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법문/우학스님_금강경

우학스님의 금강경 6_5.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Buddhastudy 2017. 4. 5. 20:43



그 아래 다시 보시면

불께서 고수보리하시되

범소유상이 개시허망이니 약견제상비상하면 즉견여래니라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존재하고 있는 모든 정신적, 물질적인 것은 실체가 없고 끊임없이 변하는 것이니

만일 이와 같은 줄을 알면 부처님 세계를 보리라.”

 

여기에서 범소유상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이 구절이 아주 중요합니다. 이 구절을 금강경 사구게 서너 군데 가운데 한 곳이 아니냐. 대충 이렇게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금강경을 다 못 외우더라도 군데군데의 중요한 말씀은 외워야 하는데, 그 중에 한 말씀이 바로 범소유상 개시허망이 부분입니다.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 그 부분 해설들이 좀 너무 굳어진 해설을 내려서 제가 좀 풀어놨습니다. 직역을 할 테니까 받아 적으세요.

 

범소유상_무릇 있는 바 상이

개시허망_다 허망하니

약견제상비상_만약에 모든 상을 보아서 상이 아니면

즉견여래_곧 여래를 보리라.

 

무릇 있는 바 상이 다 허망함이니, 만약에 모든 상을 보아서 상이 아니면, 곧 여래를 보리라.

. 각론에 가보겠습니다. 84페이지 각론입니다.

이를 금강경 4구게라고 한다. 금강경에서는 4구게가 서너 군데 나온다. 4구게란 네구절로 된 게송(, 노래)를 말한다. 게송의 게는 가타의 소리 번역이고, 송은 게의 뜻 번역으로 운문형식을 말한다.

 

뭐 그런 얘기가 있고, 그 아래 제 5분의 제목은 여리실견분이다. 이치답게 이치와 같이 실답게 본다는 뜻이다. 즉 바로 보라는 말이다. ‘바로 본다라고 하는 말은 8정도에서 정견을 말한다. 정견. 바로 보라. 이 바로보라는 말은 아주 중요한 말입니다.

 

우리가 부처님 공부를 하려고 이렇게 모인 것도 정견을 획득하려고, 정견을 성취하려고 이렇게 모였습니다. 공부하지 않으면 바른 견해를 얻을 수가 없습니다. 바로 볼 수가 없습니다. 공부는 아주 중요합니다.

 

정견이 있어야지 그 뒤에 나오는 팔정도를 예로 든다면 뒤에 7정도를 다 바로 그대로 실천할 수가 있습니다. 정견, 바른 견해가 없는 데 뒤에 7가지 정도를 알 수가 없어요. 그만큼 팔정도에 있어서의 정견은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이 팔정도를 한번 얘기해 봐요. 팔정도도 이미 공부를 다 하셨습니다. 정견, 정사유, 정어, 정업, 정명, 정정진, 정념, 그 다음 뭐지요? 정정, 8가지.

 

그러니까 공부를 좀 했다하는 사람들은 전 시간에 말씀드렸던 육바라밀, 그 다음에 팔정도, 이 정도는 줄줄 외울 수 있어야 되요. 그럼 8정도라고 하는 이 가르침이 나오기 그 전에 개략적인 법문이 뭐냐? 고집멸도라고 하는 사성제라 이 말이죠. 고집멸도 사성제의 도성제, 도성제의 내용이 팔정도 아닙니까. 한국불교대학 대관음사 감포도량 세계 명상센터의 문수전이 세워졌는데, 왜 이 문수전이라고 했느냐?

 

팔정도를 나타내는 4, 8개의 기둥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가셨을 때 잘 보기 바랍니다. 8개의 기둥인가. 문수전. 그러니까 4개의 속기둥, 사성제, 바깥에 8가지 8개 기둥 팔정도, 사성제 팔정도가 모든 지혜의 근본이다. 이 말이죠.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내가 많은 얘기를 했지만, 사성제 팔정도는 코끼리 발자국과 같다. 코끼리 발자국은 하도 커서, 그 발자국 안에 들어가지 않는 뭇 짐승의 발자국은 없다.

 

즉 코끼리 발자국은 너무너무 커서 모든 짐승의 발자국이 그 속에 다 들어온다. 그와 같이 나의 많은 교리 가운데서도 많은 얘기 가운데서도 사성제 팔정도야 말로, 모든 교리를 아우르는 그런 내용이다.” 그 말입니다. 그래서 이 사성제 팔정도는 틈틈이 읽어보고 익히고, 해야 합니다. 그래서 새로운 불교공부 책을 틈틈이 잘 좀 보시기 바랍니다. 아무튼 이 팔정도에서 처음 나오는 정견, 바로 본다는 의미입니다.

 

바로 보는 것이 부처님 문으로 들어가는 첫 단계입니다. 이 사구게에서 가르치는 바로 봄은 제상비상이다. 즉 상이 상 아닌 것으로 봐야 된다. 이 말입니다. 아주 어려운 말이에요. 상이 상 아닌 것을 보는 일이다. 상은 무엇인가? 물질적인 형체, , 겉모습, 형색을 말한다. 여기에는 돈, 명예, 권력등도 포함되며 자기의 고정관념도 포함된다.

 

우리가 상, , 똘똘 뭉쳐진 그 상은 돈, 명예, 권력, 고정관념, 다 상이다, 이 말입니다. 상은 중생의 착각, 망상으로 인해 영원하고 고정된 것인 양 대상화한다. 그런데 실지 그런 상황은 없다. 세상의 모든 철학과 종교는 과학성이 있어야 하는데, 이 과학자 아인슈타인은 과학이 없는 종교는 장님이며 종교가 없는 과학은 절름발이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 아래에 상이 왜 비상인가? 비상이 왜 상인가? 거기에 대한 해설을 아주 길게 해 놨습니다.

 

이 내용은 읽어보면 다 이해가 되지만, 좀 어렵습니다. 그래서 좀 더 가보겠습니다. 86페이지, 그래서 아인슈타인은 그의 상대성이론에서 E=MC² , 에너지=질량X 광속² 밝힌 바 있다. 결국은 질량은 에너지 덩어리이며, 에너지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즉 상은 비상인 것이다. 이건 과학적 입장에서 봤을 때 상이 왜 비상인가? 질량이 바로 빛을 나타낸다. 에너지다. 이 말을 하고 있는 겁니다.

 

여기서 상은 정신적인 관념도 포함된다. 정신적 관념이 실체가 없다함은 다소 이해하기가 수월하다. 우리의 정신작용이 분별지에 의한 것임으로. 항상 변화 가능성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분별지는 망념, 망상일 뿐 실체가 전혀 없다. 비상이다. 생주이멸을 쉼 없이 계속한다. . 그래서 여기서 상이 비상인 줄 아는 것이 어떻게 부처님 세계를 들여다 보는 것일까를 살펴보자.

 

거기 봐봐요. 상이라 하는 것은 허망한 것. 비상_상이 아니다. 이 말은 허망하지 않는 것. 상은 모양 지어진 것은 다 허망합니다. 뭐 간단하게 우리 육신을 보면, 다 허물어지고 있는 중이잖아요. 그렇다면 허망한 거죠. 그런데 허망하지 않는 것이 있다. 그것이야말로 법신인데, 여래부처님이다, 이 말이죠. 그래서 상이 곧 비상이다. 이 말은 뭐냐? 중생이 바로 부처다. 그걸 나타내는 것입니다. 상이 곧 비상이다. 그래서 중생이 영원한 것이 중생이 아닌 줄 봐야지 부처인 줄 알게 된다. 그런 말도 되고,

    


그 다음에 87페이지 도표 중간에 보시면 아상 인상등이 사상이라 그랬습니다. 아상 인상등 사상을 가지고 있는 것은 중생이요, 그런데 상이 비상이다. 그렇다면 부처님은 사상이 없어요. 그 비상인 거죠. 그러니까 부처님 마음은 사상 없음. , 상은 곧 비상이다. 아상 인상등의 사상 없으면 바로 부처님이잖아요. 그런데 중생 그대로 부처님이죠. 그래서 상이 곧 비상이다.

 

그 아래 해설 보시면, 상이 상 아닌 줄 알면, 상 그대로 참여 실상이다. 그거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상이 상 아닌 줄 알면, 상 그래도 참이요, 실상이다. 여기에 상이라는 말에 나를 대비해 봐요. 내가 나 아닌 줄 알면 내가 현재의 나, 현재 지금 국한되어져 있는 나, 내가 나 아닌 줄 알면, 내 그대로 참이오, 실상이다. 그러니까 중생인 내가 영원한 내가 아닌 줄 아는 그 자체가 중요한 거죠. 그러면 그 자리가 바로 실상이다. 참여 실상이다.

 

이 말은 내 생각을 떠나버리면, 아닌 줄 안다는 것은 내 생각을 떠난 거잖아요. 내 생각을 떠나버리면 온 우주가 바로 부처님세계에요. 부처님 나타나신다. ,

 

이름과 상에 속지 않으면

상이 상 아닌 것을 알 것이오,

상이 상 아님을 알면,

상 그대로 참인 것을 안다.

 

보시를 할 때 보시했다는 상이 없으면

보시함의 자체가 바로 참이다.

 

요약하면 상이면서 상이 아니고, 상이면서 상인 이치를 안 즉, 마음을 잘 다스리고 잘 생활함이 된다. 여기에는 항상 상락아정의 부처님세계가 현현할 뿐이다.

이거 뭐, 무슨 말을 하는지 귀신씨나락 까먹는 얘기를 하고 있어요. , 세 번 째 줄에 상이 상 아님을 알면 안개가 안내가 아님을 알면, 안개가 실체가 없다는 것은 요건 다 알아요. 그 비유해서 생각해 봐요. 안개가 안개 아님을 알면 안개 그대로 참이다. 이 말입니다. , 안개구나. 그러나

 

안개가

실체가 없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보는 안개와

 

안개가

실체가 없다는 것을

모르고 보는 사람하고는

그 안개가 다르다.

 

딱 대비해 봐요. 안개가 안개 아님을 알면 안개 그대로 참인 것을 안다. 분명히 답이 나왔잖아요. 그래서 다시 중도의 원리에서 얘기하면 우리는 육신을 너무 가꾸어서도 안 되고, 또 육신에 대해서 너무 집착해서도 안 되고, 육신을 너무 학대해서도 안 됩니다. 육신은 있기도 하고, 육신은 없기도 하고. 비유비무라. 그래서 때로는 긍정하고, 때로는 부정하면서, 긍정과 부정을 잘 조화롭게 생각하는 가운데에, 절대 긍정의 생각이 나타나죠. 그걸 우리는 상차상조라. 상으로 막고 상으로 긍정한다. 그랬거든.

 

바로 여기서 얘기하고 있는 것처럼, 비유비무, 상이면서 상이 아니고, 상 아니면서 상인 이치를 안즉, 또 요약하면 돈을 한번 대비해 봐요. 돈이면서 돈이 아니고, 돈 아니면서 돈인 이치를 알아라. 그러면 그 돈을 잘 다스리고 돈을 가지고 잘 생활한다. 이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