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함께할 책은 스리 니사르가닷따 마하라지의 [자기사랑]입니다.
스리 니사라가닷따 마하라지는 20세기 인도의 스승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잡화와 담배 등을 파는 평범한 재가자의 삶을 살다가,
34세에 스승을 만나 치열하게 수행한 끝에 37세에 완전한 깨달음을 얻었다고 합니다.
이후 수십 년간 가르침을 베풀다가 84세로 입적했는데요.
그의 어록으로 [아이 앰 댓], [의식을 넘어서] 등이 번역 출간되어 있습니다.
내용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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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와라는 여러분 몸 안의 순수한 의식을 의미합니다.
여러분은 몸이 아니라 이스와라입니다.
여러분이 순수한 의식 안에서 안정되면 어떤 개념도 없습니다.
탄생과 죽음에 대한 어떤 두려움도 없을 것입니다.
누구도 탄생과 죽음에 대한 어떤 경험도 가지고 있지 않지만, 그 두려움이 존재합니다.
여러분이 결코 어떤 의심도 가질 수 없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
있지요, 그것은 여러분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입니다.
여러분의 의식이면 제가 말하는 것을 실천에 옮기기에 충분합니다.
여러분의 의식이 신이고, 또한 마야, 즉 신의 힘입니다.
수행자, 곧 참된 구도자는 자신의 형상 없는 성품을 압니다.
그는 자신을 의식과 동일시하는데, 그것이 그가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도구입니다.
우리의 몸은 하나의 집일뿐입니다.
우리가 그 집일 수는 없습니다.
해탈을 욕망하지만, 자신을 몸과 동일시하는 사람을 해탈열망자라고 합니다.
의식인 수행자는 자신의 참된 존재를 깨닫기 위해 의식에 대해 명상합니다.
여러분은 “내가 있다”고 말하지만 이 ‘나’를 놓아버리면 무엇입니까?
“나”라고 말하는 그것은 한 인간입니다.
그것이 살아 있는 것은 아무 형상 없는 의식 때문입니다.
의식은 몸이 아니지만 존재의 맛을 가지고 있습니다.
몸이 우리의 형상이 아닐 때는 우리가 한 남자나 여자일 수 없습니다.
수행자는 아주 진지한 구도자이며, 싯다가 될 때까지 휴식하지 않습니다.
해탈열망자는 신에게 관심이 있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영적인 공부에 관심이 없고, 그들은 속박인이라고 불립니다.
일체의 이전에 의식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의식 외에 누가 스승을 기억합니까?
여러분의 배고픔과 갈증은 형상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제가 그것에게 밥을 먹이도록 배고픔을 옆으로 치워둘 수 있습니까?
만일 몸이 없다면 누가 듣겠습니까?
지금이야말로 몸과 의식 둘 다를 사용할 수 있는 적기입니다.
의식에 대해서 명상하면 이스와라의 상태를 성취할 수 있습니다.
그런 다음 마야의 도움으로 지(知)를 부인하게 됩니다.
모든 것을 아는 자가 진인 혹은 싯다입니다.
여러분이 자신을 한 개인이라고 믿기 때문에 고통과 불행이 여러분에게 영향을 줍니다.
만일 세계가 그것이 가진 고통·불행과 함께 여러분 자신의 정체성이 된다면
여러분에게 어떤 불행이 있겠습니까?
‘나’와 ‘내 것’은 개인만 괴롭히는데, 여러분은 개인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광대하게 현현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닷따라는 단어의 의미는 ‘이것을 직접 보라’입니다.
닷따뜨레야 신은 세 개의 머리를 가진 것으로 표현되는데
그것은 세 가지 성질을 가리킵니다.
그는 위대하고 강력한 의식에서 나왔습니다.
세 가지 성질 모두 모든 산 존재들 안에서 작동하지만
그것들이 결합되어 우리의 존재의 느낌을 형성합니다.
우리의 영원하고 참된 성품은 빠라마뜨마인데, 그것은 늘 깨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깨어있다는 느낌은 원초적 환(幻)에 기인합니다.
그것이 세계로 나타납니다.
그 안에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산 존재들이 어떤 창조주나 파괴주 없이 나타납니다.
자신의 존재를 자각하는 자가 큰 헌신의 핵심입니다.
이것이 물라마야입니다.
세 가지 성질이 그 안에서 비롯됩니다.
그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 행위자는 알려지지 않은 채로 있습니다.
어떤 산 존재도 죽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은 마야 때문입니다.
순수한 음식 기운과 생기가 몸 안에서 한데 섞이기 때문에 존재의 느낌이 전해집니다.
생기가 떠나면 어떤 존재성도 없습니다.
이것의 비밀을 알아야 하고, 그 앎이 없이는 죽음의 아가리를 피해 갈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존재의 느낌은, 생기가 있을 때 몸의 음식 기운의 성질입니다.
생기가 떠나면 여러분이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어제 일조차도 기억하지 못할 것입니다.
깨어 있다는 여러분의 느낌과 세계는 둘이 아닙니다.
이것의 진리를 깨달으려면 스승의 명을 따르십시오.
여러분의 의식은 성질을 수반하는데, 결국 그 의식에서 속성이 없어져야 합니다.
생기가 체중 관리를 포함한 여러분의 모든 활동의 원인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최소한 잠자리에 들 때는 여러분의 의식에 면밀한 주의를 기울이십시오.
아침에 일어날 때도 그렇게 하십시오.
여러분은 몸이 없는 느낌을 불과 몇 초밖에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존경받는 것은 여러분의 의식입니다.
다른 어떤 것을 하는 것보다 거기에 주의를 기울일 가치가 있습니다.
그것을 명상이라고 합니다.
여러분이 몸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여러분은 의식입니다.
우리가 존재하는 것을 알기 위해서 눈이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내가 있다”는 생각은 일종의 병인데, 그것은 자연발생적으로 나타났습니다.
그것은 고요한 상태 안의 어떤 동요입니다.
여기서 크리슈나는 그 자신의 현재 존재가 어떻게 거짓인지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모든 활동은 감각기관들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의식, 곧 아뜨마는 병으로 인해 자신을 몸과 동일시합니다.
많은 병이 몸 안에서 한데 모입니다.
“내가 있다”는 생각이 도래하면 우주적 본체는 무질서를 의미합니다.
실제로는 “내가 있다”의 출현 이전에 있는 것이 아뜨마입니다.
여기서는 제가 어떤 활동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활동은 여러분을 해탈시키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대신 여러분은 온전한 주의를 가지고 들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무엇을 알든, 그것은 여러분의 참된 자아일 수 없습니다.
필요한 것은 영원한 분별입니다.
맹신적 고행은 아무 쓸데없습니다.
움직이거나 움직이지 않는 대상들로 가득 찬 전체 자연은
“내가 있다”는 우리의 생각에 수반됩니다.
그것은 그 생각이 결코 홀로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고요한 상태 속에서 의식으로 인해 생긴 동요가 몸과의 동일시로 이어집니다.
이 병에 전 존재계가 수반됩니다.
그 의식이 사라지면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입니다.
자신이 몸일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사람이 진인입니다.
우리가 몸이 아닐 때는 희망·욕망·갈망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래서 어떤 불행도 없습니다.
바그완 스리 크리슈나는 위대한 화가이지만
그 역시 고요한 상태 속의 동요로 인한 자연발생적 창조물입니다.
그는 그 자신의 창조물을 묘사한 희유한 분입니다.
여러분이 아이에서 어른으로 성장할 때, 자신의 성장을 의식합니까?
그것은 모르는 사이에 일어납니다.
여러분은 의식 이전이고, 감각기관으로는 지각될 수 없습니다.
모든 창조물은 의식의 출현에서 나온 동요에 기인한다는 것을 아십시오.
이 지(知)는 여러분 자신만 알라고 드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의 환(幻)으로서의 전 우주를 드러내 줄 것입니다.
이 ‘내가 있음’은 의식의 출현으로 인한 하나의 소동입니다.
거기서 나오는 출현물은 모두 하나의 꿈이었는데, 그것이 세계로 보였습니다.
세계를 창조하는 데는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또 어떤 노력도 필요 없었습니다.
여러분은 세계를 볼 수 있기 위해 무엇을 했습니까?
이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서는 여러분의 의식을 스승의 두 발로 여기고 명상하십시오.
의식의 출현이 세계를 산출하고, 의식이 사라지면 세계가 사라집니다.
세계가 사라지면 어떤 5대 원소도 없습니다.
이 의식은 마야·마하뜨-따뜨와·히라냐가르바로도 불립니다.
우리는 존재하는 모든 것을 궁극적으로 아는 자를 찾아내고,
그가 누구이며, 그가 어떻게 있는지를 알아내야 합니다.
우리의 희망·욕망·갈망은 우리의 배고픔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삶의 활동들은 필요한 것들을 공급하기 위한 것입니다.
계속 늘어나는 인구는 의식의 출현으로 인한 동요의 결과입니다.
여러분은 방탕한 쾌락을 위해 수백만 루피를 쓸지 모르지만
어떤 만족이나 평온도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자신을 완전히 잊어버리는 깊은 잠 속에서만 진정한 휴식이 있습니다.
진정한 휴식은 “내가 있다”를 잊어버린 뒤에만 있습니다.
여러분은 누구를 숭배해야 합니까?
그것 때문에 여러분이 세계를 알게 되는 그것(의식)을 명상하십시오.
그것이 여러분을 고요함으로 충만한 삼매 속으로 데려갈 것입니다.
오관을 통해서는 결코 그것을 얻지 못합니다.
마침내 여러분이 자신의 지각성의 원인을 알게 될 때
모든 면에서 완전한 고요함의 바다인 여러분의 참된 성품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진지한 구독자님들과 함께하는 [지혜별숲]이었습니다.
오늘도 고요하시고 평온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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