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11)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제12회 아픈 남편을 위한 기도

Buddhastudy 2011. 11. 3.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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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어떻게 아픈데. 얼마나 산데요? 그럼 부처님께 부처님 감사합니다. 부처님 덕택으로 오늘도 우리 남편 살아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자꾸 이렇게 기도하는게 좋아요. 그런데 돈 못 번다고 괴로워하나? 나사랑 안 해준다고 괴로워하나? 나 놔두고 먼저 죽는다고 괴로워하나 동일한 병이오. 다 욕심이에요. 인연을 따라서 돌아가시기 돼 있으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편안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거지, 그렇게 울고불고 하는게 아니다, 이 말이오.

 

내가 운다고 병이 낫습니까? 내가 울고 있으면 내가 웃는 거 보다 남편이 더 좋아해요? 그럼 내가 울면 애들이 더 잘 큽니까? 그러니까 이게 백해무익한 짓이다. 쥐가 쥐약을 먹듯이 자기를 해치는 짓이다. 이걸 깨달아야 되. 그러니까 기도를 할 때, ‘부처님 감사합니다. 이미 돌아가셔야 되는데, 부처님 덕택으로 오늘도 살아있네요, 나하고 하루라도 더 있으라고, 오늘 이렇게 살아있으니 감사합니다.’ 이렇게 감사기도를 자꾸 해야 돼.

 

어떻게 해 주세요 하지 말고. 이미 의사선생님이 말한 시간이 넘었잖아. 그죠? 그러니까 집착은 놔야 되. 이제는 감사만 해야 되. 내일 돌아가신다 해도 아무런 불평이 없도록. ‘감사합니다. 부처님. 감사합니다, 부처님.’ 이렇게. 스님도 단명한다 그랬는데, 죽는다 하는 시간이 넘었어요. 그래서 스님은 웃고 사는 이유가 매일 매일 감사하고 사는 거요. 그렇게 기도해야 되. 감사 기도를 해야지 울고불고 하는 건 안좋아요.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죽습니까? 안 죽습니까? 지금도 사람들이 죽고 있어요? 안 죽고 있어요? 죽고 있죠. 그런데 그 죽음이 나거나 내 가족이면 어때요? 내가 슬프죠. 왜 그럴까요? 이 세상 사람이 다 죽는데. 결국은 집착이에요. 부모가 돌아가셔서 슬프다고 하지만은, 부모를 위해서 내가 슬픈게 아니에요. 내가 보고 싶다할 때 부모를 못 보죠. 돌아가시면. 그래요? 안 그래요? 그죠. 그 내 욕심대로 안 되는게 슬픔의 원인이오. 보고 싶을 때 못 보니까 슬프죠.

 

그런데 남편이 돌아가시는 것이 나 때문에 죽는 것도 아니고, 내가 잘못해서 죽는 것도 아니고. 몸에 병이 나서, 치료하는데 까지 했고. 그래서 더 이상 치료가 안돼서 생을 마치는 거요. 나이가 들어서 생을 마치거나, 사고가 나서 다쳐서 생을 마치거나. 죽어도 좋다 이렇게 팽개치는게 아니라. 이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태어나고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거요. 만약에 사람이 태어나서 너도나도 다 안 죽는다 그러면, 세상이 더 잘될까요? 잘못될까요? 잘못되겠죠.

 

태어난 사람은 안 죽는다 하면 좋을까? 좋아요? 태어난 사람이 죽어줘야 세상이 좋아요. 여러분도 죽어줘야 세상이 뭐하다? 좋다. 이런 얘기요. 세상이 유지되려면 새로운 아이들이 태어나야 되요? 안 태어나야 되요? 태어나야 되. 그처럼 세상이 유지되려면 사람이 죽어줘야 되요? 안 죽어 줘야 되요? 죽어줘야죠. 그러나 생명 하나하나가 소중하기 때문에 함부로 죽이지 말라 부처님이.

 

그러나 부처님은 생명을 소중하게 여겨서 함부로 죽이지 말라고도 했지만, 죽음에 대한 아무런 두려움과 집착도 갖지 마라. 이렇게 가르쳐. 봄에 잎이 피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은 가을에 낙엽 지는 것도 좋은 일이오. 낙엽이 떨어져야 봄에 잎이 다시 돋을 수 있다. 그럼 상록수는 잎이 안 떨어지는 거 같아요?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건 떨어지고 새로 나고, 떨어지고 새로 나는 거요. 열대지방에 있는 잎은 안 떨어지는 줄 아세요? 아니에요. 모든 잎은 열대지방에 있는 잎도 떨어집니다. 떨어지고 다 새로 나요.

 

그러니까 봄여름가을겨울이 돌면서 사철을 유지하는데, 겨울 되면 추워서 괴롭고, 여름 되면 더워서 괴롭고, 봄에는 못 놀아서 괴롭고, 가을에는 쓸쓸해서 괴롭고. 이렇게 문제를 삼아서 괴로운 거는 어쩔 수 없어요. 그건 자기 문제요, 가을이 쓸쓸한게 아니라, 가을을 문제 삼아 쓸쓸하고 싶은 거요. 낙엽이 내 쓸쓸하라고 떨어지는 거 아니오. 낙엽은 그냥 떨어지는데, 괜히 내가 떨어지는 낙엽을 가지고 슬픈 생각을 합리화시킨다.

 

그러니 지금 남편 살아계시는 분, 잘 돌봐드리면 되요. 위로해 드리고. 그러니까 웃으면서 위로해 주는게 하루라도 더 좋겠죠? 그러니까 울고불고 그러지 마세요. 그러니까 병상에 있을 때 잘 돌봐드리고, 돌아가시면 장례 잘 치러 드리고, 혼자서 꿋꿋이 잘 살고. 또 혼자 살기가 힘들어서 둘이 살면 안 되고, 둘이 살면 더 재미있겠다 싶으면 재혼해서 살면 되고, 재혼 하는게 무슨 큰 잘못이라고 이렇게 생각하면 안 돼. 같이 살 때는 함께 사는 기쁨을 누리고, 최선을 다하고. 돌아가시면 혼자 사는, 어때요? 기쁨을 누리고, 또 인연이 되면 또 같이 사는 기쁨을 누리고. 이게 인생이오.

 

살아있는 사람을 억지로 죽었으면 좋겠다. 남편 애먹이면 그런 생각 들어요? 안 들어요? ‘저놈의 첨지 저러느니 죽지 싶으죠.’ 항상 현재에 주어진 조건에 만족하고 최선을 다해야 됩니다. 그래서 지금 그래도 남편 살아있을 때 웃으면서 행복하게 살아야 되는데, 저렇게 걱정하면 남편 살아있을 때 어때요? 늘 울면서 같이 사는 삶을 만끽을 못하죠. 그럼 돌아가신 뒤에는 더 시간이 아까워요. ‘~ 그 며칠만이라도 웃으면서 만끽하고 살걸,’ 이래요.

 

그러니까 지금 10년 산다, 100년 산다, 이런 생각을 바라지 말고, 오늘 하루만 있어도 나는 행복하다. 이렇게 현재 살아있는 이 삶을 함께 만끽하는게 중요합니다. 그래야 돌아가시고 난 뒤에 딱 털어도 아무런 죄 의식 안 듭니다. 이렇게 울고불고 하다가 당신 없으면 못살아. 나는 평생 혼자 살거야. 이래놓고 돌아가고 얼마 안돼서 또 좋은 사람 나타나면 어때요? 죄의식이 드는 거요. 이 분을 위해서 살아있을 때 최선을 다하면 돌아가신 뒤에도 아무런 빚이 없습니다.

 

자기가 보기에 열흘은 더 살 거 같아요? 못살 거 같아요? ? (본인의 의지가 강하기 때문에 아직 몇 년은 더 살 것 같아요.) 몇 년 더 살 거 같아요? 그런데 뭐가 걱정이에요? 내가 걱정하는 거는 너무 오래 살아서 본인이 지치지 않을까, 그게 걱정이오. 스님 말 명심하세요. 지금은 오래 살기를 원하는데, 병석에 너무 오래 있어서 내가 지치면, 나도 모르게 아이고 이제 죽을 때가 안됐나?’ 이런 생각이 들까봐. 그런 마음이 들면 나한테 자괴심이 생긴다 이 말이오.

 

그러니까 항상 기쁜 마음으로 하루하루 살아있는 것에 대해서 기뻐하는 마음을 내면, 돌아가시더라도 내 마음에 그런 나쁜 것이 안생기고, 오래 살아도 나쁜 마음이 안 든다. 이런 얘기요. 자 여기까지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