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 역사/손석희앵커브리핑(2018)

[손석희의 앵커브리핑] 7.31(화) '육조지…judge'

Buddhastudy 2018. 8. 1. 20:09


뉴스룸의 앵커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비속어 같아 보이지만 표준어인 말이 있습니다.

 

조지다

1. 망치거나 그르치다.

2. 허술하지 못하게 단단히 단속하다.

3. 호되게 때리다.

 

여러 가지 의미가 있지요.

그러나 담긴 의미가 그리 곱지 않아서인지 비속어로 착각할 만큼 부정의 느낌을 품은 단어.

하필 이 단어가 속설처럼 자주 쓰이는 곳은 법원 주변이었습니다.

 

형사는 때려 조지고, 검사는 불러 조지고

판사는 미뤄 조지고, 간수는 세어 조지고

죄수는 먹어 조지고, 집구석은 팔아 조진다. - 정을병 < 육조지 >

 

작가 정을병의 육조지라는 소설 속 내용처럼 법의 언저리에 오게 되면 총 6가지의 조지기를 당하게 되니까 방금 말씀드린 사전 속에 갖가지 경우를 모두 겪을 수도 있다는 얘기.

 

그러나 그 호된 조지기를 감수하면서도 시민이 법을 찾는 이유란

힘없는 사회적 을들이 기댈 곳이 오로지 법 하나뿐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애써 법은 정의롭다, 공정하다 여기면서 그것을 존중하고 신뢰해왔던 것이었지요.

 

공교롭게도 영·미권 국가들에서 사용하는 단어의 발은 역시 방금 전 본의 아니게 여러 번 반복했던 조지다라는 그 단어의 묘하게 닮아있더군요.

 

judge [판사]

정의를 말하는 사람

 

어원을 살펴보면 정의말하다의 의미가 합쳐져서 정의를 말하는 사람이라는 의미가 됩니다. 심지어 대법관은 정의 그 자체인 justice[대법관] 라고 부를 정도이니, 사람들이 사법부에 대해 기대하는 무게란 어느 정도인지, 또한 그들이 얼마나 시민에 의해서 존중받고 있는지는 단어 하나만 곱씹어 봐도 금방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공개된 그 수많은 문서들...

일일이 분석하기조차 버거웠던 흔적들 앞에서 우리의 사법부는 세상을 향해서 자신 있게 법은 정의롭다 말할 수 있을까.

 

어떻게든 법에 기대어보고자 했던 힘없는 자들의 고통과 눈물을 외면한 채 재판을 정치적 거래와 흥정의 대상으로 여기면서 그들이 얻어내려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래서 법조계 인근을 떠돌았다는 그 믿기 싫은 속설은 오늘도 다시 이렇게 회자되고 있으니...

 

형사는 때려 조지고, 검사는 불러 조지고,

판사는 미뤄 조지고, 간수는 세어 조지고,

죄수는 먹어 조지고, 집구석은 팔아 조진다. - 정을병 < 육조지 >

 

판결로 구현해야 하는 정의가 흩어진 자리에 남은 것이라고는 마치 농담처럼 법의 주변을 맴돌았던 육조지기.

 

유독 힘없는 자들만 더욱 호되게 두드릴 것만 같은 속되고 그악스러운 느낌의 동사 하나뿐.

 

오늘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