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정토회)

즉문즉설_법륜스님***제25편 엄마의 일과 자녀의 대학시험

Buddhastudy 2011. 8. 26. 17:59

  방송 보기: 정토TV

일을 하다가도 이런 생각이 듭니다. 일을 열심히 해도 아이가 대학을 잘 가면 다행이지만 못 가게 되면 이런 마음이 한결같을 수 있을까? 만약 못 가게 되어 괴로워지면 어떻게 하나 이런 생각이 듭니다. 일에 대해 후회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듭니다.

* * *

절에 와서 열심히 해도 여기 자원봉사자가 절에 100명이 왔어. 100명이 여기 와서 목탁치고 하루에 5시간씩 우리아들 대학시험에 걸리게 해 주십시오. 이렇게 기도를 해도 한 절반은 떨어집니다. 아시겠어요? 그럼 절반 걸린 사람은 아~ 기도해서 걸렸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여기에 100명이 아무도 기도안하고 교회 가가지고 절에 안오고 교회 가서 기도해도 절반은 걸립니다. 걸린 절반은 아이고 하느님 걸리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기에서 기도했는데 떨어진 50명이 에이 부처님 믿어도 소용없더라. 50명이 교회가서 다음에 기도했다. 그럼 25명 걸리고 25명은 떨어집니다. 그럼 25명은 아이고 하느님이 최고다하고 교회로 갑니다. 25명은 에이 하느님 믿어도 소용없구나. 해서 도로 옵니다.

여기 와서 열심히 정토회 자원봉사를 해도 절반의 학부형 아이들은 걸리고 절반의 학부형 아이들은 뭐합니까? 떨어집니다. 아무도 여기 와서 봉사 안 해도 역시 절반은 붙고 절반은 떨어집니다. 딱 절반이 아니라 어떤 때는 걸리는 쪽이 60%. 어떤 때는 떨어지는 게 61%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여기 와서 일을 안 해도 아이는 떨어질 수가 있고, 여기 와서 일을 해도 떨어 질 수가 있다.

그런데 그 절에 와서 일을 하면 아이가 걸리겠지. 이렇게 결합을 시키기 때문에 어때요? 그러니까 이 일이 좋기 때문에 그냥 할 뿐이어야 되는데. 이거하고 애 시험하고 결부를 시켜서 내가 이렇게 좋은 일 하면 우리 아이가 복 받아서 걸리지 않겠냐? 이렇게 연결을 시키기 때문에 지금 이런 걱정이 생기게 된다.

그러니까 뭐가 문제냐? 연결을 시키지 마라. 아이가 시험에 걸린 거는 공부를 잘한다고 걸리는 게 아니에요. 공부는 5등 했는데 서울 법대 넣으면 떨어질까? 안 떨어질까? 떨어지겠지. 공부는 10등을 했는데도 저 딴 대학에 넣으면 걸릴까? 안 걸릴까? 걸리겠지. 아이가 공부를 열심히 하고 안하고도 관계가 있지만은 그걸 또 어느 정도 선에서 원서를 내느냐하고도 관계 있단 말이오.

그런데 여러분들은 아이가 실지로 공부를 요만큼 밖에 안하는데 여러분들이 원하는 이 만큼 하라고 계속 원하니까. 나는 계속 아이에 대해 불평이고. 아이는 또 엄마에 대해 불평이고. 죽을 지경이고. 또 성적이 요만큼 나왔으면 고만큼 내야 되는데, 엄마가 또 욕심에 이만큼 갔다 내려고 애도 또 욕심을 덩달아 이만큼 내니까 떨어질 수밖에 없지 않느냐? 그런데 절에 와서 여러분들이 자원봉사를 하면 자원봉사를 안하는 집 애들 보다 걸릴 확률이 높다 이거야.

거 왜 그럴까? 다 걸리는 건 아니지만 걸릴 확률이 높아. 여기 와서 부처님 법을 듣고 이렇게 공부를 하면 여러분들이 아이에 대한 요구가 낮아진다 이 말이오. 그러니까 아이하고 시비하는 시간이 조금 전에 보다 적어져. 적어지니까 애는 스트레스를 그 만큼 덜 받으니까 그 만큼 공부를 하는 거요. 두 번째는 시험 때, 원서를 낼 때 여기 와서 일을 하고, 이렇게 법문을 들으면 원서를 낼 때 전에는 이만큼 욕심냈는데 고거보다 조금 낮춰서 내니까 걸릴 확률이 그 만큼 높다. 그러기 때문에 자원봉사를 하면 걸릴 확률이 높다.

그러면 이런 경우는 부처님하고 아무 관계가 없지 않느냐? 그래요. 그런데 이렇게 우리들이 기대를 낮출 수 있도록 가르쳐준 게 누구요? 부처님이니까, 그게 부처님의 가피란 말이오.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해서 우리들의 고가 사라지고, 가정이 화합이 되기 때문에 이게 여래의 가피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무지한 상태, 이치에 맞지 않는 행동으로 어떤 거를 바라는 거 거기를 목을 매 달고, 이치가 훤히 한 만큼 딱딱 결과가 날 수 있는 밝은 이치의 생활은 별로 관심이 없다. 이거야. 왜 그럴까?

요만큼해도 요 마큼 버는데도 다 양에 안차. 아시겠어요? 요만큼 했는데 이 만큼 걸리는 뭔가 가 있어야 될 거 같애. 그래서 죽기 살기로 갓 바위도 가보고, 어디도 가보고 한단 말이오. 여러분들이 여기 어디 가서 열심히 일해가지고 하루 종일 일해 받는 파출부 하루 종일 일하고 삼 만원 받던지 오 만원 받던지 공사장에 가서 일하고 이런 직장 구해달라고 갓바위 가서 기도는 안하잖아. 그런데 복권을 사면 갓바위 가서 기도를 하잖아. 그러면 이 기도의 심리라는 것은 우리들의 어떤 허황된 것하고 늘 결합이 되 있어요.

그래서 그런 기도는 브라만이 그렇게 기도로 된다하고 그렇게 가르쳐. 그런데 부처님은 그런 거를 비판했다 이 말이야. 그게 허황되다고, 그게 어리석다고 말씀하신 분이란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아~ 이거 내가 허황되구나. 고가 이러므로 해서 발생하구나. 이렇게 자각을 해서 괴로움이 사라지는 자기가 원하는 바대로 살아가려는 삶의 길을 열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따라간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가면서 또 이 허황된 게 중이 부축이고, 또 대중의 그 허황된 의식을 갖고 자꾸 요구를 해가지고, 또 중도 거기 또 결합하고, 이렇게 해서 지금 이런 불교의 탈을 쓰고 불교와는 거리가 먼 이런 종교집단을 만들지 않았냐. 결국은 남의 복을 신과 인간 사이에 끼어가지고 이 허황된 생각을 저기다 전해주고 저걸 갖다 일로 내려주는 그 중간에 매개, 브로커. 이게 사제 아니오. 사제. 그게 브라만이란 말이오. 제사장이. 부처님이 그걸 부정한 거 아니오. 그래서 밝은 지혜의 눈으로 자기 인생은 자기가 주인이 되 살도록 해서 수행자라는 그룹을 만든 거 아니오.

그런데 오늘날 승려가 하는 일이 뭐요? 바로 이 사제가 돼 있잖아. 사제가. 저 귀신하고 신도하고 중간에 앉아가지고 대신 거래해주는 사제가 됐지 않았냐 이거야. 부처님과 신도사이에 중간에 끼어서 거래해주는 사제가 됐지 않았냐 이거야. 이 중생의 무지를 부처님을 대신해서 부처님의 말씀으로 여러분들 깨우쳐주고 부처님의 그 위신력으로 여러분들의 마음을 위로해주는 그런 자리가 아니지 않느냐 이거야.

그러니까 여기는 돈이 거래되고 협박이 거래되지 않느냐 이거야. 안하면 큰일 난다. 그러니 여기 와서 스스로 아~ 내가 그 동안에 내 생각만 하고 살았는데 나라는 것을 깨뜨리고 보니 바로 남편의 고통도 버리고 남편의 애로점도 버리고, 자식의 어두운 면도 버리고, 그걸 내가 이해하니까 가정이 화목해지지. 그렇게 행복하기 위해서 몸부림을 쳤는데도 안되든 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해서 이루어지니 너무너무 기뻐. 이런 길을 나만이 아니라 내 이웃에 있는 다른 사람들도 이런 기쁨을 좀 누렸으면 좋겠다. 그러니 내가 여기서 뭘 기여할 수 있겠느냐.

옆에서 어렵다니까 절에 가서 법문 좀 들읍시다. 세력을 키우기 위해서 포교를 하는 게 아니고, 그 사람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 권유를 하는 거란 말이오. 그리고 거기에 장소도 필요하고 뭐도 필요하니 내가 가진 돈을 시주하면서 이 돈을 여기 좀 써 주십시오. 그러니까 이 수닷타 장자가 그 광사성에서 부처님의 법을 듣고 깨달아서 기뻐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부처님, 저희나라에도 오셔서 그 좋은 법을 듣고 사람들이 행복할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그렇게만 요청하고 끝난 게 아니잖아. 또 부처님과 제자들이 와서 머무르려면 장소도 있어야 되고 뭐도 있어야 되잖아. 그러니까 자기 집이고 재산이고 싹 팔아가지고 그런 사람들이 오기, 대중들이 오기도 좋고, 부처님이 탁발하러 나가기도 좋고, 그러면서도 법회하기 조용하고 좋은 수행하기 좋은 도량, 그러니까 자연적으로 비쌀 수밖에 없잖아.

?? 저 멀리가면 되는데, 대중들 요구만 따지면, 한쪽 요구만 따지면 시내 가운데 오면 되는데. 그게 아니잖아. 스님들이 조용히 머무를 수도 있고, 대중이 가까이 빨리빨리 갈 수도 있고. 또 스님들이 탁발하러 올 수도 있고. 그러니 시내에 가까우면서도 조용한곳이. 요즘도 서울 시내 그런 거 다 누가 가지고 있다? 권력자가. 그런 좋은 땅은 누가 가지고 있다고? 권력자나 부자가 가지고 있을 거 아니오. 그죠? 우린 그런 게, 왕이 가지고 있는 땅 밖에 없단 말이오. 그러니까 자기 전 재산을 내서 못사는 땅을 신심을 가지고 사는 거 아니오.

거기에 내가 이러면 나한테 돈이 얼마나 벌릴 거냐? 이런 생각하고 했다고 경전에 나와 있어요? 이게 보시란 말이오. 그거기 때문에 그걸 이름하여 무슨 보시라고 한다? 무주상 보시라고 한다. 그러니까 그는 돈을 이렇게 썼을 때 얼마나 기쁘겠느냐 이거야. 돈이라는 것이 마치 세상의 악처럼 사용 됐는데 그 돈이 이렇게 좋은 데 쓰여졌으니 그 재산이, 자기가 이제가지 애써서 벌은 그 돈이 그렇게 쓰여졌을때 얼마나 기쁘겠느냐 이거야. 그런데 쓰일 돈을 불교에서 사업을 한다고 사업이 얼마나 가치가 있겠냐 이거야. 그 돈 벌어서 술집에 가 술 마시고, 뭐하고, 이런데 세상사람 사치하고, 낭비하는데 쓰여지는 돈을 버는 게 행복하겠냐.

그래서 오늘 불교계에서 논쟁이 되고 있잖아요. 기복, 부추기자. 절에 수입이 안 들어온다 이거야. 그럼 절이 어떻게 유지 되냐 이거야. 그렇다고 그럼 기복을 하면 부처님 가르침에 어긋나는데 이런 걸 해야 되느냐? 안해야 된다. 해야 된다. 안해야 된다. 이런 논쟁이 생기잖아. 그러니 우리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진실하게 전하는 것이 우리들의 사명이다. 그것을 갖고 기쁨을 얻은 사람이 보시를 하는 것은 신도들의 사명이다. 중이 내 앉아가지고 신도들이 어떻게 하면 보시를 잘 하나. 내 이걸 연구한다면 이건 사업이지 그게 어떻게 수행이 되느냐 이거야.

그러면 여러분들이 부모님이 돌아가셨다 이거야. 그래서 돌아가신 부모님에 대해서 죄의식이 있다 이거야. 뭔가 돌아가신 분을 위해서 뭐 좀 해 보고 싶다 이거야. 그러니 요구를 한다. 이걸 어떻게 돈 좀 벌겠다 이게 아니라. 그런 고통을 안고 있다 이거야. 그런데 와가지고 얘기하니까 중이 그렇게 하는 게 중이가? 그런 건 제사장이 하는 일이지. 난 안한다. 이러면 이건 중생의 요구를 외면하는 게 된다. 그는 그를 위로하고 그를 따듯이 감싸주는 거다. 이건 제사장이 하는 거하고 다르다. 비록 형식이 제사장이하고 비슷하게 해 주더라도 그는 목표가 돈 버는 데 있는 건 아니다 이거야.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여기서 천도재를 지내고 뭐를 하더라도 그 천도가 다른 절에서 하는 천도와 모양이 같다 해도 내용이 달라야 한다. 스님이나 신도가 그 임하는 태도가 달라야 한다. 여러분들이 자식이 좋은 대학에 갔으면 좋겠다 하는 거는 사실이지만은. 그것이 허황된 욕심일 때는 기정에 불화를 가지고 온다 이거야. 그런 거 때문에 아이들이 옥상에서 떨어져 죽고, 아이들이 답답해서 마약을 피우고, 부모 몰래 이 세상을 찾아 헤매다가 너무너무 답답하니까 공부는 안 되지. 부모는 기대가 크지. 학교 가서 들으니 잘 모르겠지. 시험 치면 점수는 안 나오지. 어떻하겠어.

그 답답하니까 뭐해요? 술 한 잔 먹어야 될 거 아니오. 답답하면 담배 한 대 피워야 될 거 아니오. 그거 갖고 해결이 안 되니까 마약이라도 해야 될 거 아니오. 그래도 분이 안 풀리니까 오토바이 사가지고 빵빵거리고 돌아다녀야 될 거 아니오. 그러니 이런 걸로 공부로는 성취를 못하니까. 사람은 다 지가 잘난 맛이 있어야 되잖아. 깡패라도 돼서 유명해 져야 될 거 아니오. 그런 걸 누가 만들었어. 이 세상에 아이들을 그렇게 가도록 만든단 말이오. 배출구가 없잖아.

우리 절에. ??이라고 있죠. 매일 컴퓨터 게임만 한다. 우리가 그냥 생각해 보면 그 북한에서 어렵게 살던 애가 중국으로 와서 스님이 태국으로 거쳐 여기까지 데려다가 공부도 시켜줘, 밥도 줘, 다해주면 뭐해야 되겠다? 공부만 해야 될 거 아니야. 감히 어디 딴 생각을 해. 공부만 해야지. 그런데 공부는 안하고 내~ 컴퓨터게임이나 하고, 절에 일도 안 거들고, 그럼 밉상이 되겠죠.

그런데 그 아이 입장에서 한 번 돌아 봐봐라. 그 아이 입장에서. 학교 가니까 수업을 못 따라 가잖아. 영어시간에도 무슨 소리인지 못 알아듣고 수학시간에도 무슨 소리인지 못 알아듣겠고. 시험 치면 끝에서 몇 등 나오고. 얼마나 답답하겠어. 공부를 잘하는 애라야 혼자서 자습이 가능하지. 공부를 못하니까 혼자는 더 못한다고. 혼자는 더. 그러니까 여기 와서 혼자서 공부를 할 마음이 안 생길 거 아니오. 그 아이 입장에서는.

우리 생각에는 학교 갔다 와가지고 열심히 하면 얼마나 보기 좋겠어. 그런데 그 아이 입장에서는 안 된단 말이오. 그렇다고 밖에 가서 어디 가서 놀거나 맛있는 거 사먹으려니 절에 있으니까 눈치 보이잖아. 그러니까 할게 뭐요? 컴퓨터에 빠져서 게임이나 하는 수밖에 없잖아. 우리 생각에 게임하느니 타자연습 하면 얼마나 좋겠어. 그지? 그리 안되는 게 사람이란 말이오. 그러니까 그 아이의 심정을 이해하면 그럼 어떻게 이걸 해소시켜 줄 거냐? 이걸 우리가 연구를 해야 된단 말이오.

그 하지마라 한다고 해결이 될 일이 아니라 하지마라고 두드려 패면 일시적으로 해결이 되지만, 그럼 이 아이는 무슨 배출구가 또 있어야 될 거 아니오. 배출구가 없으니까 입이 부어가지고 항의나 하고, 그러다 더 화가 나면 어떻겠어요? 다니면서 전기 스위치나 꺼버리고. 물이나 팡팡 내다버리고 이렇게 할 거 아니오. 불만이 있으면 인간은 다 그렇단 말이오. 그래 안하는 것만 해도 어디 고장이나 다니면서 몰래 내고 하면 큰 일 이잖아. 그래 안하는 것만 해도 고맙잖아. 그것만 붙들고 앉아 있는 것만 해도 고맙다. 이렇게 생각 해야지.

그런데 그렇게만 하면 애가 장래가 안될 거 아니오. 그죠? 그러니 이걸 어떻게 해야 이 문제를 해결할거냐. 이게 연구가 돼야 된단 말이오. 그래서 스님이 확정된 거는 아닌데 학교에 다니는 게 재밌니? 처음에는 재미있던데 아니요. 고등학교 가면 더 공부해야 되는데 힘들지. 예. 학교 안다니면 어떠니? 대답이 없어. 안 다니려니 마땅히 할 일이 없잖아. 그래 동의를 얻었어. 그러더니 고등학교 안가겠습니다. 그래. 그래? 또 나중에 가고 싶다 할 수도 있잖아. 사람 마음이라는 게 12번도 더 바뀌니. 스님은 어떻게 생각을 할까? 나중에 가겠다. 할 때는 갈 수 있는 통로를 열어 줘야 될 거 아니오. 그러니까 알았다. 그러면 일단 학교는 신청을 해 놓자. 그러고 휴학을 내자.

그럼 다니기 싫으면 치워버리면 되고, 다니고 싶으면 복귀하면 되잖아. 그래서 그러고 있어요. 인도가자. 인도에 가면 여기보단 좀 덜 답답해요. 왜? 공부하라는 사람도 없고, 우선 일은 마음 따라 할 수도 있죠. 일도 많이 하면 문제겠지만은. 어쨌든 지 깜량으로 사람이 어디가든지, 지 깜량으로 뭘 할 만한 것이 있어야 기가 산단 말이오. 안 그러겠어요? 여러분들도 절에 오면 부엌에 가서 봉사하면 뭔가 2층에 가서 봉사해야 ??, 부엌에 와서 집에서 하던 일하면 기가 좀 덜 사는데. 대신 그런 것도 있지만. 또 그건 지가 할 수 있어? 없어. 할 수 있으니까 또 거기 갔단 말이오. 그건 언제나 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대중이 자기가 할 수 있고, 자기가 해 온 일을 중심으로 해서 거기에 대한 성취감도 줄 수 있는 걸 우리가 개발을 해야 되는 거요. 그러니 얘기가 조금 빗나가 애들 문제 얘기 하다가 왔는데. 그러니 자원봉사 열심히 하세요. 그럼 애가 어디 간다? 대학을 간다. 그런데 반드시 가는 게 아니다. 그래도 떨어지는 사람은 있다. 이거는 직접 관계가 없는 거지만은 간접적으로는 유리한 쪽에 놓인다. 그 유리한 것은 내가 이런 봉사활동을 하면 욕심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이 봉사 활동을 하면 내가 열심히 기도하는 것 보다 스님 말씀을 들으니 봉사하면 복을 더 많이 짓는 다더라. 더 많이 지으니 우리 아들이 내 기도하는 거보다 봉사하는 것이 대학에 더 빨리 들어가겠다. 이렇게 생각해서 하면 나중에 고가 따른다.

그런데 내가 시험에 떨어져도 부모 마음이 편안하면 큰 문제가 안 돼. 그래 열심히 해봐. 그런데 뭐 어떻게 다 되노? 또 떨어지고 걸리면 이 세상사니까. 어떻게 할래? 그만 둘래? 한 번 더 해 볼래? 안되겠으면 데리고 와. 인도 데리고 갈테니까. 길을 열어줘야 되. 오직 학생들은 대학가는 거 빼놓고는 선택의 길이 없잖아. 스님들도 다 지금 문제가 되는게 오직 스님이 돼서 계를 받으면 길이 두 개밖에 없어. 하나는 강원 가는 거고 하나는 자기 은사스님 밑에 가서 총무나 보고. 그럼 남은 결과는 가는 길이 어디 밖에 없다? 선방 길 밖에 없다. 이거야.

다른 아무 선택이 없어. 선택이 수백 수천가지 인생의 선택이 있어야 되는데. 선택이 딱 둘 밖에 없단 말이오. 그리고 다른 걸 하려니까 다른 게 뭐 어이해야 되는지 모르잖아. 그러니 사람이 답답하니까 말썽이 생기는 거요. 온갖 선택의 길이 있는 중에 자기가 선택하면 이거 안되면 저거 하고 내 피아노만 치다 손가락만 하나 다쳐도 인생이 좌절하잖아. 손가락이 하나 없으면 딴 일 하면 되잖아. 이게 집착이란 말이오. 그러니까 아이들에게는 대학가는 것 밖에 선택이 없는, 한 가지만 있어 고등학생한텐.

휴학을 할 수 도 있고. 뭐 어디가 딴 짓 할 수도 있고, 외국에 갈 수도 있고, 온갖 선택이 있어. 외국가도 또 대학. 여러분들이 그리 밖에 한 가지 선택만 하는 거 아니오. 한국 아니면 외국. 이렇게 생각하잖아. 그 수많은 선택 중에 중 되는 것도 하나 끼어 줘요. 이렇게 선택이 열려 있어야 되.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다가 자기가 마음에 맞는 거 하나 선택해서 지가 원하는 거 하고 결합하면 활기가 붙을 거 아니냐 이거야.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봉사 열심히 하세요. 직접적인 관계가 없지만 간접적으로 까지 고려하면 걸릴 확률이 높다. 요즘은요 옛날처럼 비 온다. 비 안온다. 이렇게 말 안하지. 비올 확률이 높다. 낮다. 이렇게 얘기하잖아. 그게 과학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