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시간을 시작하겠습니다.
자 아까 처음 제가 시작할 때
반야심경은 모든 경전도 마찬가지지만
“너희가 이렇게 해보면 깨달을 것이다, 깨어날 것이다.
깨달아 보니까 이렇더라”라는 얘기라고 했어요.
그렇게 해석을 해야지
달리 뭐 뜻이 어쩌고저쩌고 하면
그건 다 분별 망상입니다.
그러면 반야심경은 왜
무안이비설신의 무색성향미촉법(無眼耳鼻舌身意 無色聲香味觸法) 이라고 했을까?
분명히 이렇게 눈이 있는데.
...
스승 되시는 스님이 동자승을
“아 나는 너를 가르칠 스승이 못 된다” 해서 유명한 선사한테 보냈어요.
“얘가 큰 그릇이니 제발 잘 좀 지도해 달라”고.
그래서 큰 선사 밑에서 깨어난 유명한 제자가 된 거예요.
이거를 알기 위해서 우리가 한번 실습을 해봅시다.
여러분 이제 눈 감고
돌아가신, 아니면 지금 살아계셔도 좋은데
어쨌든 부모님을 한번 눈앞의 이미지로 떠올려 봐요.
눈 감고
떠오르죠?
자, 눈 뜨고 떠올려 봐요.
똑같은 이미지가 눈앞에 떠오르죠?
그럼 이게 눈이 본 거예요? 아니면 다른 게 본 거예요?
다른 게 본 거죠.
이게 성품이에요.
성품이 이렇게 보는 거예요.
우리는 눈이 본다고 착각하고 있는데
무안이비설신의 이걸 가르치는 거예요.
이 진실을.
“네 눈이 보는 게 아니다.
귀가 듣는 게 아니다.
이 자리가 보고 듣는 것이다.”
이걸 가르치기 위해서
“무라고 해봐라”
이렇게 가르쳐 주는 거예요.
제가 참 희한한 꿈을 좀 옛날에 많이 꿨는데
그중에 하나가 파가니니가 나를 위해서 바이올린 연주를 해 줬는데
기가 막힌, 정말 세상에 그렇게 아름다운 걸 들은 적이 없어요.
근데 우리 학교 다닐 때 배운 논리로는
악기가 소리를 연주해서 공기가 공명해서
공기가 매질이 돼서
귀로 그 파장이 전파가 돼서
달팽이관을 때려서
달팽이관이 그 똑같은 진동으로 진동을 하면서
우리가 그 바이올린 음색을 알아서
이게 그 현대 과학의 설명이잖아요.
근데 꿈속에서 그거 들을 때는 어떡하는 거야?
그 달팽이관은 어디 간 거야?
여러분 꿈속에서 소리 들은 적 없어요?
있죠?
누가 부른다든가.
그럼 그건 뭐냐고.
그러니까 여러분 잘 생각해 보시면
여러분이 어떤 거 하나에 아주 몰입해 있을 때
누가 불러도 잘 안 들립니다.
몰라요.
귀가 멀쩡히 잘했는데 모른다고.
뭐가 듣는 거예요?
이게 듣는 거예요.
이 세상에 어떻게 나타나 있을까?
이렇게 듣는 놈이, 이렇게 보고 있는 거예요.
놀랍죠?
이 자리가 부처님 자리야, 별거 아니야.
이게 하나님 자리예요.
그래서 하나님은 어디에도 안 계신 곳이 없고
항상 우리와 같이 하시고 영원히...
성경에도 보면
그런 말이 무수히 나와요.
“내가 항상 너와 같이 하리라.”
그러니까 이 자리를 깨어나기 위해서
이 자리에 깨어나기 위해서는
우리는 해야 될 일이 뭐냐?
제발 분별만 안 하면 돼.
“그거 눈이 보는 거지요.”
“그거 내 귀가 듣는 거지요.”
실제로는 이 H₂O에 해당하는 이 생명의 자리가
보고, 듣고, 하는 거예요. 아시겠어요?
이게 부처님 법신 자리예요.
그러니까 “이 자리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
지금 한 번, 부디 한 번
무안이비설신의 무색성향미촉법이라고 해 봐라” 이 말입니다.
얼마나 자상하고 구체적인 가르침이에요.
근데 이 말 따라 공부할 생각은 안 하고
계속 목탁만 치면서요.
이러다가
“왜 눈이 없다고 하죠?” 하면
“응? 나도 모르겠는데.
“몰라요, 저기 가봐요.”
이게 뭐냐고.
순, 자기 생각으로 공부하는 거 아니야.
설명은 잘해요. 그냥.
근데 왜 없냐고 물어보면 대답을 못해.
그러니까 없다라는 걸 가르치는 말이 아니라
‘없다고 해보라’는 ‘권고’인 거예요.
한번 없다고 해봐.
수능엄경을 보면
수능엄경을 읽어보신 분?
뭐 안 봐도 되긴 하지만 어쨌든 보면 더 좋죠.
나중에 시간 나시면 꼭 한번 보세요.
굉장히 좋은 경전입니다.
수능엄경은 관세음보살이
자기가 어떻게 깨어났지를 말해주고 있어요.
근데 수능엄경을 여러분이 보시면
관세음보살이 자기가 깨어난 법, 방법을 설명하는데
이근원통법이라는 걸로
나는 깨어났다고 설명하고 있어요.
경전에서.
이근원통법이 뭐냐 하면
귀를 통해서 이 자리가, 성품이,
본래 항상 여기 있다는 것을 ‘나는 깨달았다’ 이 말이에요.
*!
보통 사람은
“징소리구나” 하고, “벨소리구나” 하고 이거 따라가는데
관세음보살은
“이 소리 듣는 놈이 뭐야?” 하고
이 보이지 않지만
여기 있는 이것을 깨달았다, 이 말이에요.
아시겠어요?
그걸 이근원통법이라고 하는 거예요.
이근_ 귀를 이(耳)라고 하죠, 뿌리 근(根)
귀의 뿌리에 뭐가 있는가를 발견하고
원통_ 두루 원만하게 깨달았다, 통했다, 이 말입니다.
아시겠죠?
그러면 여러분 잘 봐요.
관세음보살, 즉 관자재보살이
수능엄경, 다른 경전에서
이근원통법을 자기가 깨달았다고 경전에서 말했는데
왜 반야심경은 관자재보살이 갑자기
조견오온개공을 했다고 딴 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
경전과 경전이 서로 부딪치네.
그러니까 반야심경의 관자재보살을
관세음보살로 해석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럼 뭐라고 해석해야 돼?
관자재_ 내가 여기 있음을 관하는 이 자리가 또 공부하겠다고 하는데
이렇게 해석해야 된다는 거야, 아시겠죠?
근데 그렇게 해석하는 데가 하나도 없어.
전부 생각에 빠져서.
자, 그러면 무안계내지 무의식계
무안이비설신의 무색상미촉법에는
무안계 내지 무의식계(無眼界 乃至 無意識界)라는 말이 또 붙어서 따라 나옵니다.
무안계
안계_ 눈에 보이는 세계,
의식계_ 의식으로 분별하고 상상하는 모든 세계
이것들이 다 없다는 거예요.
없다는 말이 아니라
정확히 말하면
“없다고 해보라”는 말이죠. 아시겠죠?
왜? 왜 또 그러고 있을까?
이 자리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 또 그러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는 이 눈에 보이는 세계가
실제로 있다고 믿어요.
그렇지만 첫째
시력이 좋은 사람은 멀리까지 보고
시력이 나쁜 사람은 코앞만 봅니다.
그다음에 주의력이 깊은 사람은 한 번만 보고도
저 아줌마 가방이 명품인지 아닌지 바로 알아보는데,
주의력이 좀 산만한 사람은
저 아줌마가 가방을 갖고 왔는지, 안 갖고 왔는지도 몰라.
그러니까 우리는 다 똑같은 거 보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자기가 보는 만큼만 보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무안계인 거야, 원래는.
거기다 무의식계
의식이라는 게 뭡니까?
여러분이 이렇게 생각하고, 의식, 육식 활동하는 거
이것도 우리는 그걸 믿고 살지만
여러분의 의식이
여러분을 속이거나 사기친 게 한두 번이야? 안 그래요?
나중에 보니까 자기가 자기 생각에 속았거나
자기 느낌에 속은 거 아니야, 그죠?
그러니까 세상이 이렇게 살기 힘든 거지
자기가 본 게 다 정확하고 딱딱 다 맞아떨어져 봐요,
여러분 다 재벌 됐지, 안 그래요?
그러니까 무안계 내지 무의식계
“제발 너의 그 헛된 감각기관이나 의식활동 내용
신기루 같은 그것을 믿지 말아라.
한번 없다고 좀 해봐.
그럼 본체가 뭔지 그게 드러난다” 이 말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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