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에게는 14살의 ADHD를 앓고 있는 딸이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친엄마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는 더 심해진 듯합니다.
저 또한 제가 낳은 두 아이와 큰 아이를
같은 사랑의 마음으로 안아줄 수 없어서 힘이 듭니다.//
내가 기르면 내 아이지
내가 낳았나 안 낳았나, 이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앞으로 인공 수정을 해서, 정자와 난자 인공 수정을 하게 되면
그 인공 수정된 수정란을
어떤 여성의 몸에, 자궁에 넣으면
다 그 사람의 아기가 되잖아요.
그런데 이거를 누구씨냐? 옛날처럼
이게 뭐 하등 중요하지 않고
또 이렇게 대리모로 해가 낳으면
‘누가 낳았냐?’ 이것도 하등 중요하지 않고
그다음에 또 인공 자궁이 앞으로 자꾸 발달해서
앞으로 인공자궁에서 아기를 낳는다면
정자와 난자의 결합에서 그게 누구 정자와 난자냐?
그다음에 그게 어느 회사 인공자궁에서 애가 나왔냐?
이런 게 뭐가 중요하겠어요?
내가 키우면 내 자식이에요.
그렇게 누가 낳았나, 이런 거는
동물적인, 생물학적인 수준의 얘기다, 이런 얘기예요.
근데 지난 시기는 우리가
자기가 낳아서 자기가 키우는 것밖에 다른 길이 없었기 때문에
이게 낳은 거 하고 기른 거가 대부분 일치하기 때문에
길러서 내 자식이라는 생각을 못하고
낳아서 내 자식이다,
이렇게 동물적인 생각을 했다, 생물학적인 생각을 했다 이거야.
근데 지금 상황이 바뀌어서
여러 가지 이제 새로운 경우 수가 생겨서 살펴보니까
‘내 자식인 건 내가 키워서 내 자식이구나.’
이거 관점이 잡혀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아까 할머니가 키우면
이름은 할머니지만
사실은 할머니가 나의 어머니 역할을 하게 되는 거다.
입양했다, 이런 생각할 필요가 없어요.
내가 기르면 내 자식이에요. 그냥.
일본에서 지금 가족관계법에 여러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친자냐 아니냐를 뭐로 검사합니까?
유전자로 검사하지 않습니까?
유전자로 친자냐 아니냐를 검사하는 이 방식이 생물학적인 방식 아닙니까?
근데 불임 남성이 있다.
여성이 아기를 낳으려면 어때요?
이 정자를 빌려와야 되잖아. 그죠?
정자를 빌려와서 인공수정해서 아기를 낳으니까
여성이야 자기를 절반 닮지마는
남편이 볼 때는 자기를 하나도 안 닮았지 않습니까?
근데 이런 걸 문제 삼는 게 바로 이 동물적이죠.
이게 기른 게 내 자식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이런 거 문제 삼을 필요가 없는 거예요.
그래도 내 아내가 절반을 닮았잖아요. 그죠?
입양한 것보다는 많이 닮았잖아요.
그래서 어떤 문제가 생겼냐 하면
시아버지의 정자를 빌리거나
남편의 동생이나 형의 정자를 빌리는 거예요.
그래서 인공수정을 시키면 거의 비슷할까요? 안 할까요?
거의 비슷하겠죠.
그러니까 똑같단 말이에요, 거의.
그런데 이거를 만약에 유전자로 친자 확인을 하면 어떻게 되겠어요?
결국은 시아버지 정자를 빌리면 내 동생이 되겠죠, 남자 입장에서는.
그다음에 형이나 동생의 정자를 빌리면 어떻게 되겠어요?
조카가 될 거 아니겠어요.
이런 사례가 너무 많다 보니까
지금의 가족법 갖고는 이게 굉장히 복잡해져 버렸어.
그러니까 친자 확인 소송이라는 게 사실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거예요.
이게 아직도 생물학적인 그런 동물적인 우리의 사고방식에서 못 벗어났다,
이런 얘기거든요.
그래서 기른자가 부모다.
누구든지 기르면 부모라는 거예요.
그건 생물학적인 몸을 갖고 따지는 게 아니라
정신적인 걸 따지는 거예요.
여기 한국에서 태어나서
3살 이전에 프랑스에 가서 입양됐다.
그럼, 그건 한국 사람 아니에요, 블란서 사람이지.
근데 자꾸 우리는 그건 한국 사람이라 그러거든요.
생물학적으로 자꾸 얘기하거든요.
한국계 프랑스인이다, 그러면
한국에서 자라서, 한국 사람이 프랑스에 가서 시민권을 얻으면
그건 한국계 프랑스인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은
입양이 된 사람은, 어릴 때 입양이 된 사람은
그거는 한국계라는 거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건 생물학적인 인종적인 문제일 뿐이다, 이런 얘기에요.
여러분도 잘 알다시피 수정난을
유전자 가위로 잘라서 1개의 세포를 4개의 세포로 만든다.
그러면 4개의 세포를 4명의 여성의 자궁 안에 넣으면
똑같은 아이가 4명이 나오겠죠.
그 4명을 한 명은 프랑스에서 입양시키고
한 명은 아프리카에 입양시키고
한 명은 저기 동남아에 입양시키고
한 명은 일본에 입양시키고
한 명은 한국에 입양시키고
이렇게 하면 그게 다 같은 사람일까?
하느님이 영혼을 넣었다 하면
영혼이 다섯 조각 넣었나?
전생에서 왔다 그러면 전생의 영혼이, 업이 5쪽 났나?
사주팔자로 한다, 그럼 어떻게 되는 거예요, 이게.
맞는 게 하나도 없어요.
그러니까 이미 옛날에 그런
낳는 사람이 기르는 속에서 그럴 거라고 했던 모든 일은
윤리나 도덕, 가치 이론이
이런 변화된 사회에서 봤을 때
전혀 그거는 더 이상 맞지 않다.
왜 이거 맞지 않을까?
이거는 영혼이 본래 있다든지
이 동물적인 그런 생물학적인 걸로 내 자식이라고 생각하는
이런 생각 때문에 그렇다.
그러니까 기른 자가 부모다.
내가 기르면 나의 그 정신이
아이의 자아 형성에 다운받듯이 자아가 형성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그런 과학적인 변화, 생물학적인 변화, 이런 건 아무 상관이 없어요.
아무런 도덕적인 혼란을 안 주게 된다, 이런 얘기에요.
전처소생이다, 뭐 입양을 했다, 이런 생각 자체를 안 해야 돼.
그냥 내가 기르면 뭐다? 내 자식이다
이건 뭐 내가 낳았고, 이건 뭐 전 남편이 낳았고
이런 생각 자체를 안 해야 돼.
그리고 전 남편이 낳은 아이만 야단치면 안 되는 게 아니라
내가 낳은 아이도 야단치면 안 돼.
야단을 안 치는데 뭐 차별한다는 게 어디 있어?
야단 자체를 안 치면 되는데.
그러니까 관점을 딱 바꿔서
그냥 자기 알아서 하도록
14살 되면 사춘기 됐고, 또 뭐 남편도 약간 두둔하고 하면
알아서 하도록 놔두면 돼.
나는 밥해 주고, 빨래해 주고, 19살까지
뭐 그 이상 억지로 해주려고도 하지 말고
더 간섭도 하지 말고
그렇다고 야단도 치지 말고
걔만 그런 게 아니라 내 아이도 마찬가지에요.
그리고 내 인생 살고
저흰 저희대로 살고
도움이 필요하면 도와주고
그럼 나도 편하게 살고 저희도 편하게 살고
그래야 잘못돼도 주거 책임이지
내가 뭐 때문에 거기 간섭을 해서
잘못되면 나에게 책임을 묻고 그래요.
그러니까 이거는 뭐
내 자식이고 남의 자식이고, 애가 뭐 문제가 있고, 애가 남자를 밝히고
그런 얘기는 할 필요 없어.
14살 15살 되는 여자가 남자를 밝혀야 나중에 연애도 하고 시집도 가지.
남자를 안 밝히면 어떡해?
아까 여자 남자 안 밝히고 이렇게 혼자서 내 이렇게 부모가
남자 멀리 해라 그래서 살다 보니
아까 50살 되도 혼자 사는 이런 사람이 생기잖아.
공부도 그때 해야 되고
일도 그때 해야 할 줄 알지.
그때 놓쳐버리면 나중에 자립심이 없듯이
연애도 그 나이 때 해보고,
그 나이 때 뭘 친구를 사귀봐야 나중에 뭘 하든지 하고
그 나이 때 실패를 해서 눈물도 흘리고, 죽는다 산다고 하고
이래야 나중에는 헤어져도 그냥 눈물 한방울 찔끔하고 말지.
그러니까 그런 거를 뭐 그렇게 난리를 피우니까.
계모냐 아니냐 그런 것도 다 옛날 얘기예요.
그냥 똑같이 대해서 키우면 돼요.
그 아이만 야단칠 게를 아니라
내가 낳은 아이도 야단치면 안 되고
내 아이만 뭘 밥을 먹일 게 아니라 그 아이도 밥을 먹여야 되고
이렇게 그냥 아무 문제가 없어요.
사춘기가 되고 남자친구 사귀면 사귀는 거고
그리고 뭐 와서 물으면
남자친구 사귀는데 이러이런 문제가 있는데 어떻게 하면 되냐 하면 도움을 주고
말 안 하면 놔놓고
뭐 자기가 나서서 이것저것 하려 그래.
그러고 괜히 자기 신경 쓰고
애는 또 애한테 간섭한다고 또 저항할 거고
남편은 또 차별한다 그럴 거고.
그런 소리 뭐 때문에 듣는데 자기가, 할 일 없이.
밥 먹고 할 일 없으면 이런 행복학교나 하고 공부나 하고 이러지.
그런데 너무 신경을 쓰면
피곤하고, 다른 사람한테 나쁜 영향 주고 그래요.
...
아무도 선입관 안 갖습니다.
자기가 그렇게 하면서
얘한테 얘기할 때는 혹시 또 얘라고 또 뭐라 그러지 않을까
자기가 지금 그런 분별을 내지
그냥 뭐 똑같이 대하고
남편이 뭐 좀 차별한다 그러면
“그래요? 난 똑같이 했는데 그렇게 느껴졌나?”
이러고 뭐 그냥 웃으면서 말아버리면 되는 거지.
그러니까 다시 얘기하면
야단치는 걸 갖고 차별한다 그러지
야단 안 치는데 왜 차별한다 그러겠어
두 번째, 뭘 해주는 걸 갖고 차별한다 그러는데
똑같이 해주는데 왜 문제가 되겠어.
그러니까 큰아이에게 야단을 치면
똑같이 야단을 쳤는데
큰아이는 자기만 야단 맞았다.
이건 당연한 거예요.
그러니까 야단을 치지 마라는 거예요.
자기는 야단은 큰 애고 작은 애가 안 쳐야 되는데
자기는 쳐놓고
나는 똑같이 야단쳤는데
왜 니만 문제고?
이거 자체가 잘못됐다는 거예요.
야단은 치지 마라.
해달라는 거 안 해주면
마음에 안 들면 안 해주면 돼.
안 해주는 건 문제없어.
왜 안 해줬냐?
뭐 형편이 안 되고 안 해줬다
이렇게 얘기하면 되는 거예요.
해 줄 때 차별하지 말고
야단은 아예 차별이 아니고 치지를 말고.
자기 지금 얘기는 뭐냐?
야단치고 싶은데 똑같이 야단쳤는데 얘만 야단쳤다고 차별한다.
지금 이 문제인데
야단 안 쳐버리면 그 문제는 해결이 된다니까.
...
남편에 대해서 서운하다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 뭘로 서운한데?
...
자기가 재혼을 안 했어야지 뭐.
재혼하면 당연한 거야.
남편의 입장에서는
딴 애들은 엄마가 챙겨주기도 하니까
얘는 엄마도 없고
자기가 안 챙겨주면 얘는 외톨이가 될 위험이 있다니까
남편이 특히 딸을 정성들여서 특별히 더 챙겨주는 거는 좋은 일이에요.
자기가 지금 좋은 일을 하는데 섭섭하다는 건 잘못됐지.
남편이 그래도 아이를 챙겨줘서
자기가 훨씬 사실은 편해야 되는 거예요.
특별히 신경을 안 써도 되는 거예요.
“남편이 좀 챙겨주니까 아이고 다행이다.”
그러니까 생모가 없어서 있는 애들을
남편이라도 그걸 좀 신경 써서 챙겨주는 게 도리에 맞지 않나?
그거, 참 난 이상하다. 도리에 맞는 거 아니에요?
남편이 신경 써서 그 아이를 좀 챙겨줘야지.
그러면 남편도 안 챙겨주면 그 아이는 그럼 어떡하라는 거예요?
...
남편이 아이를 챙기는 거는 도리상 너무나 당연하고 잘하는 일이에요.
...
“스님, 알겠습니다. 편안하게 살겠습니다.”
이렇게 한마디 딱 하면 끝난 일을
뭘 머리를 굴려서 얘기를 하니까
말이 나오다 끊기고 끊기고 이런다는 거예요.
너무 잔머리 굴리지 말고
그냥 똑같이 밥해 주고
그래 뭐 내가 별거가.
그래 내가 밥은 해줄 게 옷은 해줄 게
공부 너희 알아서 해라.
잘하든 못 하든 뭐 알아서 해라.
도움이 필요하면 얘기해라.
너희만 사나? 나도 살아야 된다.
이렇게 하면서 씩씩하게 살면 되지
뭐 그게 문제라고
무슨 큰 애니 작은 애니
남편이 뭐 애를 더 좋아하니 안 좋아하니
할 일이 대도 없다.
그럼, 머리가 깨지는 거예요. 머리가 깨져.
영화 한 편 보고
그냥 ‘영화 잘 봤다’ 이러면 되는데
그 영화 속에 성격이 어떻고 누가 어떻고
고년이 뒤에서 어떻고
그놈이 뒤에 해코지하고, 어쩌고 저쩌고 이러면
영화 한 편 갖고도 10년 얘깃거리가 나와요. 아시겠어요?
그러니까 툭 털어서
화면 복잡하면 그냥 스크린 탁 꺼버리듯이, 전기 스위치 꺼버리듯이
이렇게 좀 간편하게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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