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22)

법륜스님의 희망세상만들기_ 감각적인 욕구도 완전히 소멸 가능한가요?

Buddhastudy 2022. 8. 10. 20:16

 

 

감각적인 욕구, 특히 안락해지고 싶고, 청결해지고 싶고

맛있는 것을 먹고 싶다와 같은 쾌락은

그것이 공하다는 것과 쉽게 와닿지 않습니다.

삶에 대한 욕구가 완전히 소멸 가능한 번뇌인지 궁금합니다.//

 

 

, 우선 뭐, 별 걱정이 아니다 하는 말씀을 드리고요.

왜냐하면 자기가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해서 괴로워하는 사람은

그것 포기하라, 이렇게 말하면

굉장히 현실을 무시한다, 이렇게 받아들이기가 쉬운데

자기가 이루고자 하는 걸 이루었는데도 행복하지 못하다 하는 이런 상태니까

다른 사람하고 비교해보면 어때요?

지금 좋은 상태이다.

이렇게 말 할 수 있잖아, 그죠?

 

좋은 상태이기 때문에

특별히 걱정할 거 없다.

이런 거를 전제로 해서 오늘 대화의 큰, 자기가 어떤 힌트를 얻으면 좋고

못 얻어도 뭐, 현재 자기 상태가 괜찮다.

이런 관점을 먼저 가지고 대화에 임해보면 좋겠다.

이렇게 싶거든요.

 

그런데 욕망을 버려라, 욕구를 버려라, 이렇게 무작정 부처님이 얘기하신 게 아니에요.

인간은 욕구를 가지고 살아가는 존재에요.

그래서 우리가 욕계중생이라고 그러거든요. 욕계중생.

 

그래서 이 욕계중생은 만약에 우리가 원하는 게 100이면

100이 다 이루고 싶다, 그런 마음이 있는데

100이 다 이루어지면 사람의 기분이 어떠냐?

, 천상이 따로 있나 이게 천상이지, 이런 마음이 들어요.

 

그래서 욕구가 자유자재로 자기가 원하는 것이 자유자재로 이루어지는 것을 자재천이라 해서

욕계의 맨 상위에 둡니다.

 

그런데 욕구가 100이면 100이 다 안 이루어져.

, 100개 가운데 1개도 안 이루어진다,

그 한 개가 뭘까?

맨 바닥의 한 개는 생존, 살고자 하는 욕구도 그것도 인정이 안 돼요.

죽임을 당해.

강제로 죽임을 당한다.

이렇게 되면 이것은 지옥이 따로 있나, 이게 지옥이지.

생지옥이라 그래요.

 

그래서 인도의 세계관에서는 가장 밑에, 100이면 100, 다 안 되는 것

생존도 보장 안 되는, 이것을 지옥이라고 상정하고

 

그다음에 인간은 어떠냐?

반반, 원하는 거도 이루어지기도 하고, 원하는 게 안 되기도 하고

원하는게 이루어지면 빙긋이 하고 즐겁다 하고 웃기도 하고

안 이루어지면 인상을 쓰고 괴롭다 하기도 하고

이렇게 사는 세상이다.

 

그래서 고와 락이

한문으로 말하면 즐거움과 괴로움이 고락인데

이 고와 락이 늘 되풀이 된다.

그래서 이걸 윤회한다. 돌고 돈다.

 

천상은 100이면 100이 다 이루어진다.

천상 중에 100이면 100이 다 이루어지면 자재천

100이면 90쯤 이루어지면 화락천

100인데 80쯤 이루어지면 도솔천

100인데 70쯤 이루어지면 야마천

100인데 60쯤 이루어지면 도리천

100인데 55쯤 이루어지면 사왕천

 

50 넘으면 뭐에 들어간다? 천상에 들어가고

50 밑으로 떨어지면 인간, 그다음에 아수라, 그다음에 축생, 그다음에 아귀, 지옥.

 

지옥이라는 건 강제로 죽임을 당하는 걸 상징하고

아귀는 누가 죽이는 건 아닌데 먹을 게 없어서

마실 물이 없고, 먹을 음식이 없어서 죽는 거예요.

누가 강제로 죽이는 건 아닌데 살 수 있는 조건이 안되어서 죽는 걸 아귀라 그래요.

강제로 죽이는 거보다는 조금 나은 상태죠.

이렇게 옛날 사람들로부터 배치를 했다.

 

그런데 인도에서는 이렇게 배치하면서 복을 지어서 천상에 가면 영원하고

죄를 지어서 지옥에 가면 영원하다, 이런데

인도에서는 부처님은 그것도 돌고 돈다.

지은 복이 다 까먹으면 다시 인간계로 떨어지고

지옥에 갔다 하더라도 그 고통을 다 겪으면 다시 온다.

이래서 이걸 윤회라 하는 거예요.

 

그러면 윤회에서 벗어나는 게 진짜 목표이지

천상에 가는 게 목표가 아니다.

?

천상에 가봤자 또 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복진타락이 그래.

복이 다하면 떨어진다.

 

해탈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 이러한 지옥과 천상의 바탕이 뭐냐?

그게 바로 욕망이고 욕구이다.

욕망으로 인해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

 

기쁨도 즐거움도 괴로움도 슬픔도 다 뭣 때문에 생긴다?

욕망 때문에 생겨나는 거다.

그러니까 욕망을 따라가면

여러분들이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즐겁기도 하고 괴롭기도 한 거를

그냥 받아들여라.

즐거움을 받아들였으면 괴로움이 오더라도 받아들이고.

 

아이를 낳아서 기쁘면 아이를 잃었을 때 슬픔을

아이가 없었으면 기쁨도 없고 슬픔도 없는 거예요.

내가 성공을 했으면 기쁨이 있는데 잃으면 슬프겠죠.

잃으면 괴롭겠죠.

그러면 기쁨을 받아들였으면 괴로움이 1이 일어나도 받아들여라.

 

그러니까 반드시 재물을 잃는다 이런 얘기가 아니라

잃었을 때 오는 것을 받아들여라.

이렇게 되면

슬픔과 괴로움의 널뛰기가 작아진다.

 

즐거워도 이게 영원한 게 아니고, 괴로워도 이게 영원한 게 아니다.

즐거워서 좋기는 하지만 이게 영원한 거 아니다.

영원한 거 미리 아니까 두려워할 필요가 없고

괴로운 거? 이거 영원한 게 아니다.”

그러니까 죄절하고 절망할 필요가 없는 거예요.

또 시간이 흐르면 상황이 바뀐다.

 

이렇게 받아들이는 자세가 첫째 필요하다.

그러면 지금처럼 두려움이다, 근심걱정이다, 괴로움이다, 이런 게 훨씬 덜해지죠.

 

--

두 번째는 욕구는 그냥 두고 결과를 받아들여라. 하는 방법이고

장사를 하면 손해와 이익이 항상 난다.

그러니까 늘 이익만 보려니까 두려움이 생기지

어떤 때는 이익보고 어떤 때는 손해보고 한달 ..이렇게 개선하면

그 순간순간의 손익에 너무 잔 계산을 하지 않는다.

 

주식을 사놓고 오늘 올랐다고 술한잔 먹고

내일 떨어졌다고 슬퍼서 한잔 먹고

모래 올랐다고 술한잔 먹고

매일 즐거웠다 슬펐다 하는데

그냥 그거 올라도 내일 내려갈 수도 있고

내일 내려가도 모래 올라갈 수 있으니까

3년이든 10년이든 놔 놓는다, 이런 마음으로 하면

일희일비 안 한다.

하루마다 기뻐하고 슬퍼하지 않게 된다.

 

그러니까 욕구를 인정하거든, 그냥 결과를 둘 다 수용해라.

윤회를 수용해라. 이 얘기에요.

, 과보를 수용해라.

 

그러한 윤회에서 벗어나고 싶다.

그런 과보를 받고 싶지 않다 그러면

욕구로부터 자유로워라, 이 얘기에요.

욕구로부터 자유롭다는 것은 욕구는 나쁜 거다, 욕구는 금한다.

이것은 죄악이다, 이렇게 생각하라는 게 아니라

욕구를 반드시 성취해야 한다, 이렇게 생각하지 마라.

 

그러니까 집착을 하기 때문에 욕구가 생기는 게 아니라

욕구에 집착을 하면, 욕구가 일어나면 그걸 꼭 해야 한다 하는 걸 집착이라고 그래.

욕구는 일어나지만, 집착은 하지 마라.

 

먹고 싶으면 먹어라.

그런데 뭐, 없어도 그만이다.

없으면 안 먹으면 되지 뭐.

관점을 이렇게 가져라.

 

재물을 벌었으면 즐겨라.

그러나 소멸하더라도

원래 내가 없다가 살았는데

, 그때는 20살 때도 없이도 살았는데

이제 경험이 있는데 40살이 되고 없으면 더 걱정한다.

아니잖아요.

 

그땐 돈도 없고 사람도 없고 경험도 없었는데

지금은 돈만 없지 뭐는 있다?

경험도 있고 인간관계도 남아 있는데 뭘 걱정할 게 있겠어요?

관점을 좀 바꾸면.

 

80이 되고 없어졌다.

뭐가 걱정이에요?

젊을 때도 없어도 살았는데 늙어서 없어지면

조금 있으면 죽을 건데 뭐가 걱정이고?

이렇게 관점을 바꾸어야 한다.

 

그런데 이루려고 할 때는 못 이룰까 봐 근심 초조하고

이루어놓으면 유지한다고 근심·걱정하고

없어지면 없어졌다고 괴로워하고

이게 세상이 원래 성주괴공, 이루어지고 머무르고 흩어지고 사라지는 건데

그 기간이 짧게 오느냐? 늦게 오느냐의 차이만 있지

언제나 세상은 제행무상하는 건데

그런 도리를 알게 되면 삶이 조금 자유롭고

그런 도리를 모르고 집착해서 살면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괴롭고

이루어지면 이루어진 뒤에 공허해서 괴롭고

이것은 어느 쪽이든 끝이 안 나요.

 

그래서 욕망을 무조건 나쁘다고 보지 말고

욕망에 집착하지 마라.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라. 이런 얘기에요.

 

맛을 못 느껴라, 맛있고 맛없는 거 구분하지 마라가 아니라

아무리 맛있어도 몸에 해로우면 멈출 줄 알아야 한다.

맛이 없더라도 먹을 게 따로 없을 때는 그것도 능히 먹을 수 있어야 한다.

 

이런 거를 가져야

중요한 것의 목표는 건강이지 맛이 아니다.

우리는 맛에 집착해서 건강을 해치잖아.

많이 먹어서 해치고 안 먹어서 해치는데

맛을 떠나서 건강에 목표를 두면

맛있어도 건강에 나쁘면 안 먹고

맛없어도 건강에 좋으면 먹어야 한다.

그런 관점을 갖게 된다면 훨씬 더 삶이 자유로워진다.

 

젊은 사람이 뭐, 벌써

다 해봐야 이거 뭐, 쓸데도 없으니까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다.”

그렇게 생각하라는 게 부처님의 가르침이 아니에요.

삶이란 건 부처님이 우리한테 보여줬잖아요.

다 떨어진 옷 입고, 밥은 얻어먹고, 잠은 나무 밑에서 자도

그는 괴롭지 않았다.

 

꼭 그래야 괴롭지 않느냐?

아니잖아요.

나무 밑에서 자서 괴롭지 않는데 침대에서 자는데 뭣 때문에 괴로워요?

다 떨어진 옷 입어도 괴롭지 않은데 좋은 옷 입었는데 뭣때문에 괴로워요?

아니 남이 버린 음식 주워 먹어도 몸만 유지하면 되기 때문에 괴롭지 않은데

좋은 음식 먹는데 뭣 때문에 괴로워요?

가족이 없이도 괴롭지 않은데 가족이 있는데 뭣 때문에 괴로워요?

음식이 맛있는 것 때문에 괴로우면 음식 버리면 되는 거고

옷이 있어서 괴로우면 옷 버리면 되는 거고

집이 있어서 괴로우면 집 버리면 되는 거고

가족이 있어서 괴로우면 가족을 버리면 되잖아요.

 

부처님의 가르침의 요지는

없어도 괴롭지 않은데, 있는데 뭐가 문제냐, 이런 얘기에요.

문제가 있으면 버려버리면 되는 거니까.

 

담배를 안 피워도 괴롭지 않은데

피우는 인간들이 뭐가 문제에요? 괴로우면 안 피우면 되지.

 

피워야 괴로움이 없어진다이러면

피우려면 돈이 있어야 하고, 뭐가 있어야 하고

그러니까 모든 사람이 갈 수 없는 길이지만

안 해도 안 괴로운 길을 발견해 버리면

이건 모든 사람이 다 갈 수 있는 길이에요.

그래서 누구나 다 행복할 권리가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들은 결혼해서 살다 이혼했다고 괴롭다는데 스님이 볼 때는 아무 문제가 없어요.

혼자 사는 사람도 안 괴로운데

자기는 그래도 10년 살다 이혼했으면 10년 살아봤잖아.

10년 결혼생활도 해보고, 앞으로 혼자도 살아보고

두 가지 다 해봤으면 나보다 훨씬 유리한 조건 아니에요?

그런데 그게 왜 내가 봤을 때

, 저거 괴롭겠다.” 이런 생각을 할 이유가 하나도 없잖아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둘이 살 때를 기준으로 해서 혼자 사는 게 문제다

혼자 사는 걸 기준으로 해서 둘이 사는 게 문제다,

자꾸 이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천만 원을 가진 입장에서 500만 원이 되니 괴롭다 이렇게 생각하지

10억을 가진 입장에서 5억이 되니 괴롭다.

천억을 가진 입장에서 500억이 되니 괴롭다, 이 얘기이지

500억 자체, 5억 자체, 500만 원 자체는 아무런 괴로움의 조건이 아니라는 거예요.

 

없다고 500만 원이 생기면 엄청나게 즐겁지

조금 있다고 5억 생기면 엄청나게 즐겁지.

그런데 여러분, 자꾸 돈이 작아서 돈이 많아서, 지위가 낮아서 지위가 높아서 괴롭다

이렇게 생각한다는 거예요.

그거하고는 실제는 아무 관계가 없어요.

 

다만 조금 전하고 비교해서

여러분들이 키가 160센티다 이거는 괴로울 조건이 아니에요.

여러분들이 170센티하고 비교해서 작다는 인식이 나오고

150센티하고 비교하면 크다는 인식이 나오잖아요.

키는 크고 작은 게 없어요.

비교해서 그렇게 인식할 뿐이지.

 

큰 게 좋으면 그럼 180이면 더 좋고, 190이면 더 좋고, 2미터는 더 좋고

세계에서 2미터 60이 되는 사람은 더 좋겠네.

기사 봤어요?

키가 너무 커서 불편해서 다리를 잘라서 중간에 걸 버리고 붙여서 키를 낮췄다는 얘기 봤어요?

그런 기사도 못 봤어요?

 

 

그러니까 다 있는 그대로, 지금 있는 그대로 다 좋은 거예요.

자기가 조금 크고 싶거나 자기가 조금 뭐 하고 싶으면

가능한 건 하면 되고,

가능하지 않은 거에 매달리면 애만 타지, 아무 도움이 안 되잖아요.

 

그러니까 부처님은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하지

욕망을 아주 금기시하거나

욕망을 찬양하는 게 아니라는 거에요.

 

지금 자본주의는 욕망을 찬양하는 거고

옛날 금욕주의자는 욕망을 부정하는 거예요.

부처님은 욕망을 찬양도 하지 않고 부정도 하지 않고

괴로움의 원인이 그 욕망의 집착에 있으니까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라.

그게 중도의 길이다.

 

 

그러니까 젊은이가 지금까지 애를 써서 외길을 달려왔는데

와서 돌아보니 허망하다.

자기는 지금 서른 몇 되었는지 모르겠는데, 서른 되어 깨달았다면

부처님은 20대 넘기 전에 자각을 하신 거 같아요.

 

왜 그러냐 하면 당시에 부처님은 왕자니까

조건이 아주 좋았잖아요.

재물도 있었고, 지위도 있었고, 인기도 있었고.

 

그래서 부처님이 말을 타고 지나가니까 어떤 여인이 이렇게 부러워했다는 거예요.

, 저런 남자를 아버지로 둔 여인은 행복하겠다.

, 저런 남자의 딸이면 어린아이가 얼마나 행복하겠냐, 이거예요.

저런 남자를 남편으로 둔 여인은 행복하겠다.

, 저런 남자를 아들로 둔 여인은 얼마나 행복하겠냐.”

 

그러니까 부러움을 샀다는 거예요.

그런데 부처님 자신은 정작 이 젊은이처럼

너무너무 머리가 아플 정도로 번뇌가 많았어요.

나는 이렇게 괴로워하는데, 사람들은

너 무슨 걱정이 있노? , 너 잘 됐네이렇게 생각한다는 거예요.

부처님, 하느님, 나도 저렇게 되게 해주세요그러는데

그렇게 정작 된 본인은 괴로운 거예요.

 

이건 아니다.

그러면 이 괴로움은 왜 생길까?”

이렇게 탐구 해 들어간 거예요.

그래서 사람들이 원하는 지위, 지위가 있으면 괴롭지 않다는데 지위가 있어 봐도 괴로워요.

지위도 버려봤고, 가족도 버리고, 인기도 버리고, 다 버려봤어.

그럼 버리면 안 괴롭냐?

버려도 괴로워.

 

그럼 뭐냐?

부처님은 가지고 있어서 괴로워서 버리면 안 괴로울 줄 알고 버렸고

여러분은 없어서 괴로워서 가지면 안 괴로울 것 같은데 가져도 그 끝이 안 나요.

우리나라에서 제일 돈 많은 분이 돌아가셨지만

얼마 전에 병원에서 의식이 가물가물한 상태로 몇 년 있었죠.

행복할까?

우리나라에서 지위가 제일 높은 대통령들 지금 두 분이나 감옥에 계시잖아요.

행복할까?

 

그러니까 돈이 많으면 돈 갖고 다 해결할 줄 알았는데

병들고 늙은 건 해결하지 못하죠.

지위가 높은 다 해결할 줄 알았는데

감옥 가고 이럴 거라고 생각해 봤을까?

이렇게 우리가 생각하면서 환상 속에서 살아간다.

 

부처님의 가르침의 위대함은

아마 지금 시대에 부처님의 가르침이 맞을 거예요.

모든 걸 다 가졌는데 행복하지 못하다, 괴롭다.

 

요즘 우리 생활하고 있는 이런 조건은

인도 당시의 사회로 보면 다 왕자정도 되는 생활 아닐까?

우리 지금 사는 게?

그죠?

 

옛날 사람이 보면,

이야, 이 밥을 못 먹나? 옷을 못 입나? 집이 없나? 가족이 없나? 지식이 부족하나?

글자를 모르나? 니게 뭐가 괴롭노할 정도로 우리 다 도달해 있잖아요,

우리가 모두.

그런데 우리 다 괴롭다고 그러잖아요.

 

저는 내가 경험에 내 초등학교 들어갈 때 우리 나라 국민소득이 100불이었거든요.

그런데 지금 3만불이 넘었는데도 아직도 사람들이 돈 때문에 괴롭다 그러고 뭣 때문에 괴롭다 그러고

그때도 부부 싸우고, 지금도 부부 싸우고

그때도 돈 때문에 싸우고, 지금도 돈 때문에 싸우고

형제간에 돈 때문에 싸우고, 지금도 돈 때문에 싸우고.

 

그런데 여러분들은 조금 더 되면 좋을까? 나이 더 든다고 이 문제가 해결될까요?

돈 좀 더 번다고 해결될까?

그렇게 생각한다면 너무 어리석게 사는 거다.

 

이제 쯤 돌아봐서

, 이게 본질이 아니구나이걸 깨닫게 되면

다 버려도 괜찮고, 부처님처럼.

 

버려도 아무 문제가 없는데, 가지고 있는 게 뭐가 문제에요?

그런데 없어질까 봐 왜 두려워해요?

자발적으로 지금 버려버릴 수도 있는 일을.

제가 알아서 조금씩 조금씩 빠져나가고 없어진다는데, 좋지.

일부러 갖다 버릴 거 뭐 있어요?

놔 놓으면 저절로 없어지는데.

 

그런데 뭐가 그게 두려워요?

있으면 뭐가 두려워요?

있으면 보시해서 좋고, 없으면 홀가분해서 좋고.

 

 

그런 관점을 여러분들이 조금만 자각한다면

늘 얘기하잖아요.

부처님의 삶은 누구나 다 행복할 수 있다 하는 걸 보여주신 거예요.

밥은 얻어먹고, 잠은 나무 밑에서 자고, 옷은 주워있고

살아도 늘 행복하게 살으셨다.

 

그런데 온갖 거 다 가진 왕이 내내 와서 괴로워죽겠어요, 이러면 부처님이 도와주셨어요.

부처님이 도움받은 거 없어요.

전부 도와줬지.

그래서 우리는 누구나 다 이 길은 가능하다.

 

결혼해서 괴로우면 관두세요.

혼자 이렇게 잘 살잖아요, 저 보세요.

그런데 나이가 지금 70된 나도 잘 사는데, 20대 된 사람들이 뭐가 괴로울 일이 있겠어요?

 

그런데 사람은 지금 당장 먹는 입맛에, 당장 자는 오늘의 하룻밤 잠에, 당장 귀에 들리는 칭찬 소리에

거기에 사로잡혀 있고 집착되어 있기 때문에

늘 전전긍긍하며 껄떡거리며 인생을 살아간다.

조금 한발 떨어져서 보면 얼마나 불편하고 얼마나 가엾은 인생입니까.

 

관점을 조금 바꾸셔야 해요.

우리 젊은이가 참, 아직 젊은 나이에 벌써 보여주지 않습니까.

죽기 살기로 해서 실패했다, 박사도 못 따고. 취직도 못했다 하면

어떤 얘기를 해도 귀에 안 들어올 텐데

나름대로 이루었는데도

, 이게 끝이 아니구나.” 잘 일찍 알으셨어요.

아직 부처님이 29살에 출가했으니까, 29살이 넘었으면 부처님... 됐네.

결단을 내든지, ㅎㅎ

.

 

본인 얘기 하세요.

번뇌가 좀 사라졌어요?

 

...

 

어떻게 욕구를 없애?

자기 재주도 좋다.

욕구가 없으면 죽으면 욕구가 없어져요.

살아있는 한은 생명 자체는 욕구 중생이라 그러잖아.

욕구를 가져서 생존이 유지하는 중생이기 때문에

우리가 사는 세계를 욕계라고 하는데 어떻게 욕망이 없어져요.

 

배고프면 밥 먹고 싶고, 목마르면 물 마시고 싶고, 피곤하면 자고 싶고 이런 건데.

그것이 지나치지 마라. 이 얘기에요.

 

...

 

또 노력하나? 그냥 사세요, 그냥.

맨날 노력이다, 아이고 참, 피곤하다.

 

노력을 하니까 인생이 무거워지는 거예요.

나무가 저렇게 자라려고 노력하고 소가 풀을 뜯으려고 노력합니까?

그냥 배고프면 풀뜯고 씹으면 그냥 자라고 그런 거지.

 

그러니까 너무 어떤 것에 집중하는 것은 좋은데

너무 애를 쓰면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지치고 오래 못 해요.

그래서 스님이 뭐, 함부로 하라는 게 아니라 설렁설렁해라.

이런 얘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