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09)

즉문즉설_법륜스님(제157회) 동성애자 동생

Buddhastudy 2011. 6. 8. 23:00

  방송 보기: BTN

자신의 아들이나 딸이 또는 자신의 형제가 동성애다 이러면 많은 충격이 될 겁니다. 충분히 이런 질문에 대해서 이해는 되고요. 그러나 이 세상에는 각양각색의 사람이 있습니다. 존재 자체가 각양각색이다 이 말이오. 그래서 우리는 이 세상 만물을 뭐라 그래요? 만상이다. 만 가지 서로 다른, 이 만이란 말은 무한한 이런 뜻이에요. 서로 다른 모양을 갖고 있다. 금강경에도 보면 일체중생을 분류를 할 때 우리가 일체중생을 분류를 할 때는 태어나는 모양으로 분류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태로 태어나는 것, 알로 태어나는 것, 습으로 태어나는 것, 화하여 태어나는 것, 이걸 뭐라 그래요? 사생이다 이렇게 말하죠.

 

또 우리가 이 세상을 분류할 때 여러 분류가 있는데 거기 보면 약유색약무색 이런 말이 있죠. 그러니까 모양이 있는 것도 있고, 생명 중에는 모양이 없는 것도 있다. 우리는 모양이 있는 것밖에 몰라요. 모양이 있는 것도 있고, 모양이 없는 것도 있다. 그것만 있는 게 아니에요. 모양이 있는 것도 아니고 모양이 없는 것도 아닌 것도 있다. 이렇게 말하는 거요. 또 생각이 있는 것도 있고 생각이 없는 것도 있고,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생각이 없는 것도 아닌 것도 있다. 이런 얘기요. 이 세상은 늘 어떻게 분류하느냐? 모양이 있는 것, 모양이 없는 거, 요렇게만 분류해요. 남자 여자 요렇게만 분류한다 이 말이오. 그런데 이 세상에는 남자가 있고, 여자가 있고,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닌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얘기 처음 들어봅니까?

 

불법은 이미 2600년 전에 부처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부처님은 인간의 신분차별을 하는 카스트제도를 부정하셨고 남녀차별을 부정하셨다. 남녀차별을 부정하셨다는 가장 큰 사건은 뭐요? 여성의 출가수행자가 되는 길을 열어주었다 이런 얘기요. 당시의 여성이라고 하는 것은 그냥 종과 같은 거요. 우리로 말하면 사람이 아니에요. 그래서 자기 이름이 없어요. 어렸을 때는 아무개의 딸, 아버지에게 속박 돼 있고, 결혼을 하면 아무개의 아내. 남편에게 속박돼 있고, 늙으면 아무개의 어머니. 해서 아들에게 속박 돼 있고. 자기 이름이 없어요. 여성이 홀로 있으면 누가 주워가도 되요. 길거리에 있는 개를 주워가도 되듯이. 반드시 주인이 있어야 된다.

 

또 미국 같은 데는 결혼을 하면 남편 성을 따라 바꾸죠. 성을 바꾼다. 성을 바꾼다는 것은 주인이 바뀌었다 이런 얘기요. 그런 여성에게도 지금은 차별이 없는 출가한 비구니가 되면 누구의 뭐가 붙습니까? 안 붙습니까? 안 붙죠. 바로 자기 이름을 갖잖아. 그러니까 여성이 스스로 수행자가 된다. 이거는 당시 사회에는 불가능했습니다. 이 길을 처음 열어놓으신 분이 바로 부처님이다. 여성이 스스로 홀로 자기이름을 가질 수 있다. 그러기 때문에 비구니제도의 출발은 바로 여성해방의 효시다 이래 말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제 부처님이 열반에 드시고 그 이후에 ?제도가 폐지되고 불교 안에 남녀불평등적인 요소가 세속에 물들어서 도로 물들어서 지금은 오히려 불교가 무슨 남녀불평등적인 가르침처럼 얘기하는데. 진실은 그렇지가 않다 이 말이오.

 

그런데 부처님은 2600년 전에 여성이 수행자가 될 수 있도록 길을 열었다. 이건 굉장히 중요한 거요. 그런데 이렇게 하나하나 해방이 되 가서 지금은 모든 게 다 해결이 됐어요. 그런데 여기에 남은 맨 마지막 남은 게 있었어요. 그게 뭘까? 동성애자에요. 남자 몸은 몸인데 마음이 여자에요. 몸은 여잔데 마음이 남자에요. 그런데 이 세상에서 이걸 이해하지 못했어요. 이걸 용납하지 못하고. 이것은 마치 굉장히 나쁜 것처럼 이렇게 해서 그렇게 태어난 사람들은 평생을 숨기고 살고, 몰래 자기의 감정을 표현했다가 엄청난 징벌을 받고 처벌을 받고 죽고 그랬단 말이오. 이것이 마지막으로 인류사회에서 이것을 세상에 드러내놓고 나는 이런 인간입니다. 태어나길 이렇게 태어났다는 거요. 내 취미가 아니고. 그러나 통상적인 사회에서 이건 용납하기가 어려웠죠. 특히 종교가 이런 것들에 대한 굉장한 탄압을 했다 이거요. 그러나 지금 사회에서는 이런 동성애자들이 이제는 내 신분을 드러낸다.

 

마치 쌍놈이라고 하고 살다가 나 쌍놈이 아니다. 한국 사람이 일본에 가서 내~ 일본사람인척 거짓말 하다가 나중에 뭐요? 나 한국 사람이다 드러내듯이. 실제로 나는 이런 사람이다. 이렇게 드러내도 되는 분위기가 조금씩 열려가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여기에 대해서 굉장히 충격적이게는 하겠지마는. 그 사람 하나하나를 생각하면, 그가 살생을 한 것도 아니고, 도둑질 한 것도 아니고, 사음을 한 것도 아니고, 거짓말하고 욕설한 것도 아니고, 술 먹고 취한 것도 아니고. 이런 계율을 어긴 게 아니라. 자기가 태어나기를 그렇게 태어났고 심리상태가 그렇다는데 그게 무슨 죄가 되겠어요. 그러니까 모르는 척 한다는 게 아니라. 그것을 우리가 이제는 수용할 때가 왔다. 그러면 이런 것들을 합리화하고 잘했다. 이런 뜻이 아니에요.

 

그런데 이제 이런 것들이 습관이 있어요. 그러니까 태어나기를 그렇게 태어난 사람이 있고. 어릴 때부터 그런 동성애적인 분위기 속에서 살다보면 성에 대한 습관이 그렇게 형성되어 버린 사람이 있습니다. 이거는 좀 분리해야 된다. 이렇게 습관적으로 처음부터 원래 그런 게 아니고 습관적으로 그렇게 가는 것은 그런 습관이 들지 않도록. 우리가 원래 태어날 때 담배 피웠어요? 안 피웠어요? 안 피웠지만 습관적으로 그게 물들었죠. 이거는 담배를 끊어야 된다 이 말이오. 그러나 선천적으로 이미 그렇게 형성된 것은 하나의 사람으로 인간으로 우리가 존중하고 받아 들여야 된다. 그럴 때 가족 간의 대화, 또는 상담을 해보고. 이것이 아이들하고 어울려서 자라면서 약간의 습관성인지. 그렇지 않으면 자기가 노력해도 안 되는 근원적인 문제인지. 근원적인 문제라면 우리는 그러한 하나의 인간의 삶. 취향을 수용해 주어야 된다. 그것은 그의 잘못이 아니잖아요.

 

그것을 이제는 우리 세계는 수용하는 쪽으로 지금 나아가고 있다. 이렇게 이해하셔서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대화를 하면서 이것이 아이들하고 어릴 때 어울려서 생기는 약간의 잘못된 습관이라면 여러 가지 교육을 통해서 교정을 하는 게 좋고. 이것이 선천성에 가깝다 한다면 그의 삶을 그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보살펴 주는 게 중요하다. 이해를 해야 된다 이런 얘기요. 그러나 아직도 이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음성적으로 깔려있고. 그래서 그들은 굉장히 숨어서 괴로움을 겪고 살아가고 있다. 그들의 삶, 여러분들이 만약에 태어날 때 그렇게 태어났다면 얼마나 그것이 괴롭겠느냐 이거요.

 

그 다음에 불교적으로 말하면 이런 것은 또 다른 측면에서 볼 수 있어요. 남자로 태어나도 불교에서는 결혼 안하고 살아요? 안 살아요? 살지. 여자로 태어나도 결혼 안하고 살아요 안살아요? 살지. 그렇다면 이런 동성애자라 하더라도 출가를 해버리면 어떻게 되요? 동성하고 성관계나 이런 걸 안가지고 살 수 있겠어요? 없겠어요? 있겠죠. 무슨 말인지 이해하시겠어요. 그러니까 수행적 관점으로 가져버리면 이런 것들은 능히 내가 동성적인 그런 성향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행하지 않고 살수가 있다. 마치 내가 이성적인 성향이 있다 하더라도 이성교재없이 살 수 있는 것처럼. 그러니까 수행자로 돌아가서. 또는 혼자 살더라도 수행적 관점을 갖는다면 이것도 일종의 습관, 까르마거든요.

 

아무리 비록 전생부터 왔다 하더라도 또는 선천적으로 왔다 하더라도 까르마기 때문에 수행적 관점이라면 본인이 정진을 하면 능히 그런 성향을 표출하지 않고 살 수가 있다. 그러나 이런 수행적 관점이 아닌 일반사회에서 인간의 권리 측면에서는 당연히 자신의 성향을 갖고 살아갈 수 있는 권리가 있다. 헌법엔 이런 게 다 보장이 되 있습니다. 인간을 어떤 이런 이념이나 종교, 신념, 피부빛깔, 민족, , 이런 걸로 인간을 차별할 수 없다. 이렇게 돼 있기 때문에. 우리는 가족 중에 혹시라도 이런 사람이 있으면 놀라고 불안해하지 말고. 오히려 이해하고 수용해서 우리가 새로운 길을 찾아 나가야 된다. 네 여기까지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