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 역사/전우용 사담

전우용의 픽 18화 - 만민평등과 민주주의

Buddhastudy 2019. 6. 14. 20:18



전우용의 픽입니다.

100년 전 3.1운동 이후 중국 상해에 모인 독립운동가들은 나라이름을 대한민국으로 정하고, 임시헌장을 제정하면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이라는 조항을 앞부분에 집어넣었습니다.

 

그 당시 일반대중은 민주공화제라는 말을 다들 제대로 이해하고 있었을까요?

근래에 한국정치에서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현상이 세대별로 정치의식이 달라진 이유 중에

민주주의에 대한 생각이 서로 맞지 않았던 점은 없는 걸지요.

 

그래서 오늘은 민주주의의 요지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고,

우리 역사 속에서 민주주의는 어떻게 이해되어왔는지 짚어보는 의미에서

만민평등과 민주주의라는 제목으로 준비해 봤습니다.

 

민주주의, 뭐 오늘날에는 역사상 인류가 만들어 놓은 정치 제도 중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한국인이라면, 민주주의 체제하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동의하는 바입니다.

민속, 민화, 민예, 민담, 민간설화, 민간신앙, () 자가 앞에 들어가는 단어들입니다.

 

느낌이 어떠신가요?

왠지 세련되지 못함, 고급스럽지 않음, 투박함, 이런 느낌이 떠오르지는 않으신지요.

 

사실은 그게 맞습니다.

원래 한자의 민()은 글을 모르는 사람들을 따로 지칭하는 그런 글자였습니다.

그래서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하셨을 때도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글이 아니라, 백성들에게, 어린 백성에게 가르치는 글이라는 뜻에서 훈민정음이라고 했던 거죠.

 

우리 일상생활, 과거에 쓰던 단어를 놓고 생각해봐도, 천민이라는 말은 있어도 귀민이라는 말은 없습니다.

그러니 민주주의라고 하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사람들의 느낌은 어땠을까요?

우리가 현대인들이 민속, 민화, 민예 이런 단어들에서 받는 느낌하고 비슷하지 않았을까요?

 

영어 데모크라시를 민주주의로 번역하는데에도 그런 느낌, 그런 어감에 대한 이해가 있었습니다.

데모크라시란 문자 그대로 민주주의라는 뜻이 아니라, ‘다수지배라는 뜻이죠.

데모스는 다수라는 뜻입니다. 크라시는 통치하다라는 뜻이고요.

다수가 통치한다는 뜻이었는데, 그냥 다수지배라고 번역하면 될 것을 굳이 민주주의 라고 번역했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의 생각으로는

무식한 다수가 다스리는 것이 좋은 제도가 아니라고 봤기 때문에

민주주의라는 번역어에는 일종의 멸시, 경멸의 의미가 담겨있었습니다.

 

1882년 미국과 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할 때, 미국이 민주주의제도라는 것을 처음 알았어요.

, 그렇게 훌륭한 정치제도가 있구나.’ 이렇게 생각하기는 커녕이고, 정 반대로 생각했죠.

 

정치란

군주가 하늘의 뜻을 받들어

지상의 어리석은 백성들을 교화하고,

다스리는 것이다.

이렇게 믿었어요.

 

그런데 하늘의 뜻이 아니라

어리석은 백성들이 자기들끼리 뽑아 놓은 사람의 통치를 받는다니 이게 말이 되느냐,

오랑캐 정치에서나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래서 세간에서는 미국대통령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몰라서,

그냥 추장, 이렇게 부르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에도 장점이 있다.’ 라는 생각을 갖고 그런 생각을 적극적으로 공유하고 유포하기 시작한 것은 독립협회가 만들어진 이후입니다.

독립협회는 민권사상을 전파하기 위해서, 또 근대정치 사상을 공유하기 위해서, 독립협회 내에서 월례회를 개최했었고, 그리고 나중에 정부에 적극적으로 협회 의견을 개진하기 위해서 만민 공동회를 여는데요,

 

1898년은 독립협회, 그러니까 만민 공동회를 연 해로 유명합니다.

이해 3월에 첫 번째 만민 공동회가 열렸는데, 그때 만민공동회 회장으로 뽑혀서 개막 연설을 한 사람은 싸전 상인 현덕호였습니다.

 

사농공상, 사민 중에서 제일 아래에 있다고 취급받았던 것이 상인이었습니다.

일부러 독립협회는 상인을 내세워서 사민평등의식을 드러내고자 했던 것이죠.

그해 10월에 열린 만민 공동회는 의정부 참정 박정양이 참석해서 이 만민 공동회에서 놀던 내용들을 모아 헌의6조를 제정한 것으로 역사책에 나와 있는 굉장히 유명한 사건인데요,

 

여기에서 의정부 참정지금으로 치면 국무총리에 해당합니다.

의정부 참정다음으로 단상에 올라 연설을 한 사람은 박성춘이라는 백정이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저는 대한에서 가장 천하고 무지 몰각한 사람이올시다.”

이 말로 연설을 시작했습니다.

 

황제 다음에 일인지하만인지상의 의정부 참정대신이 연설한 다음에, 대한에서 가장 천하고 무지몰각한 백정이 단상에 올라서, 나라를 구하는 나라를 잘되게 할, 자기 의견을 이야기했던 것입니다.

 

의정부 참정대신이나 천하디 천한 백정이나 나랏일에 대해서는 똑같은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

이제 3월 달에 사농공상 사민평등 의식을 뛰어넘어서, 불과 6개월 만에 10월 달에는 천하디 천한 백정까지 복원하는 만민평등사상을 설파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가장 귀한 자와 가장 천한 자 사이에

정치적으로 아무런 차별도 없다라고 하는 이 평등의식이 먼저 자리 잡아야,

그다음에 민주주의가 괜찮은 제도구나라는 것을 넘어서

좋은 제도구나라는 생각이 자리 잡을 수 있습니다.

 

몇 해 전에 여론을 한참 들끓게 했던 사건이 있었죠.

정보기관의 공무원이 민중은 개돼지라는 발언을 했다가 난리가 났습니다.

 

그런 생각이 있는 한 민주주의는 좋은 제도일 수가 없는 거죠.

개돼지가 정치를 하는 정치가 어떻게, 그런 체제가 어떻게 좋은 정치일 수 있겠습니까.

 

우리도 3.1운동이후 비로서 민국을 선포하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이라는 헌장을 제정했고, 1941년에는 이 민주주의 실질을 채우기 위해서 정치 경제 교육의 3가지를 균등케하는 삼균주의 건국강령을 제정했습니다.

 

굳이 교육을 넣은 이유는 배운 백성이라야 올바른 민주정치를 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죠.

일제강점기에 이 땅에서 조선총독부 교과서로 공부한 사람들은 민주주가 좋은 제도라고 배웠을까요?

 

교과서는 공식교육기관은 세상에서 가장 좋은 정치제도는 만세일개의 천황이 통치하는 일본정치제도라고 가르쳤습니다.

여전히 19458월까지도 일본식 천황제가 가장 좋은 정치제도라고 그렇게 배우고 그렇게 믿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해방이 되고 나서 미군정이 시행되면서 민주주의 국가를 재건한다. 민주주의 국가를 건설한다.’ 이런 이야기가 나왔을 때, 많은 사람들이 혼란스러워했습니다.

아니, 민주주의 나쁜 제도인데, 그 제도를 우리나라에 도입한단 말이야?’

이렇게 생각한 사람도 많았던 것이죠.

 

사실은 해방당시, 70년 전 한국인들은 민주주의에 대해서 지금과 같이 통일된 통합된 견해를 갖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그런 차이가 해방 이후에도 말로는 민주주의를 표방하면서 실지로는 민주주의를 부정하고 독재정치를 옹호하고 독재정치에 협조하는 그런 태도를 오랫동안 유지시켰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미 1945년 당시에 이제 갓 사회생활을 시작한 그런 세대에게는 민주주의에 대한 경멸의식이 학교 때 내내 배운 바였기 때문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죠.

일본인과 조선인을 차별하는 것이 당연했던 사회에서는 민주주의는 뿌리를 내릴 수가 없었습니다.

 

앞서 독립협회 의회에서 봤듯이 민주주의가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은 법 앞에 같은 권리와 의무를 지닌다는 만민평등사상이 자리 잡아야 합니다.

그 만민평등사상에 입각해서 모든 국민에게는 정치에 참여하고 관여할 권리가 있다는 생각과 그 생각에 입각한 실천이 병행해야 하고, 그런데도 어떻습니까. 우리사회는?

 

학생은 공부나 해라.

장사꾼은 돈이나 벌어라.

교수는 연구나 해라.

이런 식의 얘기는 너무나 당연하게 유포되고 있죠.

 

1898년에도 백정이 나랏일에 목소리를 내는 것이 당연하다라고 생각했었는데, 우리 사회의 선각자들은 아직도 그 시대의 사고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민주주의 자리 잡는 과정은 단지 정권교체가 가능한 체제를 만드는 그런 과정은 아니었습니다.

 

권리를 몽땅 가진 사람과 권리 없는 사람들, 이 차별을 없애는 과정이었죠.

권리가 아무것도 없는 민()이 특권층과 싸우는 과정은 어느 나라에서나 많은 희생을 동반했습니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 말이 생겼죠.

지금 우리가 누리는 민주주의도 동학농민혁명(1894), 3.1운동(1919), 4.19혁명(1960), 5.18민주화운동(1980), 6.10민주화운동(1987), 최근의 촛불항쟁에 의해서 계속 약해질 때마다, 또는 흔들릴 때마다 다시 세우고 떠받혀온 그런 결과물입니다.

 

사실 민주주의는 옛날 사람들이 민()을 천시했던 그런 관념에서 보자면 약점이 많은 제도였습니다.

군주정 시대에는 그래도 이런 좋은 군주가 가끔씩 나왔어요.

세종같이 훌륭한 군주가 나오면 태평성대가 이어지고, 그러다가 재수가 없어서 연산군같은 폭군이 나오면 폭정이 이루어집니다.

 

민주주의 전제는

사민평등의식을 넘어서 국민 각자가 좋은 임금이 되려고 노력하는

그런 습관을 들여야 한다는 것이 첫 번째 전제이구요,

 

두 번째로는 사실은 인류전체 역사에서 보자면 민주주의 역사는 극히 짧습니다.

민주공화제를 최초로 실현한 나라, 1776년 정부는 1786년에 수립됐죠, 미국도.

 

우리의 경우에는 이제 겨우 100년 됐습니다.

그런데 대한민국을 선포한 것이 100년일 뿐이고,

제헌헌법으로 민주공화국을 재건한 것이 1948년이었지만,

실제로 1987년까지 한국인들은 민주주의를 경험해보지 못했습니다.

 

현재와 같은 민주헌법을 가질 수 있게 되었죠.

불과 30년입니다.

우리가 방심하면 경계를 놓치면 언제든지 흔들려서 퇴보할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는 뭘 가장 우선시해야 되느냐?

독립협회가 왜 사농공상에 맨 마지막에 상인과 천민중의 천민 백정을 단상에 세웠는지

첫 번째로는 그 의도를 이해해야 합니다.

 

특권의식이 날리던 곳에

차별의식이 있는 곳에

민주주의는 없습니다.

 

다른 어느 것 보다도

갑질문화를 청산하는 것입니다.

갑질문화가 가장 반민주적인 문화입니다.

 

남을 을이라고 해서, 돈이 없다고 해서, 계약상에서 을이란 존재라고 해서, 차별하고 그의 권리를 부정하고, 그를 동등한 권리를 가진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는 태도,

이런 태도가 뿌리를 내린다면 민주주의는 언제든 무너질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민주주의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통해서 이루어져왔는지.

한번 무너지면 또 얼마나 많은 희생이 필요할지.

이런 일들을 생각하기 위해서라도, 기억하기 위해서라도

과거 민주화 운동의 역사를 살펴보고 기억하는 일은 꼭 필요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 전우용의 픽, 여기에서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