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올라마음학교

[교장쌤 특강] 수행하지 마세요.

Buddhastudy 2024. 3. 26. 19:53

 

 

그건 수행이 아니요. 받아들이면 된다고.

그게 예수님이 말한

믿는 자에게 복이 있을지어다

불교에서도 대승기신론의 대승은 믿음으로 시작한다는 말이에요.

불교의 교리라든가 위빠사나

이런 것들의 수행을 오래 하고, 그런 교리를 배우고

저는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고 봐요.

뭐 그렇게 해서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그거보다는 그냥 [자기가 자기를 분석]해 보면 돼요.

나를 분석해 나란..

 

 

--깨달음이란?

깨어 있다라고 하는 거는 불경에서 이렇게 말해요.

자기의 탐진치가 자기를 휘두르지 못하게 하는 것.

 

근데 우리는 얼마나 하루에도 가끔

누가 좀 답답한 짓 하면 화를 바로 내고

누가 마음에 안 드는 소리를 하면 또 바로 반박하고

이런 게 습관화됐잖아요.

 

그런데 의외로 여러분은 자기가 사랑하는

우리 저기 희준이 엄마는

희준이가 그런 짓하면 바로 나와요? 아니면 한 번은 참아요?

한두 번은 참거든.

그만큼 걔한테는 깨어 있는 거야.

 

그렇게 우리가 깨어 있어야 돼요.

[자기의 일거수일투족에 깨어 있어야 돼.]

 

근데 이거를 지금부터 깨어 있는 수행을 하겠다그러면 위빠사나지

그렇게 수행하면 그건 힘들어서 못 해요.

죽을 때까지 해도 잘 안돼.

 

거꾸로, 역발상으로 해야 돼.

어떻게 해야 되냐면

나는 이미 내가 그 깨어 있는 그 봄, 그 자체다라고

자기를 그거라고 여겨버리면 바로 돼.

 

여러분이 지금 눈으로 나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그 마음의 눈

지금 이 상황에 여기에 와서 여러분이 저를

눈을 통해 보고 있으며

그리고 저의 얘기를

귀를 통해서 듣고 있으며

그 깨어 있는 그 여여한 여러분의

순수한 신의 성품, 하나님의 성품, 본래 성품의 자리가

지금 여기에 그대로

이미 내가 그것이고 그것이 나이기 때문에

그것이 이렇게 보고 있다.

그걸 받아들이면 돼요.

 

그건 수행이 아니요, 받아들이면 된다고

그게 예수님이 말한 믿는 자에게 복이 있을지어다

불교에서도 대승기신론의 대승은 믿음으로 시작한다는 말이에요.

 

그냥 믿으면 끝나.

내가 그거다하면 끝난다고.

무슨 수행이 필요해.

 

그러면 누가 나한테

예를 들어

욕을 한다, 또는 뭐 누명을 씌운다.

예를 들어 그런 어떤 우리로서는 굉장히 금방 화가 날 수 있는

이런 외부 자극이 있다, 또는 그런 상황 속에 있다 할지라도

우리가 깨어 있는 사람은 굉장히 침착할 수가 있어요.

?

항상 평등지에 먼저 있기 때문에.

 

근데 차별지에 빠져 있는 사람은, 평등지가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은

바로 휘둘리게 돼 있어요.

그리고 상황이 이미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후회와 감정만이 남아 있어요.

 

자 그래서 불교의 교리라든가 위빠사나

이런 것들의 수행을 오래 하고, 그런 교리를 배우고

저는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고 봐요.

 

 

--‘란 현상을 분석하기

그렇게 해서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그거보다는 그냥 [자기가 자기를 분석해 보면 돼].

 

란 이 현상이 있잖아요.

여러분 란 현상이 있잖아요.

이런 란 현상을 분석해 보면

여러분이 여러분을 현상을 분석해보면

[]이 있고요.

그다음에는 [생각, 감정, 느낌], 그다음에 의식 이런 게 있고요. [의식활동]이죠.

그다음에는 자기한테 [기운]이 있어요.

그다음에는 자기한테 어떤 [상상이나 상념]이 있고요.

그다음엔 자기한테 [정신]이라는 게 있어요.

정신이라는 건 보는 걸 말해요.

그다음에 여기에는 저는 이걸 원인이라고 말하는데 이게 뭐냐 하면

[아는 것]이에요. 아는 것

그다음에 여기에 [근본 자리]라는 게 있어요.

이게 바로 하나님 부처님 자리인데

이게 보면 이렇게 7개예요.

그래서 저는 이거를 무지개몸이라고 우리 마음 학교에서는 불러요.

 

-

-생각, 감정, 느낌, 의식활동

-기운

-상상, 상념

-정신(보는 것)

-원인(아는 것)

-근본자리(하나님, 부처님)

 

 

이게 여러분을 인수분해한 거예요.

여러분을 인수분해 하면

여러분들은 때로는 이 중에 어느 하나

또는 이것들이 막 섞여서 자기를 표현하고 있어요.

 

그렇지만 대부분의 여러분의 주의의 중심은 의식은

주로 어디에 그 베이스를 두냐면

 

-(베이스 1)

생각, 감정, 느낌, 의식활동-(베이스 2 )

그리고 위 둘이 메인이고

기운-이거는 가끔 (보조 1)

상상, 상념-(보조 2)에요.

안 그래요?

주로 이렇게 살아요.

그리고 이 밑은 잘 몰라 이거는 아예.

 

그런데 깨어있으란 말은 이거 가지고는 전혀 안 되는 거예요.

깨어 있다라는 거는 여기에 해당되는 말이에요.

여기서 본다는 건 눈으로 본다는 게 아니고

[눈이 본다는 것을 보고 있는 거]

내가 아까 말했죠.

안다는 것은

[내가 지금 보고 있다라는 것을 아는 거.]

 

여러분은 자기가 화가 났어도

자기가 좀 깨어 있을 때는 내가 화났다는 걸 자기가 알아요.

그러면 그만큼 자기가 그 화난 상태에서 벗어나올 가능성이 높아지는 거죠.

 

 

--우리 몸에 이미 신성이?

즉 이 [무지개몸]이라고 하는 이거가 사실은

우리들의 [신성한 자리]

이게 바로 [부처의 몸]이고 그래요.

이 전체가 있는 그대로가 진리예요, 사실은.

 

근데 우리가 이 속에서 자꾸 뭘 찾고 있는 거예요, 지금.

그러니까 너무 웃기는 거지.

자기가 이미 진리인데.

내가 이 7가지를 가지고

이 세상을 아름답게 창조하고 나를 멋있게 표현하면 끝나요.

근데 우리는 그걸 못하고

이 안에 빠져서 막 뒤죽박죽인 거예요, 혼란스럽고.

 

이미 하나님이 자기를 닮게 이렇게 다 해줬어요.

내가 이렇게 생겼으니까

내가 이렇게 7가지 무지개 몸을 갖고 있으니까

너도 요거 그대로 해줄게하고 줬는데

지가 그 안에서 난리 치고 있는 거야.

 

그래서 이거 갖고 뭐 만들어 보고

뭐 이거 갖고 또 기공하고 있고

이거 갖고는 우주다하고 있고

이거 갖고는 뭐 법이란 이런 것이다하고 있고

이거 갖고 또 위빠사나 하느라고 바쁘고.

 

그런 거 다 할 필요가 없어요.

나를 정견을 딱 하면

, 내가 이렇구나!

 

질서를 찾는 거예요.

나라는 존재의 질서를 찾는 거라고요.

 

그럼 베이스가 어디 있어야 돼?

오히려 여기 있어야 될 거 아니에요?

여기에 베이스가 있어야 깨어 있지.

 

[깨어있으란 말은 다시 말하면

무지개몸의 질서를 찾아라] 이 말이에요.

그래서 여기에 베이스를 두고

이것들은 하인으로 부려라 이 말이에요.

몸이 너의 주인이 아니라

[몸이 너의 하나의 도구가 되라] 이런 말이에요.

 

여러분이 하나님 부처님이 어디 계신가?

이제 협의로 말하면 이 근본 자리에 있지만

그러나 광의로 말하면

이 전체가 다 하나님 부처님의 몸이에요.

 

그래서 이 몸 이대로가

부처님이 계신 법당이고

하나님이 계신 성전이라는 말이 나오는 거예요.

 

 

--차원을 넘나들 수 있나요?

어쨌든 그거를 위해서 우리가 조금 더 진도를 나가봅시다.

우리가 전도몽상이 돼 있어서 모르는 게 하나 있어요.

 

제가 차원 얘기를 조금 해볼게요.

1차원이라는 건 점선을 말하는데 1차원은 어디에 있죠?

2차원 위에 그려지죠.

 

2차원은 어디에 있어요?

2차원은 이 종이. 평면

이거는 3차원 속에 있어요.

 

3차원 이 시공간은 어디에 있죠?

4차원에 있어요.

4차원은 시공간이 초월 돼 있는

다시 말하면 시공간이 책처럼 이렇게 겹쳐 있을 수 있는 그런 영역이에요.

그런 차원이라고.

 

4차원은 또 5차원 속에 있어요.

5차원은 창조의 영역이에요, 창조와 파괴의 영역

5차원은 또 6차원에 있어요.

내가 차원 얘기를 하자면 지금 끝도 없는데.

 

어쨌든 여기서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뭐냐 하면

그래서 우리가 알고 있는 이 세상이

우리는 3차원이라고 생각하잖아요.

근데 여기서 우리가 4차원을 얼마든지 찾아볼 수가 있어요.

 

예수님한테 누가 물었어요.

하늘나라가 어디 있냐?

그랬더니 하늘나라가 니 마음속에 있다

이렇게 얘기를 하셨거든요.

 

그리고 또 예수님이 이런 말을 했어요.

하나님 속에 내가 있고, 내 속에 하나님이 있다.’

 

근데 불경의 화엄경에도 보면 똑같은 말이 나와요.

삼천 대천 세계가 내 속에 있고, 내가 삼천 대천 세계 속에 있다.’

 

이거를 우리 현대말로 바꿔보면

‘3차원 속에 4차원이 있고 4차원 속에 3차원이 있다.’

이 말하고 똑같아요.

 

무슨 말인고 하니

우리가 어떤 때는 시간이 굉장히 빨리 가고

어떤 때는 시간이 멈춰 선 것 같아요.

시간이라는 게 일정하게 흐른 게 아니라

내가 시계를 봐야 시간이 흐른다는 걸 알고

우리가 밤에 잠을 깊이 잘 때는 시공간이 없어요.

 

그리고 자기가 몇 시간 잤는지를 깨나면 모릅니다.

시공간이 절대적이라면 몇 시간 잤는지를 알아야지.

몰라요.

그 시계를 봐야 알아 그죠?

 

이건 뭘 말하냐면

우리의 우리가 [잠잘 때는 이미 4차원]에 있다는 거예요.

또 여러분이 명상을 깊이 하고 있으면

시공간을 잊어버려요.

삼매 속에 들어가 있으면.

 

그래서 자기는 한 30분 한 것 같은데

시계 보니까 2시간이 가 있어.

이럴 수 있어요.

 

이미 3차원이라고 하는 우리가

이 세계 속에 4차원의 베이스가 깔려 있고

이 베이스 위에 3차원이 환영처럼 펼쳐져 있는 건데

그거를 못 보고 있는 거예요.

 

이거를 좀 더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핸드폰을 켜면 핸드폰 속에 핸드폰의 기능 속에

동영상 유튜브 볼 수 있는 게 나오죠?

그럼 여러분 보세요.

유튜브로 동영상을 켜보면

동영상 속의 시공간이 지금 이 바깥의 시공간하고 같아요. 달라요?

다르죠.

더 시간이 빨리 갈 수도 있고, 늦게 갈 수도 있잖아요.

 

즉 다시 말하면

핸드폰 기능 속에 하나의 3차원 세계가 들어있고

또 그 3차원 세계는 핸드폰 기능 속에 들어 있어요.

또 다른 비유로 말하자면

내 속에 과거 현재 미래가 들어있어요.

 

여러분 과거 생활할 수 있고, 현재 느낄 수 있고, 미래 생활할 수 있잖아요.

반면에 시간의 흐름 속에 내가 들어있다고 볼 수도 있죠.

 

다 똑같은 말들이에요.

하나님 속에 내가 있고 내 속에 하나님이 있다나

3차원 속에 내가 있고 내 속에 4차원이 있다거나

과거 현재 미래 속에 내가 있다거나 내 속에 과거 현재 미래가 있다거나

순간 속에 영혼이 있다거나 영혼 속에 순간이 있다거나

 

이게 무슨 말이냐면

3차원 속에 4차원이 이미 있다는 거예요.

다시 말하면

3차원이 4차원 위에 잠시 펼쳐졌는데

우리가 4차원을 못 보고 있기 때문에

3차원만 있는 것처럼

아까 내가 초창기에 말했죠.

바닥만 보고, 서울 가서 바닥만 보고 다니는 사람이기 때문에

4차원을 못 보고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깨달았다라고 하는 것은

존재의 중심이 4차원에 가 있는 걸 말해요.

시공간을 벗어나 있어요.

?

내가 몸이 아니니까

 

그래서 영생하는 거야.

깨달은 사람이 영생한다. 천국 가서 영생한다라고 예수가 말한 것은

천국 하늘나라가 어디 안드로메다 별자리나

뭐 북극성 자리에 따로 있는 게 아니고

이런 차원 얘기를 하신 거예요.

 

근데 그 시대에 차원이란 말이 있었어?

dimenstion 이런 거 없었어.

그래서 할 수 없이 그렇게 비유적으로 설명하신 거란 말이에요.

 

근데 그거를 아직도 대부분의 목사님들이, 신부님들이

그런 식으로 얘기를 하고 있어.

자기도 모르니까.

 

 

--한 번 들어보세요.

그렇다면 한번 들어보세요.

지금 이 소리 속에

이 소리를 듣는 성품이 같이 들어있는 거야.

 

소리만 있으면 성품은 없으면

이 소리를 어떻게 듣겠어요?

 

반대로 그 성품이 여기 있기 때문에

내가 소리도 낼 수 있고

말도 할 수 있고

이렇게 알아들을 수도 있죠?

 

그래서 지금 이 자리가 온통 다 하나님 부처님이

여여하게 계신 자리인데

우리가 그 속에서 지금 그걸 못 알아보고

찾겠다고 이 난리를 치고 있다는 거예요.

땅만 보고 댕기니까.

 

자기 분별의 차별지에 빠져 있기 때문에

평등지 자리를 넘어서 계신 하나님 부처님을

눈앞에 있는데도 못 보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