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얘기해서는 구체성이 굉장히 떨어지는 얘기예요. 그러니까 지금은 자기는 자기를 딱 움켜쥐고 바깥으로 얘기하기 때문에 좀 막연해요. 그런데 우리 사람이란 누구나 다 그래요. 생각은 도와주고 싶다가 마음이 아닌 생각인 경우가 많아요. 그러니까 마음과 생각이 지금 뒤섞여 있거든요. 생각은 도와주고 싶은데, 사실은 마음에서는 싫어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러니까 ‘절에 보시를 하기는 해야 되는데’ 이거는 하고 싶다는 거요? 하기 싫다는 거요? 하기 싫다는 거요. ‘아침에 일어나서 기도해야 되는데’ 이 말은 기도하고 싶은데 몸이 말을 안 들어 못 일어나는 게 아니고. 그게 일어나기 싫다는 거요. 싫다는 거는 까르마에서 업식에서 일어나는 거요. 그리고 이 생각은 기도해야 되는데, 이 말은 내가 기도하면 나한테 좋다 하는 걸 이해해서 일어나는 거요.
그러니까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담배 피우면 건강에 나쁘다하니까 생각은 어떻게 한다? ‘끊어야 되는데, 끊어야 되는데’ 하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이게 끊고 싶지가 않은 거요. 왜? 그건 습관에서 오는 거기 때문에. 그러니까 정토회 다니면 법문 듣고 이러시니까, ‘내가 조금이라도 기도를 해야 되겠다. 여기서 좋은 일 하면 나한테 좋은 거야.’ 이런 생각은 드는 거요. 그런데 자기가 살아온 이 삶의 습관, 어릴 때부터 살아온 삶의 습관은 나한테 별로 이익도 안 되는 이런 일 별로 하고 싶지가 않은 거요. 괜히 일 복잡한 거 이런 거.
그러니까 까르마에서는 거부하는 걸 하고, 생각은 해야 된다고 생각을 하고, 또 반대도 있어요. 부처님이 5비구 처음 만났을 때 일어난 사건 같은 거요. 그러니까 ‘부처님이 타락했다. 수행을 포기한 사람이다. 저 사람은 우리 가까이 오면 우리 아무도 자리를 내주지 말자.’ 이렇게 서로 의논까지 한 거요. 그런데 부처님이 가까이 점점점점 오니까, 자기도 모르게 한 사람이 일어나서 자리를 비켜주고, 한 사람이 일어나서 물 떠서 주고, 수행자의 예우를 하는 거요.
왜 그럴까? 부처님과 그 지난 6년 고행을 할 때 같이 도반으로 있었는데, 부처님에 대한 신뢰가 너무 깊은 거요. 그러니까 마음은 정말 절친한 거요. 그런데 이념적으로 목욕을 했다. 유미죽을 먹었다. 저거는 포기한 거야. 그러니 저거하고 같이 놀지 말자. 생각이 놀지 말자라고 생각하고 마음은 호의적인데. 이런 경우도 있어요. 반대로. 그러니까 생각은 해야 되는데, 마음은 싫은 경우가 있고, 생각은 안해야 된다고 하면서 마음은 좋은 경우도 있는 거요.
그러니까 그 둘의 언밸런스 때문에 오는 거거든요. 그런데 본인만 그런 게 아니고 모든 사람이 다 그래. 우리 인간이 다. 그래서 법문을 듣는 거는 여러분들이 법문 듣고 오늘 “오, 그래. 100일기도 해야지. 아, 천일기도 입제해봐야지.” 내일 아침 일어나면 일어나기 싫은 거요. 그건 뭐냐 하면 지금까지 안 일어난 습관이 있기 때문에. 일어나기 싫으면 생각이 바뀌어요. 이 무의식이 의식을 바꿔버려요.
‘지금까지 안하고도 잘 살았는데, 꼭 해야 되나?’ 이런 식으로 생각이 바뀌는 거요. 자기를 합리화하는. 이제 이런 일이 벌어지기 때문에 그걸 자기가 찬찬히 절을 하면서 보면 되요. 자기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생각은 해야 된다 하는데, 지금까지 살아온 습관이 있기 때문에 여기서 거부 반응이 일어나는 거요. 하기는 하는데 내키지가 별로 않는 거요. 이럴 때는 업이 지금 거부하고 있는 거요. 그럴 때는 대결정심이 필요한 거요. 업이 거부해도 일정한 고비를 넘겨버려요. 그래서 내가 고비를 넘기라는 거요.
그때 고비를 넘겨야 되요. 절을 하다가 예를 들면 자기가 80%정도에서 머문다. 108배하면 80배하다 멈춘다? 천배를 하면 800배하다 멈춘다? 3천배를 하면 2천배 하다가 멈춘다. 또는 백일기도입재하면 80일하다 멈춘다하면, 그게 고비인거요. 자기가 늘 그걸 못 넘어가고 거기 걸려서 넘어지고, 거기 걸려서 넘어지고, 거기 걸려 넘어지고. “아하, 내 까르마가 이런 거구나.” 자기 아는 기준이에요. 그럼 다음에, 이번에 백일기도할 때는 어떻게 한다? 이미 70~80일이 지나면 이미 하기 싫은 마음이 들거나 못할 상황이 벌어져요. 집안에. 그게 핑계거든요.
그런 걸 마장이라고 그래요. 마장이 딱 일어날 때, 그걸 자기가 알아야지. “아, 이게 마장이다. 또 내 본래 업이 일어나구나. 이번에는 내가 이걸 극복해야지.” 이걸 딱 알고 이걸 딱 하면 능히 극복이 되죠. 그럼 그걸 한번 극복해보고, 두 번 극복해보고, 한번 극복한다고 완전히 없어지는 거 아니오. 다음에 또 해도 똑같이 일어나는데, 다음부터는 마장이 덜 끄달리지. 왜? 지난번에도 내가 극복을 했어요? 안했어요? 넘겼으니까 넘어갈 수가 있지.
이렇게 해서 그 고비를 넘겨야 되요. 그 고비를 넘겨 버리면 편안해져요. 편안해져. 으흠. 그래서 우리가 백일 정해놓고, 천일 정해놓고, 3천배 정하고, 천배 정하고. 이렇게 정하는 이유가 뭐다? 그걸 정해놓고 나타나는 고비는 거기까지 목표지점까지 갈 동안에는 무조건 간다는 거요. 그래서 자기가 백일기도를 하면 백일은 중간에 멈추지 말고, 이건 내 까르마다. 백일이 꼭 하느냐? 안해야 되냐? 이런 게 아니에요. 까르마를 극복하는 거요. 마장을 극복하는 게 수행이거든요.
그러니 내가 백일에 70~ 80에 걸리면 그건 무조건 눈을 감고 그냥 죽는 한이 있더라도 내가 절을 하고 넘긴다. 또 3년을 하기로 했으면 2년 넘어가면서 분별심이 생기면 넘긴다. 이런 목표를 딱 정해야 돼. 정토회에서 만약에 소임을 하나 맡았다. 그러면 이런 게 자꾸 실지로 내 환경이나 조건을 봐서 능히 할 수 있는데, 늘 뭐라고 뭐라고 핑계잡고 빠질 때는 정토회에 도움이 되고 안 되고가 아니라, 내가 내 까르마 이 업식을 넘긴다.
이러면 딱 소임을 맡아서 몸부림치면서 울고불고하면서 죽으나 사나 3년을 넘겨보는 거요. 항상 이게 마장이 찾아옵니다. 그래서 우리가 만일 기도하면 처음에 한 천일 하다가 마장이 생기든, 오천일 하다가 마장이 생기든, 칠천을 하다가 마장이 생기든 생기는 거요. 그걸 넘어가야 돼. 그래서 자기는 수행의 목표를 뭐를 정하든 자기가 정했으면 중간에 관두는 법은 없다. 무조건 간다. 수행삼아 하는 거요. 그래서 그걸 꼭 절에 안와서 해도 돼요
그래서 우리 청년들은 회사를 자주 옮기는 사람 있잖아. 그죠? 그런 사람은 “그 회사에서 쫓아내더라도 거기 붙어있더라. 월급 받지 말고도 붙어 있어라. 3년은 무조건 붙어 있어라.” 3년 있으면 자기가 마음을 결심하면 마장이 있는 사람은 회사가 부도가 나서라도 거기 못 있게 되요. 그래서 자의반 타의반 돌게 되는데, 그런데 그럴 때 딱 한군데서 그냥 끝가지 버텨야 되요. 그럴 때는 회사문제가 아니라 수행이에요. 그때는 이미.
자기가 뭘 하든지 딱 하나를 잡아서 일어날 거를 아예 예측을 하면서, 어떤 일이 일어나도 정해진 날짜, 정해진 방식으로 내가 한다. 이렇게 하면 아주 자기 까르마가 선명하게 일어납니다. 아주 선명하게, “아, 내 업이 이런 거구나. 내가 늘 여기서 넘어지는 거구나.” 이걸 극복을 해야 좀 삶이 자유로워지죠. 안 그러면 늘 우리가 이 세상에서 온갖 사람 만나고 온갖 일이 벌어지는 세상에 다 내 맘에 맞는 사람은 만날 수가 없어요. 늘 쫓겨 다녀야 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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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정해놓고, 뭐든지, 정해놓고 내가 3년 기도한다하면 3년은 초상이 나도 절하고, 아까 손님을 받고, 집에 불 끄다가도 기서 기도하고 와서 끈다하는 이 정도로, 이게 대결정심을, 죽어도 좋다는 그런 마음으로, 꾸준히 하면 그런 마장이 몇 번 몰아치다가 결국은 넘어가죠. 부처님 일생 공부하면 나오지 않습니까. 부처님도 한참 마장이 몰아칠 때는 어떤 유혹이 있습니까? 귀에다 속삭이잖아요. “열반이란 없어. 열반이란 없어.” 열반이란 말만 이 세상에 있지, 실제로 니르바나라고 하는 그런 경지는 없다는 거요.
그게 해도 해도 안 될 때 일어나는 절망적인 속삭임이란 말이오. 그걸 뛰어넘으셨잖아요. 그러니까 이 장애를 넘어야 되요. 이거 가장 좋은 방법은 특별한 비책은 없어요. 자기가 절을 하든, 뭘 하든, 정했으면 정해진 대로 무조건 하는 거요. 죽어도 좋다. 이런 각오를 세워야 돼. 항상 두려움이 생기죠. 아까 열반이란 없어. 이것도 두려움이지, 이러다가 내가 이 숲속에서 죽어버리면 아무 소용도 없지 않느냐. 아무 인생의 의미가 없지 않느냐. 이런 두려움이 일어나는 거요.
그런데, 이제 우리가 그걸 넘어가야 되는 거요. 자기가 정한대로, 아까 얘기한데로, 뭐든지 딱 정해서 꾸준히 해가면서 마장이 일어날 때, 이거를 휘둘리지 말고, “아, 나한테 이런 마장이 있구나. 나한테 이런 마장이 있구나. 지금 마장이 이렇게 일어나구나.” 이걸 보면, 능히 넘어갈 수가 있죠. 한두 가지를 그렇게 넘기면 다른 마장도 다, 자기가 주인이 되어서 알 수 있어요. 싸우더라도 내가 마장하고 싸운다는 것도 알 수가 있고.
그런데 잘못 받아들이면 “스님이 일 시키려고 저러나.” 이렇게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회사면 회사, 절이면 절, 참선이면 참선, 정토회에서 업무면 업무. 딱 맡아서 정해진 대로 자기가 끝까지 해보는 거요. 3년을. 쭉 하면 못할 일이 수도 없이 발생해요. 못할 일이. 내가 싫은 마음이 들어서도 못할 일이 생기고, 남편이 갑자기 반대를 해서 못할 일도 생기고, 온갖 일이 벌어져요.
그런데 그걸 마장으로 딱 보고, 그냥 꾸준히 해나가야 돼. 그걸 갖고 바깥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갖고 시비하면 벌써 내가 마장이 지는 거거든. 담배를 만약에 딱 끊기로 했다하면 피가 거꾸로 솟는 거 같고 죽는 거 같고, 병원에 실려 가고 해도 딱, “아 업이 이게 담배 업이 나한테 참 깊기는 깊구나. 진짜 안 끊었으면 큰일 날 뻔 했구나.” 오히려 이렇게 생각하고, 딱 나가야 되는데, 의사가 “당신 안 피우면 오히려 후유증 때문에 죽을 수 있으니까 그냥 피워라.” 이렇게 말해도 “네. 저는 안 피우다 죽겠습니다.” 이렇게 딱 얘기해야 돼. 그 정도로 안하면 대 부분 다 집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하다가 마음이 바뀌어 버려요. 마음이.
그러니까 이게 뭐라고 뭐라고 해서 이게 바뀌어 버려요. 그래서 자기가 자기한테 속거든. 그러니까 요번에 딱 하나의 원을 자기 나름대로 목표를 세워서 끝까지 가는 기도문을 이렇게 다만 할 뿐입니다. 거기 시비분별 따지지 말고, 이런 일이 일어나도 하고, 저런 일이 일어나도 하고, 다만 할 뿐입니다. 다만 할 뿐입니다. 이렇게 계속 정진해 나가면 한두 번 고비를 딱 넘기면 삶의 이런 두려움 같은 거 없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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