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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도스님 BTN 즉문즉설 35_1. 반려동물로 인한 사랑과 갈등

Buddhastudy 2018. 1. 15. 20:25


옛날에는 강아지를 키우거나 개를 키우면 대게 밖에 길렀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반려견이라는 게 안방으로 오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강아지들을 보면 자기가 강아지인지 사람이지 몰라요. 이런 시대까지 와서, 또 강아지에게 여자 분들이 본인을 엄마라고 또 소개를 하더라고요. 그래서 얘들은 자기엄마가 정말 강아지 주인이 자기 엄마인줄 알고 사는 시대로 변화되었습니다.

 

반려견이나 반려묘를 보면 동물을 종아 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동물을 무서워하는 사람도 있어요. 그런데 대게 보면 목줄 같은 것을 잘 감고 다녀야 되는데, 저도 강아지가 무서운 사람이에요. 산에 가다보면 요즘엔 매너가 있는 분들은요, 제가 지나가면 개를 안고 움직이지 못하게 하거나 지나가고 난 다음에 가더라고요.

 

그런데 어떤 경우에는 목줄도 풀어놓고 가면 괜히 제가 쫄아 갖고 이러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질문을 아마 회장님께서 해주신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을 합니다.

 

내가 행복해서

반려견을 예뻐하고 기르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죠.

동물이 보호되고

사랑받아야 되는 것은 당연한 겁니다.

 

그런데 상대방에게 위협을 가하거나

상대방이 뭔가 불안해하는 것은

삼가 할 수 있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지 않겠나 하는 생각합니다.

 

그러면 반려견이 나오다보면 실례를 하는 경우가 너무 많잖아요. 그러면 본인이 좋아서 기르는 애완견이라면 그 애완견이 주변 환경을 오염시키거나 물의를 일으킬 수 있을 때는 반드시 그때그때 처리를 할 수 있는 것이 진정한 문화인일 텐데도 불구하고 양심을 저버리는 경우들이 너무 많은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그래서 반려견을 기르거나 반려묘를 기르는 것을 뭐라고 할 수 없지만,

서로가 사회적으로 약속되어진 것을 잘 실행할 수 있는 것이 뭔가 선행되어져야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합니다.

 

옛날에 이거인이라는 사람이 살았는데요, 이 사람이 어느 날 눈이 3개 달린 강아지를 주웠어요. 그래서 이 강아지를 잘 길렀습니다. 그런데 이유 없이 어느 날 강아지가 죽었어요. 죽고 난 이후에 한참 세월을 살고 난 이후에 이 사람도 죽었거든요. 죽어서 간 데가 어디냐 하면 저승을 갔어요. 저승 문턱에 갔더니 삼목대왕이라는 사람이 문을 지키고 있더래요. 저승문턱을.

 

그 삼목, 눈을 3개 가진 대왕이 지키고 있는데, 보니까 그 삼목대왕이 누구냐 하면 본인이 길러줬던 강아지가 삼목대왕이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본인이 그 삼목대왕, 그 강아지를 그렇게 잘 길러줬으니까 고마운 마음에 이 삼목대왕이 영감을 데리고 염라대왕 앞에 가서 내가 이 사람에게 신세를 지고 온 사람입니다.” 라고 소개를 하니까, 염라대왕이 참 착하디 착한 사람이다. 당신이 하고 싶은 일이 뭐냐라고 묻더랍니다.

 

그래서 나는 세속에 살 때 그냥 인간적 삶만 살고 왔지, 진리를 통해서 누군가에게 홍보하지 못한 것이 원인이다. 내가 다시 돌아간다면 부처님 진리를 가르치고 돌아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랬더니, 가서 그거 하고 오라고 그래서 다시 인도환생을 해서 사람으로 살다가 인과관계를 풀어 갔다. 라는 그런 얘기가 전해지고 있거든요.

 

여러분, 동물이라고 하더라도 학대를 하면 안 됩니다. 그냥 그 생명 하나하나를 소중하게 받아들이고, 그 동물들을 잘 보호하는 것 자체가 바로 인연의 인과에 있어서 좋은 인연을 지어갈 수 있는 방법인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모든 생명을 내가 보호한다라는 차원에 주변에 많은 사람들에게 불편함을 끼치는 것까지는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모쪼록 동물을 사랑하고 보호하는 것은 좋지만, 이 사회적 합의에 의한 정말 순기능의 동물 보호가 이루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