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아가면서 강약
즉 리듬과 박자가 필요하잖아요.
배움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가끔은 쉬면서 놀면서
비워내고, 공간을 만들어야 또 새로운 걸 배우겠죠.
공자는 ‘끊임없이 배우고 정진하라’고 했습니다.
반면에 노자는 ‘끊임없이 안을 비우라’고 했지요.
둘의 사상이 정반대인 것 같아도, 생각해 보면
노자의 말처럼 안을 비워야 공간이 생기고
공자의 말처럼 배우고 실천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이번 시간에는 선과 악을 알아보려고 합니다.
착하고 좋다는 선은 왜 착한 뜻이 되었는지
악하고 나쁘다는 악은 왜 나쁜 뜻이 되었는지
역사를 통해서 알아볼 건데요.
공부라고 생각하지 마시고
그냥 듣기만 하시면 됩니다.
다 듣고 나서, 글자를 보시면 저절로 이해가 되실 거예요.
맹자라고 들어보셨죠?
지금으로부터 약 2,400년 전에 살았던 인물이니까
예수보다도 약 400살이 많습니다.
물론 공자보다는 어립니다.
맹자는 공자의 사상을 이어서 ‘효’라는 사상을 전파했어요.
‘효’ 하면 또 어떤 생각이 떠오르세요?
착한 거죠?
네, 효도를 하는 사람은 다 착하다고 말합니다.
맹자는 ‘효’를 강조하면서 ‘사람은 모두 착하다’고 말했어요.
그게 바로 ‘성선설’입니다.
성선설이 나왔으니 성악설도 나와야겠죠.
이걸 주장한 사람은 순자라는 사람이에요.
맹자보다 약 60살 어립니다.
그러니까 이런 그림은 엉터리예요.
맹자가 60살 때 순자는 한 살이었습니다.
성선설은 ‘사람은 본래 착하다.’
성악설은 ‘사람은 본래 악하다’라고 배웠습니다.
그런데 정말 착하고 악하고로 나눌 수 있을까요?
맹자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사람들은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는 것을 보면
모두 놀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생긴다.
이는 그 부모와 교류하기 위함도 아니고
어린아이를 구해 명예를 얻기 위함도 아니고
어린아이를 구해주지 않았다고 비난받는 게 싫어서도 아니다.”
이렇게 사회 전체의 성선설을 주장하면서
사람에 대한 교육의 중요성을 알립니다.
즉 사람은 원래
적극적이고 선한 기질이 있으니까
잘 보살피면서 가르치면 된다는 거예요.
맹모삼천지교라고
어머니로부터도 가르침의 중요성을 배웠겠지요.
또한 공자의 정신을 이어받아 ‘덕치’
덕으로 정치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럼, 성악설을 주장한 순자는
“사람들은 원래 태어나면서부터 나쁜 존재다”
이렇게 말했을까요?
아닙니다. 절대 그렇지 않아요.
“인간은 가만히 놔두면 악으로 기우는 경향이 있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좀 더 풀어 말하면
사람은 본래 이기적이고, 유혹에 빠지기 쉬운 약한 존재라는 겁니다.
그래서 법과 규범이 있어야 한다고, 법치를 강조했던 거예요.
뭐가 맞고 뭐가 틀린 건 없습니다.
틀린 게 아니고 주장하는 내용이 다를 뿐인데요.
순자의 주장을 성악설이라고 부른다고
나쁠 ‘악’만 생각해서
“성악설은 나쁘구나” 이렇게 생각해서도 안 되겠죠.
그런데 2,400년 전에도
선과 악이라는 뜻으로 이런 주장을 펼쳤을까요?
글자는 비슷하게 썼겠지만 뜻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오늘은 악이라는 한자에 대한 오해를 풀어보려고 합니다.
자 이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착할 ‘선(善)’입니다.
눈에 익어서 읽기는 쉬울 수 있는데
써보라고 하면 대부분 못 쓰세요.
한자를 못 쓰는 이유는 간단해요.
구조를 몰라서 외워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금 쓰는 이 글자는 악할 ‘악(惡)’, 나쁠 ‘악(惡)’이에요.
착할 ‘선(善)’ 나쁠 ‘악(惡)’
모두 우리가 배운 대로 불러보겠습니다.
아까 말씀드린 대로 오늘은 선과 악에 대해 알아볼 겁니다.
착할 ‘선(善)’을 다시 한 번 써보겠습니다.
제가 지금 쓰는 글자가 어떤 한자죠?
네, 여기까지가 ‘양(羊)’자예요. 그렇죠?
그리고 그 밑에 점 2개를 찍었고
가로 획에 네모, 즉 입 ‘구(口)’로 마무리됩니다.
양(羊)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속죄의 제물이었습니다.
그렇게 좋고 나쁨의 판단 기준이었던 거예요.
그러면 어떤 판단이냐?
이 말과 저 말 중, 옳은 말이 무엇이냐에 대한 판단입니다.
그게 우리가 아는 선의 시작이었죠.
그래서 착할 ‘선(善)’이라고 우리가 부르는 ‘선’자의 옛 모습은
이렇게 양이 이 말과 저 말 사이의 중앙에서 결정하는 모습이었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두 사람의 말 중에서
옳은 말만 골랐기 때문에
말씀 ‘언(言)’이 하나만 남아서 양의 밑에 자리 잡게 됩니다.
그래서 이런 모양이 되었었는데요.
다시 세월이 흐르고 흘러서
착할 ‘선(善)’ 자는 지금의 모습으로 자리 잡게 된 거예요.
양의 흔적은 제대로 남았지만
말씀 ‘언’은 굉장히 간단해진 모습이죠.
이제 악할 ‘악’을 써보겠습니다.
그 히스토리를 찾아가 보면 억울한 한자들이 참 많이 나옵니다.
제가 알기론 이 한자도 제법 속이 상할 것 같은데요.
‘악’ 자의 참뜻을 알기 위해 분해를 해보면
지금 쓰고 있는 이 글자 바로 버금 ‘아(亞)’라고 부릅니다.
“뭐 뭐에 버금간다”라고 할 때의 버금입니다.
즉 비슷한데 그다음 거라는 뜻이에요.
버금 ‘아(亞)’ 밑에 마음 ‘심(心)’이 있는 구조인 거죠.
즉 이 뜻은 뭐냐면
뭔가가 1등, 최고, 최선이 있고 그다음 2등, 차선이 있다는 겁니다.
다음 ‘차(次)’자와 함께 차선이라는 뜻인데요.
쉽게 말하면 착할 ‘선(善)’이 있고, 그다음이 ‘선’이라는 얘기예요.
그렇게 우리가 알고 있는 악할 ‘악(惡)’자는
원래 나쁜 뜻이 아니었고
착할 ‘선(善)’이라는 한자에 그다음 정도
버금가는 마음이라는 뜻이었던 겁니다.
성선설, 성악설도 그렇잖아요.
착한 심성이 있기도 하고, 유혹에 빠질 수 있는 심성도 있는 겁니다.
이번 시간에는 이렇게 선과 악을 알아봤습니다.
양이 선택한 것은 착할 ‘선(善)’이 되었고
그와 다른 그다음 마음이 악할 ‘악(惡)’이 되었던 거죠.
오늘도 감사합니다.
맛있는 글씨 글맛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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