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법문/기타법문

승원스님(2016. 5.30)-"인생은 습관이다"

Buddhastudy 2019. 1. 3. 20:51


요즘에 날씨가 너무 좋습니다.

기도하기도 좋고, 공부하기도 좋고, 뭘 하기 좋은데 잘 안 되죠.

 

내 마음 먹는 것과는 좀 반대의 마음이 써지고 몸이 움직여집니다.

이것을 습관이라고 그럽니다.

하고 싶은데 뭔가 불편해요. 그렇게 하려면.

 

그 불편한 것은 뭐냐?

그만큼 그 방향으로 살았고,

그 방향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마음도 그렇게 안 따라가고 몸도 안 따라갑니다.

 

그래서 오늘 주제를 인생은 습관입니다.’ 이렇게 주제를 잡아봤습니다.

인생의 95%를 습관이 좌우한다고 합니다.

결국은 습관지어진대로 살죠.

이 습관이 오랫동안 굳어지면 그 사람의 업이 됩니다. .

 

전생에 그렇게 살았던 사람은 금생에 와서도 그렇게 살아지고 그렇게 쉽게 쉽게 그렇게 익숙해지게 살아갑니다.

이것이 업입니다.

습이 굳어지는 것이 업입니다.

 

그런데 마음속으로 굳어진 것을 우리는 식이다. 그럽니다. .

우리 용어가운데 습업이라는 말이 있죠. 이거 다 받으셨지요? 으흠.

습업이라는 말이 있는데, 결국은 습관 되어져서 익혀져서 업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습업이라고 해요.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변질되어 갑니다.

 

그 습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속 깊숙이 자리를 잡고 인식이 되면 딱 굳어지면 그것을 우리는 습식이다. 그럽니다. 이해가 되시겠습니까? . 습식.

 

그런데 우리 인생은 결국은 습관입니다.

그렇게 살아져요. 그렇게 살아가요.

안 살아가려고 하면 어딘지 모르게 불편해요. ? 그렇게 굳어졌기 때문에.

그래서 고치기가 어려운 거예요.

말하는 습관, 잠자는 습관, 밥 먹는 습관, 일어나는 습관, 잘 안 돼요.

 

얼마 전에 출가를 하겠다는 한분 계셨는데, 아침에 못 일어나요. 또 늦게 자요. 몇 십 년을 굳어오니까 안 되는 거요. 제가 그런 조언을 했습니다.

네가 출가를 해서 절에서 살려고 하면 라이프스타일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그건 하루아침에 안 바꿔진다. 오랫동안 쌓여왔기 때문에, 안 바뀌는 거죠. 그걸 바꾸지 않으면 살기 힘들죠.

 

우리가 내 성질, 내 성품을 못 바꿉니다.

? 금생에 된 게 아니에요.

전생부터 고대로 익어 와서, 익어 와서, 금생에 도달했기 때문에 안 바뀌어요.

성질머리 더러운 놈은 죽을 때까지 잘 못 바꿉니다. 익숙해졌기 때문이에요.

 

인간의 삶은 습관의 연속입니다.

습관이 나를 알 수 없는 방향으로 끌고 가고 몰아갑니다.

따라서 습관은 관성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일을 했던 사람은 계속 일을 해야 편해요. 시골에 있는 노인네들 도시에 모셔다 놔보세요. 주리를 틀지요. 안 됩니다. 일을 해야 됩니다.

시골에서 매일 밭을 매고 일을 하던 그 우리 어머님 할머님들은 이런데 모셔다 놓으면 잘 못삽니다. 병납니다. 그러니까 적당한 일거리를 줘야 됩니다. 그게 효도입니다.

그렇죠 보살님? 시골 출신 아니신 보양이네.”

 

속가에 노보살님도 가끔 저희 절에 오셔서 계셔요. 계시는데 그렇게 하지 말라고 그래도 땡볕에 밭에 나가서 일을 해야 편합니다.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안 그러면 병나요. 이게 습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이것을 업대로 산다. 또 좀 상스러운 말로 업대로 논다. 그럽니다.

목수 일을 했던 사람은 목수 일이 편하고 이렇게 다 살잖아요. 업대로 놀잖아요. 그건 익숙해져요.

 

일을 안했던 사람은 일을 하라면 못해요. 안 해요. 그래서 직장을 젊은 나이에 그만 둔 요즘에 많잖아요. 1년 놀고 나서는 일을 안하려 해요. 그러죠? 그래서 그 부모들이 저한테 와서 뭐라고 그러냐? 제발 한 달이라도 좋으니까 일을 했으면 좋겠다. 규칙적으로 살아봤으면 좋겠다. 남들처럼 잘 때 자고 일어날 때 일어나고 먹을 때 먹었으면 좋겠다. 돈 안 받아도 좋다. 사람이 망가지거든요. 굉장히 현실적인 문제들입니다. 전부 습입니다.

 

나는 할 수 있어.’ 이렇게 하지만 막상 현실에 부딪히면 안 됩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관음재일날 절에 오는 거 마찬가지에요. 제가 올 때마다 관음재일에 뭐라고 그럽니까? “요즘 많이 오세요?” 대답은 잘합니다. “다음 달에는 꼭 오겠습니다.” 오긴 뭘 와요? 이렇게 많이 비어있는데. 핑계가 많습니다. 핑계가.

 

제가 늘 얘기하잖아요. 불교신도는 뭐라고 그래도 면신도라고. 바쁘면 안 오고, 일이 있으면 안 오고, 집안에 뭐 생기면 안 오고, 안 오잖아요.

그래서 우리 불자들이 도신도로 전환하지 않는 한 참 힘들어요. 그런데 겁을 주면 되는데, 불교 교리는 겁주는 교리가 없습니다.

안 오면 지옥 간다.’ 이렇게 겁주는 도리가 없어요.

와야 뭐 된다.’ 이렇게 겁주는 도리가 없어요. 그건 사법이니까.

 

그래서 관성입니다. 담배를 피우는 습관, 다 밥을 먹는 습관.

제가 살찌는 사람한테 그런 얘기를 합니다. 저희 제 상자를 하나 작년에 뒀어요. 올해 봄에 계를 받았어요. 행자를 하고. 96키로 일 때 왔어요.

수계를 하기 전에 80키로까지 못 빼면 수계를 내가 안 보내겠다. “

그래서 행자를 6개월을 했는데 76키로까지 뺐어요. 매일 108배를 하다가 그 다음 300배를 하다가 500배를 하다가 그 다음 밥을 덜 먹죠.

 

처음에 오니까 밥을 양푼으로 하나씩 먹어요. ? 계속 그렇게 먹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안 먹으니까 허텃한 거예요. 일단 보면 많이 먹어요.

그렇게 많이 먹고 어떻게 살을 빼니?”

한꺼번에 줄일 수는 없는 거고, 움직여라. 조금 덜 먹어라.”

 

내가 10이라는 양을 먹었으면

그 다음에도 10이라는 양을 몸이 불러요.

 

살찐 주부들, 명심하세요. 군것질 할 수가 밥을 안 먹어도 살이 찝니다. 아니에요. 뭘 먹어요. 과자를 먹든 뭐 주전부리를 하든, 뭘 먹든 저녁에 먹든, 뭘 먹어요.

 

나는 스님 물만 먹어도 살쪄요.’ 물에 무슨 영양소가 있어서 살이 찝니까? 안 돼요.

그 탄수화물을 계속 그만큼 불러들여요.

그러니까 방법은 뭐냐? 조금 줄이면 줄인 양만큼 불러들여요. 몸에서.

조금 더 줄이면 어느 정도 가면 또 그 양만큼 불러들여요. 그래서 줄이는 거예요.

한꺼번에 확 줄이면 그거 큰일 나요. 안 고쳐지니까.

 

이분은 송광사 강당을 보냈는데, 이번에 초파일이라고 올라왔어요. 방학했다고.

“80키로 올라갔느냐? 안 올라갔느냐?” 물어보니까 같이 목욕탕을 데리고 가죠. 77키로 나가더라고.

“80키로 나가면 너는 사형이다.” 중이 스님이 신도들이 바라볼 때 살이 디룩디룩 쪄서 배가 튀어나오고 그걸 어떻게 바라보겠냐. 그거 안 된다. 좀 가혹한가요? 아니죠.

 

상호설법이라고 그랬어요. 늘 제가 얘기하지만.

부처님이 왜 잘생기셨냐? 그 상호로 한 말씀하시면 다 감화를 받아. 감동을 받고.

? 상호가 너무 훌륭하시니까.

 

우락부락한 사람이 설법을 하면 어떻게 되겠어요?

그런 사람이 설법하면 같은 말도 잘 안 받아들여져요.

그래서 상호가 설법하는 거예요. 상호가. 말을 해도.

 

얼굴이 편안한 사람이 말을 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말을 하면

믿음이 안 갑니다.

 

자기 몸에 대한 관리도 못하면서

수행자라고 할 수가 없다.

 

제가 늘 얘기하잖아요.

먹는 것, 입는 것, 자는 것, 일어나는 것,

이것만 관리하면 성공한 사람이라고. 성공한다고.

 

비근한 예를 저는 이런 얘기까지 합니다.

허리를 좀 많이 구부리고 있죠?

그런데 무슨 호흡이 들어가서 노폐물이 빠지겠어요?

 

허리를 펴는 순간 인생이 펴지기 시작한다.

제 주특기입니다.

 

템플스테이 는 사람들한테.

허리를 펴는 순간 인생이 펴지기 시작한다.

? 몸이 건강해지고 기분이 좋아지고 엔도르핀이 나오고,

그럼 펴지죠. 인생이. 허리만 펴도.

 

조건은 뭐냐?

알아차리는 것이다.

내가 구부리고 있구나하는 걸 알아차리는 것이다.

그런데 못 알아차려요.

 

결국은 뭡니까?

깨어있어야 된다.

습관을 고치려면 깨어있어야 되요.

 

무슨 일을 하든, 습관된 것을 그 습관화 된 것을 막으려면 일주일에 한두 번은 그렇게 하지 않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걸 힘들어서 못해요. 그렇게 하지 않는 시간.

 

밥을 계속 조금 먹는 사람은요, 밥을 절대 많이 못 먹습니다. 그렇죠?

가끔 한 번씩 밥을 보통 양보다 더 먹어줘야 위도 제대로 활동을 합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그거 고치려면

나는 조금만 힘들어서 안 먹어.’ 아니요. 일주일에 한두 번은 양보다 조금 더 먹어서 위를 훈련을 시켜줘야 됩니다.

 

그렇게 하지 않았을 때 불안하면 , 내가 중독되었구나.’

불편하면 , 내가 습관 되었구나.’ 중독되었구나. 이렇게 생각하면 됩니다.

 

담배 피우던 사람이 조그마한 텀을 두고 안 피우면 불편하잖아요. 그럼 중독된 거예요. 중독이 딴 거 아니에요.

 

지속적으로 해야만 편안한 것.

이게 중독이에요.

저는 중독을 그렇게 정의합니다.

 

안하고 있으면 불편하잖아요. 불안하잖아요. 뭐든지 마찬가지입니다. 술도 마찬가지죠. 술을 계속 먹은 사람은 일정 시간 안 먹으면 막~ 불안합니다. 손도 떨고, 그게 중독이잖아요. 중독.

 

내가 알아차려서

그 불안한 것을 견뎌내야 된다.

그래야만이 습관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알아차림이

습관을 최소화하는

습관을 바꿀 수 있는 지름길이다.

 

나를 온전하게 지키려면 습관화 된 것을 방지합니다.

마음속에 있는 번뇌나 변화도 큰 번뇌를 추번뇌라고 그래요. 무슨 번뇌라고요? 클 추자입니다. 추번뇌. 작은 번뇌를 미세한 번뇌를 세 번뇌다. 가늘 세자. 세 번뇌라고 그럽니다.

 

그런데 큰 번뇌, 큰 변화는 바로 내가 느끼고 알아차릴 수 있지만,

작은 번뇌나 변화는 기도나 수행해서 나오는 살핌과 지혜 그리고 정념_안정의 힘, 고요의 힘이 아니고서는 알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습관화 되는 것을 알아차리기는 정말 힘든 겁니다. 마치 안개 속을 걸어가면 옷이 젖지는 않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점점점점점 젖어 들어오지요. 이것이 습업입니다.

그런데 나는 못 느껴요. 옷이 젖는 걸 못 느낍니다.

 

그 밑에 안개 속을 걷는 것과 같아서 비록 옷이 직접적으로는 젖지는 않았지만 점점점점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젖어 들어간다.

측간에 앉아있으면 옷이 더러운 오물이 옷을 직접 더럽히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점점점점 악취가 몸에 밴다. 이것이 습입니다. .

 

과연 우리들이 평소에 무심코 하는 말이나 행동을

과연 우리가 알아차릴 수 있겠느냐?

그냥 하고 맙니다. 그냥 하고 말아요.

 

깨달음이란 수행이나 정진을 통해서 작은 번뇌, 작은 욕망, 이런 것 까지 완전히 없어져서 다시는 일어나지 않는 것을 우리는 깨달음이다. 그럽니다.

 

수행을 한다고 하면서 기도를 한다고 하면서

평소에 그 사람의 삶의 방식, 또는 인격이 성숙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수행이나 기도를 잘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수행과 인격은, 기도와 인격은 둘이 아닌 하나입니다.

 

깨닫는 것도 많은 종류가 있습니다.

저 혼자 떠드는 거 아니죠? 제가 늘 애기하지만 제 얘기를 들으면서 존다거나 재미없다고 생각하는 그 사람은 사람이 아니에요. 그 사람은 보살이에요. 무심도인.

 

기도를 하면서 평소에 말이나 행동이 변하지 않고 똑같이 다른 사람한테 지탄을 받는다고 한다면 그런 기도 어따 써먹겠습니까? 기도, 수행, 인격은 하나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린 어떤 기도냐?

하지 말아야지.’ 하고 여기서 참회하고, 말해야지 하고는 또 집에 가면 또 일어나고.

이거는 깨달음이 아니에요.

 

그래서 우리는 돈오란 얘기를 하고 정오라는 얘기를 하잖아요. 점수점오. 돈수돈오. 이런 말이 있죠?

해인사 방장을 하셨던 서철큰스님 같은 경우는 돈수돈오를 주장하신 분입니다. 그래서 해인사 강원에서는 절요를 안 배웁니다. ? 그 절요의 저자가 보조국사입니다. 보조국사는 점수점오를 주장하신 분이에요.

 

그런데 성철스님이 주장하신 깨달음이란 확철대오란, 부처님과 조금도 다른 깨달음을 확철대오라고 한다. 미세한 번뇌까지, 완전히 사라져서 완전히 없어져서 다시는 일어나지 않는 경계, 똑같은 잘못을 똑같은 번뇌를 다시는 일으키지 않는 것, 이것이 깨달음이지, 깨달았다고 해놓고 또 잘못하고, 또 번뇌 일으키고, 이래서는 깨달음이라고 얘기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이것을 돈오사상이라고 그럽니다.

 

깨달음에는 내 마음속에 있는 모든 번뇌, 여기서 나오는 습기. 습업, 업식, 모든 것이 다 사라져서 깨끗한 부처님의 마음과 같은 그 마음이야만이 깨달음이라고 할 수 있지, 조금 깨달은 것을 깨달음이라고 할 수 없다.

 

무슨 깨달음이 10점짜리 깨달음, 20점짜리 깨달음이 어디 있느냐? 깨달음은 100점이 되어야 되지. 이런 얘기입니다

 

그런데 점수라고 하는 것은 점점점 닦아서 점점점 깨달아 들어간다. 구경각이라고 합니다. 완전한 깨달음을 구경각이라고 합니다. 끝까지 도달한 깨달음.

 

우리가 12연기에서 살펴본다면 무명에서 수까지는 우리 마음속에서 한 번에 일어납니다.

, 무명 행 식 명색 육입 촉 수 그러죠.

마음 잘못 먹으면 마음이 쭉 이어져서 제가 보는 순간에. , 사람마다 다릅니다.

똑같은 상황에 부닥쳤을 때 반응하는 것이 다 다릅니다.

? 그렇게 익혔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똑같은 말을 들어도 노여움을 타지 않지만, 어떤 사람은 똑같은 말을 들어도 노여움을 타고 화를 버럭 냅니다. 그러죠? 그것은 식이 다르기 때문이에요.

지금까지 인식되어 왔던 사고방식이 다르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받아들임까지, 딱 보는 순간 받아들임까지가 같아요. 자기가 익힌 대로 가요. 그렇게 살았기 때문에.

그 다음이 문제입니다. 딱 받아들이고 나서 고다음에 이것을 취할 건지 말건지, 또는 이것을 좋아할 건지 말 건지, 좋아해야 취하잖아요.

 

그다음 수 다음에 애 --유죠. 12연기에서. 애착, 집착. 그러니까 집착하고 애착해서 내 것으로 만들어야지. 취해야지. 취하면 이미 행동했기 때문에 그 다음 미래의 결과 과보가 존재하게 됩니다. 이것이 유입니다.

 

저는 12연기 이런 것을 10대에 외웠어요. 10대에 출가를 해서. 해인가 강당에서 외우죠. 그때는 다 외웠으니까. 안 외우면 진도를 안 나가니까.

무명, 행식, 명색 육입 촉수 애취유 생노사이럽니다. 외울 때. 재미있게 외운다고 기침하는 것처럼 애취유 생노사 이렇게 외웁니다.

 

유라고 하는 것은 이해를 못하는데 유는 뭐냐? 내가 어떤 말을 했거나 어떤 잘못을 했거나 어떤 행동을 했으면 그 결과가 이미 그 행동에, 그 말에, 그 생각에 들어버린다는 거예요.

그러면 뒤에 당연히 그걸로 인해서 어떤 결과가 생겨나고 어떤 결과가 생겨남으로 인해서 괴롭고 힘들다. 노사가 괴롭기 힘듦이에요. 생노사죠. 생노사.

 

그런데 가까이 있는 옆 사람에게도 잘해주지 못하면서

굳이 멀리 있는 사람에게 잘해주려고 합니다. 늘 그렇게 해왔기 때문입니다. 무시해요. 함부로 대해요.

세상을 가장 나를 무시했던 사람은 내 옆에 있는 사람이랍니다. 내 옆에 있는 사람.

그 사람에게 가장 함부로 대접을 받았고, 가장 무시를 당한 거예요. 그렇죠?

 

자식에게, 남편에게, 부인에게

그런데 다른 사람한테는 잘하려고 그래요.

옆에 있는 사람한테는 잘하지 못하면서. 습입니다.

 

옆에 있는 사람에게는 친절하지 못하면서

멀리 있는 사람에게는 친절하게 해주지 못해서 안달입니다.

 

김구선생은 이런 얘기를 했어요.

지옥을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다.

가까이 있는 사람을 미워하면 된다.

천국을 만드는 방법도 간단하다.

가까이 있는 사람을 사랑하면 된다.

모든 것이 다 가까이에서 시작된다.

이런 얘기를 했어요.

 

멀리 있는 사람, 잘해주려고 하지 말고,

내 옆에 있는 사람한테 잘해줘야 됩니다.

 

또 습관, , 업식은 하루아침에 형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꾸준히 형성됩니다.

 

평판도 마찬가지입니다. 워렌버핏은 이런 얘기를 했어요.

평판은 한 번에 모래 한 알씩 양만큼 쌓여간다.”

 

이해가 되시죠? 그 사람의 인격이 하루아침에 완성되고, 그 사람의 장점이나 단점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게 아닙니다. 좋은 평판도 하루나 1주일 한 달 만에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그 평판은 천천히 쌓여가지마는 그것을 무너뜨리는 것은 금방입니다.

 

좋은 평판이 쌓이려면 오랜 시간이 걸리죠.

때론 내가 가지고 있는 기득권이나 이익을 포기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 좋은 평판이 한번 쌓이면 지금까지의 모든 손실을 부정을 커버하고도 남을 만큼 막대한 이익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습관을 고치려면 오랫동안 노력해야 합니다.

오랫동안 살펴야 합니다.

오랫동안 깨어있어야 합니다.

오랫동안 행동해야 합니다.

 

롱런하려고 하면 롱런해야 한다는 글을 읽은 기억이 납니다.

롱런하려면 오래가려면 오랫동안 배워야 합니다.

 

기나긴 인생길, 험난한 인생길을 오래오래 가고 싶다면

끊임없이 변함없이 오랫동안 배워야 하고

오랫동안 노력하고 실천해야 한다는 뜻이 아닐까 합니다.

 

인생은 60부터. 그런 얘기를 하잖아요. 70부터라고 그럽니까? 어떤 노래에 보니까 150살에 날 데리러 오거든 이미 극락에 와 있다고 전해라. 하는 가사도 있두만.

나이를 한탄하거나 또 무능력하고, 또 포기하라는 말이 아니라 그 만큼 할 수 있고, 또 그만큼 치열하게 끝까지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말일 것입니다.

 

우리들이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내가 알고 있는 지식, 내가 알고 있는 경험의 자만에 빠지거나

안주하지 않는 것입니다.

 

내가 알고 있는 지식으로 모든 걸 재단을 해요.

내가 알고 있는 경험으로 모든 것을 그것이 다라고 최고라고 생각을 해요.

그러니까 나이 드신 분들은 의사 말을 잘 안 듣잖아요.

내가 알고 있는 경험,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 최고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지식과 경험에 자만에 빠지거나 안주하지 말아야 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지식에만 안주한다면

더 이상의 발전이 없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경험이 많은 것만 믿고 살면

우리는 그 안에 갇혀버리고 맙니다.

스스로 상자 속에 갇히고 말죠.

 

그런데 얼마든지 바깥에 세계가 있고, 더 이상의 지식이 있고, 더 이상의 좋은 방법이 있다는 거죠. 이것도 습관입니다.

 

제가 간혹 그런 얘기를 드렸죠.

문이라고 하는 것은 안과 밖을 구분해 놓는 것을 문이라고 합니다.

벽이라고 하는 것은 이쪽과 저쪽을 구분해 놓는 것을 벽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원래 그 공간에는 문도 없었고 벽도 없었습니다.

스스로 문을 만들어 놓고 안팎을 구분하고,

스스로 벽을 쌓아놓고 이쪽저쪽을 구분을 합니다.

그런데 원래는 문도 없었고, 벽도 없었다는 얘기입니다.

 

그런 경우 많잖아요. 부부지간에도 부자지간에도 문이 있고 벽이 있습니다.

넘지 말아야 할 벽, 들어가서는 안 되는 문.

그런데 그 문과 벽이 다 똑같지는 않습니다. 사람마다 다 다릅니다.

이것이 그 사람의 습입니다. 그 사람의 인식입니다.

 

어떤 집에서는 통용이 되고 있는 것이 어떤 집에 가보면 전혀 통용이 안 됩니다. 그러죠?

참 희한한 거예요.

 

괴로움에도요, 절대적 괴로움이 있고 상대적 괴로움이 있습니다.

절대적 괴로움은 다 괴로운 게 절대적 괴로움이에요.

상대적 괴로움은 뭘까요? 나는 괴로운데 상대는 안 괴로운 거예요.

나는 행복한 데 상대는 안 행복한 거예요.

 

빈곤도 마찬가지죠. 절대적 빈곤이 있고 상대적 빈곤이 있죠.

나는 전혀 문제가 안 되는데, 어떤 사람은 굉장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괴로워하고 삽니다.

그게 뭘까요? 문이나 벽입니다.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습관화되었기 때문입니다. 쉽지 않지요. 쉽지 않아요.

 

그런데 그 문이나 벽을 텄을 때, 비로소 너나없이 다 편안해지죠.

봉사하는 것도, 보시하는 것도, 친절하게 대하는 것도 모두가 다 습관입니다.

습관 되지 않으면 편안하게 할 수 없습니다. 고치려면 불편하거든요, 힘들거든요, 괴롭거든요.

 

, 증득와의 한 구절인데, 한번 따라 읽어볼까요?

住相布施生天福 주상보시생천복이나

猶如仰箭射虛空 유여앙전사허공이로다.

勢力盡箭還墜 세력진전환추하니

招得來生不如意 초득내생불여의로다.

 

상에 머무르는 보시는 생천복, 천상에 태어나는 복은 될 수 있습니다. 천상에 태어나는 복은 될 수 있어요. 그런데 그 복은 끝이 있어요.

유여앙전사허공이로다. 마치 하늘을 향해서 허공에 대고 화살을 쏘는 것과 같다. 이런 얘기죠.

어느 정도 힘만큼 딱 쏘면 고만큼 올라갔다 떨어집니다.

또 센 힘으로 쏘면 센 힘으로 쏜 만큼 더 높이 올라갔다 떨어집니다. 떨어지는 건 똑같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보시를 하려면 어떤 상에 머무르지 않고, 모양에 머무르지 않고 보시를 해야 되는데, 그렇지 않게 보시를 하니까, 그만큼만 복을 받고 떨어지는 거예요.

그러니까 좋은 일을 하면 좋은 일 한만큼 천상에 태어나는 복은 된다. 이거죠.

그런데 그것은 마치 허공에 활을 쏘는 것처럼 힘이 다하면 다시 떨어지고 말더라.

 

세력진전환추하니, 그 힘이, 세력이 다하면 화살은 도로 땅으로 떨어지나니

초득, 그건 그렇게 된다. 부른다. 당내는 미래, 앞으로 오는 세상에. 내생에 앞으로 불여의 내 뜻과 같지 않은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과보를 부른다. 언제? 그 힘이 다 하면. 그 복이 다했을 때에는.

 

우리가 좋은 생각을 일으켰다고 하더라도 한 길 같은 마음으로 그 생각을 유지시키기 위해서는 쉼 없는 인내와 정진이 필요합니다.

또 좋은 일이나 생각에는 항상 마장과 장애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부처님은 삼아승지겁이라고 하는 오랜 시간을 발심하고 수행을 하셨습니다. 얼마나 많은 어려움이 있었고, 얼마나 많은 고통이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그때마다 부처님께서는 그 고통을 피하거나 외면하지 아니하시고, 그 고통 속으로 직접 뛰어드셨습니다.

그래서 깨달음을 얻으셨지요. 보살도를 완성하셨지요.

 

내가 능히 중생의 고통을 구할 수 있다면

지옥의 고통이라도 기꺼이 받으리이니.

이런 까닭에 나는 항상 지옥가운데 머물러서 세상 사람들과 함께 하나니라.

함께 할 것이다. 이런 얘기에요.

 

부처님을 모신 곳은 저 이상세계가 아니고 우리가 있는 이 세계입니다. 고통이 있는 이 세계입니다. 우리도 누구나 좋은 일을 할 수는 있어요. 그러나 한번으로 끝나요.

봉사해야지이 여래사 같은 경우는 시내에 있으니까 봉사도 재능기부입니다. 청소하는 것도 재능 기부입니다.

 

그런데 여래사 와서 봉사 얼마나 하십니까? 한두 번은 해요. 그런데 지속적으로 봉사를 하기가 쉽지 않아요. 저는 이렇게 했으면 좋겠어요. 우리 신도님들이 한 달에 하루 여래사와서 청소를 하거나 뭘 하거나 좀 이렇게 했으면 좋겠어요. 다른 데 가지 말고.

내가 다니는 절에도 봉사를 안 하면서 다른 절에 봉사를 한다고 다녀요. 한 달에 한번 정도 짝을 지으세요. 서너 명. 도반들.

 

그래서 여기 주지스님과 상의를 하셔서

제가 한 달에 한번은 여래사에 봉사를 하겠습니다. 저한테 일을 맡겨주십시오.’

그래서 할 일 많잖아요. 하고 싶다고 아무거나 할 수는 없으니까, 여기서 해달라고 하는 걸 하면 되니까.

또 다니는 중에 법우들 가운데, 신도님들 가운데 또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 있는 걸로 결연을 하면 됩니다.

 

난 이런 걸 좀 했으면 좋겠어요. 이것도 습이에요. 매달 하면 별 부담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어쩌다 한번 하려고 그러면 참 날짜 맞추기 힘들죠. 또 뭐 좀 하려고 그러면 그때마다 일이 생기죠. 좋은 일을 하려면 항상 장애가 있어요. 하시는 분들은 계속 하시면 되고요.

 

보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는 것도 습관이에요. 옛스님은 보시에 대해서 말씀하시를

이른바 보시라는 것은

마음을 넓고 크게 쓰는 것을 라고 하고

자기 것을 미루어서 남에게 베푸는 것을 라고 한다. 했습니다.

 

..

, 말한 바 소원, 보시라고 하는 것은 뭘 보시라고 하느냐? 정말 보시를 잘 설명해 놓은 말입니다. 이 구절이.

보시라고 하는 것은 운심광대, 운은 운전한다. 그 마음을 쓴다. 이런 뜻입니다. 어떻게? 광대, 넓고 크게 쓰는 것이 마음을 넓고 크게 쓰는 것을 보라고 한다. 그것을 위지보. 그것을 일러서 보라고 한다.

이 지는 뭘까요? 운심광대겠죠. 지시대명사. 위지, 그것을 일러서 보라고 한다.

 

그럼 시는 뭐냐? 축이해인 위지시일세 그랬어요. 자기를 미루어서 자기 것을 미루어서 해인_ 남에게 돌리는 것. 남에게 베푸는 것. 이것을 일러서 시라고 한다. 축이 해인이 지 자겠죠. 축이해인.

자기 것을 미루어서 남에게 돌리거나 남에게 베푸는 것. 남에게 회향하는 것을 시라고 한다.

그래서 고왈 보시다. 그랬어요. 그런 까닭으로 보시라고 한다.

 

우리는 그런데 보시하면서도 마음을 좁게 쓰면 보시가 안 되는 거예요. 운심광대라고 그랬잖아요. 마음을 쓰되 어떻게 써? 넓고 크게 쓰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라고 한다. 넓고 크게.

 

 

언젠가 한번 남생이라고 하는 말을 설명을 드린 말을 기억을 합니다. 남상(넘칠 남, 잔 상)

아무리 큰 강물도 그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잔 하나를 띄울 정도, 잔 하나가 넘칠 정도의 물에서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일의 근원, 시작을 의미하기도 하고, 아무리 큰 것도 그 시작은 작은 것부터 시작됐다. 이렇게 해석하기도 합니다.

 

성경에도 있잖아요. 시작은 미약했으나 뭐는 창대하리라. 있죠?

그게 이 얘기입니다. 남상.

 

아무리 큰 것도 시작은 아주 보잘 것이 없는 작은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한강물도 그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작은 샘물입니다. 졸졸졸졸 흐르는 샘물입니다.

그런데 멈추지 않고 쉬지 않고 계속 흘러서 모이고, 그치지 않고 계속 흘러서 강이 되고 결국은 바다로 돌아갑니다.

 

그래서 모든 물은 바다고 돌아가야 성공하는 거예요.

그 이전에 없어지는 물은 물의 역할이 사실은 아니죠. 어떻게 보며는. 바다에 들어가야 되지요. 돌고 도는 거니까.

 

불자는 많은 사람들에게 그늘이 될 수 있는, 그늘을 줄 수 있는 보살이라는 종자에 나무를 심고 가꾸어서 가지와 숲을 무성하게 길러야 합니다.

그 시작은 아주 작은 거지요.

 

또 내 작은 습관 하나를 고치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그런데 내 습관 하나도 못 고치면서 뭘 하겠다? 해라?

이건 쉽지 않지요.

 

만일 길을 잘못 들었거나 무엇인가가 잘못되었다면

처음으로 되돌아가야 합니다.

처음으로 되돌아가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처음 시작했을 때로 돌아가서 그 마음으로, 그 초심으로 살펴보면 뭐가 잘못되었는지, 또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게 됩니다.

 

따라서 사람은 항상 초심으로 돌아가려는 마음이 있어야 하고, 그 초심이 변하지 않으면 성공하게 됩니다.

 

여러분들이 부처님 가르침을 처음 만났을 때 얼마나 기뻤습니까. 얼마나 신심이 장하고 좋았습니까. 그런데 지금은 뭐에요? 머리를 굴리지요. 하하하.

편한 걸 생각하지요. 쉬운 걸 생각하지요. 그때는 3천배도 하고, 매일 108배도 하고 그랬는데, 지금은 108배 하라고 그러면 다리 아퍼, 힘들어. 가능한 편하게 하려고 그럽니다. 편하게.

 

초발심시변정각이라고 하는 말은 그 얘기입니다.

초심으로 돌아가서 한다면, 뭐든지 이루지 못할 것이 없고

그 초심이 결국은 정각을 이루게 할 수 있는, 정각이 되는 그런 역할이 됩니다.

그래서 초발심시 변정각이다. 이렇게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초심을 견제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 습관이 들었어요. 습관 들기 이전에 나는 어떻게 했는가? 로 돌아가야 됩니다. 그리로.

그랬을 때 그 습관을 고칠 수 있는 실마리가 되고, 방법을 찾게 되지요.

뭐가 잘못되었는지를 알게 되지요.

 

오늘은 관음재일인데, 아무리 보살이 중생을 살펴주려고 해도 내가 습관이 잘못되어 있으면 참 살핌을 못 받습니다. 내가 하나하나 작은 거라도 고쳐나가고, 습관화 되는 것을 방지 했을 때, 기도도 이루어지고, 봉사도 이루어지고 또 더 큰 것도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인생은 습관입니다. 라는 이런 주제로 얘기를 했는데, 공감이 좀 가십니까?

뭘 고치시렵니까? 뭐가 습관이 되었습니까? 모릅니다. 살면서도.

살피는 힘이 있어야 되고, 살핌의 힘.

 

늘 깨어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안 됩니다.

 

새벽기도 좀 해야지.’ 저는 시내에 있는 절들은 새벽기도 좀 많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안 되지요. 저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내가 시내 절을 한다면 아침에 죽을 좀 주자. 월요일은 참깨죽을 주고, 화요일은 잣죽을 주고, 수요일은 당근죽을 주고, 목요일은 뭔 죽을 주고, 그래서 새벽에 한 5시쯤이나 이렇게 와서 4시 예불도 별고 생각이 없어요. 못 일어나니까. 힘드니까.

 

그럼 5시쯤 예불을 한다면 5시쯤 예불을 하고 참선을 하든 기도를 하든 하다가 편안하게 죽 한 그릇 먹고 출근 할 사람 출근하라고. 집에 갈 사람 집에 가고.

그러면 많이 올까요? 그런 생각을 한번 해봤습니다.

 

, 시내에 있는 포교당에서는 아침에 죽을 줬으면 좋겠다.

그래서 죽 메뉴 일주일을 정하는 거예요. 그래서 무슨 죽 무슨 죽, 그냥 반찬도 많이 필요 없잖아요. 김치 하나 놓고 그리하면 아침 시간에 하도 바쁘다고 하니까, 아침 시간에 많은 분들이 와서 기도도 하고, 정진도 하고, 또 그러고 부처님 그 기도의 힘이 담긴 죽 한 그릇 먹고 편안하게 좋지 않을까, 이런 생각도 해봤습니다.

 

그런데 내가 언제 하면 그렇게 한번 하려고 그래요.

제가 시내에다 뭘 하나 한다면.

그런데 모르겠어요. 저도 또 타협하고 살지 모릅니다.

항상 타협하고 사니까. 그런데 가능하면 타협을 안 하고 살려고 발버둥을 쳐야 됩니다.

 

타협이 습관입니다.

금방 내 편리한대로 가버리는 거거든요.

 

그래서 오늘 관음재일인데도 이렇게 오면 안 됩니다.

타협한 겁니다. 지금 우리가. 습관 한 겁니다. 지금 우리.

쉬운 길로. 편한 길로.

 

그래서 늘 얘기하지만 관음재일날 언젠가 한번 이런 얘기를 했어요.

이렇게 오면 제가 법회 안 오렵니다. 제가 법문을 못해서 많이 안 오는 가 싶어서.

다음 달은 제가 옵니다.

그러니까 많이 모시고 오렵니까? 대답은 다 네 해요. 대답은. 그런데 어쨌든 앞자리 좀 안 비우게.

 

주지스님이 바뀐 건 아니지만 소임을 맡으셔서 사시는데, 힘을 좀 주셔야지요. 오셔서. 그렇지요?

어쨌든 기도, 한 달에 있는 이 기도 일만큼이라도 우리가 면신 도에서 도신도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것도 습관입니다. 반드시 그렇게 해야만 하겠다고 하는 마음이 있을 때 이루어집니다.

 

, 남은 다음 한달 뵐 때까지 건강하시고, 또 뭔가 하나씩 변해서 오실 수 있는, 그래서 우리 부처님 전에 환희와 기쁨, 감사의 공양을 올릴 수 있는 그런 기도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