부모가 해주면 이 절차에 따라서 나올 수 있는 길이 있다.
뭐 그러면 그건 도와줄 수도 있어요.
그러나 그것을 하는 게 좋은지 안 하는 게 좋은지는
이제 본인이 선택하면 되지만은
가슴 아파하고 괴로워하고 그럴 필요는 없어요.
...
그거 어떻게 해요, 그렇게 하는 거를.
자기가 말을 해서 그게 고쳐질 수 있었으면 벌써 고쳤지
이런 일이 생기겠어요?
그것은 안타깝지만은 자기가 더 이상 할 수 없는 일이다, 이 말이야.
자기가 얘기한다고 바뀔 것 같으면, 자기가 얘기 한두 번 했겠어요?
자기가 얘기해서 될 것 같으면 나한테 물었겠어요?
그러니까 스님이 이렇게 얘기하는 건
자식을 냉정하게 그만두라가 아니라
사람들은 이 얘기만 들으면 오해하거든요.
바로 나한테 묻는다는 거는 할 만큼 해봤다는 얘기 아니에요.
할 만큼 해도 안 되니까 나한테 물었잖아, 그죠?
그럼, 스님이 뭐라 그럴까?
그만하라, 이렇게 얘기하겠지.
왜? 해봐도 안 되니까.
해봐도 안 되는 걸 계속하는 건 바보잖아요.
그러면 이제 아무리 안타까워도 손을 떼야 하는 거예요.
근데 지금 질문자가 하는 얘기를 가만히 들어보면
자기의 감정을 잘 조절 못하는 어떤 충동장애 같은 질환이 있을 가능성이 있겠다
이런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자기가 해줄 수 있다면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서 의사의 진단을 받고
자기가 자기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는 그런 충동장애가 있다면
충동 조절 장애가 있다면
치료받도록 해주는 거는 저는
부모로서 또는 우리가 어른으로서 해줄 수 있는 일이지 않느냐 싶습니다.
해줄 수 있다면 얘기를 들어보니까 딱 그거 한 가지예요.
그래 검사하고.
왜냐하면 본인은 잘 모르니까, 어리니까.
그래서 엄마가 검사를 한번 해서
의사가 어떤 약 처방을 해주거나 하면 먹어보면 진정이 되면 좀 나을 수가 있거든요.
근데 거기도 이상이 없다 할 때는
더 이상 남의 인생에 관여할 수가 없습니다, 부모 자식이라도.
옛날에 우리는 안 그랬어요.
자식은 내 거예요.
그래서 내가 자살할 때 어린 자식 데리고 같이 자살하기도 하고 그러잖아요.
말 안 들으면 때리죠.
근데 요즘 어린애 때리면 어떻게 돼요?
아동학대죄로 부모라도 대반 잡혀갑니다.
옛날에는 뭐 마누라도 말한다면 지 마누라하고 때리고
이웃집에서 아무도 보고도 안타까워도 관여 못 하죠.
자기 자식, 자기 마누라 때린다고.
근데 요즘 다 가정폭력에 들어갑니다.
그러니까 이걸 자꾸 ‘내가 어떻게 하면 되겠지’ 이런 생각 때문에
여러분들이 이렇게 끌려서 사는 거예요.
인생을 끌려다니면서 산다는 거예요.
내가 부모한테 끌려다니면서 사나, 자식한테 끌려다니면서 사나
남편한테 끌려다니면서 사나, 주인한테 끌려다니면서 사나 마찬가지 아니요.
다 노예요 노예.
여러분들 노예 생활을 지금 하고 있는 거예요.
우리가 자유인이라면 몇 번 얘기해보고 안 되면
끌려다니는 걸 놔야지.
부처님이 가르치는 거는 자유인이 되라고 가르치지
노예 되라고 가르치는 게 아니에요.
여러분들은 자식이 서른이 돼도 내 말 들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하지만
엄마 말만 듣는 자식이다.
엄마 입장에서는 좋죠. 엄마의 노예니까.
근데 만약 아들이 결혼했다면
그 부인 입장에서 남편은 뭐에요?
마마보이잖아.
자기 결정권이 없고 그저 엄마 시키는 대로 한다.
그럼 그런 인간하고 누가 살고 싶겠어요.
그러니까 진정으로 부모가 자식을 원한다면
자식이 자유인이 되도록 도와주는 거예요.
자립하도록 도와주는 거다.
이 경우에는 비록 이런 범죄 행위가 있으니까 안타깝긴 해요.
안 안타까운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근데 이게 벌써 반복이 되고 있잖아요.
그럼 이건 부모 손을 떠났다는 얘기에요.
그걸 놓으면 나라도,
애는 그렇다 하더라도 나라도 행복하게 살고
필요할 때 도와줄 수 있는데
거기에 연연하면 애도 그 짓을 계속하고, 나는 계속 괴롭고.
그 둘이 괴로운 게 나아요? 하나 괴로운 게 나아요?
계산을 해봐도.
부모가 어떻게 그럴 수 있나?
이렇게 생각하면 안 돼요.
그 생각 때문에 우리는 손해를 보는 거예요.
주식이 지금 앞으로 더 떨어질 것 같다.
그러면 손해가 났더라도 지금 팔아야 돼요 안 팔아야 돼요?
팔아야지.
손해 났는데 어떻게 파나? 이러면 손해가 더 나는 거예요.
더 손해 날 것 같다 하면 지금 딱 팔아야 된단 말이에요.
그럼 2천 원 손해 봤다가 아니라
5천 원 손해 볼 거를 2천 원 손해 봤으면 3천 원 번 거예요.
생각을 이렇게 해야
이게 탁 필요할 때 결단을 내릴 수가 있는 거예요.
그런데 그거를 벌려고 샀는데 손해 났다, 이러면 못 팔죠.
그럼, 손해가 계속 더 나는 거야.
그래서 어리석은 사람들은
늘 기다리다가 꼭대기 가서 사거
기다리다가 계곡에 가서 파는 거예요.
바다에 가서는 팔고 꼭대기 가서는 사고
맨날 이래서 손해를 보죠.
그런 것처럼 인생도 마찬가지예요.
아, 이건 내가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럼, 탁 놓아야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제가 얘기를 들었을 때는
병원에 한 번 데려가 보는 것
전문가의 진찰을 받는 것
그것이 병으로 만약에 진단이 된다면 굉장히 간단한 거예요.
약 먹고 치료받으면 충동적 행동을 안 하게 되니까.
뭐 이래라 저래라 잔소리할 필요 없이 진정이 되는 거예요.
근데 그 병의 상태를 가지고 있으면
아무리 벌을 주고, 아무리 부모가 설득을 하고 도와줘도
그 충동이 일어나면
그런 행위를 저지르기 때문에 그건 뭐 방법이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습하고 그늘이 지면 곰팡이가 피는 거고
햇빛이 들어오고 건조하면 곰팡이가 사라지는 거지
닦아낸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다, 이런 얘기에요.
그런 것처럼 병원에 한번 데려가 보는 거 좋겠다.
그 외에는 별로 내가 도움을 줄 일이 없다.
그리고 오히려 나라도 행복하게 살자
관점을 이렇게 가져야 돼요.
근데 이렇게 안 되지.
내가 이렇게 말해도 자식 가진 부모는 이렇게 잘 안 돼요.
그래서 이게 불교에서는 전생의 원수지간이 부모 자식이 된다.
전생의 원수지간이 부부가 된다. 이런 말이 있어요.
정말 원수지간이라 그래 된다는 게 아니라
이 부부라든지 부모 자식이라는 거는
어떤 합리적으로 문제 풀기가 어렵다는 거예요.
정에 끄달려서.
그래서 늘 서로 사랑한다고 하면서 서로에게 피해를 가중시키는 거죠.
...
그 주위 사람들은
자기가 말하면 애가 별로 바뀔 거라고 생각하니까 그런 얘기를 하는 거예요.
“그래도 한 번 더 말해봐라. 그래야 안 되겠냐?” 이렇게 생각하는 거고
스님이 볼 때는
엄마가 몇 번을 했겠냐?
그래도 안 바뀌었다면 괴롭기만 하고 효과는 없다면 포기해라, 이런 얘기예요.
내버려둬도 된다 이런 얘기가 아니라
둘 다 괴로운 것보다는 하나라도 사는 게 낫다, 이런 얘기.
자식이 물에 빠졌어. 엄마가 건지러 들어가서
근데 건져내오면 다행인데
애 건지려다 나도 죽어.
그래서 부모가 어떻게 자식을 버렸냐고 둘이 같이 빠져 죽는 게 좋아요?
나라도 살아 나오는 게 좋아요?
나라도 살아나오는 게 좋다해서 살아나오면 온 동네 사람이 다 욕하지.
자식 죽이고 자기만 나왔다고.
근데 둘이 다 죽으면 뭐가 좋아요?
하나라도 사는 게 낫지.
건질 수 있는데 포기했다 이러면 욕을 얻어 먹지.
그러니까 나라도 살아야 뭐 시체라도 건져서 장례라도 치러 줄 거 아니에요.
둘 다 죽는 것보단 낫잖아.
근데 어리석은 사람은 그렇게 생각 안 해요.
그러니 그 세상 사람 얘기 너무 들을 필요가 없어요.
그 사람은 자기 일이 아니니까
그냥 하는 얘기들이에요.
그런 자식을 가진 엄마도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어요? 없어요?
있지.
자식이 문제가 있다고 엄마가 내 불행하게 살라는 법이 어딨어요?
그런 자식을 둔 부모도, 그런 남편을 둔 여자도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다.
인생은 누구나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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