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공부 2

[비이원 시크릿] 시크릿/ 끌어당김의법칙

Buddhastudy 2024. 2. 13. 19:44

 

 

--기존의 시크릿 스킬들과 비이원 시크릿의 차이

 

이번 시간에는 시크릿이라는 것에 대한 근본적인 고찰이에요.

그러면서 기존의 시크릿

그러니까 보틀업이라고 부릅니다.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형태의 시크릿하고

 

그다음에 비이원성에 기반한 비이원 시큐릿,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톱다운 방식의 시크릿의 차이점에 대해서 한번 알아볼게요.

위로 올라가는 시크릿과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시크릿의 차이점

 

보통 시크릿이라는

끌어당김의 법칙, 끌어당김의 원리, 유인력의 원리, 이런 것들이

론다번이라는 분의 <시크릿>이라는 책을 통해서 유행을 하게 되죠, 알려졌죠.

그러니까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그러면서 여러 가지 시크릿의 어떤 그 스킬들이

대중들한테 전파가 됐어요.

여러분들이 알고 계시는 시크릿을 알려면

어떻게 해라’ ‘이렇게 이렇게 해라라는 여러 가지 가르침들이 있습니다.

 

뭐가 있을까요? 몇 개만 한번 골라볼까요?

-생생하게 느껴라, 뭐 있죠?

-오감을 활용을 해라.

-이미 이루어진 듯이 느껴라.

이런 식으로 여러 가지 가르침들이 있습니다.

네빌 고다드가 유행시킨 Think from

-‘이미 이루어진 결과로부터 생각을 하라이런 말들이죠.

여러 가지 가르침들이 있어요.

 

그런데 문제는 뭡니까?

근본적으로 이러한 스킬들이 대두되면서

이러한 것들이 왜, 왜 이렇게 해야 되는지에 대해서는

이해가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에요.

그 이해에 대해서, 시큐릿이 이루어지는 원리에 대해서

제대로 설명이 되어 있는 가르침 같은 것들도 별로 없었던 게 사실이고

 

그러다 보니까 시크릿을 어떻게 받아들였냐면

개체 존재 입장에서, 개아의 자리에서

어떤 하나의 목적, 어떤 하나의 이루어진 결과라는 목적에 도달하기 위해서

힘겹게 힘겹게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는 형태로

그런 이미지로 받아들이게 된 거예요.

 

 

반면에 비이원 시크릿은 뭡니까?

톱다운 방식을 씁니다.

위에서부터 아래로 내려가는 거예요.

 

이건 뭡니까?

이루어진 결과로부터 펼쳐지는 과정을

당연한 앎으로 회상하는 방식을 쓰는 거예요.

 

그래서 이러한 방식의 시크릿은

위로부터의 시크릿

혹은 신의 자리로부터의 시크릿이라고 부르는 겁니다.

 

용어 자체가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니에요.

그런데 용어를 쓴다는 것은

그만큼 정체성이 명확해지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알고 계셔야 되는 거예요.

위로부터의 시크릿과 그다음에 아래로부터의 시크릿의 차이

 

 

여러분 아래로부터 위로 도달하려는 올라가는 방식의 시크릿을 하게 되면

인위적인 노력이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까 뭐가 발생을 해요?

긴장이 발생을 해요

?

자연스럽지 않다라는 거죠, 자연스럽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합니까?

생생하게 느끼기 위해서 노력을 해요.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생생하게 느낄까?

 

심상화 훈련을 하면서

눈을 감고 머릿속에 사과를 그려보는 훈련부터 시작해서

여러 가지 훈련들이 있습니다.

색감을 느껴보는 훈련들도 있고, 냄새를 느껴보는 훈련들도 있고

 

그런 것들이 나쁘다라는 게 아니라

근본적인 원리를 알고 시작하느냐?

아니면 무턱대고 결과에 도달하기 위한 방편으로서

그것들을 연습하면서 사용하느냐?

 

이거는 천지 차이이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해서 지금 말씀을 드리는 거예요.

 

또 뭐가 있다고 그랬죠?

이미 이루어진 듯이 믿어라.’

믿음과 앎의 차이는 명확합니다.

시크릿은 믿음의 차원이 아니에요, 믿음의 문제가 아니에요.

그래서 그냥 앎의 차원이에요.

 

앎이란 건 무엇인가?

이 영상을 시청하고 계시는 여러분들이

인간이라는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죠.

그걸 믿으려고 노력해야 돼요?

아니면 내가 남자다 내가 여자다라는 사실을

본인 스스로에게 납득시키기 위해서

A4 용지 몇 장을 들여서 아니면 사유를 통해서

생각을 하고 결론을 도출해내야 됩니까?

그렇지 않죠.

그냥 아주 자연스럽고 당연한 앎으로 있는 거예요.

이러한 것들은.

 

시크릿도 마찬가지예요.

당연한 앎으로부터 시작하게 되면 뭡니까?

시공간이 펼쳐지는 메커니즘과 원리에 대한 앎이 선행이 된다면

당연히 이루어진 결과로부터

마치 과거를 회상하는 듯한

그런 회상의 시선을 사용을 할 수가 있죠.

이게 위로부터의 시크릿이 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책에서도 그렇고, 카페에서도 그렇고, 제 강연들에서

인식의 맹점이라는 것에 대해서

계속 설명을 했던 겁니다.

 

인간 인식의 한계는

지나간 것만을 인식할 수 있다라는 사실이 바로 그것이에요.

 

이 부분에 대한 고찰은

여러분들이 자신의 것이 될 때까지

끊임없이 한번 사유 해보시기 바랍니다.

 

 

--아래로부터의 시크릿- 노력, 집착

 

중요한 건 뭡니까?

아래로부터의 시크릿은

-‘긴장을 유발하게 되고,

-‘노력이 인위적인 형태로 수반된다라는 거예요.

 

인위적인 형태의 노력이 수반되기 때문에 뭐가 발생합니까?

균형력이라고 부르는 것들이 발생을 해요.

역노력의 법칙막 그런 식으로도 알려져 있죠.

균형력

집착이 발생하기 때문에도 그렇고.

 

집착이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건 뭐냐 하면은

아래로부터 위로 올라가는 방식의 시크릿은

어떤 결과를 내가 아직 소유하고 있지 않다라는

어떤 그것이 전제가 되어 있어요.

그것을 소유하기 위해서

이러한 저러한 마음의 스킬을 써서

그것을 움켜쥐기 위해서 도달해야 된다라는 인식이

먼저 이제 전제가 되어 있더라는 겁니다.

우리의 마음 안에.

 

여기에 근원적인 문제점이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내 것이 아닌 거예요, 도달하려고 애쓰고 있다라는 건.

 

시크릿에 대해서 논의되는 많은 논쟁거리들 중에

노력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뭐 이런 논쟁들이 있어요.

 

이게 전부 다 어디서 나오는 거냐면은

노력 자체를 인위적인 어떤 행위

무언가를 손에 넣기 위한

인위적인 행위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그런 거죠.

 

하지만 이미 결과로부터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방식의 시크릿은 뭐냐 하면

노력이 노력이 아니게 돼요.

이건 뭡니까?

당연한 하나의 과정이 되는 겁니다.

 

나중에 여러분들이 공부를 해 나가시면

깊이깊이 공감을 실감을 하게 되실 텐데요.

사실 이게 뭐냐면요.

우리가 체험하고자 하는 진정한 소망은

어떤 하나의 결과가 아니에요.

 

정말로 중요한 거는 과정입니다.

과정이 결과를 완성하는 것이죠.

 

이 부분에 대한 공부는 논의는 또 나중으로 미뤄놓고

오늘의 주제에 대해서 한번 다시 한번 돌아가 볼게요.

 

 

--아래로부터의 시크릿- 괴리감, 초조함

아래로부터 위로 올라가는 방식의 시크릿을 하려고 했더니

-이미 가진 것처럼 느껴야 되고

-생생하게 또 느껴야 되고 또 뭡니까?

-확언도 하고

근데 확언을 하면서도 뭐예요?

확언을 하면서도 마음속 깊은 곳에는 믿지 않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뭐가 생겨요?

괴리감이 생기죠.

 

시크릿을 한다, 심상활을 한다, 막 하고 있는 그 순간에는

어찌저찌 이렇게 잘 넘어갑니다.

그리고 현실로 돌아오면 뭐예요?

바로 괴리감이죠.

현실은 여전히 변한 게 없구나.

언제쯤 변하게 될까?”

 

시크릿 하시는 분들이 빠지게 되는

가장 큰 마음의 유혹 중에

바로 즉각즉각 결과가 나타나서 행복해지고 싶다라는

초조함이라는 마음이 있습니다.

 

사실 초조함이 왜 생겨요?

결과라는 것을 손에 넣어야 할 어떤 목표로서 생각을 하고

아래로부터 위로 힘겹게 힘겹게 올라가고 있기 때문에

그런 마음들이 생기는 겁니다.

 

 

--위로부터의 시크릿- 당연한 과정, 당연한 앎

이처럼 무엇을 설명하고자 하는 거냐면요.

위에서부터 내려다보는 방식의 시크릿은 노력이 노력이 아니에요.

당연한 과정이지.

 

하지만 아래로부터 위로 올라가려는 형태의 시크릿은

인위적인 노력이 될 수밖에 없는 겁니다.

 

지난 영상에서도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라고 칩시다.

맛있는 음식을 즐기고 있는 그것은 어떤 하나의 결과가 되겠죠.

그럼, 그 결과는

원인과 과정을 동반하면서 드러나기도 해요.

시공간의 펼쳐짐이라는 그 흐름 안에서

 

맛있는 음식을 내가 즐기기 위해서는

그 음식을 어떻게 해야 돼요?

집어서 입에 넣어서, 씹고, 삼키고, 또 소화시키고 해야 되죠.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을 노력이라고 느끼십니까?

노력이라고 느끼세요?

 

여러분들이 정말로 좋아하는 것

여러분들이 정말로 즐기는 것

즐기는 것을 대상으로 한번 생각을 해 보시란 말이에요.

그 과정 자체가 노력으로 느껴지시냐? 이거예요.

 

그렇지가 않아요.

말 그대로 너무나 당연한 하나의 과정이 되는 겁니다.

 

만약에 맛있는 음식을 즐기고 싶은데

나는 입으로 음식을 가져오는 그 행위 자체가

너무 힘들어 너무 지겨워

씹는 것도 싫어.

누가 좀 씹어줬으면 좋겠어.

누가 그래 씹어줘요?

씹어주면 뭡니까? 삼키는 것도 싫어해요.

 

음식을 즐기려면 적어도 입에 가져와서 씹고 삼켜야 될 것 아닙니까?

근데 노력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따지고 있는 마음의 이면에는

이러한 마음들이 숨어 있다라는 거예요.

노력 자체가 너무 거부감이 드는 거예요.

 

모든 게 아래로부터 위로 어떤 도달해야 할 결과

도달해야 할 목표에

힘겹게 힘겹게 다가서는 방식의 시크릿을 하고 계시기 때문에 그래요.

 

음식을 먹는 것을 예로 말씀드렸지만

모든 게 이렇습니다.

간단해요.

 

모든 것이 이루어진 결과에 도달하고 있는 매 순간순간이

과정임을 알게 되면

그것은 노력이 아니라 당연한 행위가 됩니다.

리액션이 아니라 액션이 되는 거예요.

 

리액션이란 반응이에요. 반응.

무언가로부터 나타나는 반응이라기보다

당연한 행위가 되는 겁니다.

 

그런데 위로부터의 시크릿을 사용하려면

톱다운 방식의 시크릿을 사용하려면

어떤 하나의 앎이 뒷받침이 돼 있어야 돼요.

그래야지 그래야지 작동을 합니다.

 

이유는 뭡니까?

우리가 자기 자신을 속일 수 있다라고 생각을 하시죠.

그렇지 않아요.

의식의 깊은 곳을 절대로 속일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속이려고 하는 주체는 현재 의식이에요.

그런데 현재 의식 자체가 뭐다?

심층의식에서 이미 작용한 관념들이

의식의 가장 표면으로 드러나서

그것을 인식을 하고 있는 것이

현재 의식이기 때문에 그래요.

 

그렇기 때문에 현재 의식을 어떻게 조작해서

심층 무의식을 속여야겠다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겁니다.

속일 수가 없어요, 자기 자신을.

 

이런 말들이 있잖아요.

우리의 상위 자아는 뭐 이미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

속일 수가 없다

비슷한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위에서 아래를

결과에서 내려다보는, 과정을 내려다보는

회상하는 방식의 시크릿을 사용을 하려면

결과라는 것이 이미 이루어진 그 상태 그대로 존재하고 있다라는 부분이

하나의 자연스럽고 너무나 당연한 앎으로써

이미 정착이 되어 있어야 돼요.

 

그것을 도와주는 게 뭐죠?

사유라는 얘기입니다.

무엇에 대한 사유?

비이원성에 대한 깊은 사유가 되는 거죠.

 

이 부분 때문에 시크릿이

영성과 분리가 되지 않는 겁니다.

 

그러면서 뭡니까?

자연스럽게 깊은 영성으로 들어가기 시작하면

이제 사유와 명상이 분리가 되지 않게 돼요.

일상생활과 명상 생활, 영성 생활이 또 분리가 되지 않게 돼요.

시크릿이 하나의 영성이라고 말씀드리는 이유가 되는 거죠.

 

위로부터의 시크릿

앎으로부터 시작하는 겁니다.

어떠한 형태로?

회상하는 시선과 같은 형태로

시작하시는 거예요.

 

위에서부터 내려다보는 과정을 내려다보는 형태의 시크릿은

노력을 노력으로 받아들이지 않게 됩니다.

그게 아니라 당연한 과정으로 받아들이게 되면

저항 자체가 사라지게 돼요.

그리고 뭡니까?

즐기게 됩니다.

 

인터넷 쇼핑을 한다고 칩시다.

사고 싶은 물건이 있어서 결제 버튼을 딱 누르는 순간 뭐예요?

그것은 이미 내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요.

 

뭡니까?

로켓 배송이 되든, 아니면 뭐 며칠 시간이 걸리는 배송이 되던 해외에서 오는

그 시간은 뭐예요?

기다림의 어떤 과정이거든요. 당연한 과정이에요.

비슷해요.

 

기다림의 시간, 그 두근거림과 그 안에서 일어나는 뭐라 그럴까요?

과정으로서의 당연함은 있을지언정

사실 아래로부터 위에 도달하고자 하는 시크릿에서 체험되는 것과 같은

괴리감, 의심, 불신, 이런 것들은 없죠.

억지로 무언가를 인위적으로 느껴야 한다라는

이런 부담감 같은 것도 없게 되죠.

 

중요한 겁니다.

너무나 중요한 거예요, 어떻게 보면.

 

그래서 여러분들의 시크릿을 한번 자세히 한번 살펴보세요.

나는 어떤 방식의 시크릿을 하고 있는가?

위로부터, 결과로부터 과정을 회상하는 형태의 시크릿인가?

아니면 아래로부터, 원인으로부터 어떤 결과에 도달하고자

힘겹게 힘겹게 노력을 통해서

기어 올라가고 있는 형태의 시크릿인가?

 

결국 시크릿의 시작 지점부터

전제되어 있는 전제되어 있는 관점부터

우리의 시크릿의 성패를 결정을 해버린다는 얘기입니다.

 

이처럼 앞으로 시크릿에 대한 부분들

아주 근원적인 부분들

문제점들부터 하나하나 차근차근 한번 다뤄가 볼 거예요.

 

이번 시간에는 여러분들이 아셔야 되는 게 뭐냐면은

위로부터 아래로 내려가는 형식의 시크릿과

아래로부터 위로 올라가고자 하는 시크릿의

시작 지점의 차이에 대해서 말씀드린 겁니다.

 

그것은 뭐냐면 당연한 앎이에요.

당연한 앎.

 

이것은 믿음의 차원이 아닙니다.

인식의 차원이 되는 거예요.

 

물론 이와 같은 톱다운 방식의 시크릿을 진행을 하려면

많은 것들을 이미 앎로써 앎으로써

자기 자신 안에 수용하고 있어야 됩니다.

그렇기 위해서 뭡니까?

공부가 필요한 것이죠.

그리고 그것은 마음공부와 떼려야 뗄 수가 없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라는 것도

알아두셔야 됩니다.

 

 

오늘 영상, 어떻게 보면 이제 간략하게 들어가는 그 부분이기 때문에

여기서 줄일게요.

여기서 줄이고 시크릿에 대한 부분, 마음공부에 대한 부분

균형을 이루면서

또 다양한 영상들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