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제가 말씀드리는 내용은요, 이렇게 안내서가 왔는데요
옛날보다 굉장히 발전했다고, 이게요. 종이도 좋고. 나날이 발전 해요.
여기 보면 여래출현품에 대해서 본문을 하십시오하는 내용이 있어요.
여래출현품을 오늘 하는데요
화엄경은 9회 39품 80권, 이게 화엄경이거든요.
9회 설법, 39품 80권 이러는데
여래출현품은 회차로 보면 9회중에 7번째 제7회에요. 회차로는.
품차로 보면 39품 중에 제37품이에요.
그리고 권차로 보면, 권의 차례는 80권 화엄경 중에 50권, 51권, 52권, 세 권이에요.
거기에 해당하는 말씀입니다.
화엄경이라는 것은요, 대방광불을 말씀하는 경이고
화장장, 화장이라는 것은 공덕이 많다, 연꽃 화, 연꽃을 보면 연잎도 많고, 연 씨앗이 꽉 차있거든요. 그래서 많다 또 저장되어 있다, 많은 공덕으로 저장해서
화장은 공덕이 많다 이 소리예요.
많은 공덕으로 장엄을 한다. 장엄이라는 게 꾸민다는 거죠.
(화장: 많은 공덕으로 장엄하다)
화엄경은 대방광불을 말하고 화장장엄을 말하고, 일승권교를 말한다.
불교가 대승불교 일승불교가 있는데, 대승에서 더 깊게 들어가면 한 일, 일승이거든요.
그런데 그 일승 중에서도 둥글 원, 가르칠 교, 일승원교라고 하면 바로 화엄경만을 일승원교라고 그래요.
여기에는 허공과 같아서 모든 불교가 포함되지 않은 게 없다.
그래서 화엄경은 대방광불 화장장엄, 일승원교,
화엄에만 대 자를 붙여요. 대화엄경. 일승원교 대화엄경, 화장장엄 대화엄경, 대방광불 대화엄경, 그게 화엄경이고요.
그런데 이 화엄경은 인과원만이다.
인과원만이라는 게 뭐냐?
이 화엄경은 결과만 원만한 게 아니라 원인도 원만하다.
결과도 원만하고 원인도 원만하다.
이게 뭔 소리냐?
화엄경은 뭘 마지막으로 이룰 때만 그게 훌륭한 게 아니라
시작할 때도 훌륭하고, 중간도 훌륭하고, 마칠 때도 훌륭하고, 다 훌륭하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것을 시작이나 중간이나 마지막이나 어려운 말이 있는데
법성덕용이라,
법성_이 만법의 근원이 법성인데 만법의 근원의 공덕작용이라는 거죠, 시작과 중간과 끝이.
그래서 일체만법이 법성덕용이기 때문에
화엄경은 행행이 본처요_ 걸음걸음이 다 본래 자리에 있다.
갈 행, 간다, 가도 가도 본래자리에 있는 것이 화엄경이다.
또 지지가 발처라, 이른다 하는 이를 지, 이르러도 이르러도 출발한 곳이다.
가도 가도 본래의 곳이고 이르러도 이르러도 출발한 곳이다.
이걸 말하는 게 화엄경이에요.
그러니까 화엄경은 부처님이 성불했을 때만 화엄경이 아니라
처음 발심할 때도 화엄경이에요.
발심도 원만하고 성불도 원만하다.
그래서 초발심과 최정각, 초발심도 원만하고 최정각도 원만해서
다 이게 인과가 법성덕용이고, 대방광불 화장장엄이다.
이걸 말하는게 화엄경이에요.
그리고 전체도 법성덕용이고 부분도 법성덕용이라
부분도 완전하고 전체도 완전하다.
초발심이 없으면 최정각도 없고 최정각이 있는 데는 반드시 초발심이 있다는 거죠.
하나가 있는 데는 전체가 있고 전체가 있는 데는 하나가 있다.
그래서 성불해서 부처님으로 출현하는 것도 훌륭하지만
하나하나 공덕을 닦아나가는 것도 부처님이 출현하는 거와 똑같이 훌륭하다고 가르치는게 그게 화엄경이에요.
그러니까 우리가 여기 이렇게 앉아서 화엄경 법문을 듣고 화엄경 공부를 하는 것은
이게 바로 원만한 성불인 거예요.
그런데 중생은 그걸 모를 뿐이에요.
몰라도 성불은 성불이거든요.
그러니까 1원짜리가 10개가 있어서 10원인데, 10개 전체가 10원인데
그 10원은 1원이 있기 때문에 10원이 된 거예요.
1원 없으면 10원 안 돼요.
또 10원 속에는 반드시 1원이 있어요.
또 1원은 10원이 되고.
그러니까 1원이나 10원이나 똑같은 거예요.
1원 없는 10원도 없고, 10원 없는 1원도 없다, 그게 화엄경이거든요.
일중에 일체요, 하나 가운데 일체가 있다.
일즉일체다, 하나가 곧 일체다.
이게 화엄경이거든요.
지금 이 자리에서 화엄경법문 들으면
그게 십원 속의 1원과 같기 때문에 그게 성불인 거예요.
그걸 가르치는 게 화엄경이에요.
그래서 인과를 항상 말하는데, 처음에 어떤 거로 출발하느냐 하면
부처님의 성불하는 거로 출발하거든요.
또 나중에 발심해서 성불하는 것을 여래출현이라고 말하고요
옛날에 부처님이 발심해서 성불하신 것을 시성정각이라고 그래요, 처음으로 정각을 이루었다.
부처님 법문 듣고 발심해서 닦고 닦고 닦아서 성불했을 때는 그걸 여래출현이다라고 얘기하고
부처님이 옛날에 닦고 닦고 닦아서 부처님이 처음으로 깨달았을 때를 시성정각_ 처음 시, 이룰 성, 바를 정, 깨달을 각, 처음으로 바른 깨달음을 이루셨다, 이렇게 되거든요.
그러면 시성정각은 발심수행이 있었기 때문에 이룬 거예요.
그래서 발심수행이 바로 시성정각이고, 시성정각이 바로 발심수행이다.
이래서 인과원만라, 인이 원만하고 과가 원만하다, 이거거든요.
그러면 화엄경은 초회에는 부처님 성불을 이야기해요.
9회중에 초회, 처음 법회, 처음 회.
부처님 성불을 이야기하는데 부처님이 처음 깨달았을 때 뭐가 어떻게 되었는가?
거기에 대해서 제일 먼저 시작하는게 세존명호품인데요
그 초회 설법은 부처님의 정각을 이룬 내용을 이야기하거든요.
부처님이 정각을 이루니까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지혜가 나타난 거예요.
각이라는 건 지혜거든요.
그러면 이 깨달은 지혜가 뭐냐?
각지인데, 각지는 미혹과 반대되는 말이에요, 미혹.
미혹이 없으면 각지가 없거든요.
미혹에서 깨달은 지혜를 얻는 거잖아요.
그러면 육도범부가 미혹하고 삼세제불이 정각했다.
삼세제불이 되라면 정각을 해야 제불이에요.
그런데 중생이 되려면 미혹해야 중생이에요.
미혹 안 하면 중생일 수가 없죠.
미혹하니까 중생이거든요.
미혹이라는 건 잘 모르는 거예요.
예를 들면 노란 뱀이 동그랗게 있는데, 그걸 황금으로 보는 그걸 미혹이라 그래요.
노란 뱀이 똬리를 틀고 있는데, 그걸 황금으로 알고 잠든 뱀을 주워왔어요.
집에 놨어요. 장롱 깊숙이 놨는데, 이 뱀이 잠에서 깼어요. ㅎㅎ
그럼 얼마나 놀래고 무섭겠어요.
노란 뱀을 황금으로 안 것을 미혹이라고 그러고, 그걸 주워서 온 걸 업이라고 그러고요
나중에 뱀이 잠 깨서 돌아다녀서 물리고도 하고 쫓겨가는 걸 고통이라 그래요. 혹업고라고 그래요, 그게 미혹이거든요.
(혹업고: 미혹과 업과 고통)
미혹이 뭐냐?
우리 몸이 있는데, 이 몸은 지수화풍, 4가지, 4대 육신이에요.
그런데 이 4대를 자기 몸으로 알고요,
또 생각이 있는데 생각은 수상행식, 이 4온을 자기 마음으로 알아요.
4대를 내 몸으로 알고, 4온을 내 마음으로 안다.
그래서 이 몸 받기 전부터 있었고, 이 몸 버린 후에까지 있는 청정법신을 모르고
이 4대 4온 이 몸을 자기 몸으로 아는 이것을 미혹이라고 그래요.
4대를 내 몸으로 알고, 수상행식 4온을 내 마음으로 안다.
이 수상행식이라고 하는 것은 그림자와 같아서 그림자는 몸을 움직이면 몸 따라서 움직이는 게 그림자거든요.
그래서 수상행식 4온은 늘 밖에 경계만 쫓아가요. 경계만 쫓아가요.
그래서 항상 나그네 마음, 나그네가 돌아다니는 게 나그네거든요.
“오늘도 걷는다마는 ㅎㅎ 정처 없는 이 발길 ㅎㅎ”
이 생각이 조금 후에 어디로 갈지, 저녁에 무슨 꿈을 꿀지, 전혀 몰라요 그냥, 헤매고 있어요.
그런데 그것밖에 모르는 거예요.
그러면 뭘 모르느냐?
청정법신을 모르고 4대를 내 몸으로 안다.
청정지혜를 모르고 수상행식 4온을 내 마음으로 안다.
이게 미혹이거든요.
그러면 깨달으면 뭐냐?
공덕을 많이 지어서 마음이 청정해지고
청정해지고 밝아지고 밝아지면
이 몸 받기 전부터 있었던 청정법신을 알아요.
그걸 깨달음이라고 그래요.
또 생각이 아무리 일어나고 일어나도
그 생각 속에는 또 청정한 지혜가 있어요.
그 지혜가 드러나는 거예요.
청정법신을 아는 순간에 지혜가 드러나요.
그걸 깨달음이라고 그래요.
그래서 본래 몸, 그걸 모르고, 지수화풍 4대 몸을 내 몸이라고 한다.
본래 지혜, 그걸 모르고 수상행식 4온을 내 마음이라고 한다.
여기서 본래 몸을 알고 본래 지혜를 얻는 것이
그것이 깨달음이다 이거죠.
처음에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으니까 시성정각을 하니까
지혜가 드러나거든요. 그 지혜가 삼세에 들어간다.
그 지혜는 과거 현재 미래, 아무 장애가 없어요.
지혜를 보면요
이 컵 속에 무량억겁이 여기 다 들어있고, 무량억겁 뒤가 다 들어있고
하나하나의 세월이 없어요, 세월 밖의 것을 봐요,
그래서 그걸 겁의 지혜라고 그래요, 겁 밖의, 겁은 세월이거든요.
겁 밖의 겁의 실상, 세월 밖에 있는 진실상을 보는 게 지혜거든요.
그래서 지혜가 삼세에 들어가고
또 본래신이 신병시방이라, 본래신이 시방에 두루하다.
이것이 부처님의 시성정각이에요.
지혜가 과거 현재 미래에 다 관통하고
우리 본래 몸이 그냥 시방세계에 꽉 차 있다.
그래서 불신이 충만어법계라 (불신충만어법계: 깨달은 몸이 법계에 가득하다)
불신이 그 깨달은 몸인데, 그 깨달은 몸이 법계에 가득하다.
이렇게 계속 가르치는게 화엄경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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