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24)

[법륜스님의 하루] 아이가 경계성 지능 진단을 받고 나니 암담합니다 (202.04.10)

Buddhastudy 2024. 4. 17. 19:58

 

 

올해 초등학교 1학년 아이가 언어가 늦고 발음이 부정확하여

언어 인지 치료를 받던 중

발달 상태를 더 알고 싶어 소아정신과 병원에 갔다가

경계선 지능 진단을 받았습니다.

모르는 게 약인데 알고 나니 더 혼란스럽고 무거운 마음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오히려 일찍 알게 되어 다행스럽습니다.

답답해서 정신의학과에 가서 경계성 지능에 관해 문의해 보니

어릴 때 발견하는 게 치료에 낫고

좋은 자극을 주면 평균 지능까지 올라갈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너무 큰 기대는 금물이며

기다려 주고 칭찬을 많이 해서 자존감을 키워주라고 합니다.

단순히 공부를 못하는 거라면 조금 마음이 가벼울 텐데

경계선 지능에 관한 뉴스들을 보면

학교에 적응을 못하거나 범죄 사각지대에 있는 경우가 많아서 암담합니다.

어떻게 키우고 교육해야 할까요?//

 

 

내 자식이 잘생기고, 똑똑하고, 건강하고, 부모 말도 잘 들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누구나 그런 자식을 바랍니다.

그러나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다 그렇게 될 수는 없습니다.

이 세상에는 눈이 안 보이게 태어나는 사람도 있고

귀가 안 들리게 태어나는 사람도 있고

선천적으로 걷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지능에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서 생활이 조금 불편할 수도 있습니다.

건강하게 태어나도 교통사고로 인해 장애가 생길 수 있고

뇌를 다쳐서 정신적인 장애를 겪을 수도 있습니다.

이게 인생살이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내가 낳은 자식은 건강하게 태어나야 하고,

정신적으로도 건강해야 하고

중간에 사고도 안 나야 하고

공부도 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되기를 원하는 건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다 될 수는 없다는 거예요.

 

그럼 내가 원하지 않는 상황이 닥쳤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평생 울고불고 괴롭게 살아야 할까요?

사주팔자 타령을 하고, 하느님을 원망하고, 전생 타령을 해야 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눈이 안 보이는 사람도 불편하지만 행복하게 살 수 있고,

귀가 안 들리는 사람도 불편하지만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얼굴이 희든 검든, 키가 크든 작든, 남자든 여자든,

성애가 이성애든 동성애든,

누구나 다 그대로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이렇게 관점을 갖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면 눈이 안 보인다고 울고불고 하지 않고

점자를 공부해서 그 불편을 극복해 나가게 됩니다.

귀가 안 들리면 수화를 배워서 그것을 극복해야 합니다.

걷지 못하면 휠체어를 타서 불편함을 극복해야 합니다.

이렇게 우리는 완전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극복을 해서 일상생활을 해나가야 합니다.

 

손을 못 움직이니까

발가락에 숟가락을 끼워서 밥을 먹는 사람도 있고,

발가락에 붓을 끼워서 그림을 그리는 사람도 있지 않습니까?

손과 발이 모두 없는데도

남들을 즐겁게 해서 희망을 주는 사람도 있어요.

 

대신에 이런 사람들은 옆에서 약간 도와줘야 합니다.

앞으로 전동 기계들이 많이 개발되면

혼자서 가능한 일이 더 많아질 겁니다.

장애가 있으면 불편하긴 하지만 그도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만약 아이의 장애를 몰랐으면

왜 똑같이 학교에 보냈는데 중간도 못 하고 꼴등을 하느냐?’하고

아이를 나무랄 수가 있는데

장애가 있는 줄 미리 알게 되면

일반 학교에 다니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따로 특수교육을 하는 학교에 가야 할 정도는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일반 학교에 다니는 것을 기뻐하게 됩니다.

 

그런데 조금만 좋아지면 중간 성적을 받을 수 있을 텐데하면서

자꾸 나의 욕망을 쫓아가면

아이가 늘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느껴집니다.

다리를 다쳐서 잘 못 걷는 사람을 두고

왜 다른 사람처럼 못 걸을까하고 바라보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런 관점을 가지면 늘 불만을 갖게 됩니다. 일어서기만 해도 다행이고,

뒤뚱뒤뚱 걷기만 해도 다행이라는 마음을 가져야

다친 사람에게 용기와 희망을 불어넣어 줄 수 있습니다.

 

단지 칭찬만 할 게 아니라

재활에 필요한 연습을 꾸준히 해나가다 보면

현재의 상태에서 조금씩 나아질 수도 있습니다.

 

의사의 말대로 경계성 지능을 가진 아이도

평균 지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다만 반드시 평균 지능으로 나아간다고 단정을 지어버리면

기대치에 못 미쳤을 때

불만이 생기거나 낙담할 수 있습니다.

 

지금 모습 그대로도

아이가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아이가 학교에 빠지지 않고 가는 것만 해도

고맙게 생각해야 합니다.

만약에 아이가 성적을 걱정한다면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다.’ 하고 말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질문자가 자신의 욕망대로

아이가 변화하기를 자꾸 바라면

아이를 자꾸 나무라게 됩니다.

 

예를 들어

집에 강아지를 한 마리 키운다고 합시다.

강아지가 사람처럼 두 발로 걷지 않고 네 발로 걷고

밥을 앞발로 먹지 않고 주둥이로 먹는다고 불만이라면

애완동물로 키울 수 있겠습니까?

 

마음에 들지 않아서 당장 내버릴지 모릅니다.

강아지는 강아지에 맞게, 고양이는 고양이에 맞게

각각의 특성대로 살아가기 마련입니다.

 

그것처럼 장애가 있으면

그에 맞게끔 살아가도록 도와준다는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장애가 있어서 도움이 필요하다면 기꺼이 도와주고,

훈련으로 나아질 수 있다면

도와주기보다는 연습할 기회를 주어야 합니다.

 

개가 집 밖에 살면 똥오줌을 가릴 필요가 없지만

집 안에 사는 개는 조금만 훈련하면 똥오줌을 가릴 수 있게 되잖아요.

그렇다고 해서 아무리 훈련 시킨들 개가

사람처럼 말을 하도록 훈련시킬 수는 없습니다.

 

그것처럼 연습을 통해서 나아질 수 있는 장애가 있고

나아지기 어려운 장애가 있습니다.

섣불리 나아질 것이라고 단정을 지으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질문자가 질문을 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면

아이를 키우는 것이 지금 힘들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경계성 지능을 가진 아이를 키워야 하는

자신의 처지가 힘들어서 눈물을 흘리는 것이지

아이를 위해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게 아니에요.

 

질문자의 아이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엄마로서 아이를 늘 격려해 주어야 합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아이가 행복하게 살게끔 도와준다는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아이를 보고 한 마디씩 걱정의 말을 던질 수는 있어요.

그럴 때 괜찮습니다. 저는 이 아이가 있어서 행복합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마치 자신이 지나가는 사람인 것마냥

아이를 걱정하는 관점이 있어요.

자신의 처지가 한스러워서 울고 있는 겁니다.

물론 부모로서 아이를 키우는 어려움을 토로하는 것이 이해는 됩니다.

 

그렇지만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있으면

나도 괴로울 뿐만 아니라

아이도 평생 열등의식을 갖고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만하길 다행이라는 관점을 가지고

필요한 치료와 훈련을 기꺼이 하는 부모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