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11)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제23회 소극적인 나의 모습

Buddhastudy 2011. 11. 18.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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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그걸 요구하는 게 좀 욕심이에요. 내가 보기에 다 가지고 있는, 모든 사람이 다 가지고 있는 수준의 고민이에요. 그러니까 본인만 갖고 있는 특별한 고민이 아니고. 이 보편적인 인간은 영향 받는 존재이거든요. 그래서 사람들이 있으면 사람들을 의식해서 좀 뭐든지 하게 되고, 사람들이 없으면 의식을 안 하게 되면 좀 소극적이 되고. 대부분의 사람이 그래요. 아주 특별한 사람만 그렇지 않는 경우도 있죠.

 

그러니까 현재의 상태가 특별히 본인에게 문제는 안 된다. 그런데 그걸 본인이 좀 더 극복을 해 복고 싶다. 하는 것이 있으면 극복을 하면 되는데, 극복이 안 되는 자기에 대해서 약간의 실망한다든지 하는 거는 이미 벌써 욕심을 부린다, 이런 얘기요. 자기를 너무 변화시키고 발전시키려고 하는 욕심 때문에, 그러지 못한 자기에 대한 부족함을 느끼기 때문에 생기는 거다. 그래서 일단 욕심을 버리셔야 돼요. 스님한테 상담하니까 다 들으시더니 지극히 정상적이다. 그러니까 생긴 대로 살아라. 이렇게 얘기하더라. 이게 첫째에요.

 

두 번째는 지금의 상태대로 만약에 간다면 지치게 된다. 사회운동에 대해서. 왜냐하면 그냥 자체내부에서의 일어나는 이 에너지라기보다는 이런 주어진 조건 때문에 에너지를 가지고 가서 큰소리도 치고, 힘도 내고, 이러기 때문에. 이게 가면 갭이 점점 커지면서 내가 지치게 되고 자꾸 이게 뭐랄까? 내면하고 바깥이 자꾸 겉돌게 된다. 이렇게 되면 어느 순간에 사라지는 일이 생겨요.

 

그러니까 이런 문제가 생기면 주위사람에게, 개인이 혼자 사는 사람은 괜찮은데. 사회적인 어떤 리더십을 갖고 있는 사람이 그래버리면 주위에 있는 사람에게 실망을 줘요? 안줘요? 주죠. 그 다음에 두 번째는 또 자기도 자기 어떤 자존심이나 이런게 굉장히 상하게 된단 말이오. 그럼 이 상처를 치료하려면 몇 년이 걸려야 되요. 그러니까 자기 내면의 소리를 억압하고 바깥으로 하지 말고, 자기 내면의 소리, 그건 진짜 니가 어떠냐?

 

난 사실 세상에 이렇게 어쩌구저쩌구 해도 혼자 있을 땐 세상에 아무 관심 없고, 그냥 맛있는 거나 먹고, 잠이나 좀 자고, 소박하게 농사나 짓고 살았으면 좋겠다. 이런 거 사실 힘들다. 언제까지 해야 되나? 그래도 또 형편이 되면 안할 수 없고. 만약 이런 건지. 이걸 자기 내면을 좀 봐야 된단 말이에요. 깨달음 장을 하셨어요? 처음 오십니까? 그러면 아무리 일이 바쁘시더라도 문경에 가서 깨달음 장을 먼저 해서 자기 성찰을 먼저 해야 되요. 나에게 어떤 무지가 있는지. 전도 몽상이 있는지를 먼저 점검해야 된다.

 

점검을 해도 절반은 치유가 되고, 그 다음에 이런 경우에는 나눔의 장에서 자기 속에 정말 무의식의 세계, 내면에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이렇게 자기가 알아야 되요. 그런데 혼자선 자기를 들여다본다고 알아지는게 아니거든요. 공상만 하게 되니까. 그럼 마음나누기를 하는 과정에서 자기 속에 있는 진짜 얘기가 나오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현실에 있는 자기를 자기가 수용하고 받아들여야 되요. 가공한 자기에 착각하고 살면 안 된단 말이오.

 

현실의 자기를 들어내고, 그거를 인정하고, 그거에 토대를 해서 한발한발 나아가야 내가 주장하는 것과 내 실천이 언행이 일치 한다, 이러잖아요. 그 다음에 이론과 마음이 실천이 일치하는 그 완전 일치는 안 되죠. 누구나 다. 그 갭을 줄일 수가 있게 된다. 이거요. 그러니 아무리 바쁘더라도 깨달음 장을 먼저 해서 자기가 미혹 돼 있는, 자기가 자기를 잘 모르거든요. 미혹돼 있는 부분을 먼저 부수는게 필요하다.

 

그리고 다음에 나눔의 장에 가서 진짜 자기의 까르마가 뭔지, 자기 마음이 뭔지를 파악을 해서 거기로부터 출발해야 마치 두 발을 땅에 디딘 거 같아요. 지금은 공중에 붕 뜬 거 같거든. 그래야 어떤 일을 할 때 착 가라앉아가지고 할 수가 있다, 이런 얘기요. 이런 과정을 한번 거쳐보면 좋겠네.

 

누구나 다 수행을 해야죠. 그러나 이제 이런 사회활동을 하는 사람, 스님이나, 신부나, 목사나, 아님 사회운동을 하거나, 또는 회사는 좀 덜해요. 어쨌든 사회 리더. 도덕적으로 남 앞에서 주장하는 사람 있잖아요. 이런 사람들은 수행을 좀 많이 해야 됩니다. 그래서 제가 항상 그런 얘기하잖아요. 사람들한테. 남에게 인생을 이래 살아야 된다. 저래 살아야 된다는 얘기는 가능하면 안하면 좋다.

 

그러면 그것이 다 부메랑이 돼서 누구한테 돌아옵니까? 나한테 돌아와요. 아시겠습니까? 항상 니는?’ 사람들이 이렇게 얘기하잖아. 그래서 다른 사람한테 상처를 많이 줘요. 그래서 말이 앞서는 거를 항상 좀 줄이는게 좋아요. 그런데 이제 그걸 그냥 그렇다고 말 안 하는게 아니라, 자기 성찰을 통해서 이 갭을 줄여야, 안정감 있게 나아갈 수가 있다. 힘 있게 나아갈 수 있다. 이래 말 할 수 있어요.

 

그래서 우리가 역사 속으로 운동을 해서 지도자가 된 사람, 모택동이든, 호치민이든, 그렇지 않으면 간디든 이런 사람 보면 어때요? 그것은 대중의 지지를 받지 않습니까? 내면이 안정 돼 있기 때문에. 그래서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흔들리지 않고 꾸준히 밀고나가서 대중의 신뢰를 받는 거란 말이오. 그래서 다 그런 사람들은 무슨 불교를 몰라도 수행을 하는 거라, 마음공부를.

 

그런데 혁명하는 사람 중에 감정기복이 심하고, 불같은 성격을 가지고 하고 이런 사람들은 사실은 파괴를 하는 혁명은 하는데, 건설은 못해요. 그래서 건설의 이후가 얼마못가서 무너지죠. 대중적 지지를 잃게 된다는 거요. 그리고 이성을 잃게 되고. 자꾸. 그래서 수행을 꾸준히 해 나가셔야 됩니다. 자 오늘 여기까지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