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24)

[법륜스님의 세상보기] 학살자는 죽어서 천벌을 받나요?

Buddhastudy 2024. 4. 16. 20:20

 

 

'1970년대에 캄보디아 총리를 지낸 폴 포트는

4년간 캄보디아 인구 4분의 1을 학살했습니다.

그런데도 어떤 죗값도 치르지 않고 72세에 지병으로 죽었습니다.

불교에서는 과보가 반드시 따른다고 합니다.

이런 사례를 보면 정말 과보가 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이런 사람은 과보를 받기 위해서

다시 태어나는 윤회를 하는 건가요?//

 

 

--인연과보와 인과응보의 차이

질문자는 인연과보가 아니라 인과응보를 생각하는 거예요.

 

인연과보라는 것은

원인과 그 원인이 작용하는 상황이 만나서

어떤 결과가 일어난다

이건 과학과 똑같은 거예요.

거기에는 선악 개념이 없습니다.

그냥 하나의 법칙이죠.

 

어떤 현상이 일어나더라도 그 현상이 일어나는 데에는

그 현상이 일어날 만한 어떤 원인이 있어서 이 현상이 일어나지,

원인 없는 현상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거예요.

 

반대로 우리가 어떤 원인을 지으면

지금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그 결과가 나타난다.

물리학에서 우리가 젓가락으로 컵의 물을 휘저으면

운동에너지가 열에너지로 바뀌어서 온도가 올라간다고 하잖습니까.

 

그것처럼 원인이 결과를 몰고오고

현상이 나타났다면 그 현상이 일어날 원인이 반드시 있었다는 거예요.

 

내가 누구로부터 비난을 받았을 때

원인을 모르면 억울한 거예요.

그런데 그 원인을 알면 억울할 일이 없는 거예요.

 

내가 어떤 일을 할 때 그 결과가 예측이 되면

손해날 행동을 안 하게 되는 거예요.

그런데 그 결과를 예측을 못하기 때문에

바보같이 행동하고, 나중에 후회하는 일이 발생하죠.

 

이런 것이 이치에 어둡다는 거예요.

그 말은 이런 원인과 결과에 대한 생각이 전혀 없는 거예요.

 

돈을 빌릴 때만 좋아하지

이자 쳐서 갚는 생각을 전혀 안 하는 거예요.

 

인과응보는 뭐냐하면

선악 개념을 따져

나쁜 짓 하면 벌을 주고, 좋은 일 하면 복을 준다는

이런 응보의 개념으로 지금 이해하기 때문에

이런 혼란이 발생하는 거예요.

 

 

--인과응보의 논리와 한계

옛날에는 투명한 사회였거든요. 공동체라는 게.

잘못하면 반드시 벌을 받고, 잘하면 칭찬을 받고

이렇게 다 알려져 있기 때문에.

 

그런데 가끔 안 그런 일이 있으면 어떻게 생각하느냐?

'! 지금은 그렇지만, 하늘이 알아서 천벌을 줄 거야.'

이게 천벌 개념이죠.

 

이생에 안 그러면 다음 생에 가서 받을 거야.’

누가 내 돈을 훔쳐가면

전생에 내가 그분 돈을 훔쳤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겼다

이렇게 자꾸 연결을 시키는 게 복수의 개념이에요.

이걸 응보라 그래요.

인과에는 반드시 응보가 있다,

응징이 있다는 거예요.

 

모든 종교는 이런 선악적 가치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게 하느님 얘기든, 전생 얘기든 결과는

나쁜 짓 하면 벌 받고, 좋은 일 하면 복 받는다는 것인데

이것이 갖는 좋은 점도 있어요.

 

사람이 나쁜 짓 못하게 하고, 좋게 살아가라는 뜻이지만

이것은 그냥 믿음이지, 거기에 어떤 과학성은 없습니다.

 

사람을 많이 죽인 사람이라 하더라도

자기를 죽일 만한 정적이 없었다든지

어떤 정치적 변화에 의해서 정치적 타협으로 보호받았다든지

그러면 그 사람은 안 죽을 수도 있는 거죠.

 

아무리 착해도 전쟁에 나가서 폭탄을 맞으면 죽는 거지.

착한 일을 했기 때문에 안 죽고

다른 사람은 착한 일을 안 했기 때문에 죽고

이러지 않습니다.

 

 

--폴 포트 사면을 둘러싼 정치 역학

폴 포트도 혁명을 한 거예요, 그 사람 입장에서는.

이 사람은 극단주의다보니까

식민지 지배에 항거를 안 하고

거기에 협조한 사람은 무조건 죽이는 거예요, 원한에 사무쳐서.

 

어떻게 외세가 침입을 했는데

죽기 살기로 저항을 해야지

거기에 협력을 할 수 있느냐(는 거죠)

 

사람이라는 건 힘이 약하기 때문에

힘이 강한 자가 오면

저항하는 사람은 열에 한두 명이고

나머지는 대부분 다 순종을 할 수밖에 없는 게

인간 존재라는 거예요.

 

그런 보편적인 인간 존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자기가 저항을 하니까

모든 사람이 다 저항을 해야 된다.

(저항하지 않은 사람들을) 물든 인간들이라고 해서

많이 학살을 했던 거예요.

 

처음에는 독립운동처럼 했으니까 지지를 받았는데

그렇게 사람을 많이 죽이니까 민심이 떠났고

민심이 떠나니까 정권을 잡았는데도

정권이 무너졌지 않습니까, 그렇죠?

 

(정권이) 무너져도 이 사람은 자기를 따르는 일부 군 세력이 있었어요.

그런데 사람이 너무 많이 죽으니까

몇 개의 정파들이 평화협정 맺으면서 정부가 사면을 한 거죠.

그 반군들을 다 안 죽이고 정부군에 편제를 해주고

그 지역의 도지사나 이런 거는 그쪽에서 하도록 해서

무장해제를 해서

캄보디아에 평화가 오게 된 거예요.

 

그러한 협상의 결과로

그 사람(폴 포트)은 죽음을 면한 거예요.

 

그 사람 하나 잡아서 죽이려고 하면

수만 명이 더 죽어야 돼요.

전쟁을 끝내고 평화를 유지하려니까

이런 협상을 하게 된 거죠.

 

그 사람 하나 죽여서 뭐하겠어요?

전쟁을 끝내는 게 중요하지.

 

그런 거를 왜 나쁜 짓을 했는데 명대로 살다 죽느냐

이렇게 보는 거는 올바른 방법이 아니에요.

 

 

--인연과보의 관점으로 보아야

그런 식으로 윤회한다는 것은 믿음이에요

"하느님이 진짜 있습니까?" 이렇게 묻는 것처럼

"진짜 윤회를 합니까" 이렇게 묻는 거는

믿음(에 대한 질문)이에요.

그건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가 없어요.

 

어떤 사람이 윤회를 믿고, 어떤 사람은 안 믿으면 누가 맞느냐?

그거는 말할 수 없어요.

두 사람의 믿음이 다른 거예요.

 

어떤 사람은 신을 믿고 어떤 사람은 안 믿으면

누가 맞느냐가 아니라

두 사람의 믿음이 다른 거예요.

 

그래서 우리 헌법에

신앙, 믿음, 종교, 사상, 이념은 개인의 자유다.

그걸 갖고 옳으니 그르니 따지면 안 됩니다.

 

인과응보가 응징하는 선악 개념, 도덕적 개념으로 지어서 만든 거고

인연과보라는 것은 과학적인 하나의 법칙과 같은 거예요.

 

어떤 농부가 농사를 지었는데 농사 기술이 어떠냐가 중요하지.

그 남자가 혼자 사는 남자냐, 두 여자를 데리고 사는 남자냐가

그 농사에 영향을 주는 거는 아니다.

 

도덕적인 문제로 세상의 비난은 받을 수 있지만

수명이라든지 돈을 많이 벌었다든지 하는 것을

선악 개념으로 접근하게 되면

오히려 안 맞으니까 자꾸 회의가 생기는 거예요.

 

"세상에 믿을 사람이 없구나.

종교도 못 믿겠구나."

그래서 종교를 떠나는 거 아니겠어요.

 

그건 접근이 잘못돼서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