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09)

즉문즉설_법륜스님(제160회) 사별한 아내에 대한 그리움

Buddhastudy 2011. 6. 13. 23:00

  방송 보기: BTN

 

사랑하는 아내가 먼저 돌아가시고 두 아이들을 키우면서 아내의 그리움에 젖어서 아마 큰 슬픔에 젖어있는 것 같애요. 지금 이럴 때 무슨 말로 위로한다 해서 위로가 됩니까? 안됩니다. 이럴 때는 어떤 말을 해도 위로가 안 돼요. 왜 이럴 때 어떤 말로 해도 위로가 안 될까요? 위로가 안 되는 이유는 슬픔이 너무 크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니고. 아내가 죽었다는 생각에 너무 사로잡혀있기 때문에. 누가 얘기해도 어떤 얘기도 귀에 들어가지 않는다. 이런 얘기요. 부처님 당시에도 이런 경우가 있었습니다. 가난한 여인이 아들을 낳지 못하는 부잣집에 애 낳아주기 위해서 시집을 가서 애를 낳았어요. 사내아이를. 그러니까 얼마나 대우를 잘 받았겠어요? 내가 이게 무슨 복인가. 할 정도로.

 

그런데 애기가 7살 때 갑자기 죽어버렸어요. 엄마로서 자식이 죽은 슬픔도 있지만 거기다가 애기가 죽으므로해서 자신의 모든 행복도 다 사라져버린 거예요. 한마디로 미쳐버린 거요. 그래서 죽은 애기를 안고 기원정사로 가서 부처님을 보자 엎드려서 통곡을 하면서 또 하소연을 했어요. 그때 부처님께서 그 여인을 물끄러미 바라보시더니 이렇게 말했어요. 여인이여. 저 시내에 가서 사람이 한 번도 죽지 않는 집에 가서 겨자씨를 한 움큼 얻어 올 수 있겠는가? 그랬어. 그 여인이 생각할 때 겨자씨 한 움큼 얻어 오는 건 매우 쉬운 일이란 말이오. . 할 수 있습니다. 이랬어. 그런데 여인은 어떤 생각을 했겠어요? 이 겨자씨가 애를 살리는 무슨 비방이라도 되지 않겠나? 이런 생각을 했겠죠. 그러니까 부모로서 자식을 살린다면 무슨 짓인들 못하겠어요.

 

그래 부처님께서 그러면 해지기전에 겨자씨를 얻어오시오 그랬어. 여인은 마음이 기뻐졌어요. ~ 새로운 희망이 생겼단 말이오. 불가능한 것이 가능한 그런 희망이 생긴 거요. 그래서 저자로 쫒아 내려가서 어떤 집에 가서 여보세요. 여보세요. 나한테 겨자씨 한 움큼 줄 수 있습니까? 줄 수 있지. 그런데 이 집에 사람이 한 번도 안 죽었습니까? 하고 물으니까. 아이고 저희 할아버지께서 3년 전에 돌아가셨는데요. 하이고 그러면 안 됩니다. 또 다른 집을 두드렸어. 또 그 집엔 할머니가 1년 전에 돌아가셨다는 거요. 또 다른 집에 두드리니까. 그 집엔 어린아이가 며칠 전에 죽었다는 거요. 가서 금방 얻어 올 거 같았는데. 수십 수 백집을 두드리고 다녀도 사람이 죽지 않는 집이 없는 거요.

 

그러나 희망을 잃지 않고 계속 돌아다니다가 해질 무렵에 그 저자거리에 마지막 집에 도달한 거요. 그래서 겨자씨를 얻으러가면서 물었어요. 사람이 한 번도 죽지 않았습니까? 이렇게 물었더니 그 집 주인이 하는 얘기가 에이 여보쇼. 사람이 죽지 않는 집이 어디 있소? 그 순간 여인이 깨달았다. 뭔가를 깨달았어요. 그래서 아직도 눈물이 흐르는데도 얼굴이 환해졌어요. 그는 가벼운 걸음으로 기원정사로 돌아왔습니다. 그래 부처님께서 물었어요. 여인이여. 겨자씨를 얻어왔는가? 그랬더니 그 여인이 하는 말이 부처님이시여. 겨자씨가 필요 없습니다. 저는 모든 고뇌에서 벗어났습니다. 이렇게 선언을 했어.

 

죽은 아들을 살려주는 게 불법이 아니라. 그것이 죽은 아들이든. 죽은 부모든. 부도가 낫든. 병이 났든 관계없이 그 고뇌로부터 벗어나게 해 주는 것. 이것이 열반이다. 이게 불법이다. 그 여인에게 어떤 상황을 설명한다 해도 그 여인은 들을 귀가 없다. 무엇을 보여준다 해도 볼 눈이 없다 이거야. 오직 한 생각. 아들을 살려야 한다. 이 생각에만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그래 부처님이 겨자씨를 얻어오라는 것. 이걸 방편이라 그래요. 그로인해서 집집마다 가면서 집집마다 다 다녀도 어느 집 할 것 없이 다 이런 저런 이유로 사람이 죽은 것을 보면서 이 사로잡힘에서 조금씩 조금씩 벗어났다.

 

다시 말하면 마음이 확 바뀌었어. 벽같다가 거기 금이 조금 갔다 이거야. 그런데 그 마지막집 사람이 큰 소리로 되묻는 그 소리를 듣고 벽이 탁 무너졌다. 이것을 우리가 깨침이라고 그래. 그러니까 지금 이 슬픔을 갖고 계시는 분은 이 깨침의 순간이 와야 된다. 그러면 이 깨침에서 벗어 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 말을 해도 어떤 경전 글귀를 읽고 위로를 해 줘도. 지금은 그것이 들리지가 않는다. 설령 들었다 하더라도 이것은 머리 생각에만 남아있지 마음에는 다가오지 않는다. 이런 얘기요. 너희들은 이 슬픔을 몰라. 세월이 흐르면 다 해결 될 거다. 하면 그건 너희들 얘기고 나는 안 그래. 지금 이분은 자기가 죽는 것만이. 그래서 아내 곁으로 가는 것만이 해결이다. 지금 이런 생각까지 빠져있습니다. 이것은 정신적으로 말하면 큰 질병에 속한다. 그러니까 빨리 정신을 차려야 됩니다.

 

그러니까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죽은 아내가 나 따라 죽으라고 죽은 것도 아니다 이거야. 나 괴로우라고 죽은 것도 아니다. 이거야. 두 아들 괴롭히려고 죽은 것도 아니다 이거야. 교통사고 나서 돌아가셨든, 병으로 돌아가셨든, 자신의 인연이 다해서 돌아가신 거다. 그걸 보고 내가 그리움에 지금 사로잡혀서 눈에 뵈는 게 없다. 귀에 들리는 것도 없고. 내가 이렇게 슬퍼있으면 그럼 살아있는 애들은 어떻게 되겠냐? 엄마도 안계신데 아버지마저 늘 슬픔에 젖어 있으면 어린아이들은 상처가 심하고 앞으로 우울증에 걸린다.

 

만약에 이렇게 내가 아내를 그리워하다 죽으면 아이들은 누가 돌보느냐? 이것이 아내 때문이 아니다. 내가 지금 어떤 것에 사로잡혀서 일종에 미친 상태다. 세상에선 좋게 사랑이라 하지만 정신적으로 보면 그렇다. 그러니 정신을 차려서 아이들을 잘 키우는 게 중요하다. 정신 차리는 기간이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아이들에게 심한 피해가 간다. 그러니까 부처님께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부처님 저희 아내는 좋은 곳으로 갔습니다. 부처님 계시는 정토세계로 갔습니다. 저는 편안합니다. 아이들 잘 키우면서 잘 살겠습니다. 이렇게 매일 108배 기도를 해야 돼. . 여기까지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