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이 제안하는 곱게 늙는법 [한겨레談 1-1]
출가하게 된 동기가 죽음이라는 문제 앞에서 충격을 받고 인생무상을 느끼고, 그런 경우는 아니에요. 우리 스님이 던진 질문, 결국 네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라고 하는 이 질문, 그러니까 제가 바쁘다고 하니까, “왜 바쁜가?” 하는 문제로서 “어디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놈이 왜 바쁜가?”라는 이런 거에 대한 그때 어린 나이에 충격이 있었구요. 죽음 앞에 선, 그런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죽음 앞에서 인생의 큰 전환이 일어나는 거는, 저는 그럴만하다. 누구나 다, 말은 죽는다고 하지만, 무의식의 세계에서 자신은 영원할 거 같거든요.
그런데 그 죽음이라는 게 눈 앞에 탁 닥쳤을 때, 자신이든 타인이든 결국 우리 삶이 영원한 게 아니구나하는 거를 머리로 아는 게 아니라, 생각으로 아는 게 아니라, 현실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지금 까지 살아온 막연한 삶에 대해서 어떤 큰 방향전환을 하는 계기가 되지 않았느냐? 이렇게 생각하고 있고요.
제가 죽음의 위협을 느낀 것은 저는 고문당할 때였습니다. 제가 그때까지 불교에 입문하고 한 10여년 가까이 되었기 때문에 늘 생사가 둘이 아니다. 죽음을 초월한다. 이런 얘기를 그냥 일종의 책을 읽고, 이치로만 알고, 이런 얘기를 했었는데, 막상 죽여 버리겠다고 고문을 할 때, 두려움이 생기고, 그 앞에서 내가 굉장히 외소해지고, 어쩌면 좀 비굴해지는, 그런 자신을 봤고요, 어쨌든 살려고 몸부림치는 그런 나 자신을 보면서, 제가 그 이후로는 그런 오기라고 그럴까? 삶과 죽음이 둘이 아니다. 이런 얘기를 잘 안하게 되었어요.
그러나 죽음을 뛰어넘는다. 생사가 둘이 아니라는 그 의미가 정말 우리가 나고 죽는 게 둘이 아니라는 의미인지, 이게 뭘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는 훨씬 더 깊이 탐구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알았던 그런 개념과 더 깊이 탐구하면서 결국 제 나름대로 자각했던 개념은 좀 많이 차이가 났습니다. 막다른 골목, 정말 죽을지도 모른다는 그런 막다른 골목은 저에게도 삶에 어떤 전환을 가져왔다 그럴까요? 그런 계기가 된 것은 사실입니다.
삶에 대해서 훨씬 더 좀 진지해졌다고 그럴까? 그러니까 지식으로 아는 걸 갖고 정말 아는 것처럼 큰 소리 치다가 그게 현실에 부닥쳤을 때 전혀 작동하지 않는, 그런 걸 보면서 정말 내가 경험하지 않는 것은 나에게 있어서는 적어도 진리가 아니겠다. 이런 생각을 갖게 되면서 지금도 지식을 얘기하기는 하지만 가능하면 지식적인 얘기는 좀 덜 하려고 그러고, 어떤 지식을 들어도 그것이 경험적으로 받아들이는데, 치중하고, 또 경험되어진 거에 가능하면 좀 준해서 얘기를 진행하려고 하는, 그런 약간의 좀 신중함이라고 그럴까? 그런 걸 좀 계기가 되는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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