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라는 이름이 부처는 아니에요.
깨달음이라는 이름이 깨달음은 아닙니다.
공이라고 하는 것은
이 공의 뜻을 안다고 해서
우리가 우리 본래마음이라고 하는 것을 깨닫는 건 아니에요.
무상, 모습 없음이 어떤 뜻인지를 안다고 해서
이걸 깨닫는 건 아닙니다.
이 깨달음으로 안내하고
이 깨달음 쪽으로 건너오게 하려고
이름을 붙인 뗏목들이에요, 뗏목들.
우리는 이 뗏목을 타고 건너기만 하면 됩니다.
공, 이 말을 듣고
그냥 자기 본래 마음을 문득 깨달으면 되는 거야.
이게 직지인심이에요.
무상이 무슨 뜻인지 몰라.
아니 이거를 한 번도 들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이게 무슨 뜻인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리고 우리말로, 우리 말에도 그런 게 있어요.
그냥 제가 ‘배’ 한 글자만 얘기를 했다.
그러면 먹는 배인지
우리 배인지
타고 다니는 배인지
그걸 우리가 어떻게 압니까?
그 뒤에 이야기를 해야 알거든.
근데 한 글자만 얘기해, 한 글자만, 배.
그렇듯이 이름이라고 하는 거는
우리가 붙인 거예요.
그거예요. 붙인 거.
근데 우리는 이름 속에서 살고 있고
이름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그냥 이름이 그 사물인 줄 알고, 이름이 실상인 줄 알아요.
부처, 그러면 부처라는 상을 그려버려.
배, 그러면 배의 상을 그리고.
이 공이라는 뜻이 불교에서 어떻게 쓰는지는 모르지만
텅 비었다, 그러면 우리는 텅 빈 모습을 그려버려요.
무상이라는 말은
깨달음이라고 하고, 우리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자기가 그렇게 그리는 그림이 아니다, 이 말이에요.
그림을 그릴 수가 없거든, 우리 마음은.
왜냐하면 어떤 그림이 우리 마음이 아니거든.
어떤 그림이 우리 마음이면
그것만 우리 마음이고
나머지 것은 우리 마음이 아니어야 되거든.
근데 우리가 살아보면
생각, 느낌, 감정이라고 하는 것도
때에 따라서 이 생각 저 생각, 이 감정 저 느낌이
계속 다른 것들이 생기고 사라지고
온갖 것들을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고 경험하거든.
근데 그중에 ‘이것만 내 마음이다.’
그럴 수는 없잖아요.
그리고 오히려 우리가 그것 때문에 힘들어하잖아.
우리 생각 느낌 감정이
떴다 가라앉았다 하는 이것 때문에 힘들어하잖아요.
그러니까 생각 느낀 감정이라고 하는 것은
진실한 게 아니죠.
이 생기고 사라지는 거니까
항상 한 게 아닙니다.
그거는 자기 본래마음이라고 할 수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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