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올라정견

(알라야 정견)[참나탐험] #7. 존재한다는 것

Buddhastudy 2024. 8. 21. 20:03

 

 

선이란

없던 것을 닦아서 새로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본래 나에게 있는 그대로

있던 것을 다시 확인하는 것입니다.

 

지금 자신이 스스로 존재함을 부인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존재한다는 것이 무엇을 말할까요?

존재한다는 것은 몸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기 몸을 알아차리면서

몸 이전의 허공성 자리에서

몸을 보고 느끼며 아는 이것을 말합니다.

 

이 세상도, 내 몸도

이것이 있음을 보고 아는 것이 있기에

나타나 있습니다.

 

허공도 스스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그를 보고 아는 것이 있기에 있습니다.

 

이것은 생각도 감정도 느낌도 아닙니다.

이것은 생각, 감정, 느낌과 항상 같이

그 이면에 딱 붙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생각, 느낌, 감정의 내용을 알지만

스스로는 초월해 있습니다.

 

이것은 머리로 헤아려 아는 게 아닙니다.

그냥 직관으로 아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발견하려면

분별해 알려들지 마십시오.

그냥 탁 보십시오.

아무 생각도 없이 눈앞을 그냥 탁 보세요.

 

그러면 일체가 이 앎 속에 나타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자리는

보는 자인 동시에 아는 자입니다.

 

머리로 아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안다, 본다는 성품 그 자체입니다.

 

이것이 지금 여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여기와 삼라만상도 존재할 수 있는 것이죠.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 역시도

이것이 있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소리를 따라가지 말고

그 소리에 붙어 있는 앎의 자리를 탁 보십시오.

 

냄새나 맛을 따라가지 말고

그 냄새와 맛에 붙어 있는 앎의 자리를 보십시오.

 

헤아리면 의식이 아닌가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의식조차

지금 현현하고 있음을 아는 것입니다.

 

또한 봄이란 의식의 빛조차 뿌리는 근원인 텅 빈 앎입니다.

 

지금 여기 우리 눈앞에 이것으로서 자신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지금 여기 우리 눈앞에 이것으로서 일체를 인식하고 있습니다.

지금 여기 일체 삼라만상을 우리 눈앞에 벌어진 이것 안에서 인식합니다.

 

동시에 세상의 이면에서

마치 모든 것을 떠받치는 스크린처럼

한 덩어리로 존재합니다.

이것은 형상없는 허공성의 존재로

모든 물질들을 품은 채 나타나 있습니다.

 

꿈에서도 이 O자리가 나타나서

우리를 꿈속 허망한 세계로 안내합니다.

 

지금도 이 자리가

우리를 현실이란 세계 속으로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이 자리만 알아차리십시오.

그러면 더 이상 그 속에서 나타났다 사라지는

다양한 모습, 상에 속지 않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