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가르침은 무생법인이라니까.
불생불멸이고.
오지도 않고 가지도 않는 거고
불교의 가르침은 그런 거예요.
아무것도 오고 가고 하는 게 없다니까
뭐가 오고 가고 하는 게 없어.
모습으로는 우리가 생긴다 사라진다 얘기할 수 있죠.
근데 사라지면은
사라져서 그 뒤 얘기가 있어야 될 거 아니야.
어디서 와서 어디로 사라졌냐가 나와야
사라졌다는 말을 우리가 할 수 있는 거지.
근데 그건 없다니까.
아무도 답할 수가 없어요.
원래 그런 일이 없기 때문에.
어둠이 어디로 갔는지
어디에서 왔는지를 아무도 답할 수가 없다니까
그 과학이 밝힐 수 있습니까, 그거를?
어디 어둠이
어디 저 북극 얼음 깊이 속에 있다가 와서
이 세상을 뒤덮다가 또 그리 들어가고 이러겠습니까?
제가 이 얘기를 많이 하는 건
저는 이런 고민을 많이 했기 때문에 그래요.
“분명히 우리가 밝아졌다고 하는데
그러면 그 어둠 어디 갔지? 이거.
이놈 어디로 갔다고 얘기를 해야 하는 거야.”
이런 고민을 좀 한 적이 있어요.
근데 제가 이 선을 공부하고 보니까
불교죠, 조금 정확히 얘기하면 불교.
6식, 7식, 8식 이런 얘기를 하는데
맨날 그 얘기더라고
다른 얘기가 아니야.
7식은 분별식이라고 하는데
이 분별식이라고 하는 건, 쉽게 쉽게 얘기할게요.
뭔 얘기냐 하면
우리가 분별하고 있다는 건 경험적으로 다 알고 있잖아요, 경험적으로.
그러면 이게 분별을 한다는 것은
이 분별식이라는 게 있기 때문에 분별을 하는 거 아니냐, 이 말이에요.
쉽게 얘기하면은.
동어반복이야.
아까 제가 잠깐 뭐 법회 전에 얘기한 거하고 똑같아.
자기가 뭔가를 이렇게 존경한다.
그럴 때는 자기 마음에 이 존경이라고 하는
느낌이나 감정이나 생각이나 뜻이 있다는 말이잖아.
근데 우리는 ‘존경한다’ 그러면
밖에 저 사람이 존경할 만한 사람이고
자기는 존경, 이런 게 없다고 생각해
자기가 없으면 어떻게 밖에 사람을 존경한다고 얘기할 수가 있겠냐고.
어디 법당이나 교회 가서 경건한 마음이 생긴다.
그거 어디서 생기는 겁니까?
자기 마음에서 생기는 거지.
그 경건함은 자기한테 있는 거예요.
자기한테 나오는 거야.
근데 그런 마음이 생기면
우리는 꼭 그거를 밖에다 돌려.
저기 앉아 있는 저 부처님
이렇게 매달려 있는 예수님 때문에 그런 게 생긴다고.
아니 그걸 보고 그 마음이 일어난 건 맞지.
그걸 촉이라고 그러죠. [촉]
눈으로 그 모습하고 부딪히고
피부로 부딪히고
귀에 소리가 부딪히고
냄새나 맛이 부딪히고
그걸 [촉]이라고 그럽니다.
그 촉은 계기야 계기
당연히 계기밖에 안 되지.
아무리 계기가 있어도
자기 마음에 사랑, 존경, 어떤 그런 게 없으면 그게 나오겠습니까?
이 볼펜이 가서 부딪힌다고 그게 나오겠냐고.
나온다는 건 자기 안에 그게 있다는 말이라는 거지.
그걸 분별식이라고 그래.
그런 분별하는 식이 있다, 이 말이에요.
그게 뭐 어려운 말입니까?
굉장히 이론적인 말이에요.
그 말 없어도 우리 분별하고 사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어요.
분별식이 있다고 하든, 없다고 하든
7식이 있다고 하든, 없다고 하든
우리 다 분별하는 데 지장 없이 삽니다.
잘하고 살아요, 도사들이에요.
이 세계의 실상을
불교에서는 그래서 그렇게 표현해 놓은 겁니다.
불생불멸 부증불감
오지도 않고 가지도 않는다.
무생법인이다
이렇게 표현을 딱 해놓는 거예요.
그 어떤 것도 오거나 가거나
생기거나 사라지거나 하지 않는다.
그 얘기를 딱 해놓는 거거든.
근데 모습으로 보면
생기고 사라지고
이 모습이 변하니까,
변하는 걸 우리는 생긴다, 사라진다.
이렇게 표현하거든. 변하니까.
이거 손바닥을 보여주다가 손등을 보여주면
손바닥은 사라졌잖아.
손바닥은 사라졌잖아요.
그걸 우리는 사라졌다고 그래요.
자기 눈에 안 보이면 사라진 거야.
그냥 쉽게 얘기하면
진짜로 이게 없어졌는지 그런지는 몰라.
근데 눈에 안 보이면 사라진 거야, 그냥.
그러니까 전부 모습을 쫓아가고, 생각을 쫓아가고, 느낌을 쫓아간다고 그러는 겁니다.
분별만 할 줄 안다.
실제로는 사라졌는지, 사라지지 않았는지
그건 알 수가 없어.
어둠이 어디로 갔는지, 어디에서 오는지
우리는 알 수가 없어요.
그건 중요하지가 않아, 그니까.
왜 불법이 인과법이 아니냐?
중요하지 않으니까.
어디에서 왔느냐?
어디에서 왔느냐는
어디라고 하는 것은 원인을 얘기하거든, 원인.
그래서 인과가 없다. 그래
이 세계의 실상을 보는 눈으로 보면
인과가 없어.
무슨 순서가 있는 게 아니야.
제일 좀 가깝게 제가 비유를 들 수 있는 거예요, 이게.
손바닥 손등 이게.
어디서 오는 것도 아니고 가는 것도 아니고
뭐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야.
모습만, 모습만.
그러니까 변검 생각이 난다니까.
중국에 변검 있잖아요.
이렇게 하면 얼굴이 막 탁 바뀌고, 또 바뀌고, 막 이런 거 있잖아.
딱 그 생각이 나.
그냥 모습만 바뀌어, 모습만.
그러니까 좋아하고 싫어할 게 없지, 실은.
그래서 그게 이렇게 분명해져야
여기 말대로 이 통연명백洞然明白
(툭 터져 명백하다
다만, 미워하고 좋아하지 않으면 (도는) 화통해져 명백히 드러난다.)
막힘없이 밝고 분명하다.
이제 이런 게 이렇게 딱 실감이 되는 거예요.
그 어떤 것도
취하고 버려야 될
이유, 필요가 하나도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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