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12)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제71회 나의 진로는? / 미안한 채식주의자

Buddhastudy 2012. 1. 26. 22:23

  방송 보기: BTN
 

그런 고민을 하는 거는 공부가 조금 힘들다는 거 아닐까? 좋아해요? 그럼 그냥 하세요. 잘 쓰이는 거는 공부 안 해도 쓰일 수는 얼마든지 있어. 예를 들면 나이 들었는데 시골 사람이 남자가 장가 못가가지고 애쓰는 사람한테 시집가줘도 그것도 굉장한 잘 쓰이는 일이란 말이오. 그 사람한테는 복이오? 복 아니오? 복이지. 그러니까 잘 쓰일 수 있는 길은 박사 아니라도 얼마든지 있어.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인도의 수자타아카데미 가서 영어 선생 해 줘도 잘 쓰이고, 거기서 영어 가르쳐줘도 잘 쓰이고, 거기 가서 한국말 가르쳐줘도 잘 쓰이는 거고.

 

아까 얘기한 데로 외로운 사람에게 시집가서 보살펴주는 것도 잘 쓰이는 길이고, 애 못 낳는 사람한테 가서 애 하나 낳아주는 것도 잘 쓰이는 길이고, 또 낳아서 못 키우는 애를 입양시켜가지고 어때요? 보살펴주는 것도 잘 쓰이는 거고. 잘 쓰이는 거는 무궁무진하게 많아. 그거는 이러면 잘 쓰이고, 이거 공부하는 게 잘 쓰이고, 그만둬야 잘 쓰이고. 이런 건 아니야.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잘 쓰이는 건 얼마든지 있는데. 남 생각하지 말고, 우선 내가 뭘 하면서 잘 쓰이는 게 좋겠냐를 자기가 선택해야 돼.

 

내걸 버리고 남에게 잘 쓰인다면 지천에 깔렸어. 잘 쓰일 일은. 그런데 이게 안 되는 거는 다 나 때문에 그래. . 내 문제가 해결이 안 돼서 내 욕구, 잘난 남자하고 살고 싶다. 돈 많은 남자하고 살고 싶다. 내 인기 얻고 싶다. 내 교수 되고 싶다. 내 뭐하고 싶다. 이게 지금 급급해서 잘 쓰일 길이 없는 거요. 그러니까 내 문제를 봐야 되. 남 문제는 지금 신경 쓰지 말고. 내가 뭐하면 좋겠냐? 내가, 자신이. 뭘 해도 잘 쓰이는 거는 언제든지 쓰일 수 있기 때문에. 교수를 해도 잘 쓰일 수 있고, 안 해도 잘 쓰일 수 있기 때문에.

 

그런데 본인이 내가 공부하기 싫나? 이렇게 물어본 이유가. 공부하기 싫은데 억지로 할 필요는 없다. ? 딴 거 해도 잘 쓰일 수 있기 때문에. 맞어. 문제가 있어.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건 맞는 얘기요. 좀 정신 차려 들으세요. 저기 굶은 사람 있는데 지는 아파트 층수 늘릴 생각하고, 평수 늘릴 생각하고, 이쁜 옷 살 생각하고. 이런 사람들 좀 반성해야 돼. 그건 맞는 소리요. 그래서 옛날 내가 90년대 중반에 굶어 죽을 때 탁~ 다니면서 사람이 굶어 죽는데 이거 좀 가라.’ 이러니까 어떤 네 명인가? 직장 탁~ 다니다 그만두고, ‘중국에 가겠습니다.’ 이래서 중국에 가서 난민도 돕고, 뭐도 하고. 이렇게 한 젊은이들도 있었어.

 

좋은 생각이오. 그거는. 그런데 자기가 지금 문학 전공하는 거 그만둔다고 해도, 현재 북한 문제 푸는데 크게 도움이 안 돼. 그래서 미래에 앞으로 북한 건설이다, 뭐다, 할 일이 많거든요. 그걸 생각해서 우선 공부를 하되 오히려 이게 더 도움이 돼. 미국에 가서 기고문 있잖아요. 글을 잘 쓰니까. 북한이 어려운데 우리가 인도적으로 이걸 돕는 게 낫지 않느냐?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이런 글을 하나 예를 들어서 뉴욕 타임즈던, 워싱턴 타임즈던, 안 그러면 조그마한 학교 잡지든, 그런 글을 올려주고. 이게 내가 지금 학교 그만두고 거기 가가지고 국경 변에 가 있는 거보다 훨씬 도움이 된다.

 

안 그러면 지금 어느 주에 살아요? 메사추세츠. 그러면 거기 상원의원에게. 그 지역 하원의원에게 편지를 쓴다든지 오바마에게 편지를 써서. 국문학과 다니니까 글을 잘 쓸 거 아니오. 잘 못써요? 그러면 자기 진솔한 말을 쓰면 되니까. 그게 진짜 돕는 길이오. 안 그러면 지금 우리 좋은 벗들의 북한 소식지 전하는 거 있잖아. 그죠? 그거 번역하는 거 도와준다든지. 북한의 지금 산모가 어떤 어려움에 처했다. 고아원의 아이들이 어떤 어려움에 처했다. 이런 소식을 알리는 소식지가 있거든요? 그걸 그러면 자원봉사 신청해가지고 한 꼭지씩, 일주일에 한 꼭지씩 내가 번역해 주겠다. 이게 실질적으로 내 일을 하면서도 돕는 일이다. 이 말이오.

 

잘 됐네. 오늘. 그렇게 해서 사실 제일 중요한 건 미국 안에서 미국에 사는 사람이 그런 편지도 쓰고, 그런 글을 쓰고 자꾸 해야 돼요. 그러면 이게 변화가 옵니다. 그것도 나만 하지 말고 내 친구들에게 ~ 니도 좀 써라.’ 이런 식으로. 그러면 전공도 하고, 일도같이 할 수 있어요. 난 옛날에 스님이 되면 아무것도 내가 원하는 거 못할 줄 알았거든요. 그래서 굉장히 망설였는데, 스님이 돼도 혼자서 우주연구도 하고 그래요. 스님이 돼도 민족운동하고, 스님이 돼도 외국에 가서 구호 활동하고 그러잖아요. 스님이 돼도 나라를 위해서 이렇게 여러 활동을 할 수 있잖아요.

 

처음에는 스님이 되면 아무것도 못한다고 생각해서 굉장히 망설였거든. 오히려 스님 된 후에 더 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문학박사가 돼서 문학 하고 관계없는 거 같지만 그렇지 않아요. 북한의 그런 주민들이 겪은 그 고통, 인권침해. 식량난으로 겪은 그 고통, 자녀 죽고, 이런 아픔을 나중에 뭐로? 수기식으로 글을 써서 내보내도 쓸 수 있잖아요. 문학을 했으니까. 그걸 작품으로 써도 되고.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요.

 

생각을 놔 버리면 아무 일도 없고, 조그마한 것도 잡으면 어때요? 온갖 게 다 문제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여러분들을 괴롭고 싶으면 온갖 걸 잡아서 시비를 하면 되고, 괴롭고 싶지 않으면 어때요? 놔 버리면 돼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내가 볼 때는 그래요. 괴롭고 싶어서 몸부림치는 사람들. 어이하면 괴로울까? 앉으나 서나 괴로울 궁리만 내는 사람들. 어떤 핑계를 하나 만들어가도 괴롭고 싶어가지고. 그래서 여러분들이 괴로워하는 거 보고 스님이 눈도 깜짝 안 하는 이유가 자기가 그리 좋아서 하는 일인데 뭐 내가 그걸 뭐 애달파 할 이유가 없잖아요.

 

그런데 놔 버리면 괴로울 일이 없어요. 그러니까 그런 마음으로 자기의 삶을 항상 아름답게 가꾸어 가라. 이 좋은 날. 알았습니까? .

 

 

Q2

 

먹는 거는 다 자기 입맛이거든요. 짜게 먹거나 싱겁게 먹거나 그게 자기 입맛이지. 내가 조금 짜게 먹는다고 싱겁게 먹는 사람 눈치 볼 필요도 없고, 내가 싱겁게 먹는다고 짜게 먹는 사람 눈치 볼 필요도 없고. 또 내가 채식한다고 고기 먹는 사람 눈치 볼 필요도 없고, 내가 채식한다고 고기 먹는 사람 비난할 필요도 없다. 이런 문제는 내가 채식하는 게 무슨 동료들에게 피해를 주는 게 아니라는 거요.

 

그러니까 그것은 당당하게 그냥 얘기하면 돼요. 이럴 때 마치 내가 채식하는 게 뭐 굉장한척한다든지, 또 다른 사람을 비난하게 한다든지 이럴 때 갈등이 생기죠. 그러니까 고기 빼고이런 말 하지 말고, 그냥 메뉴를 딱~ 보고 이름을 딱~ 정하면 되지. 뭣 때문에 하필 고기 빼고이런 소리를 해요? 그게 사람들이 들으면 아이고 잘났다.’ 이런 소리를 하게 되는 거란 말이오. 그러니까 그냥 그중에 하나를 딱 가서 메뉴를 보고 요즘 고기 안 들어간 음식이 거의 없지 않습니까? 그죠?

 

하나를 정해놓고 먹을 때 자기가 알아서 적당하게 먹어버리면 되지. 먹을 때. 그러니까 음식을 가능하면 고기 안 들어간 음식을 시키고, 또 들어간 음식, 약간 들어간 음식, 시키더라도 시켜놓고 먹을 때만 자기가 알아서 눈치껏 먹으면 되죠. 티를 내지 말고. 자꾸 이거 먹어봐라. 저거 먹어봐라. 그러면 얘기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죠. 첫째가 ~ 내가 지금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아가지고 안 된다. 의사가 먹지 마라 그랬다.’ 이렇게 얘기하는 방법이 하나 있고. 조금 더 적극적으로 나가면 내가 불교 신자라서 앞으로 고기를 안 먹기로 했다.’ 이렇게 얘기해도 되고. 이렇게 핑계를 딱~ 자기입장, 자기 삶의 방향을 딱~ 잡아서 얘기하면 돼요. 눈치 볼게 뭐가 있어?

 

그런 정도는 뭐 어쩔 수 없이 내가 찾아서 먹는 게 아니니까. 맹물을 마셔도 그 안에 팔만 사천 마리 벌레가 들어 있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가 바루공양할 때 五觀一滴水오관일적수 八萬四千蟲팔만사천충 若不念此呪약불염차주 如食衆生肉여식중생육. 이러고 옴 살바 나유타 (발다나야 반 다반다 사바하) 염불을 해 주거든요? 그러니까 이 물 한 방울을 탁~ 관해보니까 이 속에 팔만 사천 마리의 벌레가 들어 있구나. 만약에 내가 이 염불을 하지 않고 먹는다면 중생의 고기를 먹는 것이 된다. 그러니 내가 염불을 하고 먹겠다. 염불을 하고 먹는 거는 이것은 생존에서 일어나는 일이지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란 말이오. 그래서 그 벌레들이 다 좋은 세상에 가라고. 그래서 염불을 딱 하고 먹는단 말이오.

 

그러니까 채소 잎만 먹어도, 또 맹물만 마셔도, 그렇게까지 따지면 안 들어간 데는 없다. 이런 얘기요. 그러니까 거기에 눈에 보이는 게 아닌 거는 그냥 먹는 게 좋다. 몸이 뭐 먹으면 두드러기가 난다든지. 이러면 또 조심해야 되겠지만. 불교는 채식을 하는 거지 채식주의자는 아니에요. 채식주의자라는 것은 무조건 먹으면 큰일 난다. 먹으면 안 된다. 지옥 간다. 이런 게 채식주의자란 말이오.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그러니까 채식을 하는데 내가 어쩔 수 없는 나도 모르게 녹아있는 그거까지 다 골라야 된다. 이러면 사는 게 굉장히 불편해지고, 톡톡 튀고 이리되죠. 부처님의 계율은 그런 거 아니에요. . 다음 시간에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