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자 분들도 들으셔야 해요.
제가 늘 이야기 하지만
신약성경은 예수 보살경이라고 보시면 돼요.
예수 부처경이라고 해도 맞아요.
제가 늘 말씀드리지만
전 아미타불하고 예수님을 같이 봅니다. 제가 판단할 근거는 없어요.
하지만 불경에서 말하는 극락의 교주인, 화엄경식으로 말하면 십지보살인
인간 중생 중에 제일 갈 때까지 간, 불성의 온전한 구현자이신 아미타불과
성령의 온전한 구현자라고 성경에서 전하는 예수님,
이 두 존재에 대해서 제가 공부해본 이상, 공부해 본 그 정보를 가지고 판단 할 때
저는 그 차이를 얘기할 수 없기 때문에 같게 본다는 말입니다.
제가 그 분들을 뵙고 악수라도 해서 그러는 게 아니라
제가 어떤 철학과 종교를 28년 공부한 그걸 가지고 판단할 때
팩트만 가지고 판단 할 때도 이런 부정할 근거가 없어요.
같아요. 같은 스토리에요.
똑같은 스토리인데 제가 어떻게 다르다고...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을 계속 뭐라고 부르나요? 빛이라고요. 빛
예수님은 하나님을 빛이라고 그래요.
“성부가 빛이다. 우리는 빛의 자녀다. 빛의 자녀니까 온전해져라.”
그러면서 또 요한은 계속해서 예수님이 빛이라고 그래요.
본인이 또 예수님 자신을 빛이라고 그래요.
“내가 빛이니까 내가 있는 동안에는 어둠이 없다. 어둠들은 나를 싫어한다.”
왜? “자기들의 악이 들어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미타불의 이름이 뭐죠? 번역하면?
무량광이예요. 무량광불이에요. 한문으로.
무량한 빛 부처님이에요.
그럼 성부에 해당되는 비로자나는 뭘까요? 빛이요. 빛부처님.
그래서 한문으로 하면 大日如來(대일여래) 그러잖아요.
태양여래, 태양빛이에요. 광명한 빛.
盧舍那佛(노사나불)은요? 琵(비)라는 강조어만 빠졌지 빛이에요. 어차피.
비로자나불, 노사나불, 아미타불이
법신, 자수용보신, 타수용보신이라고 다 보신.
법신과 보신인데.
비로자나는 법신이에요. 우주 성부 자체.
노사나는요? 자수용보신이라는 건 영혼 안에서 활동하는 빛이에요. 성령에 해당돼요.
그럼 그 영을 받아서 온전한 인격을 갖추면 보신
그 영혼을 갖춘, 그 영혼육을 갖춘, 개체성을 갖춘 부처님은 아미타불이에요.
그러면 그 분도 빛이에요.
아버지가 빛이면 자녀도 빛이에요. 다 빛이에요.
그럼 이걸 펴놓고 저보고 다르게 하라 그러면 제가 힘들지 않을까요?
이걸 어떻게 다르게 하지? 다 같은데. 이름도 같고 설명도 같고,
그럼 아미타불이 발원한 것이 뭐지?
내 이름을 열 번만 외워도 극락 올 수 있게 안 할 거면, 나 성불 안한다고 했던 양반이에요.
아미타불의 원이
모든 중생들이 내 이름만 대면 천국에 갈 수 있기를 하고 원하신 분이에요.
예수님은요?
내 이름으로 앞으로 구하라. 그럼 뭐 어쩌라는 거예요, 저더러.
그래서 예수님이 늘 얘기하시죠. 이런 얘기 꼭 하시죠.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될 것이다.
그런데 결국 하나가 될 것이다.
먼저 된 자가 결국은
나중 될 사람을 도와서
결국 하나가 되게 하자는 그 도리에요.
먼저 되었다고 깝죽 되다간 오히려 나중 되고요
나중 된 사람이 오히려 그 사람보다 더 먼저 될 수도 있지만,
결국에는 서로서로 도와서 나중에는 하나가 되고 끝난다.
도마복음에는 이 얘기를 분명히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될 텐데,
결국에는 하나가 되고 끝날 것이다.
이 얘기를 아미타불이 뭐라고 원을 세웠는지 아세요? 아미타경에?
내가 사는 천국에서는 어떠한 차별도 존재하지 않아야 내가 성불하겠다.
내가 만들 극락에서는 어떤 차별도 존재하지 않게 하겠다.
그래야만 내가 그 성불하겠다.
내가 만드는 극락에는 차별 용납 못 한다. 이 얘기에요.
내가 만든 극락에는 누구든지 간절히 내 이름을 대고 원하는 사람은 올수 있게 하겠다.
내가 그걸 만들겠다.
이게 지금 성경에서 쓰여 있다 여러분 그냥 아~ 이럴 얘깁니다.
예수님이 내가 천국을 예비하러 간다. 너희들을 위해서 미리 천국을 준비하러 간다.
내 이름을 대고 나중에 다 거기 오게 하겠다.
이런 얘기들만 쭉 있는데요,
그럼 이 경하고, 신약성경이 더 먼저입니다.
더 뒤에 나온 아미타경하고 제가 그러면 같이 읽을 때 뭔 기분이 들겠어요?
이거 참 애매하죠. 아무튼 내용이 같아요.
그래서 저는 영향을 주고 받았다고 보는 거예요. 영향을 주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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