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에 집사람을 하루아침에 병으로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그 후유증으로 제가 지금 많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네, 부인이 평소에 자기한테 잘했다는 얘기 아니에요.
잘했으니까 이제 과보를 받아야지.
어쩔 수가 없는 거예요.
부인이 만약에 맨날 돈이나 갖다 쓰고, 속상하고, 애 먹이고
사니 못 사니, 사니 못 사니 12번도 더 하고 이랬다면
이런 아픔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없겠죠.
그래서 여러분들이 남편이나 아내가 애 먹이는 게 꼭 나쁜 거 아니에요.
그러면 죽고 나면 이런 아픔이 없어요.
좀 슬프긴 하지 그래도.
그래도 이렇게 깊은 병까지 들 정도는 아니다, 이 얘기예요.
그래서 옛날부터 죽기 전에 이렇게 애를 좀 먹이잖아요.
병원에 부모님이 막 1년씩 누워 계신다.
처음에는 막 안타까워하다가 막 너무너무 지쳐서
“아이고 이럴 바에 돌아가시는 게 낫겠다.”
이럴 즈음에 돌아가시면
울기는 울지만, 슬프긴 슬프지만 그게 오래 안 간다.
그래서 애를 먹이면 사람들이 뭐란다?
“정 떼려고 저런다”
이렇게 표현을 하거든요.
옛말에 틀린 게 별로 없습니다.
제가 아는 어떤 여성분도 남편이 연탄불까지 다, 옛날 얘기예요.
갈아줄 정도로.
그렇게 다정하게 하다가 돌아가시니까
40대인데 재혼도 못하고 연애도 못 해요.
왜?
다른 사람을 만나면 자기 남편만 한 사람을 만날 수가 없는 거예요.
그만한 지위, 그만한 다정함, 그런 인물을 만날 수가 없으니까.
그래서 제가 농담으로 그러죠.
죽은 귀신이 산 사람을 이긴다. 이렇게 표현해요.
죽은 귀신이 이 여성 주위에 산 사람을 못 오게 하는 거예요.
옛날식으로 말하면 귀신이 막고 있다.
이렇게 말할 수 있겠죠.
왜냐하면 그 영상 그 기억이, 추억이
어떤 사람도 이 사람을 만족시킬 수가 없다는 거예요.
그러면 이게 과연 인생에서 행복일까 하는 거예요.
행복일까?
그러면 이제 남은 인생을 어때요?
추억 속에서 그리워하면서 살다가 죽어야 한다, 이런 얘기예요.
세상에서는 옛날에 이렇게 살면 열녀라 그러고 사랑이라고 이렇게 표현하지만
정신적으로는
부모가 잘해준 사람이 부모 죽고 그 그림자에서 못 벗어나고
아내 죽고 남편이 그 그림자에서 못 벗어나고
남편 죽과 아내가 그 그림자에서 못 벗어나고
그러면 그건 일종의 집착입니다.
정신질환에 속한다 이 얘기예요.
근데 이것이 세월이 흐르면 어떠냐?
자연 치유가 돼요.
세월이 흐르면.
세월이 흐르면 인간의 뇌에 기억도 있고 이런 게 있어서
점점점점 이제 자연 치유가 돼요.
그러면 상식적으로 남편이 죽거나 아내가 죽고
너무너무 그 빈자리가 커서 외로워하는 사람일수록
앞으로 그 빈자리를 채울 여자나 남자가 들어올 확률이 높을까요 낮을까요?
높습니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울면 그래요.
“괜찮아 괜찮아. 3년 후에는 나한테 딴 남자 딴 여자 데리고 와서 자랑할 거야.”
내가 이러면 나한테 화를 내거든요.
“내가 뭐 그런 여자예요.” 이래.
너무 심하게 그 빈자리 때문에 우니까 누군가가 채워야 되는 거예요.
누군가가 채울 수밖에 없기 때문에
스님은 벌써 1년 후 3년 후를 내다보니까
그 사람이 아무리 울어도 제가 그냥 웃는 거예요.
“아, 그거? 지금 그렇지, 조금 있으면 그 자리에 또 누가 들어오고
그러면 또 웃으면서 살 거야.”
이렇게 생각하니까
스님이 사람을 놀린다거나
남이 슬픈 거를 결혼을 안 해봤으니 슬픈 줄도 모른다, 이렇게 말하지만
그러나 그것이 나쁜 게 아니다.
그러면 내가 그런 사람이냐 하는데
나는 그걸 나쁘다고 안 봐요.
살아있을 때 그러면 그게 도덕적으로 문제가 되지만
돌아가신 뒤에 딴 사람을 만나는 게 그게 왜 문제예요?
그래서 그렇게 해결될 확률이 높아요. 질문자도.
지금은 아니지만은 그렇게 해결될 확률이 높다.
이 빈자리가 크면 클수록 지금은 거기에 누구도 들어올 수 없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누가 들어와도 들어올 수밖에 없다, 이런 얘기예요.
그런데 남편이 있으나 부인이 있으나 별로 상관이 살아있을 때도 없는 사람은
거꾸로 돌아가신 뒤에 혼자 살 확률이 높아요.
왜 그러냐 하면 빈자리가 별로 없기 때문에
그건 뭐 있으나 없으나 크게 상관이 없다, 이런 얘기예요.
첫째고.
두 번째, 이게 시간이 흘러도 치유가 안 된다.
계속 그 생각나서 결국은 혼자서 괴로워한다. 그러면
이건 병원에 가야 할 일이야.
아까도 말했지만 이러한 일시적인 이런 우울감 허전감은
시간이 흐르면 자연 치유가 되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젊을 때 뭐 연애하다 헤어져서 막 울고
이불 덮어쓰고 울고 이러면 어른들은 다 알잖아요.
약이 없다. 뭐라 그래요? 약은 무슨 약만 있다?
‘세월이 약이다’ 이렇게 얘기하잖아요.
아무 대책이 없고 저거는 시간이 흐르는 수밖에 없다.
놔둬라 이런단 말이에요.
세월이 약이다. 이 말은 자연 치유가 돼 나간다.
지금보다는 1년 후가 낫고
지금보다는 2년 후가 낫고 3년 후가 낫고
그때 가면 웃고 아무 문제가 없어집니다.
그런데 그거를 지금은 내가 모르죠.
지금 이 슬픔에 빠져 있으니까
그래서 제가 볼 때는 자연 치유가 될 확률이 높다. 이렇게 말씀을 드리고요.
만약 1년이 지났는데도 지금 상태보다도 더 악화됐다.
그러면 그건 병이라고 봐야 돼요.
사랑으로 보지 마라.
그때는 병원에 가서 치유를 받아야 해요.
근데 지금은 뭐 되게 심하면 지금도 가서 치료받으면 훨씬 낫습니다.
약을 먹든지 이러면 심리가 훨씬 안정이 되고 좋은데
워낙 빈자리가 크니까 지금 병원에 가서 치유를 받아도 잘 안 되는데
이거는 이제 과보라고 생각해야 돼요.
빚진 거, 과보.
그분이 나한테 잘해준 거를
그분 돌아가시고 내가 멀쩡하면 미안잖아요.
나도 좀 괴로워야지, 안 그래요?
괴로운 걸 피하지 마라는 거예요.
잘해준 거에 대한 과보가.
그러니까 항상 이 좋고 나쁜 거, 불법에는 피할 수가 없어요.
이득을 보면 반드시 갚아야 돼.
이렇게 부인이 잘해줬으면 부인이 죽으면 그만큼 괴로움이 커지는 거고
평소에 애를 먹였으면 죽고 난 뒤에도 큰 피해가 없는 거고
그래서 이거는 과보를 받는다.
이렇게 생각하시고
너무 서두르지 말고
그러고 시간이 흐르면 자연 치유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말씀을 제가 드리고요.
만약에 자연 치유가 될 때
가만 놔 놓으면 3년 걸릴 게
수행을 하면 하루 만에 고칠 수도 있어요.
왜 그러냐 하면
지금 내가 한번 생각해 보는 거예요.
지금 이 힘듦이 1년 후는 좀 나을까 심해질까? 좀 나아질 거예요.
3년 지나면? 그때는 괜찮겠죠, 뭐.
그러면 3년 이렇게 괴로워하다가 괜찮아지는 게 나아요?
지금 괜찮아지는 게 나아요?
왜냐하면 3년 지났다고 부인이 살아 돌아오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이걸 탁 깨달으면 오늘부터 괜찮아지는 거예요.
근데 이걸 이제 깨달았다 하더라도
무의식 세계, 의식은 깨쳐도 무의식 세계에서는 그 습이 있기 때문에
우울감이 올라오는 거는 치료를 하고
그러고 방 안에만 있지 말고 산책도 하고, 모임도 가고, 영화도 보고, 책도 읽고
이렇게 혼자 있는 시간보다는
사람하고 조금 관계를 맺는 시간이 많을수록 유리합니다.
그 생각을 하면 계속 거기에 빠져들거든요.
그래서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도록 이렇게 관계를 넓히고 이러면
훨씬 회복 시간이 더 빠르다.
이렇게 말씀을 드릴 수 있습니다.
...
근데 자기가 절에 다니든, 자기가 교회를 다니든
자기가 기도를 하든, 기도를 안 하든
부인한테는 아무 영향이 없다, 이래봐야 안 될까?
내 영향이고 내 치료지, 내 치료지.
그러니까 부인에게 집착을 하기 때문에 부인에게 도움이 안 되는
자기가 슬피 운다고 부인이 살아오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런데 자기가 무덤가에 가서 움집을 짓고 3년이 있는다고 해서
부인한테 도움이 되는 건 아니잖아요.
내 아픔에 대한 보상, 치료지
그렇게라도 해야 내 마음이 편안해진다.
이런 나의 치료거든요.
부처님 당시의 얘기를 하나 들으면
부모가 돌아가셨어.
부모를 너무 사랑하는 아들이 그 무덤가에서 움집을 짓고
3년을 때에 맞춰 부모에게 공양을 올리고 거기서 살았어요.
가장이 집을 팽개치고 그러고 있으니까 집안이 엉망이잖아요.
그래서 그 집 어린 아들이
아버지한테 아무리 말릴 수도 없고, 효자라고 소문났고 이러니까
그걸 뭐 어리석어 보이지만 또 잘못됐다고 할 수도 없어요.
그래서 부처님께 이 사정을 얘기하고 도움을 요청했어요.
그러니까 부처님이 아이에게 뭐라고 뭐라고 얘기했어.
그러니까 아이가 알았다고.
그러고 나서 얼마 있다가 동네에 소문이 났어요.
누구 집 아들이 미쳤다. 이렇게
어떤 일이 벌어졌나 하면
인도에는 소고기를 안 먹잖아요.
그 소가 길거리에 죽어 있는 경우가 있단 말이에요.
근데 이 아이가 소골을 베서 풀을 베서
그 소 앞에 놔 놓고
“소야 먹어라, 소야 먹어라, 소야 먹어라, 소야 먹어라” 이런단 말이에요.
그 동네 사람들이
“야 죽은 소가 어떻게 풀을 먹냐?” 이래도
“아니에요. 먹을 거예요. 소야 먹어라, 소야 먹어라”
이러니까 온 동네에
“애가 미쳤다” 소문이 났단 말이에요.
이 소문이 무덤가에 있는 아버지한테까지 이제 전달이 됐어.
아버지가 그 아들이 그렇다는 얘기를 들으니까 황당하잖아요.
그래 쫓아왔어.
보니까 자기 아들이 이 소 풀을 베어서는
“소야 먹어라, 소야 먹어라, 소야 먹어라” 이러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아버지가 와서 과함을 지댄 거야.
“야 이놈아, 죽은 소가 어떻게 풀을 먹냐?” 이랬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이 아들이 휙 돌아보면서
“아버지는요?” 이랬단 말이에요.
그때 그 아버지가 탁 깨달았다, 이런 얘기예요.
그런 것처럼
이것은 다 우리들의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법이에요.
제사를 지낸다, 기도를 한다, 이거는.
그것이 이제 종교적으로 상대에게 도움이 된다.
이렇게 말하면
우리는 마음에 빚이 있으니까
상대에게 도움이 되는 걸 뭐 좀 해봤으면 좋겠다.
그렇게 해서 하는 행동들이라는 거죠.
부인이 교회 다니는데 자기가 불교 공부하는 거는 상관이 없다.
부인이 절에 다니는데 자기가 교회 다녀도 상관이 없다.
자기가 만약 이게 미진하면 그냥 불교대학 그만두고
그냥 오늘부터 교회 좀 다니면 돼요, 부인이 다녔던 교회.
그게 자기 마음이 편안하다 하면 그렇게 해도 아무 관계가 없어.
이건 다 내 마음의 치유법에 들어간다.
이렇게 이해하시면 어떨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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