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17)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제1329회] 미국과 성문화 차이가 궁금합니다.

Buddhastudy 2017. 10. 17. 21:15


안녕하세요. 저는 현재 미국에서 유학하고 있는 대학생이고요, 타지에서 공부하다 보니 한국에서 보지 못하고 느껴보지 못한 경험들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유학 생활을 하다 보니까 미국 사람들의 문화를 접하다 보니까 의문점이 하나 생기게 되었는데요, 성관계에 대한 문제가 생기게 되었어요.//

 

 

한국 스님들은 대부분 결혼을 안 하지 않습니까? 그죠? 그런데 일본에 가면 일본 스님들을 99%가 결혼한 스님들이에요. 일본스님들은. 그래서 일본이 우리나라를 지배할 당시에 우리나라 스님들을 강제로 다 결혼을 시켰어요. 그러니까 일본식으로. 그때는 본사 주지정도 하려면 결혼한 스님만이 될 수 있지, 요즘은 결혼한 스님이면 자격이 없는 게 되는데, 그때는 결혼 안한 스님이면 오히려 자격이 없고, 결혼해야 자격이 있는 거요.

 

그래서 당시에 우리나라에서 일본에 유학 가서 아주 학식이 높은 큰 스님들이, 당시에 일본까지 유학 갔다하면 굉장한 지식인이잖아. 그죠? 그분들이 들어와서 다 일본에 가서 거기에 문화에서 결혼을 하고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다 큰 절에 주지하고, 이렇게 했단 말이오. 그러니까 그것은 일본에 가서 일본스님들이 다 결혼하니까 나도 결혼하고 싶다.”이러면 결혼하면 되고,

 

그런데 그것은 뭐 일본사람들 얘기고, “나야 일본 스님들이 결혼하든 말든, 그것은 자기들 얘기고, 나는 그냥 결혼 안하고 승려생활을 하겠다.” 그러면 혼자 하면 되지, 그것을 일본에 가면 스님들이 다 결혼을 하던데, 스님이 결혼해야 됩니까? 안해야 됩니까?” 이렇게 묻는 거 하고 같단 말이오.

 

그러니까 내가 젊은이로서 나는 이렇게 살겠다. 내가 미국에 가서 살지마는, 미국 사람들이 어떻게 하든 그것은 미국 사람들의 얘기고, 나는 이렇게 살고 싶다.” 하면 이렇게 살면 되는 거요. 그게 옳고 그르고 그런 문제는 아니에요. 그러니까 스님이 결혼해야 되느냐? 안 해야 되느냐? 하면 결혼 안한 스님들은 스님이 결혼하면 그게 무슨 스님이고? 스님이 아니지. 절대로 안 된다.” 그럴 거고,

 

일본 스님들은 몇 백년간 자기 태어나자마자, 스님이라는 것은 다 목사님들처럼 결혼하는 이런, 일본 스님들 우리나라 목사님들하고 같다. 이렇게 보면 되요. 그런 사람들은 스님이 결혼하는 데 그게 뭐 문제고?” 이렇게 생각하라 수도 있기 때문에 여기서 어떤 게 옳다 그르다고 할 수가 없다. 이쪽에서 보면 저쪽은 완전히 틀린 거지마는, 그쪽에서는 그렇게 또 자란 사람 입장에서는 다르다는 거요.

 

그러니까 이 북방에서는 스님들이 고기를 안 먹는다.’ 이런 문화가 있잖아. 그죠? 그런데 남방에 계율을 철저히 지킨다는 태국스님, 미얀마스님, 스리랑카스님은 고기는 먹어요? 안 먹어요? 고기는 먹어. 거기는. 거기는 고기 먹지 마라.’ 계율에 이런 것은 없어요.

 

그런데 술을 먹지 마라.’ 이것은 계율에 있잖아. 그죠? 그런데 우리나라 스님은 곡차를 갖다 술 먹는 것은 그렇게 문제 삼아요? 안 삼아요? 안 삼는데, 거기는 술 먹는 것은 완전히 또 엄격하게 규제가 되요. 이렇게 같은 불교 안에서도 가치가 조금 다르다.

 

우리나라는 스님들이 담배피우면 좀 이상해 보이죠. 그래요? 안 그래요? 그런데 남방에 가면 그 계율을 철저히 지키는 사람들이 아침공양 끝나면 계단에 앉아서 할아버지 스님하고 조그마한 어린애 스님들 있잖아. 둘이서 같이 담배를 붙여 뽀끔뽀끔 피우고 있어요. 우리가 볼 때는 담배 피우는 것도 이상하지마는 노스님하고 애기스님이 같이 앉아 피우면 이상하잖아. 그런데 우리 문화죠.

 

그런데 우리가 밥 먹고 껌을 할아버지가 손자한테 주고, 자기도 꼭꼭 씹어도 되요? 안 돼요? 그것은 왜 돼? 그것은 할아버지가 밥 먹고 난 뒤에 껌을 손자한테도 하나 주고 자기도 하나 하고 그것은 똑같다는 거요. ? 담배가 이 세상에 생기는 것은 400년 밖에 안 되었고, 부처님이 계율을 지정한 것은 2600년 전이잖아. 그때 담배가 있었을까? 없었을까? 없었으니까 담배 피우지 마라.’ 이런 게 있었을까? 없었을까? 없어.

 

그 이후에 나중에 생긴데도 그때는 담배가 없었기 때문에 없단 말이오. 그러니까 담배 피우는 것은 거기 해당이 안 된단 말이오. 이렇게 문화차이가 있는 거요. “이럴 때 담배 피워도 되느냐? 안되느냐?” 이렇게 말할 수가 없다.

 

다만 생물학적으로 얘기하면 사람의 신체가 이렇게 육체적으로 여자의 특징, 여자로서 육체적으로 성인의 접어들었다. 남자로서 육체가 성인에 접어들었다. 하는 것의 기준은 15세입니다. 몇 세라고요? 15. 15세면 결혼하면 애기를 갖게 되요? 안 갖게 되요? 갖게 된다. 보통 옛날에 15~16세에 결혼을 시키면 보통 18세 정도에 첫 애기를 주로 낳게 되요.

 

그러니까 옛날 사람들은 결혼했는데 애가 결혼 2~3년 되어 나이가 18살 되었는데 애기 안 낳으면 부모에게 걱정거리요. 고등학교 1~2학년 때쯤 되었는데 애기를 못 낳으면 걱정꺼리다 이 말이오. 그런데 지금 여러분들이 고등학교 2학년짜리가 애기를 가지면 또 가져서 이번에는 뭐다? 걱정꺼리가 되잖아. 그죠?

 

그런데 그때는 신체의 성숙도와 사회적으로 어른으로 인정하는, 사회적으로 성인으로 인정하는 게 시기가 비슷했어요. 그러니까 요즘 말하면 청소년 성범죄라든지 성고민. 이런 것은 있을 수가 없어요. 오히려 남자애들은 12살에 결혼을 시켜서 결혼을 했는데도 남자 역할을 해요? 못해요? 못해서 오히려 문제가 되면 되었지, 이런 문제는 없었는데, 지금은 우리 사회가 이 성인으로 대우해주는 게 몇 세다? 20세에요.

 

그런데 육체적으로 성숙하는 것은 15~16세 되면 성숙하기 때문에 여기 청소년문제가 발생한다. 이런 얘기요. 그럼

 

청소년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우리 딸이나 우리 아들의 문제가 아니고,

이 육체와 사회적인 인정 사이에 갭으로 인해서

아이들이 고민이 생긴 거다.

이렇게 이해를 하셔야 된다.

 

아이들이 어떤 게 고민이 되고,

신체가 어떻게 성장되고

이것을 알아야 될 거 아니오.

 

벌써 요즘은 초등학교 6학년, 중학교 1학년만 되어도 음식을 좋게 먹이니까 성장이 빠르잖아. 그죠? 그런데 엄마들이 그 애기 어릴 때처럼 샤워장가서 목욕하고 대충입고 팬티만 입고 이렇게 나와서 다니고. 그럴 때 그게 아이들에게 얼마나 큰 고뇌가 되는지를 알아야 되요. 진짜 수준 안 되는 사람들이 결혼을 해서 애기를 낳아서 문제인데.

 

그러니까 실제로 생물학적으로 그렇다. 그러면 부처님 당시에는 언제 성인으로 인정했느냐? 12살이에요. 우리가 만약에 수렵채취를 한다면 12살 되면 자기가 알아서 먹고 살아야 돼. 도망을 가도 엄마가 데려가고 이런 거 없어. 자기가 도망을 가야지. 그러면 농경제 사회에서는 조금 늘었어. 15세에요. 오늘날 우리가 산업사회 여기 들어와서 18세로 늘어난 거요. 18세로 늘어나니까 여기 청소년 문제가 생기는 거요.

 

서양에서는 그 문제는 생물학적인 신체가 성숙되었기 때문에 그 문제를 인정을 하는 거지. 쉽게 얘기하면. 지금에 서양 문화는. 서양이라고 다 그런 것은 아니고. 그래서 여러분들이 어떤 사고를 쳤을 때, 지금 투표권이라든지 집을 살 권리라든지, 이런 것은 우리나라로 20세로 치잖아. 그죠?

 

그런데 만약에 연해 사건이 생겼다.

그러면 법정이 성년 연령이 15세입니다.

 

만약에 고등학교 2학년짜리가 학교 선생님하고 연애를 했다. 그러면 이것은 청소년성범죄에 안 들어갑니다. 만약에 학생이 자발적으로 연애를 했으면. 그런데 초등학생이 선생님하고 자발적으로 연애를 하면 이것은 어떻게 된다? 이것은 15세 이하와 관계를 맺으면 이것은 학생이 자발적으로 했다고 하더라도 이것은 어른이 아이를 보호해야 되는 문제에요. “너는 아직 어려서 안 된다.” 이렇게 얘기해야 될 얘기지, 그것을 받아들이면, 강제는 나이하고 관계없이 강제성은 다 성폭행, 성추행은 범죄에 속하고, 자발적인 관계도 15세 이하는 처벌의 대상이 된다.

 

그런데 15세가 넘으면 그것은 처벌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신체의 성인의 기준이 15세가 되면 성장이 되기 때문에.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그것을 언제 윤리적으로 설정할 거냐? 그게 조선시대같이 15세의 성인으로 결정을 하면, 결혼을 시키고 이렇게 되죠. 그러니까 그 문화의 문제에요.

 

자기는 어떤 문화를 지킬 거냐는 거요. 결혼하고 관계없이 그런 갭 사이에서 남녀관계를 갖는 것을 사회가 다 용인을 하면 그냥 그게 하나의 사회적인 문화가 되는 거고, 일본 같으면 문화가 어떠냐하면 결혼 전에는 정조관념이 없습니다. 그런데 결혼 딱 하면 어때요? 지켜야 됩니다. 문화적 차이에요. 한국은 오히려 결혼하기 전에는 정조관념이 있고, 결혼하면 별로 없어지는 이런 문제가 있는 데.

 

그래서 이것은 문화의 문제이기 때문에, 자기가 선택을 해서 지킨다. 그런데 성추행이나 성폭행이나 강제성은 어떤 경우에도 안 됩니다. 이것은 문화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즐겁기 위해서 상대를 괴롭힐 권리가 없다.

이것은 3번째 계율에 속합니다.

 

내가 살기 위해서 남을 죽일 수가 없고,

때리거나 죽일 수가 없고,

내가 이익을 보기 위해서 남을 손해 끼칠 수가 없고,

그래서 훔치거나 빼어서는 안 되고,

내가 즐겁기 위해서 남을 괴롭힐 수는 없다.

여기에 성추행 성폭행은 안 된다.

 

내가 말할 자유는 있지만,

말로 남을 괴롭힐 권리는 없다.

이게 거짓말 하거나 욕설해서는 안 된다는 거고,

 

내가 술 먹는 권리는 있지만

술 먹고 취해서 남을 괴롭힐 권리는 없다.

그래서 술을 먹고 취하지 말라.

 

그런데 술 취한 사람 치고 자기 취했다는 사람이 없으니까

그런 것은 아예 먹지를 말라. 이러지만,

정확하게 계율의 정신은 취하지 말라. 요게 핵심이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안 먹으면 제일 좋고, 먹더라도 약간 술에 취하는 것, 정신이나 육체가 약간이라도 취한다 하면 계율에 어긋납니다. 음식수준만 먹어야 돼. 그리고 어쩔 수 없이 회사에서 먹여 약간 취했다 이러면, 조용히 옆에 가서 자야 되요. 술 먹고 목소리를 높인다든지 이러면 그것은 계율에 어긋납니다.

 

남을 괴롭힐 권리가 없어요. 우리는.

내 즐거울 권리는 있지마는

남을 괴롭힐 권리는 없다.

 

미국에서 두 사람이

자기 여자 친구가 있어서

둘이 어떤 관계를 맺든지 그것은 자기 선택이에요.

상대가 좋다 해도

내가 어떤 인생을 살 거냐.

어떤 가치관으로 살 거냐 하는 것은

자기 선택의 문제다. 이렇게 말할 수가 있어요.

 

그러니까 자네는 그렇게 묻지 말고, “혼전 관계를 맺고 싶은데, 그 동안에 배운 교육이 좀 마음에 걸립니다.” 이렇게 물어야 정확하지. 젊은 사람이 솔직하게 묻지, 이왕지 꺼내서 물었으면.

 

그런데 그것을 왜 묻니? 어른들은 안하면 좋다고 그러지. 당연히. 왜 그럴까? 화가 났을 때 화를 내어야 되요? 안 내어야 되요? 이렇게 남한테 물어보면 내라 그러나? 내지 마라 그러나? 내지 마라 그러지. 그러니까 그것은 자기 선택의 문제이지 남한테 물을 일은 아니다. 자기가 그런 것을 묻는 것 자체가 내가 볼 때는 자기가 약간 좀 비겁해.

 

자기가 결정을 해서 관계를 맺고 거기에 대한 책임을 져야 되는데, 이것을 지금 엄마나 선생님이나 스님한테 물어서 허락을 받아서 책임을 나누겠다는 거 아니야. 솔직하게 말해서. 무책임한 태도요. 저런 젊은이하고 결혼하면 여자가 고생이에요. 연애해도 고생하고. 책임을 그렇게 전가하려면 안 되고, 이제 생태적으로는 내가 얘기했잖아. 생물학적으로는 문제가 없다. 그러나 사회라는 것은 서로 계약의 문제 아니오. 그죠?

 

우리의 사회적 계약, 스님이 머리를 깎는 거, 이게 수행하는 데 무슨 도움이 되겠어요? 그러나 이것은 사회적 관습이란 말이오. 내가 머리 길러 다니면 여러분들이 물을까? 안 물을까? “스님 왜 머리 길렀어요?” 이렇게 물을 거 아니야. 기르는 게 좋으나? 깎는 게 좋으나? 이런 것은 말할 수가 없어. 이거 자체는 수행하고 아무 관계가 없지만, 오랫동안 깎아 왔기 때문에 처음에는 깎을 때 무슨 이유가 있었을 거요. 그러나 우리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그 관습을 버리지 않는 거요.

 

제가 입고 있는 옷도 마찬가지요. 이거 입으면 수행이 잘되고 이거 입으면 수행이 안 될까? 아무 관계없어. 그러나 그냥 옷이에요. 그러나 오랫동안 입어왔기 때문에 나는 이것을 입고 있는 거요. 이것을 입고 미국도 가고, 고무신신고 전 세계로 다 다니는 거요. 사람들은 뭣 때문에 입고 다니나?” “입었으니까 입는다.” “바꾸면 안 돼요?” “되지.” “그럼 바꾸세요.” “뭣 때문에 바꾸는데?” 바꿀 특별한 이유가 없단 말이오.

 

그러나 내가 만약에 농사일을 하면 이거 벗고 딴 걸 입을까? 안 입을까? 그것은 그만한 필요가 있기 때문에. 그런데 그만한 필요가 없는데, 뭣 때문에 이것을 바꾸겠어요. 관습이란 말이오. 그러니까 사람들의 관습이 얼마나 무섭나? 그냥 스님이 식당에 가든 집에 초대를 하든 음식을 그냥 주면 되는데, 꼭 저한테 물어요. “스님, 음식을 어떻게 해야 됩니까?” 왜 자기가 결정하지 그것을 왜 나한테 물어.

 

자기가 보고 채식을 해서 딱 주면 좋고, 자기가 보고 스님이 육식을 좀 해도 안 되나? 건강도 좋고. 주면 내가 먹고 싶으면 먹고 안 먹고 싶으면 안 먹으면 되는데, 미리 고기는 안 드시죠?” 이래. 초대해 놓고 그렇게 말하면 되나? 안 되나? 그러니까 스님이 안 먹는데 자꾸 먹으라고 강요해도 안 되고.

 

그러니까 자기가 그냥 자기식대로 해주든지, 자기가 봐서 오신채를 빼든지, 항상 물어요. “오신채 넣어도 됩니까?” “안 넣어도 됩니까?” 그것을 왜 나한테 물어. 자기가 알아서 해 놓으면 내가 알아서 먹으면 되잖아. 그죠? “고기 안 드시죠?” 이러고 내놨는데, 내가 그것을 어떻게 먹어?

 

이게 우리 관습이라는 거요. 우리는 어지간하면 관습을 서로 지키는 게 좋아요? 안 지키는 게 좋아요? 지키는 게 좋아. 관습을 안 지키면 다른 사람이 머리가 아프단 말이오. 내가 고기 집에 앉아있으면 지나가는 사람이 스님이 왜 저기 있지?” 이렇게 머리가 아프단 말이오.

 

그래서 자유이기는 하지만, 뭘 먹든 그 사람의 자유지만, 우리 사회는 윤리가 있고, 관습이 있는데, 그것은 절대적은 적은 아니에요. 그러나 우리는 서로 살면서 관습은 서로 지켜주는 게 좋다. 절대적인 것은 아니에요.

 

그러니까 자기도 그것은 미국의 관습이고, 나는 어머니와 나의 관계, 가족관계, 나의 관습이나 나의 윤리나 나의 가치관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가지고 자기가 판단을 해서 결정을 하고,

 

그 다음에 만약에 고등학생이 서로 친구가 좋다고 좀 관계를 맺었다. 이성관계를 맺었다. 이렇게 되면 애기가 생기고, 이렇게 되면 바로 결혼하면 되는데, 앞으로 자기가 학교도 다녀야 되고, 이렇게 하는데 장애가 될까? 안 될까? 그 책임을 져야 돼. “고등학생이 그러면 되나? 안 되나?”는 없어.

 

그러나 어른이 볼 때는

그런 욕망은 욕구는 이해가 되지마는,

그러면 앞으로의 삶이 복잡해진다 이 말이오.

그런데 그 책임을 능히 진다. “나는 책임을 지겠습니다.” 이러면 괜찮은데. 그러니까

 

즐기기는 하고 결과를 책임은 안 지겠다는 것은

그것은 무책임하다.

그것은 성인으로서 해야 될 일이 아니다.

 

그러니까 그거에 대해서 자기가 판단하면 자기가 유학생활하고 뭐하고 뭐하는데, 지금 거기에 신경 써서, 거기에 내가 책임을 져 나갈 거냐? 아닐 거냐? 이런 판단이 훨씬 더 중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