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공부 1

[지혜별숲] 나는 그대에게 신을 보여줄 수 없다. 왜냐하면… [낭독61회]

Buddhastudy 2023. 12. 28. 20:08

 

 

오쇼의 [두드리지 마라 문은 열려있다] 함께 하겠습니다.

 

오쇼는 1931년 인도에서 태어나

1953, 22세가 되던 해에 깨달음을 얻었는데요.

어리다고 할 수도 있을 만큼 굉장히 젊은 나이에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직접적인 앎을 성취한 거죠.

 

그는 인도의 자발푸르 대학에서 철학교수로 재직했구요.

1966년부터는 영적지도자로 독자적인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1990년 세상을 뜨기 전까지

6천여 회가 넘는 강연으로 수많은 구도자들을 인도했습니다.

 

이 책은 대략 600 페이지 분량의 꽤 두꺼운 책인데요.

노자의 도덕경을 이루는 사상들이 아름답게 녹아 있습니다.

내용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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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은 계속해서 법칙과, 법칙과, 법칙을 발견하려고 한다.

그러나 과학은 절대로 법칙을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법칙이란 곧 도()를 의미한다.

 

과학은 계속해서 신을 발견하려고 하지만

절대로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신은 곧 도이다.

최종적인 궁극, 그것을 넘어서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고 또 존재할 수도 없는 그런 궁극이다.

 

과학은 계속해서 발견해 나간다.

그리고 새로운 것이 발견될 때마다 낡은 이론은 쓰레기통에 버려진다.

언젠가는 이것이 모든 과학 이론에게 일어날 것이다.

 

모든 과학 이론은 쓰레기더미에 버려질 운명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 법칙, 법칙 중의 법칙을 모르기 때문이다.

 

과학은 호수에 비친 달일 뿐 진짜 달이 아니다.

진짜 달은 안에 있고 현상세계 전체는 거울처럼 작용한다.

그대가 장미꽃에서 아름다움을 볼 때

그 아름다움이 장미꽃 속에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대가 부여한 것인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그대가 장미 숲을 지나가는데

특별히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순간이 있다.

그저 평범한 장미꽃일 뿐이다.

그런데 다른 순간에, 다른 분위기에서, 다른 마음 상태에서

갑자기 그 똑같은 꽃들이 아름다움과 향기를 띠며 새로운 차원이 된다.

 

문이 열리고 신비가 풀려나온다.

장미는 단지 거울일 뿐이다.

그대가 보는 것은 그대가 그 안에 부어넣은 것이다.

거울 앞에 서서 거울을 들여다보라.

거울은 단지 그대를 비출 뿐이다.

 

그대가 추하다면 거울은 추한 모습을 비추어준다.

그대가 아름답다면 거울은 아름다운 모습을 비추어준다.

그대가 추할 때 모든 장미가 추해지는 순간이 있다.

그대가 슬플 때 달 또한 슬퍼지는 순간들이 있다.

그대가 지옥에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 지구 또한 지옥 같은 순간들이 있다.

 

그대는 그대 주위에 실재를 창조해 낸다.

그대 주위에 실재를 투사한다.

바로 그대 안에 창조주가 있다.

그것을 앎으로써 모든 것을 알게 되는 그 하나, 창조주가 그대 안에 있는 것이다.

 

미학자들이 수세기 동안 아름다움의 정의를 내리려고 했으나

항상 실패해 온 이유가 그것이다.

아름다움은 정의할 수 없다.

왜냐하면 아름다움은 바깥 세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대가 내면에서부터 부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장미꽃은 아름답지 않다.

그대가 그 꽃 주위에 아름다움을 창조한 것이다.

장미꽃은 못과 같다.

그대가 못에 아름다움을 걸어놓으면 그것이 아름답게 보인다.

시인들은 장미 숲을 지날 때 장미꽃을 아름답게 노래하지만

그대는 그것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과학자는 장미꽃이 피어있다는 것도 전혀 의식하지 못한 채 지나친다.

그리고 상인은 장미를 보고 그것을 팔면 얼마를 벌 수 있을까를 생각한다.

아이들은 장미꽃을 꺾어 몇 분 동안 가지고 놀다가는 잊어버리고 다시 가던 길을 간다.

 

장미는 아무것도 아니다.

장미에게 의미를 주는 것은 바로 그대이다.

사람들은 매일같이 내게 똑같은 질문을 수천가지 방법으로 묻는다.

삶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삶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

그대가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의미를 창조하는 것이다.

 

의미는 객관적인 사실이 아니다.

그러므로 삶의 의미를 찾으려고 하지 마라.

그 의미를 계속해서 찾아가면

결국에는 삶은 의미 없는 것이라는 진리에 도달하게 되어있다.

 

서양의 실존주의자들이 그런 식으로 의미를 찾아다니다가

결국 삶은 무의미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거기에서 멈추었다.

매우 불행한 일이다.

 

동양에서도 역시 그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것은 아직 반밖에 이르지 못한 것이다.

삶에는 의미가 없다.

그러나 그것은 그대의 삶에 의미가 없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삶은 그대가 어떤 의미도 부과하지 않을 때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그 의미는 부여되어야 한다.

 

그대의 존재를 삶에 부어라.

그러면 삶은 의미로 진동하게 된다.

그때 삶은 노래하고 춤을 추며 신성해진다.

 

사람들은 이렇게 묻는다.

신이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에게 보여줄 수 있습니까?”

 

나는 그대에게 신을 보여줄 수 없다.

아무도 그대에게 신을 보여줄 수 없다.

왜냐하면 신은 내면에서 발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대는 신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그러면 장미에서도 신을 볼 것이다.

장미는 거울이 되고 그대는 신을 볼 것이다.

 

새가 아침에 노래한다.

갑자기 전에는 없었던 분위기를 느낀다.

그대가 그렇게 만들어서 신성해진 것이다.

 

일단 내면에서 신을 발견하면 모든 것이 신성해진다.

신을 내면에서 발견하지 않고 계속해서

신은 어디에 있습니까?’라고 그의 주소를 묻는다면,

그대는 결코 신에 이르지 못할 것이다.

 

신이 어디에 있다고 하는 말은 모두 거짓이다.

왜냐하면 신은 그대 안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에게는 어떤 주소도 필요 없다.

 

 

아주 오래된 이야기지만 매우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다.

신이 세상을 창조했을 때 모든 것은 아름다웠다.

그런데 인간을 창조하자 모든 것이 끔찍해졌다.

인간과 함께 지옥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이 계속해서 불평을 늘어놓았기 때문에

신은 잠을 잘 수가 없었고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었다.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낮이나 밤이나 계속 문을 두드려댔다.

악몽이었다.

신은 틀림없이 다시 세상을 평화롭게 만들기 위해

인간을 파멸할까도 여러 번 생각했을 것이다.

 

그때 몇몇의 현인들이 조언을 해주었다.

인간을 파멸시킬 필요는 없습니다.

단지 거주지를 옮기기만 하면 됩니다.

더 이상 이곳 지구에 살지 마세요.”

 

그는 이곳에 살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인간들 때문에 거주지를 옮겨야 했다.

신이 말했다.

그러면 어디로 가는 것이 좋겠는가?”

 

어떤 현인이 말했다.

에베레스트로 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신이 말했다.

그대는 모르는군.

얼마 있지 않아 힐러리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그곳에 찾아오게 되어있다.

그러면 모든 혼란이 다시 시작될 것이다.”

 

그러자 다른 현인이 말했다.

그러면 달로 가세요.”

 

신이 말했다.

그대도 모르고 있군.

그것도 아무 소용이 없다.

얼마 있지 않아 사람들은 달에 도착하게 된다.

인간이 도저히 생각해낼 수 없는 곳을 생각해보라.”

 

그러자 나이가 든 현인이 옆으로 와서 귀에다 무슨 말을 했다.

그러자 신이

그렇다. 그대가 옳다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늙은 현인은 이렇게 제안을 했다.

그러면 사람들 안에 숨으세요.

사람들은 바깥에 있는 곳은 어느 곳이나 다 찾아낼 것입니다.

그러나 그 자신의 내면세계는 결코 찾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을 생각하지도 못할 것입니다.”

 

매우 의미 깊은 이야기다.

실화라고 하고 싶다.

이야기가 아닌 진실이다.

 

고맙습니다.

진리를 탐구하는 [지혜별숲] 이었습니다.

오늘도 고요하시고 평온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