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올라마음학교

[교장쌤 특강] 깨달음: 세간과 출세간

Buddhastudy 2024. 4. 2. 19:39

 

 

어쩌면 너는 그럴 수가 있나, 저런 놈을 친구라고등등

그냥 딱 하나야, 그럴 뿐이야.

그리고 그것들이 허상성이 보이니까

조용해지는 거예요.

 

 

--관법을 계속해 나가면

오온개공의 정견이나 또는 안이비설신의를

무로 보는 관법을 계속 진행해 나가시면

그 어떠한 복덕이라고 해야 되나

어떠한 그 깨어남이 있게 되냐면

[세상의 모든 일들이

그냥 바다 위에 파도가 생멸하는 것처럼

그냥 그럴 뿐이다]가 돼요.

 

옛날에는 어떤 사소한 일 하나에도

내가 막 그냥 지지고 볶고 가슴이 천근만근

어쩌면 너는 그럴 수가 있나

저런 놈을 친구라고등등

이 마누라가 아직도 이 모양인가

뭐 이런 내면의 목소리가 막 지지고 볶고

그냥 복잡해요.

 

그런데 이걸 하게 되면

이 모든 게 교통정리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어떻게 되느냐?

다 그냥 딱 하나야 그럴 뿐이야.

그리고 그것들이 허상성이 보이니까 조용해지는 거예요.

조용해지고

세상이 침묵하기 시작해.

그냥 조용하고

빛만, 내 의식의 빛만

홀로

마치 무슨 보름달이 무슨 추석 명절에 하늘 한가운데 떠 있듯이

대보름달이

그러더니 혼자 독로한 거예요.

그러면 조용해서 여여부동해지기 시작해요.

 

이런 어떤 부수 효과가 있어요.

다시 말하면

세상사에 여러분들이 스트레스를 안 받게 돼

 

 

--세상의 본질?

세상사의 본질이라고 하는 것이 다 환영이기 때문에

그리고 그것들을 통해서 여러분이 깨어날 수가 있는 거죠.

 

근데 깨어난다는 것은

내가 마치 이렇게 말씀을 드리니까

여러분들이 아 그럼 이런 경제를 통해서 이런 경제로 나아가는가 보다

이렇게 생각하시는데

그게 아니고요. 깨닫는 건 그냥

지금 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일이에요.

그냥 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으면

그냥 내일은 또 기약해야 돼.

내일 안 돼?

그럼 또 모레를 기약해야지.

 

그러니까 내가 오늘 안 되더라도 뭐 내일 하면 되겠지

이런 생각하시면 안 돼요.

지금 아니면 못 깨닫는다, 못 깨어난다라는

절박한 마음으로, 간절한 마음으로 하셔야 되는데

제가 참 아쉬운 게

교장이 저기 있으니 나중에 때가 되면 깨닫게 되겠지.

난 지금 바빠서 좀 할 일 좀 해야 되고

내가 하는 일이 더 우선이고

이런 분들이 너무 많으신 것 같아.

 

그게 나중에 되는 일이 아니에요.

나중이라는 건 없어요.

오직 지금 여기만 있는 거예요.

계속 지금 여기만이 존재하고 있는 거예요. 그렇잖아요?

그러니까 지금 깨나지 않으면

나중이라는 건 없어.

 

그래서 이러한 안목에 우리가 눈이 뜨이면

세상 일체의 고유한 뜻이라는 게 없어요, 아무 뜻이 없어.

그냥 내가 뜻의 의미를

이게 이러한 거다라고 생각하니까 그 뜻이 생기는 거지.

그냥 이거는...

 

여러분 보세요.

마치 우리가 그 양자물리학에서 보면

우주에 브라운운동이라든지, 소립자들의 파동운동이 있어요.

소립자들의 파동운동이 무슨 뜻을 가지고 파동을 일으키나?

 

내가 오늘 무슨 오늘은 김아무개를 좀 기쁘게 해주고

아니면 인류의 영성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오늘 우주의 소립자들은 파동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뭐 이런 거 있나?

없어요.

그냥 자기들은 그냥 그러고 있을 뿐이야.

 

그러면 여러분들이 그럼 뭐 생각을 일으켜서

이렇게 덧없고 무의미한 세상을 살아서 무엇 하나?’

또 이런 생각도 하시는 분들이 있어.

그러니까 이 생각 아니라고 하면

반대되는 저 생각이 떨어지는 거예요.

 

 

--본래면복자리 깨닫기

근데 본래면목자리를 깨달으려면

철저하게 무아가 돼서

모든 것이 있는, 본래 그대로 있는

완전히 비고

무의미한 그 자리를 철저하게 봐야 돼요, 우선은.

그래야 확철대오가 되는 거야.

 

그런데 여러분이 양자물리학하고

현대 그 뉴튼의 일반 물질세계에 대한 역학을 다루는 물리학은

서로 전혀 달라요.

일치가 안 돼.

이게 현재 과학자들의 고민거리야.

 

분명히 양자미시물리학의 세계에 있어서 이런 법칙인데

이 현상 세계에서의 물리법칙은 전혀 다르거든.

이 두 개를 공통된 법칙을 자꾸 사람들은 찾아내려고 들어요.

 

근데 거기에는 비결을 알아야 돼.

뭐냐 하면

요건 요 차원이고, 요건 요 차원인 거예요.

그래서 이 차원을 다루는 법칙과

이차원을 다루는 법칙이 다를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근데 이걸 모르고

자꾸 둘을 한 차원에 있는 거라고 생각하고

공통 법칙을 찾겠다 그러면

영원히 못 찾아요.

 

[모든 차원에서는

그 차원 나름대로의 법칙이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말은 무슨 말이냐면

깨달음은 비유하자면

[3차원에서 3차원의 홀로그램성, 환상성을 깨닫고

4차원을 보는 것인데, 4차원으로 들어가는 것]인데

4차원에 들어가 보면

4차원의 법칙과 3차원의 법칙이 따로 놀고 있다는 걸 알게 돼요.

 

 

--4차원 3차원 법칙?

즉 여러분은 이런 거 의아심을 많이 낼 거예요.

육조혜능이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닐 때

너는 어떤 자리에 있는가?’

이런 선문답을 던진다든가.

 

불교는 선악을 강조하는 이런 그 철학이 아니에요.

보다 더 근원적인 얘기를 하고 있는 거야.

그런데 3차원 세계에서는 분명히 우리 사는 세계에서는

선은 권장되고 악은 기피되야 될 그 하나의 사상이잖아요.

 

그러면 만약 3차원 세계에서

선함도 무의미하고 악함도 무의미하니까

그냥 마음대로 살자

이러면 되겠어요? 안 되겠어요?

그러니까 두 세계를 규율하는 그 법이 다른 거예요.

 

그러니까 이런 것을 여러분들이 깨달음을 얻더라도

생각에 떨어지지 않으면

3차원, 4차원에 동시에 설 수가 있는데

마치 동전의 앞면처럼 동시에 중도가 되는데

이걸 자꾸 생각에 떨어지면

이것과 이것이 서로 모순되는 일이 자꾸 생기는 거예요.

도대체 어쩌라는 거야?’ 이런 말이 나온다고요.

 

 

--깨달음을 대하는 자세

그래서 우리가 깨달음에 있어서도

철저하게 그 [자기를 무아로 만드는 정견법을 계속해야] 되지만

동시에 이 세상을 사는 것도

[열심히 충실하게 자기 도리와 본분에 맞는 일]

또 그대로 해나가야 되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