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 역사/손석희앵커브리핑(2018)

[손석희의 앵커브리핑] '여러분은 이걸 장난감이라 할지 모르겠지만…'

Buddhastudy 2018. 6. 27. 19:00


뉴스룸의 앵커브리핑을 시작합니다.

 

"이것이 내가 레지옹 도뇌르를 거부한 이유"

2년 전. 배우 소피 마르소는 프랑스 최고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거부했습니다.

레지옹 도뇌르는 1802년 나폴레옹이 처음으로 제정한 매우 영예로운 상징물이었지요.

 

그러나 배우는 말했습니다.

"작년에만 154명을 처형한 나라, 사우디의 왕세자에게 이 상이 수여됐다"

차라리 영예를 거부하는 것이 더 명예롭다는 선언이었습니다.

그는 세월과 함께 더욱 풍성해진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여왕 폐하. 저는 훈장을 반납하려 합니다"

1965년 대영제국훈장을 받았던 비틀즈의 존 레논 역시 4년 만에 훈장을 반납했습니다.

대중가수로는 처음으로 받은 훈장이었지만 그는 영국 정부가 베트남 등 다른 나라 전쟁에 개입하는 것에 찬성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훈장의 의미를 도저히 견뎌낼 수 없어 반납한 예는 우리나라에도 있습니다.

"훈장을 가져가서 뭐 하겠느냐"

- 김순덕 전 필드하키 국가대표

 

1999. 씨랜드 화재 참사로 아이를 잃었던 김순덕 씨.

그는 국가대표 선수 당시 받았던 훈장을 모두 반납하고 이민을 떠났습니다.

그에게 훈장은 상이 아닌 형벌과도 같았고.

 

"세월호를 보고 넋을 놓고 있었습니다

그때와 다를 게 하나도 없습니다."

- 김순덕 전 필드하키 국가대표 (2014CBS 라디오 인터뷰)

 

이후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그는 여전히 조국이 달라지지 않았다 말했지요.

 

"여러분은 이걸 장난감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사람을 지배하는 것은 그런 장난감이오"

과연 처음 레지옹 도뇌르를 제정한 나폴레옹의 말처럼 훈장은 비록 작고 가벼워도 지니고 있는 무게와 상징성만큼은 결코 그렇게 가볍지 않아서 그것을 받든 거부하든 반납하든사람들의 마음을 지배하는 것은 틀림없어 보입니다.

 

고인이 된 그에게 추서된 '국민훈장 무궁화장'이 내내 논란이 되고 있는 건, 아마도 그래서일 것입니다. '전직 총리에 대한 예우'라는 정부의 입장은 이해하지만 시민들 사이에서 흔쾌해 하지 않는 기운이 퍼진 것은 왜일까?

 

망자는 말이 없다지만 그는 무성한 이 논란 속에 추서된 훈장을 바라보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문득 궁금해지는 오늘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사족입니다.

어제의 팩트체크는 그들의 훈장을 얘기하면서 수없이 남발된 그동안의 셀프 훈장들을 지적했는데이쯤 되면 나폴레옹이 말대로 사람들에게 훈장은 때로는 그저 장난감으로 치부될지도 모를 일이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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