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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분經 | 불교의 가르침은 무생법인(無生法忍) | 월인선원

Buddhastudy 2024. 5. 9. 20:00

 

 

불교의 가르침은 무생법인이라니까.

불생불멸이고.

오지도 않고 가지도 않는 거고

불교의 가르침은 그런 거예요.

 

아무것도 오고 가고 하는 게 없다니까

뭐가 오고 가고 하는 게 없어.

 

모습으로는 우리가 생긴다 사라진다 얘기할 수 있죠.

근데 사라지면은

사라져서 그 뒤 얘기가 있어야 될 거 아니야.

어디서 와서 어디로 사라졌냐가 나와야

사라졌다는 말을 우리가 할 수 있는 거지.

 

근데 그건 없다니까.

아무도 답할 수가 없어요.

원래 그런 일이 없기 때문에.

 

어둠이 어디로 갔는지

어디에서 왔는지를 아무도 답할 수가 없다니까

그 과학이 밝힐 수 있습니까, 그거를?

 

어디 어둠이

어디 저 북극 얼음 깊이 속에 있다가 와서

이 세상을 뒤덮다가 또 그리 들어가고 이러겠습니까?

 

 

제가 이 얘기를 많이 하는 건

저는 이런 고민을 많이 했기 때문에 그래요.

분명히 우리가 밝아졌다고 하는데

그러면 그 어둠 어디 갔지? 이거.

이놈 어디로 갔다고 얘기를 해야 하는 거야.”

이런 고민을 좀 한 적이 있어요.

 

근데 제가 이 선을 공부하고 보니까

불교죠, 조금 정확히 얘기하면 불교.

6, 7, 8식 이런 얘기를 하는데

맨날 그 얘기더라고

다른 얘기가 아니야.

 

7식은 분별식이라고 하는데

이 분별식이라고 하는 건, 쉽게 쉽게 얘기할게요.

뭔 얘기냐 하면

우리가 분별하고 있다는 건 경험적으로 다 알고 있잖아요, 경험적으로.

그러면 이게 분별을 한다는 것은

이 분별식이라는 게 있기 때문에 분별을 하는 거 아니냐, 이 말이에요.

쉽게 얘기하면은.

동어반복이야.

아까 제가 잠깐 뭐 법회 전에 얘기한 거하고 똑같아.

 

자기가 뭔가를 이렇게 존경한다.

그럴 때는 자기 마음에 이 존경이라고 하는

느낌이나 감정이나 생각이나 뜻이 있다는 말이잖아.

 

근데 우리는 존경한다그러면

밖에 저 사람이 존경할 만한 사람이고

자기는 존경, 이런 게 없다고 생각해

자기가 없으면 어떻게 밖에 사람을 존경한다고 얘기할 수가 있겠냐고.

 

어디 법당이나 교회 가서 경건한 마음이 생긴다.

그거 어디서 생기는 겁니까?

자기 마음에서 생기는 거지.

그 경건함은 자기한테 있는 거예요.

자기한테 나오는 거야.

 

근데 그런 마음이 생기면

우리는 꼭 그거를 밖에다 돌려.

저기 앉아 있는 저 부처님

이렇게 매달려 있는 예수님 때문에 그런 게 생긴다고.

 

아니 그걸 보고 그 마음이 일어난 건 맞지.

그걸 촉이라고 그러죠. []

눈으로 그 모습하고 부딪히고

피부로 부딪히고

귀에 소리가 부딪히고

냄새나 맛이 부딪히고

그걸 []이라고 그럽니다.

 

그 촉은 계기야 계기

당연히 계기밖에 안 되지.

아무리 계기가 있어도

자기 마음에 사랑, 존경, 어떤 그런 게 없으면 그게 나오겠습니까?

이 볼펜이 가서 부딪힌다고 그게 나오겠냐고.

나온다는 건 자기 안에 그게 있다는 말이라는 거지.

그걸 분별식이라고 그래.

그런 분별하는 식이 있다, 이 말이에요.

 

그게 뭐 어려운 말입니까?

굉장히 이론적인 말이에요.

그 말 없어도 우리 분별하고 사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어요.

 

분별식이 있다고 하든, 없다고 하든

7식이 있다고 하든, 없다고 하든

우리 다 분별하는 데 지장 없이 삽니다.

잘하고 살아요, 도사들이에요.

 

 

이 세계의 실상을

불교에서는 그래서 그렇게 표현해 놓은 겁니다.

불생불멸 부증불감

오지도 않고 가지도 않는다.

무생법인이다

이렇게 표현을 딱 해놓는 거예요.

 

그 어떤 것도 오거나 가거나

생기거나 사라지거나 하지 않는다.

그 얘기를 딱 해놓는 거거든.

 

근데 모습으로 보면

생기고 사라지고

이 모습이 변하니까,

변하는 걸 우리는 생긴다, 사라진다.

이렇게 표현하거든. 변하니까.

 

이거 손바닥을 보여주다가 손등을 보여주면

손바닥은 사라졌잖아.

손바닥은 사라졌잖아요.

그걸 우리는 사라졌다고 그래요.

자기 눈에 안 보이면 사라진 거야.

그냥 쉽게 얘기하면

진짜로 이게 없어졌는지 그런지는 몰라.

근데 눈에 안 보이면 사라진 거야, 그냥.

 

그러니까 전부 모습을 쫓아가고, 생각을 쫓아가고, 느낌을 쫓아간다고 그러는 겁니다.

분별만 할 줄 안다.

 

실제로는 사라졌는지, 사라지지 않았는지

그건 알 수가 없어.

어둠이 어디로 갔는지, 어디에서 오는지

우리는 알 수가 없어요.

그건 중요하지가 않아, 그니까.

 

왜 불법이 인과법이 아니냐?

중요하지 않으니까.

 

어디에서 왔느냐?

어디에서 왔느냐는

어디라고 하는 것은 원인을 얘기하거든, 원인.

그래서 인과가 없다. 그래

이 세계의 실상을 보는 눈으로 보면

인과가 없어.

무슨 순서가 있는 게 아니야.

 

제일 좀 가깝게 제가 비유를 들 수 있는 거예요, 이게.

손바닥 손등 이게.

어디서 오는 것도 아니고 가는 것도 아니고

뭐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야.

모습만, 모습만.

 

그러니까 변검 생각이 난다니까.

중국에 변검 있잖아요.

이렇게 하면 얼굴이 막 탁 바뀌고, 또 바뀌고, 막 이런 거 있잖아.

딱 그 생각이 나.

그냥 모습만 바뀌어, 모습만.

 

그러니까 좋아하고 싫어할 게 없지, 실은.

그래서 그게 이렇게 분명해져야

여기 말대로 이 통연명백洞然明白

(툭 터져 명백하다

다만, 미워하고 좋아하지 않으면 (도는) 화통해져 명백히 드러난다.)

막힘없이 밝고 분명하다.

이제 이런 게 이렇게 딱 실감이 되는 거예요.

 

그 어떤 것도

취하고 버려야 될

이유, 필요가 하나도 없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