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뭐가 행복하다고 앞에 행복하다는 말을 붙였어요? 내가 보니 하나도 행복하지 않고만. 삼대가 사니까 지금 이렇게 걱정이 되잖아요. 만약에 자기가 살림 내주고 자기 혼자 살면 울든지 말든지 나한테 걱정 하나도 안 될 텐데? 왜 삼대가 살아요? 삼대가 안 살면 되지. 그런데 뭐 그게 행복하다고 자랑을 하고. 나도 그럴 바에야 인천에 큰 배만 들어오면 나도 부자다. 그런 조건 붙이기 뭐. 애만 안 울면 나도 행복하다. 그러면 뭐해요? 지금 별로 안 행복 하구만은.
애가 우는 거를 본인이 귀찮게 생각하기 때문에 본인이 지금 괴로운 거요. 할매가 아이가 나름대로 아파서 그 힘들어서 우는데, 그 소리 듣기 싫어서 귀찮아하니까, 자기가 괴로운 거요. 그런데 왜 괴로워요? ‘아이고~ 얼마나 답답하면 저래 울까? 아이고~ 속이 얼마나 답답하면 저래 울까?’ 이렇게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는 마음을 내면 그게 왜 듣기 싫어요? 그게 왜 가슴이 아파요? 지금 문제는 애가 안 울었으면 좋겠다. 지금 이 얘기 하려는 거 아니에요. 애가 속이 답답하면 울어서 표현을 해야 되요? 속이 답답한데도 할머니 듣기 싫어하니까 속을 썩이고 안 울어야 되요?
그러니까 지금 아이 걱정이에요? 제 걱정이에요? 그러니까 지금 내 밤에 자는데 애가 자꾸 울어가지고 잠 못 자게 하니까 애를 고쳐서 내 편하려고 하는 거에요? 나를 고쳐서 아이가 울지 않도록 하는 게 누구 좋아라고 그러는 거요? 누구 좋아라고? 아이가 안 우는 거를 지금 누구 좋아라고 울지 말라는 거요? 성질 더럽죠. 저러니까. 그러니까 아이가 속이 답답하면 아이의 입장에서 본다면 울어줘야 되요? 안 울어 줘야 되요? 울어줘야지. 애를 위해서는 울어줘야지. 아이는 자기를 위해서 울어야 자기를 알릴 거 아니오.
그러면 애가 울어줘야, 아프면 아프다고 울어줘야, 우리 애가 문제가 뭔지를 알 거 아니오. 그런데 낮에 울면 나자는 거 하고 관계없이 괜찮고, 밤에 우니까 내 잠 깨운다. 그러고 네가 속이야 타든지 말든지 울지만 않으면 나는 애 아픈 걸 모르니까. 그러니까 집에 가서 기도를 다시 해봐요. 애 무슨 기도를 하기는. ‘저 아이가 얼마나 마음이 아프면 저렇게 울겠나? 아이고~ 아이고~ 아이야, 얼마나 가슴이 답답하면 네가 그래 우노. 아이고~ 할매가 대신 울어줄까?’ 이렇게 기도해 보세요.
애 걱정은 털끝만큼도 안 하고, 저게 밤에 울면 집구석이 재수 없다는데. 저게 왜 자꾸 밤에 우노? 잠 못 들고 밤에 우노. 아프지도 멀쩡한 애가 울기는 왜 자꾸 번갈아가면서 둘이 우노? 지금 이런 생각에 확 사로잡혀 있는 거요. 그러니까 기도를 할 때 애가 안 울었으면 좋겠다. 그건 내 마음이오. 애를 위하는 게 아니오. 애는 아프면 울어줘야 돼. 자기 생각밖에 안 하는 거요. 애가 아프면 두 시라도 울어야 되고 세 시라도 울어야지. 왜 밤에 우나? 이것도 내가 귀찮아서 그런 거요. 정신 좀 차리세요. 말귀 제대로 알아듣고.
그러니까 애가 밤에 울든, 낮에 울든, 열 번을 울든, 스무 번을 울든, 애가 울 때, ‘아이고~ 저게 내가 모르지마는 저게 얼마나 답답하면 저래 악을 쓰고 울겠나. 아이고~ 내가 대신 좀 울어줄 수만 있으면 좋겠다. 아이고~ 아이고~ 부처님 아이가 얼마나 답답하면 저렇게 울겠습니까?’ 이렇게 아이 마음으로 돌아가거라. 그렇게 아이를 안타까워하는 마음을 내라. 어디 가서 듣고 애가 밤에 울면 집구석에 재수 없다. 그런 생각만 하는 거는 애 병 낫는 게 중요하고 아이가 아프면 아프다고 말을 해야 무슨 대책이 나오지, 애가 속이 타는데도 안 울면 그건 어떻게 해요? 애가 큰 병나지.
그러니까 아이를 고치려는 생각을 하지 마라. 이 얘기에요. 내가 아이의 아픈 마음을 보면서 아이고 얼마나 저게 속이 답답하면 저렇게 악을 쓸까? 이렇게 마음을 내면 그 소리를 들어도 내가 괴롭지가 않다. 그러면 그 소리는 소리대로 있어도 나는 괴롭지가 않다. 이 말이오. 그게 내가 해탈하는 길이요. 그러니까 애를 위해서 마치 자기가 생각하는 것 같지만, 자기가 지금 귀찮아서 지금 애를 위한다고 지금 착각하고 있다. 이 말이오. 진짜 아이를 위하는 마음을 내면 누구 괴로움이 사라진다? 내 괴로움이 사라진다.
그러면 애가 안 울까? 이런 생각 하지 마라. 아픈 애는 울어야 그게 되는 거요. 울어줘야 그게 표현이 될 거 아니오. 엄마라도 애가 울어줘야 애를 알 거 아니오. 안 울면 애가 어떻게 되는지 어떻게 알아? 애가 뭣 때문에? 속이 답답든, 몸이 어디 아프든. 안 아픈데 왜 울겠어요? 뭔가 자기는 답답하니까 지금 우는 거란 말이오. 그거를 간절하게 아파해주는 마음을 내시면 막힌 게 뚫릴 거에요.
우리가 행복하게 사는 것은 어떤 특별한 노력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특별한 무슨 능력이 필요한 것도 아니에요. 다시 말하면 삶의 지혜다. 이렇게 볼 수 있어요. 지혜. 그 지혜라는 게 무슨 특별히 새벽기도 가가지고 얻어지는 것도 아니에요. 순서에 맞게끔, 자연의 흐름에 맞게끔 하는 거에요. 제일 편하고 쉽게 가는 길이에요. 지혜롭게 사는 길이. 그러니 절에 가서 돌부처 앞에 새벽에 일어나서 같이 사는 남편은 놔두고 절에 가서 돌부처 앞에 다기 올린다고 그렇게 난리법석을 피우니까, 기도를 많이 해도 지혜가 안 생기는 거요.
그러니까 오히려 누워있는, 자는 부처 앞에 깨워서 음식공양을 잘 차리고, 그래서 생색내면 안 되고, 오히려 내가 ‘공양받아 줘서 고맙습니다.’ 이렇게 기도를 하면 내 속에 지혜가 생겨납니다. 그럼 절에 가지 마라. 이런 얘기 아니에요. 그렇게 지혜가 생기면은 절에 가서 3년 살아도 남편이 상처를 안 입게 돼요. 나를 팽개치고 절에 갔다. 이런 인상을 안 주고 안 주기 때문에. 그땐 헤어져서 살아도 괜찮아요. 그런데 지금 해야 될 순서가 앞에게 먼저다 이 말이오. 이걸 먼저하고 뒤에 해야 될 건데, 뒤에 걸 먼저 하기 때문에, 지금 순서가 안 맞기 때문에 애는 많이 쓰는데 결과가 안 좋은 거요.
그래서 오늘 전체 공부는 우리의 인생에. 이 난마 같은 인생이 본래 복잡한 게 아니고, 우리가 지금 어리석어서 지혜롭지 못하기 때문에 실타래 엉키듯이 얽혀있는데, 조금만 생각을 바꾸면 얼마든지 이 삶의 실타래는 풀어진다. 이런 얘기요. 저 아까 질문하신 할머니가 자기는 손자 생각 굉장히 하는 거 같은데, 실제로는 손자 생각을 하는 게 아니고, 자기 생각을 하는 거다. 이걸 알아야 됩니다. 먼저. 그래서 나를 생각하는 것을 오히려 손자의 안타까움으로 생각을 바꾸면 누가 편해진다? 도로 내가 편해진다. 그러면 손자 울음이 그치나? 안 그치나? 이런 질문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해탈이라는 것은 울어도 편하고, 안 울어도 편한 게 해탈이지. 울면 안 편하고 안 울어야 편한 거는 해탈이 아니고 반쪽 행복이다. 이런 얘기요. 그렇게 여러분들이 이치를 바로 잡고 알아도 그게 금방 되면 되는데, 알아도 안 되기 때문에 그때 뭘 한다? 그거를 하기 위해서 절도 하고, 노력도 하는 거지. 뭘 해결하기 위한 그런 바른길도 없이, 그저 절만 하고 노력만 한다고 그건 수행이 아니다. 그건 공연한 노력만 낭비하는 거다.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첫째 바른길을 잡고 이걸 법에 대한 이해라 그래. 잡고 두 번째 노력을 해야 된다. 그렇게 정진을 해 나가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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