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인지그라운드(2024)

[신박한깨달음] 영혼의 삶보다 인간의 삶이 훨씬 더 가치 있는 이유|깨달음 뒤의 깨달음

Buddhastudy 2024. 5. 20. 19:30

 

 

명상을 배운다는 것은

삶을 꾸려가는 동안, 자신에게 선사할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다.

 

명상이란

깨달음에 이르는 길이며

당신은 오직

명상을 통해서만 참된 본성을 발견할 수 있다.

 

티베트에서 태어난 영적인 스승 가운데 한 명인, 소걀 린포체는

<깨달음 뒤에 깨달음>이라는 책을 통해

명상과 자비를 마음속으로 받아들이고

실제로 행하도록 안내한다.

 

마음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마음을 집착이라는 감옥으로부터 풀어주는 것이다.

모든 고통과 번뇌는 집착을 갈망하는

마음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오늘은 티베트 불교 최고의 스승이 전하는 명상 실천서

<깨달음 뒤의 깨달음>에 대해 이야기해보겠다.

 

 

 

--우주 만물은 당신의 성장을 돕고 있다

 

마음을 있는 그대로 느낀다는 것은

당신의 마음을 안으로 거두어들여

마음의 본성 안에서 쉬게 하는 것이다.

 

이는 그 자체만으로도 최고 수준의 명상이다.

이는 마치 편편한 바닥에 모래 한 줌을 쏟았을 때

각각의 모래 알갱이들이 자연스럽게 제자리를 잡는 모습과 흡사하다.

 

이것이 바로 당신의 참된 본성 안에서

마음의 휴식을 취하는 방법이다.

자비심을 일으키는 효과적인 방법들 가운데 하나는

다른 사람을 자기 자신과 똑같은 존재로 여기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행복하기를 원하며 괴로움은 피하고 싶어 한다.

바꾸어 말하면

인간으로서 우리 모두가 동일하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당신이 제대로 보기만 하면

어떤 것도 그 자체로

고유하게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당신은 나무를 분명하게 규정된 무엇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나무를 좀 더 자세히 바라보면

나무가 궁극적으로는 독립된 존재가 아니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당신이 나무에 대해 깊이 성찰한다면

나무가 우주 너머까지 펼쳐진 지극히 미묘한 관계의

그물망 속으로 녹아든다는 사실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나뭇잎에 떨어지는 빗방울

나무를 흔드는 바람

나무를 지탱해 주는 토양

사계절과 날씨

달빛과 햇빛

이 모두가 지금의 나무를 이루고 있다.

 

나무에 대해 생각할수록 당신은 알게 될 것이다.

우주 만물이 지금의 나무를 만들고

성장시키는 데 도움을 주었다는 사실을.

 

 

--마음이라는 감옥

 

카르마는 운명처럼 미리 결정되어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카르마는 창조하고 변화하는 우리의 능력을 의미한다.

어떻게 행동하고, 왜 그렇게 행동해야 하는가를

우리 스스로 결정할 수 있기 때문에

카르마는 창조적이다.

 

미래는 우리 손에

즉 마음의 손에 달려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유용한 명상법들 가운데 하나는

바로 마음으로 대상을 가볍게 응시하는 것이다.

 

당신에게 특별한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아름다운 자연을

그 대상으로 활용할 수 있지만

진리를 구현하고 있는 인물들을 활용하는 것은 훨씬 더 효과적이다.

 

스승은 당신과 진리를 연결해 주는

살아있는 연결고리이기 때문이다.

모든 붓다와 스승, 그리고 예언자들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무수한 방편과 지혜를 갖추고서

진리의 화신으로 우리 앞에 나타나곤 했다.

자신의 가르침을 통해 우리를 참된 본성으로 이끌어 주려고 하는 것이다.

 

스승을 찾아내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진리를 발견하여 그것을 따르는 일이다.

 

하지만 인생은 우리의 생각만큼 뜻대로 되지 않는다.

우리의 생각과 감정만큼 예측할 수 없는 것이 또 있을까?

 

사실 마음은 텅 비어있고 덧없으며 꿈처럼 일시적이다.

생각은 떠올랐다가 잠시 머물고 이내 사라진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으며

우리가 하고 있는 생각마저도 어느새 과거가 된다.

바로 이 순간만이 우리가 실제로 취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다.

 

에고란

우리가 누구인지에 대한 진정한 앎의 결핍이자 그 결과이다.

우리는 거짓된 이미지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

희생을 감내하면서까지 끊임없이 모습을 바꾸게 된다.

 

아인슈타인에 의하면

인간은 우주라는 전체의 한 부분이며

시간과 공간에 의해 한계 지어지는 존재이다.

그런데도 인간은 자신의 사유와 감정이

주변의 다른 것들로부터 분리되어 있다고 착각한다.

 

인간의 의식이 빚어낸 착시 현상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이런 미혹이야말로

우리를 구속하고

우리를 개인적인 욕망과 애정에 집착하게 한다.

이러한 감옥으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키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임무이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온갖 생물들과 자연을 포용할 수 있는

자비심의 울타리를 더욱 확장시켜야 할 것이다.

 

가장 심오한 단계에서

만약 당신이 죽어가는 사람을 위해 계속해서 자비를 실천하고

그로 하여금 똑같이 자비를 행하도록 북돋는다면

그는 영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치유될 수 있다.

 

그러면 놀랍게도 모든 영혼의 스승들이 알고 있는 사실,

즉 자비의 힘이 무한하다는 사실을

당신 스스로 발견하게 될 것이다.

 

 

--최고의 명상 수행 방법

 

명상과 일상생활을 통합시키는 것이

명상의 목적이자, 명상을 행하는 이유의 전부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명상 수행으로 일상생활을 가득 채울 수 있을까?

 

그 방법은 오직

날마다 규칙적으로 명상하는 길밖에 없다.

왜냐하면 오직 명상을 실천함으로써만

우리 본성의 고요함을 온전하게 맛보기 시작할 것이고

그 결과, 명상 수행의 체험을

일상의 삶에서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당신이 이를 진정으로 성취하고자 한다면

매일매일 음식물을 통해 영양분을 섭취하듯

수행에 임해야 한다.

 

우리가 영적인 길을 추구하고

우리 자신을 정직하게 바라볼 때

우리의 지각이 미망에 지나지 않았음을

점점 더 분명하게 자각하게 된다.

 

우리 모두는 어떤 형태로든

영적인 길과 만나는 카르마를 가지고 있다.

하나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

결코 당신을 구속하거나 독점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당신과 이 세계가 만드는 불가피한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당신을 중심에 두고 영적 구도를 지속하도록 만드는

자비롭고 실제적인 방식이다.

 

우리가 부정적인 카르마를 너무 많이 축적했다고 해도

죽는 순간에 마음을 바꿀 수만 있다면

우리의 미래가 결정적인 영향을 받아

카르마 또한 바뀔 수 있다.

 

왜냐하면 죽음의 순간이야말로

카르마를 정화할 수 있는

예외적으로 유력한 기회이기 때문이다.

 

티베트 불교에서 애용하는 명상 기술 가운데 하나는

바로 만트라인데,

만트라를 암송하면

당신의 에너지와 기운이 변화되고

그 결과 당신의 마음은 완전히 바뀌게 된다.

 

만트라는 소리의 본질이자

소리의 형태로 표출된 진리이기 때문이다.

 

만트라의 음절 하나하나는

영적인 힘을 내장하고 있고

심원한 영적 진리를 함축하고 있다.

 

 

--지금의 삶이 유일한 기회이다

 

마음을 닦는 수행을 하게 되면

당신이 본래 선한 마음을 지닌 사람이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수행을 하면

당신 내면의 불친절함이나 악한 기운이 녹아 없어지기 때문이다.

당신 안에 있는 해악을 제거할 때만

당신은 진정으로 남에게 이로운 존재가 된다.

 

명상을 행할 때

당신에게 어떤 생각이 떠오르든

그것이 일어났다가 저절로 가라앉도록 그냥 둬야 한다.

 

생각이란, 그저 왔다가 사라지는 것이다.

쉴 새 없이 떠오르는 생각에 대해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생각을 다스리는 비결이다.

 

그때야 비로소 당신의 마음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생각의 흐름으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이다.

 

마음의 본성이 오직 우리 마음에만 있다고 상상해서는 안 된다.

마음의 본성을 실현하는 것이

곧 만물의 본성을 실현하는 것이다.

 

여러 생에 걸쳐 축적해 왔던

우리의 부정적 성향이나 공격성, 사나운 감정들은

마음이 깨어있게 하는 수행을 통해 비로소 진정된다.

 

우리 대부분은 카르마와 부정적인 감정 때문에

우리 자신이 본래 감추고 있는 마음의 본성과

실재의 본성을 볼 수 있는 능력이 흐려진다.

 

그 결과 우리는 행복과 고통이 실재하는 것처럼 그것에 집착하고

우리의 미숙하고 무지한 행위 속에서

환생을 위한 씨앗을 계속 뿌리고 있다.

 

이러한 행위 때문에

우리는 세속적인 존재로서 윤회를 거듭할 뿐이고

생사의 끝없는 순환에 얽매이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것은

우리가 지금 바로 이 순간을 어떻게 사느냐에 달려 있다.

지금 우리가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우리의 미래 전체가 좌우된다.

 

이것이야말로 죽음을 지혜롭게 맞이하기 위해

업에 따라 좌우되는 미래를 바꾸기 위해

우리가 지금부터 준비해야 하는 실질적이고 시급한 이유이다.

 

이 삶은

우리가 죽음을 제대로 준비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이다.

그리고 우리는 영적인 수행을 통해서만 제대로 준비할 수 있다.

 

 

--영혼의 삶보다 육체의 삶이 중요한 이유

 

지금 우리에게 일어나는 어떤 것이든지

지난날의 카르마를 반영한다.

우리가 이러한 사실을 제대로 알기만 하면

고통과 어려움이 생길 때마다

그것을 재난이나 실패로 보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고통은

과거 카르마의 인과응보로 보아야 한다.

환생을 믿음으로써

우주의 궁극적인 정의

혹은 궁극적인 선이 있다는 사실이 암시된다.

 

우리가 미혹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워져야 하는 이유는

이러한 궁극적 선때문이다.

우리가 긍정적으로 행동할 때마다

우리는 선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셈이다.

 

스승들이 우리들에게 가르친 것처럼

귀 기울여 듣고, 깊이 성찰하며, 명상하는 과정을 통해

무아의 지혜와 자유를 발견할 수 있다.

 

스승들은 먼저 영적인 가르침을 반복해서

경청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라고 조언한다.

우리가 귀기울여 들음에 따라

영적인 가르침이

우리의 감춰져 있던 지혜의 본성을 계속해서 일깨울 것이다.

 

만일 우리가 지혜로 충만한 효과적인 수행법을

마음으로 수용해 올곧게 정진한다면

깨달음을 성취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위대한 영적 수행자란

항상 참된 자아의 현존을 느끼면서 살아가는 사람이며

심오한 영감의 원천을 지속적으로 찾아서 활용하는 사람이다.

 

천상계에서의 삶의 질이

인간계에서보다 나은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영혼의 스승들은

인간의 삶이 훨씬 더 가치 있다고 얘기한다.

 

우리에게는 깨달을 수 있는 의식과 지적 능력이 있기 때문이며

인간 세계에 널리 퍼져 있는 고통이

그 자체로 영적인 변화를 위한 자극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수시로 마주치는 고통과 좌절은

실제적일 뿐만 아니라

참으로 극적인 목적을 위해 마련된 것이다.

 

그것은 우리를 일깨워 윤회의 순환 고리를 끊게 함으로써

갇혀 있던 우리의 내적인 빛을 발현시킨다.

초월적인 진리를 온몸으로 체현해야 하는 것은

바로 우리가 여기에 존재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