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은 대상이 정해지지 않은 각성된 의식 상태다.
삶이 광휘로울 때나 평지풍파같을 때라도
그것이 단지 유희, 연극이라는 것을 알게 해준다.
그런 알아차림이 우리 삶을 더욱 생생하게 한다.
명상은 생각에 휘둘리는 삶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거기서 힘이 나온다.//
오늘은 ‘다 괜찮다’ 하는 제목으로 한번 얘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드물게 바쁜 와중에도 고요한 순간들이 있습니다.
잠에서 방금 깼을 때
의식은 각성했는데
아직 오늘의 일정이라든지, 다 하지 못한 숙제라든지
이런 것들이 아직 떠오르지 않은 상태가 있을 거고요.
또 하루일과가 저물 때에, 땅거미가 내려앉을 때쯤에
노을을 바라보면서 하염없이 가만히 앉아 있을 때라든지 뭐 있죠.
등산 열심히 하고 땀 흘리고 나서 중간에 잠깐 앉아서 숨을 고르면서 경치를 바라볼 때라든지
뭐~ 많죠.
그 이외에도 많은 멍때리기들이 있고
이런 경우에는 뇌파와 심파가 많이 가라앉아서
고요하고 차분해지는 것을 우리가 경험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걸 통째로 넓은 의미에서 명상이라고 하는데
이 명상의 어떤 의식적인 상태를 묘사하자면은
아까 이야기한 것처럼
어떤 특정한 대상이 정해지지 않은, 생각의 대상이 정해지지 않은
의식의 각성상태
각성이 되어 있는 의식인데
특정한 주제가 테이블 위에 올라와 있지는 않은 상태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알파파의 상태라고 하기도 하고요.
그러니까 이때는 왠지 맑고 또렷하고 기분도 괜찮습니다.
이런 상태가 명상의 초보적인 상태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이것은 3분만 가만히 눈을 감고 앉아 있어도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생리적인 현상이기 때문에
항상 권유할 만한 일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때 조금 더 파고 들어가 보면
우리는 진리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것을 알 수가 있는데요.
그것은 뭐냐 하면은 메시지가 있는 것이죠.
그건 뭐냐 하면은
우리는 뭐든지 바깥에 특별한 대상을 만들어 내고 성취하기를 추구하고 있는데
그거 없어도, 특별한 대상이 없어도
이미 각성 자체가 충만하고 만족스럽다라고 하는 것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죠.
끝없이.
왜냐하면은 Nothing, 낫씽 노씽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말할 수도 있는데
노와 씽을 결합하면
‘뭐라고 말할 수 없다’라는 것이거든요.
그러니까 삶이란, 진리란
특정 물건이 아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특정 물건이 아니기 때문에
그걸 또 반대로 해석하면 ‘모든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죠.
그래서 내 눈앞에 펼쳐지는 좋고 나쁜 모든 것들이 진리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고
근데 왜 좋고 나쁘냐?
그건 내가 그렇게 기준을 세워서 판단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죠.
그래서 이 명상을 하면서 느껴지는 고요함
또 대상이 정해지지 않은 각성 상태는
뭘 우리에게 말해주느냐?
아무것도 아니어도 된다라고 하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너는 안심을 해라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이죠.
네가 지금 처한 상황이 천차만별로 다를지라도
너는 안심을 해라.
그런데 우리는 특히 고도의 경쟁 사회에서 길러진 우리들은
엄청나게 뭐가 돼야 된다, 성취해야 된다.
그리고 만약에 네가 아무것도 아니라면
넌 정말 우스운 인간이 될 것이다
또는 루즈, 실패자가 될 것이다
이런 압박감 같은 걸 많이 가지고 있죠.
그래서 뭐라더라
잘 살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험한 꼴 보지 않기 위해서 애를 써야 되는
이런 상황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근데 명상은
그것 또한 내 생각에 불과했다
이런 얘기를 할 수 있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는 인생을 숙제처럼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정확하게는 삶을 견뎌내야 될 그 무엇으로
알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근데 우리는 뭐 때문에 견뎌내죠?
뭘 위해서 그걸 견뎌내죠?
그 뒤에 무슨 영광이 있을까요?
사실은 우리는 이 상황을 참아도 되고 안 참아도 되는 것이죠.
그건 내 자유죠.
그건 내 삶이고.
그리고 참는 것과 안 참는 것의 기준도 다 내 속에 있기 때문에
이런 얘기를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사회화된 속에서 자라나죠.
그러니까 끝없이 이래야 된다, 저래야 된다라고 하는 것을 주입받긴 하지만
결국은 20살 이후에 내 삶은 내가 책임져야 된다.
그럼 책임지는 것을 우리가 추궁할 수 있으려면
선택할 수도 있어야 되는 것이죠.
그래서 선택하지 않고 스스로를 삶에 희생시켜 버리는 것도
한 번은 생각해 봐야 할 문제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이죠.
해봤는데 ‘이거 아닌 것 같은데?’ 그러면
깊이 생각하고 다른 행동을 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아무튼 우리는 자의반 타의반
상당히 혼란스럽고, 고통스러운 현실에서 살고 있다
이렇게 말할 수 있겠죠.
입시 경쟁, 취업 경쟁, 집 사는 것도 그렇고, 아이 낳는 것도 그렇고
아이도 생각대로 잘 안 자라주기도 하고
부부간의 관계도 그렇고
인간관계도 복잡하고
세상이 정말 어렵습니다.
어려운데 이런 현실에서 우리는 어떻게 하는가 하면
나는 이번 생은 이런이런 정도로 인과관계를 설정하고, 논리를 세우고, 프레임을 만들어서 ‘인생은 이런 거야’라고 해서
거기에 많이 의지를 합니다.
불자라면 ‘전생의 업을 내가 지금 닦고 있는 정화하고 있는 과정이다’
이렇게 합리화할 수도 있고
그것도 견딜 만합니다.
근데 중요한 것은
이런 현상을 수용을 하든, 혹은 거부를 하든
수용하면 수용한 대로 대가가 있고
거부하면 거부하는 대로 대가가 있는 거죠.
왜냐하면 선택했기 때문에.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한다는 것은
그 반대적 측면도 동시에 선택하는 것이다라고 하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무리한 부탁을 받았을 때
좋은 마음으로 들어주자
혹은 내 희생이 필요하지만 들어주자 라고 해서 들어준다고 하면
또 내가 거기에 시달리고
‘이건 아닌데’ 하면서 마음의 괴로움이 있을 거 아닙니까?
이런 대가가 있는 것이죠.
또 거부를 하면, 서운하기도 하고, 섭섭하다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고
일정 부분 다음번에 내가 부탁하기 어려울 수도 있고.
그런 모든 선택에는
그런 반대급부가 있다하는 것만 알고 있으면
선택은 나의 자유다.
수용하는 것이 옳으냐? 거부하는 것이 옳으냐?
이런 것들은 없다
이렇게 말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은
명상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은
내가 현실을 고통으로 해석하면서
그것을 의지하기 위해서
뭔가 프레임을 만들고
그 프레임에 기대서 사는
굳이 이런 것이 필요 없다라고 하는 얘기를 하는 것이죠.
근데 안 그래도 얇은 유리처럼 지금 겨우겨우 유지하고 있는데
그런 프레임마저 걷어가 버리면
이것은 정말 쪽박을 깨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이야기할 수도 있겠죠.
그런데 기본적으로 명상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을 어떻게 보는가 하면
쪽박에 의지해서 겨우 빌어먹고 사는 거지가 아니다.
너는 이미 모든 것을 가진 왕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러면 힘이 있어야 되겠죠.
힘 없이 왕자 놀이를 하는 것은 우습죠.
그래서 명상이 필요한 것입니다.
[명상]은 뭐냐 하면 [힘]을 줍니다.
무슨 단전에 큰 힘을 주는 그런 의미가 아니고
[에너지]가 생기는 것이죠.
그 에너지라고 하는 것은 뭐겠습니까?
아까 이야기한 기원, 근원이
대상이 아직 정해지지 않은 각성상태, 의식의 각성상태
그 찰랑찰랑한
그것이 에너지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현실 혹은 일상에서 부딪히는 이런 것은 엄중하죠.
엄중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유희다, 그건 놀이다
이렇게 얘기를 할 수가 있는 겁니다.
왜냐하면 아까 이야기한 것처럼
낫씽, 삶이라고 하는 것은 뭐라고 이름 붙일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이거냐 저거냐, 좋으냐 싫으냐, 좋은 일이냐 나쁜 일이냐, 행복이냐 불행이냐 하는 것은
나의 해석이죠.
근데 현상은
무심하게 우리에게 닥쳐올 뿐이죠.
그렇게 보이는 것이
명상을 통해서 끌어낼 수 있는 힘이다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삶은 유희다
그러면 유희는 두 가지가 있죠.
-막 평지풍파라든지, 아닌 밤중에 홍두깨, 백주대낮에 날벼락 같이
우리가 그 삶을 다이나믹하긴 하지만
엄청나게 고통스러운 것으로 경험할 수도 있고요.
-또 가을 오후에 햇빛이 누우면
그 무지갯빛 색깔이 확 빛의 광기가 아주 찬란하거든요.
그런 것처럼 막 현실이 아닌 것 같이
그렇게 멋지고 아름답게 느껴지기도 하죠.
삶이라고 하는 것은 양면을 다 가지고 있고
이런 면도 겪고, 저런 면도 경험을 합니다.
그래서 매우 실감나는 유희, 연극, 영화, 드라마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런데 우리가 예를 들면
명상을 통해서 혹은 깨달았다고 칩시다.
그래서 내가 우리 삶이라고 하는 것은
한편의 그럴듯한 연극이다.
이렇게 알았다고 했을 때
내가 연극 배우다 라는 것을 자각했을 때
우리는 연극을 그만두겠습니까?
아니죠.
연극을 합니다.
연극을 하는데
나라는 생각 없이 연극의 배역에 더 몰입할 수 있죠.
‘이거 연극이야’
그럼 더 실감나게 몰입해서
연극을 정말 잘 연기할 수가 있죠.
하지만 그 연기하는 배우자는
연기의 배역에 따라서
행복과 불행이 정해지는 것이 아니고
‘얼마만큼 실감나게 자기 배역을 연기했느냐’
이게 더 중요하고 그렇게 더 잘 되죠.
왜냐하면 나라고 하는 방해물이 없으니까.
그래서 삶이 굉장히 다이나믹하면서도 고요해질 수 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동전의 양면이 동시에 있죠.
한쪽은 다이나믹하고
한쪽은 고요한 것이 가능하다라고 할 것입니다.
그래서 무슨 일이 일어나도 괜찮은 거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낫씽, 아무것도 이름 붙일 수 없기 때문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게 아니에요, 사실은.
그래서 좋은 일이 일어나도 혹은 안 좋은 일이 일어나도
우리가 거기에 우리가 둘러 빠질, 사로잡힐, 묶여 있을 이유가 없다 라고 하는 것을
일깨워줄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
노-씽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에, 이름 붙일 수 없기 때문에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행복과 불행으로 [이름붙일 때]만이
그것은 우리에게 [작용]을 한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저는 39에 공황증에 걸렸고, 51에 뇌경색이 걸렸는데
제 얼굴을 보면 되게 천진난만하지 않습니까?
철이 덜 들어서 그런지 몰라도
‘괜찮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는 ‘안심해라’ 이런 얘기할 때 잘 안 와닿죠.
‘안심해라’ 이렇게 이야기할 때
근데 이게 진짜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명상]을 통해서
내가 [이름 붙이지 않을 때], [판단하지 않을 때]
[힘]이 생기거든요.
모든 것을 좋은 것으로부터 또 나쁜 것으로부터도 붙잡히지 않을 힘이
나한테서 생겨납니다.
그 원리는
내가 이걸 버리면 저것에 붙잡히지 않아도 되죠, 그죠?
내가 출세할 욕망을 버리면
출세하지 못할까 봐, 승진하거나 이렇게 당선되지 못할까봐 느껴지는
괴로움도 두려움도 없겠죠.
그래서 이것밖에 없죠.
그래서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다.
그럼 내가 욕망을 가지고
두려움 없이 살아가는 방법은 없다라고 하는 것을 깨닫는 사람이
그게 진짜 깨달음이죠.
그래서 우리는 수행을 열심히 하면
내 욕망을 굉장히 능률적으로 달성할 수 있지 않을까?
그건 망상이죠.
하여튼 그래서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다’라고 하는 것을
깨닫고 체득하고 적용시켜서 살 수 있으면
그 사람은 해탈한 사람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고
해탈한 사람은 이것도 좀 사족인데
일을 더 잘할 수 있다.
왜냐하면 걸림이 없으니까, 마음에.
살아가는 게 쉬운 일은 아니고 괴롭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생각 때문]이다라고 하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명상은 뭐냐?
생각에 휘둘리는 삶을
‘내가 그렇게 휘둘리고 있구나’라고 하는 것을
입체적으로 알아차리는 일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앉아만 하는 게 명상이 아닌 거예요.
내가 생각 휘둘리고 있고,
생각이 나의 삶을 어떻게 주인 노릇하고 휘두르고 있는가를 알아차리는 것
그것이 명상이다.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고
그런 명상이 힘이 있다.
그 힘이 우리를 해탈하게, 벗어나게 한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는 자유를 원하는데
사실은 하고 있는 일은
더 속박 속으로 스스로를 깊이 몰아넣는 일일 수도 있다.
총을 거꾸로 들고 전쟁에서 이길 수는 없다
이런 생각을 해볼 수 있겠습니다.
그런 것을 보아내는 것
그것이 힘이고
보는 것이 명상이다 라고 하는 말씀으로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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