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 역사/손석희앵커브리핑(2018)

[손석희의 앵커브리핑] 기억하라 '15대 0'

Buddhastudy 2018. 6. 29. 19:00


뉴스룸의 앵커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15 0'

1933년 휘문고보 문우회지 "휘문"에 실린 기고문의 제목입니다.

당시도 학생들의 야구사랑은 대단했던 모양이죠.

 

바로 한 해 전 휘문고보는 숙적인 중앙고보와의 대결에서 대패해서 150이라는 굴욕적인 결과를 기록했는데누군가 당시의 일을 기록해서 남겨두었던 것이었습니다.

 

그 누군가의 이름은 이쾌대. 그는 야구부 주전 유격수였습니다. 훗날 한국 근대미술의 거장으로 꼽히는 인물이 되기도 했지요. 전교생의 뜨거운 응원 속에 참패를 당했던 기억. 그가 그 낯 뜨거운 패배의 순간을 보란 듯이 꺼내놓은 이유는

"이 사실을 기록하여 둠으로 해서 후진에게 한 가지 도움이 될까 하는 생각으로" 였습니다.

 

이번 월드컵 축구 역시 그야말로 우리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했습니다.

마치 '착즙' 하듯이 희망을 쥐어 짜낸 시간이었다고나 할까

결국

 

"축구는 22명의 남자가 90분 동안 공을 쫓다가 결국 독일이 이기는 게임" 이라던 명언 같은 그 말은 단번에 뒤집혔고

축구는 간단한 게임이다.

22명의 남자들이 90분 동안 공을 쫓다가

마지막엔 독일이 항상 이기는 것은 더 이상 아니다.

이전 버전은 이제 역사로 남게 됐다.

- 게리 리네커 전 영국 축구 국가대표

 

애초에 그 말을 유행시켰던 전직 축구선수는 바로 어제 자신의 말을 정정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더욱 냉정한 마음으로 본다면 마냥 찬사를 보낼 수만은 없는 상황.

 

1933, 처절했던 야구경기 패배를 기록한 소년의 말처럼 우리는 독일전 승리에 주목하는 대신 그보다 앞서 겪은 2번의 패배를 더 기억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이제 월드컵의 열기를 지나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더라도 축구 때문에 웃고 울거나, 환호하고 실망했을 모두를 위해서, 혹은 또 다른 실패로 인해서 무너지거나 반대로 예상치 않은 성공에 취해있을 모두를 위해서 열아홉의 소년 이쾌대가 남긴 그 글 '150'의 첫머리를 고스란히 다시 옮겨드립니다.

 

"여러분들은 벌써 잊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 잊음()이라는 것이 이 경우에 필요한 것일 줄 안다

그러나 나는

이 사실을 기록하여 둠으로 해서

우리 후진에게 한 가지 도움이 될까 하는 생각으로

이 글을 씀을 제군은 양해하여 달라"

 

오늘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도 사족을 하나 달겠습니다.

비록 이 사족이 오늘의 앵커브리핑을 무색하게 하는 것일 수도 있겠으나 그래도 독일전 승리에 너무 기분이 좋은 것은 어쩔 수가 없어서 바로 그 독일의 속담을 인용해드리겠습니다.

 

'Ende Gut, Alles Gut!!'

'끝이 좋으면 모든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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