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법문/정현스님_불설아미타경

정현스님 _ 제23회 공양제불원 (24:48)

Buddhastudy 2012. 7. 8. 17:12

  방송 보기: 불교TV

 

잘 지내셨습니까? 석가세존께서 2500년 전에 출가하시고 수행한 이후로 당신이 생명세계를 깨우치신 거거든요. 그 세계는 불성의 세계에요. 그걸 여래라고 말하고 응공지라고 말했고, 선서라고 말했고, 세존이시다. 이렇게 표현했거든요. 천인사라고 말씀하셨고. 그런데 이런 말들을 전체적으로 한마디로 뭐라고 표현할 수 있느냐하면 불성이다. 이렇게 표현합니다. 불성이라는 말은 2500년 전에 석가세존이 세상에 태어나기 이전부터 불성세계가 있다는 거에요. 이거를 불교식 개념으로 이름을 붙이기 때문에 불성이라고 붙이지. 그래서 금강경에서는 뭐라고 그랬냐하면 불성이라는 말은 이미 불성이 아니다. 이러잖아요. 그죠? 다만 불성이라는 이름만을 사용할 뿐이다. 요렇게 표현하거든요.

 

그런데 이것은 우리 안에 이미 불성이 깃들어있는 존재라는 거에요. 우리 모두가. 이게 이제 잘 납득되고 믿어지지 않지만, 사실은 원만하고 완전한 불성이 우리에게 깃들어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가 저 부처님께 공양하고 예불하고 기도하는 모든 것에는 다 저 불성부처님의 가호지묘력이 거기에 깃들어 계시다는 거에요. 그러시죠. 그래서 혹여라도 매일매일이 우리는 불타는 속에 살거든요. 우리가 삼계가 다 화택이라 그러셨거든요. 석가세존께서 설명하기를 이 사바세계가 삼계가 다 화택과 같다. 이러셨거든요. 대다수의 많은 사람들이 매일매일이 마음속에 불을 붙이거나, 몸에 붙이거나, 세월에 붙이거나, 시간 속에 붙이거나, 끊임없이 우리는 불을 지피고 살아요.

 

그런데 지금 타들어가는 줄을 모르는 거에요. 지금 꽁무니에 불이 붙어서 지금 타고 있는 줄을 전혀 모르고 사는 것이 우리 인생이거든요. 얼마나 급하고 얼마나 위급한지를 우리 이제~ 경전 안에 누누이 그런 말씀을 또 반복하고 또 반복해서 가르쳐 주고 계시거든요. 그럴 때 일반적으로 우리는 중생이라고 표현하고, 그 중생은 늘 불타는 속에서 살아가는데, 대다수의 많은 사람들이 가난의 불을 태우고 앉아있는 거에요. 결핍이라는 불 속에 계속 태워가는 거에요. 그 얘기는 뭐냐 하면 인생을 살아가면서 돈의 결핍과 애정의 결핍과 사랑의 결핍. 이런 수많은 결핍의 불을 스스로 스스로 지피고 있는 거에요.

 

불은 인제 그만 그치고 제대로 가족을 위하고 자기 자신을 위하고 우리가 살아가는 이웃을 위해서 조금 조금씩 공덕의 불을 땔 필요가 있죠. 날이 흐리고 습기가 되면 이럴 때면은 조금씩 조금씩 불을 태울 필요가 있으시죠. 그게 불을 때는 것이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것이 이렇게 경전 공부하는 것이고, 불설아미타경을 지금 듣고 계시는 거고, 설법하고 계시는 이 순간이십니다. 그럼 따뜻해지는 거에요. 일주일에 한 번씩 이곳에 오셔서 공부하고 수행하는 만큼, 자기가 전혀 아는지 모르는지 배우는 거 상관없이. 그런데 묘한 것이 있어요. 텔레비전 보는 것만으로도 좋아져요. 정말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사람도 변해와요.

 

그래서 좋아지는 원격교육이 돼요. 그래도. 그런데 하물며 이 자리에 오셔서 공부하시는 분들이 좋아지지 않는다면 요거 문제가 심각한 거에요. 왜 그러냐 하면 아직도 자기 불을 자기가 때고 있고. 무슨 불을요? 결핍의 불을 지금 계속 때고 앉아있는 거와 같은 거에요. 불평의 불을 계속 때고 있는 거에요. 뭐로요?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써.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자기의 꽁무니에 불을 때요. 그래서 요 글 내용을 한 번씩 읽어보시면 원망의 등, 지금의 등이 혹시라도 불행의 등을 가지고 있으시다면 지금 바로 꺼야 합니다. 원망하고 미워하는 생각은 그만 버리셔야 돼. 불평불만심의 마음의 등은 그만 끄셔야 됩니다. 이건 오래전에 저의 은사 스님께서 써놓은 사월초파일 경문의 글을 통해서 제가 확인한 거거든요.

 

원망의 등, 미움의 등, 자신만이 옳다고 내세우는 그런 등은 이제 꺼야 됩니다. 이걸 꺼야 마음의 갈등의 이 뭐죠? 비난의 등, 용서하지 못하는 이런 용심. 이런 심은 이제 스스로 꺼야 됩니다. 방이 따뜻해지려면요, 그러니까 인생이 좋아지려면 스스로 불을 때야 됩니다. 무슨 불을 때야 되요? 이제? 광명의 등을 때야 됩니다. 그게 하는 게 공부하시는 거고, 기도하시는 거고, 수행하시는 거에요. 그래서 지금 그 마음으로부터 온갖 지나간 미련과 집착으로부터 등을 꺼버리시면 현실 고에, 현실 고에 받혀주고 있던 그런 모든 에너지의 등을 다 꺼버리고 나면, 지금 이 순간부터 지혜의 등이 밝혀지고, 밝히지 말라고 그래도 지혜의 등이 켜집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지장보살~ 지장보살~ 관세음보살~

 

이렇게 감사합니다라고 수행을 하고 있는 동안 지혜가 오지 말라고 그래도 지혜로워집니다. 이건 실제로 해본 사람들만이 압니다. 자기 병든 거 탓하지 말고, 자기 잘못된 거 탓하지 말고, 실패된 것만 헤아리지 말고, 괴로운 것만 헤아리지 말고, 오직 다 부처님께 불성 부처님께 자기 자신을 온전히 맡기고, 오직 답을 기다리고 계시면 불성 부처님께서 가호지묘력으로 항상 존재해 계시거든요. 이렇게 존재해 계시므로해서 지혜의 등이 밝아지지 말라는 이런 법칙이 없기 때문에 자기가 스스로 그치는 동안 다 스스로에게 좋은 일이 막~ 생깁니다. 그렇죠. 그죠. 행복과 번영의 등을 밝혀야 돼요. 그러니까 군불 때듯이 때야 됩니다.

 

참된 진리를 성취하는 불자가 되기를 발원하셔야 되요. 이 세상과 자기 자신을 이겨가는 가장 훌륭한 방법은 불성부처님의 광명의 등을 내 가슴에 밝히는 겁니다. 이게 밝히는 방법이 그러면 어디다 밝힐까요? 머리에다 밝힐까요? 가슴에 밝힐까요? 그래서 그걸 밝히기 위해서 우리가 인등 밝히는 거에요. 부처님 전에 불전에 인등을 밝히고 하는 것은 딱 염렴이 일어나야 되요. 뭐라고요? 내가 부처님 전에 인등을 밝혔으니까 내 가슴 안에, 내 가정 안에, 내 가족들에게 이 지혜의 등이 언제든지 켜지기를 발원하고, 이게 늘 살아계셔야 되요. 늘 요런 믿음이 살아있는 것을 정이라고 표현합니다. 계정혜3학을 얘기할 때 정이 늘 여여해야 돼.

 

자기가 너무 많이 저~ ~ ~ 요즘 말로 얘기하면 오버하고 있으면 아무런 지혜로움이 생기지 않습니다. 지혜공덕이 생기시려면은 정해야 돼. 선정 그러잖아요. 지혜가 생기려면은 편안해져야 돼. 편안해지려면 오직 마음속에서 생기는 삼라만상이 일어나는 온갖 잡다한 것. 온갖 나쁜 것들이 다 감사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태도를 갖는, 이렇게 갖는 순간 우리들의 가슴속에 저 아픔과 한은 점점 사라지고, 지혜공덕이 마음속에 이렇게 살아나시게 되는 거거든요. 오늘 42쪽에 보시면 23번째. 드디어 23번째. 供養諸佛願공양제불원이라고 있습니다. 공양제불이라고 하는 것은 모든 것을 채워주는 것을 공양이라고 그럽니다. 공양이라고 그래요. 공양.

 

우리가 저 살면서요, 한 번씩 움직여서 봐야 돼. 우리가 저~ 살면서 공이라고 하는 것은 이건 사람이라는 뜻이거든요. 얼굴 들어 저 좀 보십시다. 저도 자세히 보면 매주가 왔다 갔다 합니다. 여기 보시면은 이것도 사람이고 이것도 사람이라 그러거든요. 이게 사람이에요. 그런데 세워놓은 것도 사람이거든요. 사람이라는 표현이거든요. 그런데 이 공이라고 하는 것은 이것은 이바지한다는 뜻이겠죠. 같이 한다는 뜻입니다. 사람이 같이하는 거기 때문에 여기에 뭐가 있어요? 공덕이 있다는 뜻입니다. 이게. 이바지한다. 이런 뜻이거든요. 무엇 무엇에 이바지한다라고 하는 뜻도 한가지라고 하는 뜻도 표현하지만, 같이 공이라고 하는 뜻도 있고, 뭘 이바지한다는 공짜 공이거든요.

 

그러면 이걸 같이하는 것은 누가 하느냐? 사람이 하는 거에요. 그러시죠? 그죠? 사람이 하는 거에요. 공덕은 누가 만들어요? 사람이 만들어요. 가장 중요한 것은 모든 것이 사람이 만드는 거에요. 그 사람 중에서도 뭐가 만들어요? 자기 마음 세계가 곧 세상을 만드는 거에요. 부처도 자기 마음에서 일어났고요, 병 불행도 자기 마음의 그림자로 나타난 것이고요. 건강과 행복과 번영도 오직 자기 자신의 마음의 반영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걸 공양이라고 그러는데, 양은 잘 살펴보시면은 너무 잘 아시는 것처럼 이게 양이라는 뜻 아닙니까? 양이 이게 밥을 먹는 거에요. 이게 기른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봐요. 그죠. 혼자 먹으면 아무 맛이 없어. 사람과 더불어 나눠 먹으면서 거기에 뭐죠? 공덕이 생기고. 뭐가 생겨요? 성장이라는 것이 생깁니다. 아무리 귀한 음식을 먹어도 혼자 먹으면 맛없습니다. 우리 잘 아시죠? 그죠? 우리 모든 불자님들 잘 아시죠. 혼자 먹으면 맛없습니다. 이것은 뭐냐 하면 공덕으로써 성장한다. 이런 뜻입니다. 이게 공양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걸 어디 한다고요? 사람이 뭐로 만들어요? 모든 그렇죠. 그죠. 공덕은 어디서 생겨요? 모두 하는 것에서, 모든 것에서 생기거든요. 제불 뭐죠? 그죠? 모든 부처님께 이거를 공양하고 그다음에 뭘 해야 돼? 원해야 돼요. 이거를 뭐라고 말한다고요? 원한다. 이 모든 것을 부처님께 발원한다. 이렇게 되죠. 그죠.

 

글자 그대로 이렇게 아주 너무 쉬운 얘기거든요. 그러니까 쉽게 공부하셔야 되요. 여기 보십시다. 그러면 딱 중요한 것이 있어요. 중요한 게 뭐냐 하면 사람은 무엇으로 만드느냐 그러면은 원하는 데로 간다는 거에요. 거짓말을 거꾸로 딱~ 제쳐 놓고도, 원하지 않는 일은 세상에 생기지 않습니다. 힘든 일도 억울한 일도 아픈 일도 다 자기가 원해서 생겨요. 절대 남 탓할 게 아무것도 없으세요. 어떤 것이라도 자기에서 원해서 일어나는 것만 일어나지, 자기가 원하지 않는 것은 없어요. 절대 가족 원망할 거 없어요. 친구 미워할 거 없어요. 돈 내가 빌려줬는데 왜 나한테 안 갚아. 이러잖아요. 빌려주지를 말지.

 

그러니까 전부 시발은 자기한테 있어요. 저 사람이 나한테 배신을 하지. 이런 것도 자기가 있으니까 남이 배신을 하거든요. 똑같은 맥락에서 출발이 돼요. 정말로 사람한테 저 공덕이 이루어지려면 뭐부터 해야 되냐 그러면 발원부터 일어나져야 되요. 발원. 언제? 지금부터. 뭐한다고요? 원은 무슨 의미에요? 좋아진다는 뜻입니다. 좋아지고 있다라고 하는 사실을 원으로 세우세요. 그런데 이거를 자기적으로 판단하고, 자기적으로 뭐죠? ~ 저건 나쁜 놈이고, 저건 더러운 놈이고, 저건 싫은 놈이고, 저건 좋은 놈이고 이러잖아요. 이렇게 표현하는 것은 전부 자기 입장에서 판단하고 있는 거에요. 전부 자기 입장에서 판단하는 거에요.

 

그래서 이게 시간이 지나면은 어떤 게 옳은 것도 있고 그른 것도 있고 그렇잖아요. 그러니까 지금 내가 내세워서 생기는, 이것이 다른 사람의 고약함이 아~ 저건 잘못됐다라고 이렇게 악쓰고 덤비고, 말하고, 재판하고, 판단하고 이렇게 하잖아요. 그런데 시간 지나 보면은 자기도 어디선가 잘못하고 있는 부분도 사람한테 한 번씩 생기시잖아요. 그런데 그래서 그걸 경계하기 위해서 원을 세울 때는 뭘 원을 세워야 되요? 먼저 선지식이신 석가세존의 가르침에 따라서 원을 그렇게 세우는 거에요. 그래서 이걸 뭐라고 해요? 그죠? 가르침에. 이걸 보고 뭐라고 말해요? 근본세계. 무슨 세계에요? 불성 세계의 기준으로 세우셔야 되요. 그래서 원을 세우잖아요.

 

그런데 원이 자기 것만이 원이 아니라 모든 생명을. 그렇죠. 그죠. 모두라는 것은 모든 생명을 얘기하는 거거든요. 하여튼 먼지도 생명이에요. 버릴 것은 세상에 아무것도 없어요. 필요하지 않은 건 세상에 태어난 적이 않습니다. 나는 이렇게 나이 들어서 쓸데없구나. 이렇게 표현하잖아요. 그건 자기적 생각이고요. 자기적 판단이고요. 모든 것은 다 뭐죠? 생명이 아님이 없다는 거에요. 이 생명은 반드시 뭐가 있어요? 필요한 데가 반드시 있으십니다. 반드시 필요한 존재에요. 아니 봐요. 머리카락 하나도 다 필요한 존재의 세상에 온 거에요. 그만큼 우리가 귀한 존재고 존중받아야 되고 사랑받아야 됩니다. 그런 존재라고 하는 것을 이 공양계에서 이걸 가르쳐줘요.

 

48원 중에 세 번째 설명 드리고 있는 것이 모든 생명을 어떻게 발원해야 되느냐 하면 부처님께 발원해야 되냐 하면 살리는 것에 줘야 되요. _이게 뭐죠? 살리는 거에요. 살리는 생명이에요. _그다음 뭐죠? 도와주는 거에요. 도와주는 것. 養諸_이거 다 기른다는 뜻 아닙니까? 그렇죠. 그죠. 그러면 뭐가 생겨요? 공덕이라는 게 이 사람에게 생기는 거에요. 자기 자신이라는 게 공덕이라는 게 생깁니다. 그래서 그것이 더불어 하나 할 때, 한 사람 한 사람이라도 불문에 이끌어 주는 것, 포교하는 것, 같이 공양 법문 들으러 옵시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 이게 다 이바지하는 거에요. 공덕을 짓는 거에요. 마음을 나누는 거에요. 자비를 조금씩 나눠서 공양하는 겁니다.

 

이런 공양이 이루어질 때 비로소 뭐라고 표현되느냐 하면은 이 말을 제가 요즘 말로 요걸 바꾸면 잘 들어 보면은 이 세상, 이 세상 모든 것은 우리가 지금 설명하고 있는 것은 공덕으로 가득하다는 거에요. 이게 오늘 제목이에요. 이 세상이 전부 공덕으로 들어차 있지 않은 것이 없다는 거에요. 그런데 우린 원이 없는 거에요. 경전을 배울 때도 묘한 것이 있어요. 이렇게 경전을 일주일에 한 번씩 공부하시고 또 되새김하시고 또 이렇게 해나가시다 보면은 저절로 의식구조가 바뀌어요. 생활방식 자체가 바뀌어서 안에서 조금 조금씩 변해가게 돼 있어요. 그래서 밝아지지 말라고 그래도 밝아지고요, 좋아지지 말래도 좋아지게 돼 있습니다.

 

뭐가 문제냐 그러면 엉뚱한 발원을 자꾸 하는 거에요. 아이고~ 나는 병들었으니까. 이렇게. 사고 났으니까. 이렇게. 아프니까. 거기에 당장 그것은 잠깐 피해질 수는 있겠죠. 그죠. 그러나 그런 껍데기 벗으셔야 돼. 정면으로 부딪쳐서 이기셔야 돼. 병 불행은 본래 없는 거에요. 오직 지금 이 순간에도 공덕이 지금 성장하고 있어요. 자라고 있어요. 그게 공양이에요. 딱 하나가 있어요. 중생이 고통스럽게 살 이유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내가 알아버렸어. 두려워하고 살 이유가 하나도 없다는 거에요. 못생기면 어때요? 저처럼. 키 작으면 어떻고, 다리 짧으면 어때? 아무 소용없어요. 왜 그런데 매달려 살아야 돼요.

 

우리가 살면서 저 좀 보세요. 우리가 살면서 이런 걸 느끼셔야 돼요. 완벽하려고 좀 하지 마세요.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마세요. 칭찬받으려고 애쓰지 마셔야 돼. 적당히 즐겁게 사세요. 비난도 감수하고 사세요. 칭찬은 독이 될 수가 있어요. 칭찬은 감사하게 받아 들리지만, 칭찬이 저~ 오만을 불러들이거든요. 그러니까 잘 받아들이셔야 돼. 저 좀 보세요. 아픔이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가슴 아프지 않은 사람을 겪지 않은 사람은요, 절대적으로 큰일을 못해냅니다. 오늘 공양을 같이 나눠 드리고 싶은 게 뭐냐 하면요, 사람은요, 아픔을 겪게 돼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경우라도 한 번씩 한 번씩 우리가 겪게 지내갑니다. 겪고 좋지 않은 것을 경험으로나 체험으로나 또는 무의식적으로나 의식적으로나 다 겪고 지나갑니다. 그렇죠. 그죠.

 

그런데 몸이 약한 사람은 그게 몸에 계속 이 아픔이 하나씩 하나씩 지나가 버리면 아무 문제가 없는데, 요게 마음이 호탕하거나 이게 씀씀이, 좀 편한 사람들은 지나가 버리면 잊어버리고 말거든요. 그런데 남아있는 사람들은 계속 그게 쌓여 있어요. 아픔이 오래가면 그게 뭐가 돼요? 한으로. 한국인이 가지는 정서. 한으로 딱 남아있어 가지고 이게 풀어지지가 않아요. 이게 계속 지나가면 지나갈수록 두 단계로 딱 일어납니다. 두 단계가 뭐냐 하면 하나는 정신력이 몸이 강한 사람은 정신이 먼저 처지게 되고, 한이 자기를 치는 거에요. 어디서 무슨 귀신이 마귀가 이렇게 와서 자기를 힘들게 하는 게 전혀 아닙니다.

 

자기 마음의 그림자가 자기 스스로 한이 자기 스스로 용서하지 못하고, 자기 스스로 이해하지 못하고, 자기 자신의 저 원만하고 완전한 불성을 들여다보지 못하는 과정 안에서 자기를 보지 못하는 거죠. 그래서 몸이 강한 사람은 정신적 치매가 생기기 시작해요. 우울해지고, 슬퍼지고, 살다 살다 보면 어려워져요. 그래서 그 답은 어디 있어요? 그죠? 정신병원에 왔다 갔다 해야 돼. 약 먹어야 돼. 요즘 저기 저 저 정신병원에 가는 것도 나쁘게 생각하실 거 하나도 없어요. 조사에 의하면은요, 세 사람 네 사람 중의 하나는 다 우울증이에요. 암이 네 사람 중 한 사람이 암이에요. 그러니까 이걸 석가세존은 2500년 전에 미리 보셨잖아. 삼계가 다 화택이라고. 지금 꽁무니에 불붙여 놓고 사는데도 지금 몰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