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살면서 일어나는 감정들은
화보다는 주로 긴장하거나 걱정하고 불안해하는 것
그리고 위축되고 의기소침해하는 것입니다.
화에 대한 여러 법문도 찾아보았는데
제가 화가 많은 사람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보통 제 친구나 직장동료들에게 화가 나는 경우는 드뭅니다.
또, 화가 나더라도 ‘그냥 그렇구나!’ 하면서 넘깁니다.
그래서 저는 스스로 시비분별도 강하지 않으며
화가 적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또 주변에서는 저를 주로 착하고, 이해심이 크며, 좋은 사람이라고 얘기합니다.
하지만 남편에게만은 전혀 그렇지 못합니다.
막상 결혼해 보니 남편에게 시비분별이 강하게 일어났습니다.
남편이 굉장히 못마땅하며, 이해가 안 되고, 화와 분노가 끓어오르게 합니다.
이런 저를 보면
‘내가 이런 사람이었나?’ 하고 의아해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남편이 스트레스를 술로 푼다거나,
술을 끝까지 마시려고 할 때입니다.
가게나 어디에 가서 사람들에게 비판적이거나
지적하는 언행을 할 때도 그렇습니다.
가게에 갔을 때 어떤 손해를 보았다거나 서비스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면
꼭 짚고 넘어갑니다.
남편이 사람들에게 직설적으로 쏘아붙인다는 느낌이 들면
저는 화가 나고 시비분별을 하게 됩니다.
그때 저는 착하고 좋은 사람이며
남편은 못 되고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동안 법문 듣고 공부하면서
머리로만 옳고 그름은 없으며
사람은 각자 다르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남편의 행동을 보면 완전히 틀렸다는 생각이 듭니다.
남편에게 일어나는 강한 시비분별을 제가 어떻게 봐야 할까요?//
자꾸 긴장하거나 불안이 많다는 심리의 핵심은
남들에게 잘 보이려는 데 있습니다.
우리는 잘 보이고 싶을 때 자꾸 긴장하거나 불안해하죠.
사람은 누구나 다 다른 사람들에게 잘 보이고 싶어 합니다.
사람들이 좋아해 주면 기분이 좋죠?
어제 뙤약볕에 행사를 치렀지만, 내빈들께서
‘오늘 행사가 참 좋았습니다.
이런 행사는 정토회만 할 수 있을 거예요’ 하고 말씀하시면
아무래도 기분이 좋습니다.
하지만 ‘뙤약볕에서 이게 뭐 하는 거예요?’ 하는 반응이 오면
아무래도 기분이 덜 좋아요.
이런 말을 들어도 기분이 좋다면
저는 그건 빈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기분이 다르기 때문에
행사를 좋게 보는 분도 있고 나쁘게 보는 분도 있습니다.
저는 이번 행사를 사람들이 다 좋게 봐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지만,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식 대로 봅니다.
내가 바라는 걸 사람들에게 요구할 수도 없고
그렇게 되기도 어렵습니다.
저마다 원하는 걸 다 이루고 살 수는 없으니까요.
불안하거나 긴장이 된다면
‘내가 잘 보이려고 하는구나!,
‘좋은 소리를 듣고 싶어 하는구나!’ 하고 자각해야 합니다.
자각하면 긴장이 조금 풀려요.
긴장이 잘 안 풀어진다면
그건 자각하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있으면
긴장은 계속 유지됩니다.
긴장하면 안 된다는 말씀이 아니에요.
내가 지금 긴장하고 있다는 것은 잘 보이고 싶다는 것이고
긴장하고 싶지 않다면 잘 보이고 싶다는 생각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잘 보이고 싶다는 생각을 움켜쥐고 있으면
긴장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는 긴장하면 안 된다는 식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저는 긴장하면 안 된다고 말씀드리지 않아요.
살 빼고 싶다는 분에게
음식을 먹지 말라는 말씀도 드리지 않습니다.
‘살 빼고 싶으시면 음식을 줄이셔야 합니다.
많이 먹고 싶다면 살찌는 것을 받아들이셔야 합니다’
이렇게 말씀드려요.
살은 빼고 싶은데 먹는 걸 못 참겠다면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면 원하는 대로 하시라고 말씀드릴 수밖에 없어요.
저는 그 원인과 해결책을 말씀드릴 뿐입니다,
원인을 제거해서 편안하게 살 건지
아니면 원인을 그대로 두고 과보를 받아들일 건지
이것은 질문자의 선택이에요.
어떤 제삼자가 대신해 줄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다른 사람한텐 화가 덜 나는데 남편에게만 난다거나
남편은 괜찮은데 아이한테만 화가 난다면
그 사람에게 내가 그만큼 집착되어 있다는 것을 자각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부부 동반 모임으로 식당에 갔는데
어떤 부인의 남편이 반찬 투정을 하면
기분까지 나쁘지는 않잖아요.
그런데 내 남편이 그러면 화가 납니다.
왜냐하면 남편을 나와 동일시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남편이 사람들에게 밉보이는 게
내가 사람들에게 밉보이는 것과 똑같이 느껴지는 겁니다.
‘내 남편이니까 너는 그렇게 하면 안 된다.
당신이 적어도 나와 같이 살려면 그러면 안 된다.’
이런 생각이 들어서 생기는 문제입니다.
이럴 때는 내 남자, 내 남편이란 생각을 내려놓아야 해요.
‘그냥 한 사람이 그렇구나’ 하고 받아들여야 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남들이 비판을 하면
‘비판을 많이 하는구나’ 이렇게 봐야 하는데
같이 사는 사람에게는 그렇게 되기가 어렵습니다.
이걸 ‘동일시’라고 그럽니다.
여러분들도 누군가와 대화하다가
어떤 스님이 이렇다 저렇다 할 때는
그냥 그런가 보다 하는데
법륜스님이 이렇다 저렇다고 하면
기분이 딱 나빠질 겁니다.
왜냐하면 여러분들은
법륜스님을 자기와 동일시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스님을 두고 저렇게 말하나?’
이런 생각이 들게 됩니다.
다른 집 아이가 성적이 떨어진 건
기분 나쁘지 않은데
내 아이가 꼴찌를 했다고 하면
받아들이기 어렵잖아요.
모두 다 자기와 동일시하는 데서 오는 문제입니다.
이것은 자기가 잘나고 싶은 마음과 똑같은 심리예요.
상대를 자기와 동일시하면
‘적어도 내 남자는 그러면 안 된다’
이런 생각을 자꾸 하게 됩니다.
남편은 나와 결혼했을 뿐이지
그 사람은 그 사람의 인생이 있는 거예요.
단지 나하고 결혼했을 뿐인 겁니다.
아이는 나에게 태어나서 자랐을 뿐이지
아이에게는 아이의 인생이 있는 거예요.
그걸 나와 동일시해서 내 뜻대로 하려니까
힘들어지는 겁니다.
원래 가까이 있으면 자꾸 잔소리를 하게 됩니다.
스님도 비서실에 있는 사람한테 잔소리를 많이 하겠어요?
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여러분한테 잔소리를 하겠어요?
가까이 있으면 자꾸 눈에 보이니까
이런저런 지적을 하게 되고
그래서 마음이 서로 상하게 되는 거예요.
그렇다고 고마움을 모르는 건 또 아닙니다.
고마움을 알지만 고마움에 대해서는 말을 잘 안 합니다.
우리가 어제 큰 행사를 했잖아요.
행사가 끝나고 나면 잘한 것부터
먼저 평가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법문 할 때 마이크에서 하울링이 너무 울렸어.
그거 왜 그래?’ 이런다든지
‘이쪽에는 마이크 소리가 잘 안 들렸다’
이렇게 지적을 먼저 하기가 쉽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이런저런 문제가 있었지만
행사는 괜찮았다는 것이 사람들의 평가 아닙니까?
그러니 고마움이 사실은 우선이에요.
고마움이 바탕에 깔려있는 가운데
굳이 흠이 있다면
이러이러한 몇 가지 흠이 있다고 평가해야 합니다.
그러나 얘기를 하다 보면
이렇게 평가를 잘하지 않게 됩니다.
문제 있는 것부터 먼저 이야기를 하게 되죠.
가까이에 있는 사람일수록
티끌같이 작은 문제를 먼저 얘기하고 좋은 점은 말을 안 합니다.
그러다 보니까 상처를 주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 상대에게 지적을 받을 때는
기분은 조금 나쁘지만
‘그래도 가까이 있으니까 이런 얘기를 하는 거다’
이렇게 받아줘야 합니다.
반대로 내가 지적할 때는
‘나와 자꾸 동일시해서 문제를 제기하는구나’라고 생각해서
지적을 가능하면 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상대가 지적하는 건 좋게 받아들이되
그러나 나는 가능하면 지적을 안 하는 게 좋다’
이런 관점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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