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덕마음공부, DanyeSophia

[현대선24] 삶 자체로 깨어난다 / 피올라 현대선 5강 "삶이 깨어나는 순간" 7회

Buddhastudy 2024. 8. 13. 19:25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에 여러분이 깨났어요.

그럼 여러분은 변하는 것이

생각 감정 느낌이라 그랬지

그럼 자기 생각, 감정, 느낌, 상처, 과거의 추억, 기억, 악몽, 누군가의 갑질

이런 걸 왜 여러분은 지금도 붙들고 있는 거예요?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그거 환영 정보잖아.

근데 왜 붙들고 있는 거야?

 

본질을 봐요. 변하는 거라고

그걸 변하지 않게 하는 거는 뭐야?

내가 붙들고 있으면 변하지 않아요.

그걸 집착이라고 그래요.

 

그러니까 부처님이

중생이 무명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유는

탐진치, 삼독 때문인데

삼독의 원인은 집착이라고 그랬어요.

뭔가에 집착하고 있는 거야.

그게 뭐가 됐든 간에

무슨 말인지 아시겠죠?

 

또 내가 집착을 놓으라고 하면

여러분들은 거꾸로

워낙 이런 프로그램이 아주 깔려 있어요.

무슨 생각을 또 하냐면

집착을 놓으라고 그러면 허망해서 어떻게 살아

내지는 집착을 놓아야 되는구나. 그럼 거기 아무것도 없겠네.”

또 이런 생각을 하고있는 거야.

그러니까 반대편 생각에 가서 붙었어.

자기가 또 그런 생각을 만들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러니까 흑백 논리에 빠져 있는 거예요.

 

여러분이 좋아하는 음악을 들어봐요.

좋아하는 음악을 들을 때

여러분이 그걸 가볍게 듣지, 심각하게 들어?

예를 들어

요새 누구야 그 우리 와이프는 영웅이?

영웅이가 나오면 춤을 춰요.

그러면 영웅이 노래를 하나 있다고 합시다.

어쨌든 그런 노래가 나왔다고 합시다.

 

그러면 심각하면 춤이 나오지 않을 거 아니야.

저녁밥을 준비하다가 영웅이 노래를 틀어주면

궁둥이로 춤을 추는데

그러면 그게 심각하면 춤이 나와요?

그게 집착이에요. 그러면 아니죠, 그건 뭐야?

즐기는 거야.

우리가 즐기는 거하고 집착은 분별을 해야 돼요.

구별을.

 

-즐기는 건 뭐냐 하면

언제든지 놓을 수 있으나

지금 그거를 가볍게 쥐고 맛을 보는 거고

 

-집착은 못 놓겠다는 거예요. 놓으면 안 돼.

그럼 내가 손해 나는 것 같고, 억울한 것 같고

뭔가 지금보다 나빠질 것 같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아시겠죠?

 

그러니까 흑백 논리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셔야 돼.

이게 미세한 생각이라는 거예요.

이 생각 아니면 저 생각에서 떨어지는 거야. 아시겠죠?

 

--

그러면 두 번째 실습을 한번 하는데

여러분이 앎이 좀..

자기가 뭔가 환해진 것 같지 않아?

이 앎을 각성하게 되면 환해집니다. 눈앞이 환해져요.

 

두 번째 여러분은 자기 삶이 언제부터 시작됐다고 생각해?

삶이 뭐예요?

개념이.

그러니까 이 삶이란 말이 가르치는 게 뭐냐고

이 몸뚱이를 가르쳐요?

 

삶이 가르치는 것은 뭐냐 하면

모든 걸 가르치고 있어요.

이 우주, 세상, 여러분이 사랑하는 사람, 미워하는 사람,

여러분의 직업, 직장, 대한민국, 피올라마음학교 기타 등등

모든 거를 다 그 안에 품고 있어, 삶은.

모든 걸 다 자기 안에 품고 그 안에서 끄집어냈다가 사라지게 하고도 있어요.

 

/삶이 바로 지금 여기 이거예요.

지금 여기가 삶이야.

지금 여기에 다른 이름이 삶이야, 안 그래요?

있는 그대로가 삶이야./

 

이 삶이 뭔지를 한번

이런 말로 갖다 꼬리표를 붙이지 말고, 지금 한번 체험해 봅시다.

삶을 체험하기 위해서 필요한 거는 아무것도 없어요.

 

여러분 자기 손을 한번 이렇게 만져보세요. 비벼보세요.

이제 하지 말아보세요.

그 차이가 뭐예요?

비빌 때하고 안 비빌 때 차이가 뭐예요?

 

-비빌 때는

의식이나 이런 것이 전부 이 감각에 집중돼 있어요.

의식이 여기에 확 몰려서 이것밖에 없다고 그죠?

-안 하면 의식이 퍼져서 이렇게 허공에 이렇게 두루하고 있어요.

이게 중생심이에요.

 

그러니까 진짜 깨어난 사람은

이걸 하나, 가만히 있으나 똑같아요.

?

가만히 있어도 그 안에서 이런 것들이 살아있어요.

 

근데 중생은 뭐 하면 바로 가서 들러붙는 거야, 그것밖에 없어.

 

여러분 잘 봐요.

자기가 화날 때는 화나는 것밖에 없어요.

밥 먹을 때는 밥 먹는 맛밖에 없다고

음악 들을 땐 소리밖에 없어.

계속 그거에 가서 떨어지는 거예요.

 

근데 실제로 여러분이 이 삶 그 자체가 깨어난다는 거는

정신을 분산한다는 게 아니고

모든 것을 앎으로 충만하게 가득 채웠다는 얘기야.

 

모든 것이 여러분 안에서 깨어나는 거예요.

그러면 음식 맛을 보면서도 공기 맛도 알아.

여러분이 간혹 산에 가서 김밥 꺼내봐 봐.

진짜 공기 맛을 맛보면서 김밥을 먹어요.

그만큼 깨어 있는 거예요.

 

삶에 깨어 있다라는 것은

삶이 뭐냐?

이 모든 것이라고 그랬어요.

지금 이렇게 여러분 살아있잖아.

살아있으면서 체험하고, 생각하고, 느끼는 모든 것이 삶이라고.

 

근데 이것이 하나에 몰리지 않고, 하나에 빠지지 않고, 하나에 갇히지 않고

모든 것이 전체가 살아있는 거야.

이게 삶이 깨어나는 순간이에요.

 

그러면 세상이 진짜 생동감이 있어요.

천국이 바로 여기구나를 알 수 있어요.

 

천국은 어느 곳에?

눈앞에 있어요.

왜 못 봤느냐?

자기가 뭔가에 집착하고 붙들고 빠져 있으니까.

 

이렇게 쏠리는, 자기도 모르게 문뜩 빠지는, 이런 것들에서 벗어나면

진짜 모든 것이 평등해집니다.

어느 한쪽에 치우치질 않아요.

평등해지면

음식 맛을 보면서도

음식 맛을 보기 전에는 아무 맛이 없었죠.

그 무미의 맛도 같이 봐요.

음악을 들으면서도

음악을 들으면서 음악이 원래 없었던 침묵의 소리도 같이 들어요.

사운드 오브 사일런스라는 노래가 있잖아.

침묵의 소리.

그런 사람이 이 선문답을 알 수가 있어요.

 

우리 박수는 두 손으로 치잖아요.

한 손이 내는 박수소리를 아느냐? ”

이거 선문답이에요.

그럼 어떻게 답할 거야?

이게 벌써 생각에 빠졌기 때문에 답이 안 나오는 거야.

 

그러니까 우리의 감옥은

이렇게 내가 매 순간 만들어내고 있다라는 거예요.

 

그래서 깨어 있으라는 말이

진리로 가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에

뭘 믿고, 무슨 뭐 매달리고, 뭐 노래 불러서 되는 게 아니고요.

자기가 깨어 있는 수밖에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